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먹고, 요리하고, 예술하라

Delicious Dishes on TV
2015년 상반기 귓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 눈에 가시가 돋도록 보게 되는 영상이 있다. 바로 ‘쿡방’이다. 이제 음식 프로그램은 단순히 ‘먹는 모습’에서 ‘만드는 행위’의 시각화로 넘어갔다. 시청자는 혀끝을 대지 않아도 화면을 보면서 군침을 삼킨다. 음식과 요리에 대한 끝없는 집착의 과정을 영상매체 중 하나인 방송 프로그램의 흐름과 함께 짚어본다. ‘요리’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흐름 속에서 과연 우리의 밥상은 풍성해지고 있을까?

당신이 보는 것이 곧 당신이다

박성경 도서출판 따비 대표

음식이 미술의 주인공인 적은 드물지만 음식문화 연구자에게 미술은 음식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또 하나의 문헌이다. 예를들어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인물보다 식탁 위에 무엇이 차려졌는지를 보고,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당시의 식탁문화를 읽기도 한다. 그렇다면 수프 통조림도 미술이 되는 현대를 읽기 위해 가장 유용한 시각매체는 무엇일까? 아마도 대중매체, 그중에서도 방송영상이 아닐까 한다.
요리사 아닌 요리사가 생전 라면도 안 끓여봤음직한 남자 연예인 넷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집밥 백선생〉이 요즘 뜨겁다. 음식 칼럼니스트뿐 아니라 문화·사회학자까지 나서서 〈집밥 백선생〉의 주인공인 백종원 현상을 논한다. 지금 이 순간 미디어를 장악한 가장 핫한 주제가 바로 음식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음식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일까? 1970년대까지 보릿고개를 겪은 한국에서, 음식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1980년대 말, 고도경제성장을 이어온 한국에서 드디어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고, 자가용을 가진 인구도 차츰 늘어났다. ‘맛집’이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쓰이지는 않았지만 그 개념은 1990년대 초반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답사여행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낸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전국의 유적뿐 아니라 답사지 인근의 식당도 소개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식당 앞에 여행객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만들어졌다. 향토음식의 발견과 지역 맛집의 등장은 이처럼 먹고살 만해진 사회의 여가 활동이라는 사회·경제적인 변화에서 비롯됐다. (이런 현상은 서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레스토랑 가이드북인 《미슐랭가이드》도 자동차의 보급과 여행의 활성화라는 배경에서 탄생했다. 오죽하면 타이어회사가 만들었겠는가.)
이 시기 ‘맛있는 집’을 소개하는 주체는 미식가를 자처하는 작가나 기자들이었고 책과 신문·잡지 등 전통적 미디어였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음식에 대한 자신의 취향을 밝히고 소위 맛집 리스트를 정리하고 찾아다니는 개인들이 나타났다. 하이텔, 천리안 등 PC통신의 탄생과 맞물린 일이다. PC통신에 개설된 식도락 동호회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동호회 회원들은 자신들의 맛집을 소개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부 동호회는 종종 유명식당과 주류회사들의 초대를 받기도 했다. 이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일부 필력 좋은 이들 중 본격적으로 음식칼럼을 쓴 이도 있었고, 맛집 블로거로 유명세를 떨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일부러 멀리 있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흔한 것이 아니고, 주변의 맛집을 기억하고 찾는 정도에 그쳤다.
