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먹고, 요리하고, 예술하라

Cooking time in Contemporary Art
현대미술에서 요리가 ‘그림의 떡’을 벗어난 지 이미 오래다. 미술관 안팎에 먹을 것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가 직접 장을 보고, 음식을 조리하고, 심지어 식당을 차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작가와 시간을 보내며 작품에 참여하게 된다. 동행, 친구를 뜻하는 영어단어 ‘companion’의 어원이 ‘함께 빵을 먹는 사람’이라는 점만 보더라도 음식을 나누는 행위는 단순힌 ‘먹는’ 것을 넘어 새로운 장을 이끌어 냄을 알 수 있다. 이 섹션에서는 ‘요리’를 매개로 한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한다. 이들의 작업은 미각적 체험을 넘어 타인과 경험을 공유하게 하며 새로운 삶과 예술의 관계항을 이끌어 낸다. ‘관계’를 중심에 둔 그들의 공통된 미학적 태도와 동시에 각각의 작가가 지향하는 다채로운 의도와 맥락을 살펴본다.

컨플릭트 키친
타인을 인식하는 시선

미국 피츠버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룹이다. 존 루빈(Jon Rubin)과 돈 웰레스키(Dawn Weleski)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그룹명이기도 한 〈컨플리트 키친(Conflict Kitchen)〉은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국가의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 시리즈 작업이다.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북한 등의 음식점을 피츠버그에 차렸다. 북한 버전 〈컨플리트 키친〉을 열기 전 제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에 참여해 〈이북 음식 가이드〉와 〈라이브 식탁〉 등 북한 음식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남북한 평화를 추구하는 여성단체인 ‘조각보’를 만나 음식 조리법을 배우고, 북한이탈주민 인터뷰를 진행했다. 〈라이브 식탁〉은 화상전화를 통해 신청자를 모집해 피츠버그의 컴플리트 키친 스태프 뿐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미국의 워싱턴 등 총 7곳에서 접속한 8팀이 참여해 공유한 조리법을 토대로 요리한 음식을 함께 먹는 프로젝트다. 작가는 “음식의 사회적 관계, 경제적 교류를 통해 국가, 문화 그리고 흔히 정치적으로 양극단에 있다고 말하는 국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논의의 기회”를 제공한다. conflictkitchen.org

이북음식가이드1

새터민에게서 만둣국과 두부밥 등 이북 음식의 조리법을 전수받는 〈이북 음식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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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음식을 판매하는 〈컨플릭트 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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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연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자체 제작 포장마차

정착하지 못하는 삶의 불안에서 시작된 유케아(UKEA)는 유목연의 브랜드다. 그가 직접 제작한 〈목연 포차〉는 슈퍼마켓 카트 위에 만들어진 작은 1인용 이동식 선술집이다. 작가는 서울 광주 군산 등에서 소주 한잔과 비엔나소시지를 나누며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철원에서 열린 〈리얼DMZ 프로젝트 2015 동송 세월〉에서는 〈통일 국수〉를 새롭게 선보였다. 장수를 의미하는 국수를 직접 만들어 관객에게 제공하며 통일에 대한 염원과 지역의 역사를 담았다. 오픈된 공간에서 열리는 그의 작업에는 예술계 내부의 유통을 넘어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게 된다. 예술의 영역에 입장하지 않은 채 미술에, 혹은 작가와 관계하게 된 참여자는 미술의 영역을 줄타기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www.mokyon.com

목연포차 (4)

〈목연 포차〉 가변크기 201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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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나
지속적인 접촉을 통한 교감

