포스트 코로나와 열린 포스트 뮤지엄


글: 김재환 |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부산시립미술관

지난 4월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브리핑하며 생활 속 방역활동이 우리 일상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생활 속 거리두기는 일상이 되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수많은 매체에서 비대면 온라인 공연과 전시를 포스트 코로나의 대안으로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SNS를 통한 방구석 공연이 나온 라인 전시 설명이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예술작품의 원본성(일회성)이라는 아우라만 포기한다면 온라인으로 즐기는 예술이 대세가 될 수 있다는 건 포스트 코로나를 논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다. 발터 벤야민은 20세기 초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제거된 감상 방식을 벌써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에는 숨은 전제가 하나 있다. 다름 아닌 화이트 큐브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이 본격화된 후 뉴욕현대미술관(MoMA)를 중심으로 구축된 화이트 큐브는 미술작품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표백된 전시 공간 개념을 발명했다. 그리고 이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어쩌면 모더니즘 최고의 발명이 회화의 순수성이나 재현의 거부 따위가 아니라 화이트 큐브일지도 모른다. 미술작품이 온라인으로 공유되는 건 그래서 화이트 큐브의 새로운 탄생이라 이야기만하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 대부분의 공공 미술관은 이러한 화이트 큐브의 한계를 벗어나려 부단히 노력 중이다. 전시 공간 외 다양한 배움터를 마련한다든지 휴게시설을 확충한다든지 아니면 다원예술이라 부를만한 각종 장르와 혼재된 전시/공연을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말이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작가, 큐레이터, 에듀케이터, 예술작품, 관람객 등이 전시 공간뿐만 아니라 미술관의 공유 시설에서도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쪽으로 귀결된다.

MoMA는 지난 2019년 6월부터 10월까지 약 5개월에 걸쳐 미술관에서 경험의 질을 향상시킨다는목적으로 로비 및 서비스 공간 확대, 전시장 확대와 같은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새로운 미술사적 관점과 작품을 제시하는 21세기형 미술관으로 거듭난다는 포부도 덩달아 밝혔다. 화이트 큐브의 창시 기관인 MoMA가 21세기형 새로운 미술관 개념을 리노베이션을 통해 실현한 것이다. 테이트 모던 역시 2012년에서 2016년 사이 5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여해 ‘복합문화교육공간’으로 변신했다. 공공 미술관의 이러한 물리적 변화(리노베이션)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근대적 형식의 화이트 큐브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공공 미술관은 아직까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내지 않고 있다. 공공 미술관의 설립역사가 짧아서 그런지 미술관 성격 변화에 따른 리노베이션 이야기는 좀처럼 들을 수가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매년 진행하는 ‘공립미술관 설립타당성 사전평가’ 작업에도 미술관 신규 설립 항목만 있지 리노베이션에 해당하는 개축, 증축, 이전 관련 항목은 빠져 있다. 흥미롭게도 박물관은 신규 설립 외에도 이러한 리노베이션 관련 항목이 포함되어 있어 훨씬 다양한 형태의 지원이 가능한 상태다. 상황이 이러해서인지 지자체 차원에서는 대규모 예산이 투여되는 미술관 리노베이션 사업에 대해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지난 20년 사이에 생겨난 공공 미술관 대부분은 화이트 큐브의 패러다임 속에서 설립된 건축물이라 최근 몇 년 사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융합에 기반을 둔 참여와 소통의 포스트 뮤지엄론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국가 정책 차원에서 미술관 리노베이션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술관 전시가 중단된 지난 수개월은 정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였다.  온라인의 활성화로 전시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찾기도 했지만, 코로나19에 대응하며 전시, 교육, 문화행사를 현장에서 실행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껴안게 되었다. 아마도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방법은 다양할 것 같다. 사람, 장소, 예술이 뒤섞이는 관계망이 실내에서만 구현될 필요도 없고 대규모로 구현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에 대한 미련만 버린다면 마을에 스며드는 작은 미술관을 빈 집의 재탄생으로 구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관 리노베이션마저 코로나19로 인해 한 단계 진화할 필요성이 생겨버렸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부산시립미술관(사진)이 시설환경 개선 사업을 넘어 좀 더 적극적인 리노베이션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근대적 미술 공간을 벗어나 시민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의 변화를 모색 중이다. 미술관 성격 변화에 따른 성공적인 리노베이션 사례가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