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선 : 나란히 걷는 낮과 밤
2018. 2. 23 ~ 3. 25
대안공간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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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은 부분일 뿐, 그 부분(형상)들이 모여서 전체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형상은 형상이고, 전체는 그냥 전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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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선의 그림에서 하나의 형상은 다른 형상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형상이 홀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의 형상은 다른 형상과 유동적으로 연결되지만, 곧바로 또 다른 형상과 만날 수 있다. 형상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관계와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의 그림에는 다양한 형상들이 등장하지만 각기각색의 형상들은 독립적이면서도 한 화면에 어우러진다.
오일이 자신의 성향과 그다지 맞지 않는다는 작가는 캔버스에 수채로 그림을 그린다. 수채는, 오일과 아크릴릭에 비해 드로잉처럼 얇고 가벼운 느낌의 표현이 가능하며, 동시에 이미 칠해진 색 위에 색을 또 올리더라도 밑의 색이 완전히 가려지지 않는다. 위의 색과 아래의 색이 만나면서 평평하지만 입체적인 색채 레이어가 생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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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 동안 그의 작업은 제법 달라졌다. 하지만 얇고 납작한 느낌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는 새로운 시각 환경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느낌을 준다. 디지털·인터넷 시대에 맞춰 그가 의식적으로 평평한 그림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 역시 어렸을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저절로 평평함이 체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회화가 단순히 디지털 환경의 영향을 받아 평평해졌다고 말할수 없다. 그의 그림에서 하나의 형상은 다른 형상을 지배하지 않는다. 모두 평등하게 존재한다. 그래서 그림이 평평해진 것이다. 평평해졌다고 그림에 내재하는 에너지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에너지의 분포가 골고루 퍼져있다고 보는 게 옳다. 즉 그의 그림은 단순한 평면이 아니라 잠재성(virtualité)을 가진 평면이다. 그것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내재성의 평면(plan d’immanence)’이자 ‘일관성의 구도(plan de consistance)’에 가까운 상태이다.
평평함을 통해 평등을 말하고, 다양성을 통해 존재를 드러내는 전현선의 전시는 대안공간 루프에서 3월 25일까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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