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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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순 철 Kwun Sunch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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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철은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50여 년간 줄곧 그림을 그려왔다. 그가 그리는 그림의 모티프는 주로 한국의 산과 바다, 그리고 한국인의 초상이다. 세파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온 노인의 얼굴은 작가 특유의 두꺼운 마티에르와 거친 붓 터치를 거쳐 깊은 울림을 전한다. 또한 그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평창동 가나아트센터(2016. 12 .16-2017. 1. 15)에서 ‘예수’의 초상을 그린 근작을 대거 선보인 바 있다. 인간의 얼굴을 모티프로 예술과 종교의 상관관계를 형상화하는 경지에 이른 노화가의 심연을 탐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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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철과 종교와 예술

종교를 신학적으로 인식하면 ‘특별하게 선택 받을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구원은 ‘질투하는 특수정신’을 믿는다는 고백으로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된다. 신학적이 아니라 인류학적으로 보면 고통의 근원과 생의 종말의 의미를 알지 못해도, 인간에게 고통이 지속되어도 자기만의 종교를 갖게 된다. 고통의 경건함을 받아들이며 고통을 인정할 때 종교심을 낳게 된다. 고통의 체험이 종교가 되는 순간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분노가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연결되는 순간은 맞닿아있다. 이때 속죄는 특정 종교의식 차원이 아닌 근원적인 ‘수행’(Performance)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형집행인이 되지 못하면서, 인류 행동들이 고민스럽고, 저마다 짊어진 ‘삶’을 개별 숙명처럼 바라보도록 어떤 외부 힘이 움켜잡고 있을 때, 그 힘이 이해할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일 때, ‘종교심’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권순철의 ‘넋’을 비롯한 얼굴 작업들, 신체 작업들을 이해하는 길은 그의 예술을 종교적으로 이해하면서 시작된다. 세계를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언어가 의식에서 사라져갈 때, 지워질 때 퍼포먼스 자체만 언어로 남는다. 잭슨 폴록을 비롯해, 2차 세계대전 사이에 진행된 유럽미술의 추상화 흐름이 바로 그랬다. 말(로고스)이 이미 적폐요 역겨운 명령어일 뿐이라면, 표정과 제스처와 행위 퍼포먼스가 현실이 말하지 않는 ‘진리’를 드러낸다고 믿게 된다. 신학적 종교가 인류문명의 한 축을 이루는 역사요 제도라면, 그리고 기존 제도와 역사, 제도와 종교가, 인류가 무조건적으로 갈망하는 측은지심을 도외시하고 자유와 평등에 대한 경외심 등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인 대중의 진실을 향한 요구를 부정한다면, 그때부터 자유와 평등을 갈구하는 여러 지점에서 퍼포먼스들은 시작된다. 갈구의 퍼포먼스는 막을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고 힘이다.

신학적 종교이든 인류학적 종교이든, 종교와 예술은 생명과 죽음의 문제, 살아가는 방식문제 등에 대한 인류의 갈등과 방황, 사랑과 기쁨, 슬픔을 대변했다. 이런 점 등에서 예술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진행됐다. 예술은 애초엔 종교였고, 오랫동안 종교는 예술의 표현을 빌려야만 가시화됐다. 근대사회 낭만주의철학에서는 예술은 종교보다 인식론적, 존재론적으로 상위의 철학기관이기도 했다. 예술은 제도적 종교의 이념에 종속적이거나 종교를 표현하는 시각기관이기도 했다. 때로는 예술가 내면의 갈등과 고뇌, 욕망과 좌절은 종교의 대상처럼 그 자체 아우라를 갖고 우상화되어 보이기도 했다. 이 같은 정신적 아우라가 예술성을, 예술의 종교 이상의 가치를 담보하기도 한다. 그래서 예술은 이제 종교처럼 정신적으로 자율적인 의미세계를 담보하는 것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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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 관악산〉 캔버스에 유채 65×162cm 1983∼1984

〈얼굴〉 캔버스에 유채 260×194c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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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역사는 제도적 종교와 비제도적 종교가 서로를 은폐, 시기, 갈등하며 이루어온 인류 역사의 빛과 그늘로 영속됐다. 제도종교의 타락과 명예, 제도종교와 현실정치 권력의 야합과 결탁을 감추고 미화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예술의 상업성과 사이비 문화의 혼재, 예술담론의 정치적 저열한 농간, 예술을 둘러싼 깊디깊은 저주 같은, 예술이라는 존재 자체의 가치평가에 대한, 그래서 곧 가치 자체의 질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해, 감상, 평가방식 등 예술은 여러 술수작동 방식과 방법이 가능한 존재태(存在態)라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침범할 수 없는 표현의 자유와 정신적 가치로서 여전히 인류의 가장 중요한 표현기관 중 하나로 용인되고 있다. 이것은 예술이 지닌 인류 역사와 인류 종교의 기능상 유사성, 혹은 좀 더 과장하면 근친상간성인 ‘예술이 지닌 인류학적 종교 기능’, 혹은 전혀 다르게 표현하면 이를 일러 사회학자들은 사회성이라고 칭하는데, 예술이 지닌 인간을 위한 기능을 폄하할 수 없어서다. 제도적 종교처럼 예술도 그 이상이거나 종교만큼 인간을 위해 절대필요적인 기관이다. 예술도 성상(聖像)이다. ‘예술자율성’ 이념이라는 성상은, 자율성이라는 우상을 반사회적으로 보고 파괴하려는 행위를 근대초 이후 더 이상은 허용치 않는, 또는 민주주의만큼 인간사회 발전의 근본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예술자율성의 가치로 예술은 정치적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고 예술만이 자신의 발언을 스스로 대중의 머리 위로 치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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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의 예술종교

