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밝은 미래- 사이버네틱 환상
7.20~11.5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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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이스북의 자동 채팅용 인공지능 챗봇(chatbot)이 시험 운행 중에 인간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인공지능 사이에서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은어를 만들어 대화를 주고받은 일이 있었다. ‘해프닝인가? 아니면 인공지능의 진화인가?’ 하는 논란이 가라앉기도 전에, 한 단계 더 나아가 중국의 IT 기업인 텐센트의 챗봇이 사용자와 대화 도중 자국 정부에 대해 ‘부패 무능한 공산당’이라는 고강도 비판을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페이스북과 텐센트는 각각 회로를 강제 종료시켜 통제를 벗어난 인공지능의 입을 막았으나, 인공지능의 자기 진화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우리의 밝은 미래 – 사이버네틱 환상〉은 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둔 현시점에서 사람들이 직, 간접적으로 접하는 사이버네틱스에 대해 예술의 관점으로 매우 시의적인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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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1940년대 통제를 다루는 수학 이론으로 탄생한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의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이론을 인간과 기술의 관계로 확장한 백남준의 《사이버네틱스 선언》(1965)을 출발선에 두고, 기술에 대한 백남준의 자유로운 해석을 통해 사이버네틱스와 예술의 관계를 탐구한다. 전시장에는 로봇(Robot), 접합(Interface), 포스트 휴먼(Posthuman)의 세 가지 주제에 대해 ‘기계는 정말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을까?’, ‘인간이라는 경계는 아직 유효한가?’, ‘인간과 기계는 이음새 없이 접합할 수 있을까?’ 같은, 기획자가 관람객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선언처럼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데, 전시에 참여한 국내외 작가 15명의 작품들은 전시장 안에서 마치 이 질문들에 반응하고, 응답하듯이 각자의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인공지능 테이(Tay)를 소재로 한 자크 블라스& 제미마 와이먼(Zach Blas & Jemima Wyman)의 〈나는 여기에서 공부하는 중 :))))))〉(2017)과 온라인 자동 쇼핑 로봇이 비트코인으로 끊임없이 웹 쇼핑(심지어 마약까지)을 하는 장면을 담은 !미디엔그룹 비트닉(!Mediengruppe Bitnik)의 〈무작위 다크넷 구매자-봇 컬렉션〉(2014~2016)은 글 서두에서 언급한 일련의 사건들과 비슷한 맥락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났을 때 벌어지는 윤리적 가치 판단의 문제에 대해 질문한다. 2016년 당시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학습한 각종 정치적인 말들을 내뱉어 하루 만에 강제 종료된 테이는 작품을 통해 기괴한 모습으로 부활하여 페미니즘, 나치즘, 동성애 등에 대해 못다 한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온전히 보는 이의 몫이 된다.
김태연의 〈인공의 섬〉(2016)과 스펠라 페트릭(Špela Petri )의 〈비참한 기계〉(2015)는 흥미롭게도 각각 초록빛의 식물 애기장대와 살아있는 홍합이라는 자연물을 전시장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인공의 섬〉의 마치 인큐베이터처럼 보이는 투명한 박스 안에는 작가의 DNA가 접합된 식물 애기장대가 관람객의 숨결에 반응하며 인간+식물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섬을 만들고 있는 반면, 〈비참한 기계〉의 홍합은 화병의 무늬를 그리기 위해 껍질이 벗겨진 속살에 끊임없이 전기 자극을 받으며 죽어가는 기계가 된다.
한편 대량 생산을 위한 기계의 속도를 1.6초 더 높여 생산력을 향상시키려는 과정에서 나타난 노사갈등의 장면을 영상으로 담아낸 박경근의 〈1.6초〉(2016)나 공장 노동자가 기계화되어 표정을 빼앗긴 양쩐쭝(Yang Zhenzhong)의 〈위장〉(2015)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며 삶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기계와 인간의 상호대립적인 관계를 드러내고, 노진아의 〈진화하는 신, 가이아〉(2017)는 인간의 형태를 닮아가고 있는 사이보그를 인간과 직접 마주하게 하여 친숙함을 느끼게 만든다. 불완전한 신체를 지닌 가이아는 관람객들이 질문을 던지면 그에 대한 비교적 구체적인 대답을 들려주는데, ‘인간이 만든 기계의 경이로움’의 허용치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작동하고 있기에 기계의 두려움보다 익숙함을 전달한다.
전시는 기본적으로 사이버네틱스가 우리의 삶 모든 부분에 침투하게 될 미래에 대해 열린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우리의 밝은 미래’라는 전시 제목에서 박이소의 〈우리는 행복해요〉(2004), 〈당신의 밝은 미래〉(2002)가 지닌 반어적인 뉘앙스가 떠오르는 것이 억지스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이미 우리는 사이버네틱스의 세상을 마주하고 있지만 아직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만들어낸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한 인공지능(Strong Artificial Intelligence)’과 공존해야 할 때가 온다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미뤄두었던 많은 결정들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때, ‘새로운 독은 내재된 독을 경유하여 극복할 수 있다’는 백남준의 말이 우리들 각자에게 힌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이버네틱스가 어떤 형식의 독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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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희승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 사진:박홍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