〈FREE Flight〉와 〈봉지 속 상자〉는 전시 오프닝이라는 행사 자체를 작업으로 삼았다. 작가는 중요하지만 부차적인 오프닝 행사라는 조연에게 주연의 자리를 내준다. 〈봉지 속 상자〉는 전시 오프닝에 참석할 사람들에게 저녁 식사와 관련해 사전에 던진 질문지를 바탕으로 작가가 저녁 장을 보고 저마다의 저녁거리 식재료가 담긴 비닐봉지를 관객 손에 들려주는 작업이다. 질문지에는 저녁 먹는 시간, 함께 먹는 사람, 즐겨먹는 메뉴, 좋아하는 색상, 치아 상태 등을 묻는 20가지의 질문이 담겨있다. 오프닝 후 관객은 작가가 제공한 식재료로 저녁을 해먹을 수 있다. 한편 〈FREE Flight〉는 오프닝 행사를 위한 김밥과 테이블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후 이들의 제작과정을 책자로 만들어 보여준다. 박보나는 작가가 적극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과정을 통해 일시적 만남보다는 관계와 소통을 통한 ‘교감’을 이끌어낸다. www.bonapark.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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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Flight전〉 오프닝에 사용한 테이블, 테이블보, 김밥 가변크기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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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식
지역 공동체와의 관계
현재 ‘무늬만커뮤니티’의 디렉터로 활동 중인 작가는 공동체의 관계성, 지역과 삶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한다. 2007년 선을 보인 〈다기조아 10호점〉은 치킨집 사장님과 함께 택한 키치적 미감의 오브제로 기념비를 세우고 미국 패스트푸드 치킨과 한국의 닭튀김이 섞인, 한국 맛도 미국 맛도 아닌 ‘다기조아’의 치킨을 전시장에 들여와 한국의 서구화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낸다. 올해 4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한 퍼포먼스 〈커뮤니티를 위한 모뉴멘트〉에서는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거주하는 지역민과 예술가들과 함께 단기간 고도로 성장한 우리 근현대사를 열심히 살아온 ‘개인’에 대한 오마주를 담아냈다. 테이블 제작, 수타 자장면 퍼포먼스 등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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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식 김기만 박기수 류승진 더나라 〈커뮤니티를 위한 모뉴멘트〉 퍼포먼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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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민
교환과 나눔을 통한 관계 맺기

〈밥 먹고 가세요〉시리즈는 인천 남구 숭의동에 위치한 수봉다방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다. 작가는 음식 재료가 그려진 손바닥만한 크기의 캔버스 작품을 수봉다방에 전시했다. 관객은 그림에 해당하는 실제 음식재료를 들고 와 그림과 교환했다. 음식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모아 직접 요리하고 이를 관객과 함께 나눠 먹었다. 총 3회에 걸쳐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밥 먹고 가세요 #1 부대찌개〉부터 〈#2 떡만두국〉, 〈#3 짜장면〉으로 이어졌다. 작가는 적극적인 참여자로 사람들과 관계한다. 관객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마을 사람들과 직접 관계 맺는 상호작용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억을 공유한다. hparkart.com

〈밥 먹고 가세요〉 2015

〈밥 먹고 가세요〉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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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자
먹을 것을 구하는 노동의 직접적인 행위

음식은 낯선 문화를 받아들이는 직접적인 경험이 된다. 작가는 〈정통의 맛〉에서 라면, 국수, 레토르트 카레 등의 포장지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고, 조리예에 따라 조리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고 음식을 직접 만들어 전시로 구현하는 방식을 취했다. 작가는 보기 위한 음식으로 디자인된 이미지의 가상성을 다시 실재화한다. 그리고 익숙한 이미지 속에서 실재의 낯섦을 발견한다. 한편 〈겨우-살이〉는 예술가의 노동과 음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2011년 선감도의 경기창작센터에 머물 당시, 마을 사람들의 일을 돕고 김장 재료를 얻어 겨울을 나기 위한 김치를 담그고 이를 오픈스튜디오를 방문한 사람들에게 대접했다. 작가는 이 작업에서 “무언가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생산적으로 보이지 않는 미술가로서의 직업, 일이 먹을 것을 구하는 행위와 일치하도록 하려 했다.” www.guminj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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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 가변설치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