권순철은 “대학 때부터 한국적인 것을 찾았다. 그것은 얼굴이고, 넋이고, 산이었다. 스타일이나 주제를 바꾸는 것보다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충동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주제에 몰두하면 몰두할수록 주제가 더 강해지고, 힘이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 적 있다. 한국적인 것에 대한 고민은 비단 권순철뿐만 아니라 한국 작가라면 누구나 작업을 앞두고 하게 되는 근본적 고민이다. 하지만 그가 스타일이나 주제보다 ‘그리고자 하는 충동’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은 한국 미술계의 여느 작가들과 다른 권순철 작업의 특징이다. 한번 선택한 주제에 몰두할수록 주제가 더 강해지고 표현하는 힘이 깊어지더라는 경험은 그의 작업이 1980년대의 누구와도 다른 예술세계를 갖게 된 비결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자 하는 충동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말은 어찌 보면 가장 보편적인 인류의 미술충동에 대해 언급했을 뿐일 수도 있다. 이런 그의 취지는 전쟁을 겪은 후 유럽 구상미술의 변화에서 먼저 나타나는데, 구상적으로 세계를 재현하기를 거부하며, 재현된 정교함의 리얼리즘 세계에서 조차 현실은 어떻게든 ‘우상화’된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미술을 하고자 하는 가장 근본적인 보편충동을 바탕으로 하지만, 어쨌든 특별한 예술가 개인으로 자신을 고양시키고자 하면서, 그리고자 하는 충동의 퍼포먼스를 지속하는 권순철의 작업은 이미 종교적 제스처 양상을 띠고 있고, 어쩌면 그래서 자연스럽게 주제는 결국 ‘예수’ 상을 그리든지 하는 종교적 일반주제로 향하게 됐다. 하지만 그의 예술은 종교에 복속되거나 종교를 대체할 새로운 절대정신으로 예술을 대하는 방향이 아닌, 그리고자 하는 충동에만 따른다. 게다가 그 충동은 스타일이나 주제들을 이리저리 변화시켜가면서 충동을 이어가는 양상이 아니라, 그리고자 하는 충동을 대상 재현으로 실현하지 않고, 평생 선택한 한 가지 주제라고 할 만한 그런 주제, 다시 말해 얼굴이자 얼굴 속의 넋이며 동시에 그 넋은 ‘표정’인데, 고난을 겪은 역사의 흔적이 담긴, 역사가 들어있는 얼굴은 다 선하다는, 절망을 이겨낸 선한 얼굴 결국 ‘좋은 얼굴’을 그린다는 목표를 향한 충동으로 일관되어 있다.

“세월이 쌓인 노인들의 얼굴이 좋다. 그 얼굴들은 고난을 겪고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가 다 들어 있는 얼굴들이다. 그들은 좋은 표정을 가지고 있다. 절망을 이겨낸 선한 얼굴들이다. 이런 좋은 얼굴들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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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 가나아트아틀리에에 있는 작가 권순철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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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권순철 작업세계 혹은 권순철 예술철학은, ‘고난을 겪고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얼굴로 상징되는 그의 ‘진리관’과, 이 얼굴을 선하다고 하는 그의 ‘윤리관’, 마지막으로 절망을 이겨낸 선한 얼굴들이 좋다는 그의 독자적 ‘미학관’으로 오로지 구축된다. 말하자면 진선미에 관한 그만의 독자적 철학이 그의 예술세계를 빚어내고 있는 셈이다. 예술에 관한, 예술이 해야 할 바에 대한 그리고 개인 권순철이 인생에서 본 것과 그가 하고 싶은 행동에의 충동이, 일종의 수행적인 예술작업에 녹아들어, 그만의 독특한 종교적 세계관의 구현물로 만들고 있다.

세속의 특정 종교를 갖고 있지만, 권순철이 ‘석가와 공자, 예수와 무함마드, 그리고 임산부’를 한 공간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그릴 수 있도록 하는 철학적 배경에는 권순철만의 예술종교가 있다. 그렇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의 ‘얼굴’ 작업은 ‘넋’이나 ‘홀로코스트’ 같은 주제로 펼쳐진다. 펼쳐지긴 하나 새로운 주제의 작업들이라기보다는 동일 주제의 연속적 전개이자 반복이다. 주제가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의 말대로 동일 주제의 표현에 몰두하면서 나타난 발전이다. 그럴수록 주제의 표현이, 힘이 더 강해진다. 표현이 깊어지고 강해지는 바를 작가 스스로 느끼기에 권순철은 반복 작업을 통해 인생에 대한 그의 숱한 질문, 고난의 역사에 대한 질문들과 의문들을 계속 보존할 가치를 느낀다. 고난을 겪은 자의 표정과 제스처에서 비록 고통에 차있지만 꽃처럼 피어나는 증거능력의 생명들을 본다. 숱한 붓질의 반복이 대상을 완전 해체해 뭉갤 수도 있지만, ‘뭉갠다’는 것은 종말에는 대상의 부정이요, 존재의 말살, 무화(無化)이지만, 그는 거의 평생에 걸친 반복수행으로, 수행의 중간중간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며 번뇌와 무기력함의 순간도 닥쳐왔겠지만, 지금 그의 작업의 ‘수행성’은 결국 온갖 색즉공(色卽空), 공즉색(空卽生)의 종교적 법리(法理) 너머, 색이 생명의 불꽃을 얻어 구체적 언어(Parole)로 피어남을 맛본다. 색은 생명의 표현이다. 생명의 자기 서사가 복잡하면 할수록 색은 영롱해지고 형언하기 힘든 중충적 의미가 되어 울부짖는다. 엉켜 뭉개졌지만 색 하나하나마다 개별의 소리로 살아나 역사를 지켜본 자의 수행의 힘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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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캔버스에 유채 162×130cm 2016 가나아트센터(2016.12.16~2017.1.15)에서 열린 개인전 〈Light of the Spirit – Jesus〉 전시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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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대로 됐다. 어떤 스타일을 추구할지, 어떤 주제로 작업할지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고 자신의 주제에 강고하게 대처하며 대상의 표정을 살피고 그 속의 역사를 보려 반복하고 또 반복한 그의 종교적 수행은 타자의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한 ‘표현’에 힘을 갖게 했다. 반복은 깊이의 힘을 얻었고, 반복은 경건함에 이르면서 종교심이 되고, 예술이란 종교가 육화되어 나왔다. 그의 작품 속 홀로코스트의 넋들은 마치 불특정 공간의 우주로 해체된 듯 떠도는 살점으로 이차원의 평면에 해안가 쓰레기들처럼 걸려 덕지덕지 엉켜 붙어 있지만, 기실 역사의 기억 저편에서 밀려온 홀로코스트의 고통을 재현한, 샤먼적 춤사위이다. 이 점에서도 그가 대학생 때부터 원했다는 소위 ‘한국적’ 문화상징성은 확보됐다고 보인다. 모든 이차원은 본질적으로 예술의 차원이다. ‘이차원의 평면’은 다양한 관점들이 동시적으로 전투를 치르는 인간 고유의 장(場)이다. 해체주의적 건축의 3차원성에서는 결국 유사해체주의를 표방할 뿐이지만, 이차원은 해체의지가 각축을 이루는 전장이다. 인간의 기억과 역사의 해석, 관점의 승리와 패배, 억압과 자유, 해방과 민주주의가 서로의 영욕을 기획하고 복수할 수 있는 피의 전투가 벌어지는 장이다. 인간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고, 삶을 그 뼈와 살까지 파괴해 새로운 육체로 구성할 수 있는 장도 이차원의 평면뿐이다. 전혀 새로운 말을 만들거나, 수행성의 문법을 바꾸거나 생의 감각을 순전히 자율적인 감각으로 생산하거나 전혀 다르게도 기록하도록 하는 일은 이차원에서만 가능한, 이차원적인 일이다. 곧 이차원은 그 자체 예술의 속성을 지닌다.

권순철의 작품들은 ‘이차원’이라는 장에 무엇인가를 그리려는 충동으로 가득 차있다. 이차원이라는, 본질적으로 예술적인 장과 전투를 벌이면서 화가로서 평생의 목숨으로 이차원에 자신의 영욕을 매개시켜 왔다. 스타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주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류의 번뇌에 색채를 찾아주는 일이 근본이다. 번뇌에 색채를 찾아주면 번뇌는 살아있는 목숨의 삶을 얻게 될 것이기에 그렇다. 권순철의 작업이 종교성을 얻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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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순 철
1944년 출생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8년 그로리치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1회 개인전을 열었고, 1992년 제4회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소나무작가회 회원이며 현재 경기도 장흥 가나아트파크 아틀리에에서 작업한다.

글:강성원 | 미학 / 사진:박홍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