대중이 본격적으로 맛집을 순례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 TV 교양·예능 프로그램의 소재로 음식과 식당이 등장하면서부터다. 2000년 5월에 방송을 시작한 KBS 〈VJ 특공대〉는 VJ(비디오 저널리스트)라 불리는 PD들이 소형 카메라를 들고 화제의 현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특색 있는 음식을 파는 식당에 찾아가 음식이 만들어지는 주방과 손님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화면은 맛집 소개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전체 구성 중 맛집을 소개하는 에피소드의 시청률이 높았고 그 비중도 컸다. 화려한 불쇼 등으로 시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화면은 시청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는 방송의 장점을 잘 살리는 방식이었다. 훗날 등장한 SBS 〈생활의 달인〉도 식당만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먹방으로 분류할 수 있는 에피소드의 인기가 가장 높았다는 점에서 〈VJ 특공대〉의 전형을 따랐다. 이런 프로그램이 맛집을 소개하는 먹방의 전형을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출연자는 식당 주인, 요리사와 손님 같은 일반인이었다. 이런 틀을 깬 프로그램이 2001년 11월 시작한 MBC 〈찾아라 맛있는 TV〉다. 이 프로그램은 처음으로 연예인을 출연시키며 본격 ‘음식 버라이어티 쇼’를 표방한다. 연예인의 단골집을 소개하는 ‘스타의 맛집’ 등 다양한 코너가 진행되었지만, 연예인이 직접 식당을 찾아가 음식 맛을 보고 평가한다는 포맷은 이어졌다. 그전까지는 화려한 볼거리와 청각효과로 시청자에게 ‘구경하는 재미’를 제공하는 게 먹방이었다면, 연예인들의 인기를 업고 단골이라는 신뢰도를 바탕으로 소개된 음식은 ‘맛있을 것이다’라는 믿음까지 끌어냈다.
먹방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TV에 나온 집’은 성공을 담보하는 보증서로 통했다. 연예인이 나와 ‘맛있다’라고 한 식당에는 모두가 열광하고, 자신이 느끼는 맛과 상관없이 줄을 서기에 이르렀다. 그때까지 TV 오락 프로그램을 보는 것으로 끝났다면 이제는 시청자가 지갑을 들고 집 밖으로 뛰쳐나가게 만든 것이다. 먹방의 시청자는 곧 맛집의 소비자가 된 것이다.
미디어의 맛집 열풍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블로그와 SNS를 통해서 맛집을 접하기 시작했다. TV에서 정보를 얻은 시청자는 인터넷으로 그 경로를 옮겼고, 연예인이 보증하던 ‘맛’은 개인의 비평으로 무게 중심이 바뀌었다. 2010년을 넘어서면서 TV의 먹방은 블로그와 경쟁하는 처지가 되었다. TV에 소개되는 집은 이미 블로그 등에서 인기를 얻은 맛집의 뒷북에 지나지 않거나, 다큐멘터리 〈트루맛쇼〉에서 폭로된 것처럼 시청자의 지갑을 노린 외식업자와 방송이 조작한 ‘만들어진 맛집’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시청자는 TV의 먹방보다는 개인의 블로그를 더 신뢰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TV의 주도권이 공중파에서 케이블로 넘어가는 것과 맞물려, 먹방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포맷의 음식 프로그램이 등장하는데, 바로 쿡방이다. 요리사가 연예인의 냉장고 속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대결하는 JTBC〈냉장고를 부탁해〉, 새마을식당으로 알려진 백종원에게 요리를 배우는 tvN〈집밥 백선생〉, 신동엽과 성시경이 요리하는 〈오늘 뭐 먹지?〉 등이 마니아층을 넘어서 폭넓은 시청자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방송 직후에는 소개된 레시피, 요리사의 이름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점령한다. 한마디로 쿡방이 대세이다.
그렇다면 시청자는 왜 쿡방에 열광할까? 한마디로, 오늘날의 쿡방은 기존의 예능을 대체하는 프로그램이다. 연예인 못지않은 예능감을 자랑하는 ‘셰프테이너’들의 박진감 넘치는 몸짓과 화려한 영상, 긴박감을 자아내는 시간제한과 대결 구도, 요리를 시식하는 연예인들의 호들갑에 가까운 감탄사는 교양 프로그램이 아닌 오락 프로그램임을 확인하게 한다. 국방은 〈무한도전〉이나 〈1박 2일〉을 대체하는 가족 오락 프로그램이다.
그렇다고 쿡방이 요리 강습의 요소를 버린 것은 아니다. 요리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요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집밥 백선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요리를 표방하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백종원의 가르침을 받는 남자 연예인들은 누가 봐도 어수룩하다. 그 모습은 시청자에게 나도 저만큼은 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여기에, 뭐든지 잘하는 남자 성시경과 요리 지진아 신동엽이 함께 요리하는 〈오늘은 뭐 먹지〉는 요리하는 남자와 요리를 배우려는 남자에게 호감을 갖는 요즘의 트렌드를 담아내고 있다. 백선생은 요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쉽지유? 빠르지유?” 요리할 줄 모르는 이는 ‘쉽지유?’가, 시간에 쫓겨 사는 이는 ‘빠르지유?’가 유혹한다. 요리할 줄 모르고 요리할 시간이 없는 이유는 저녁이 없는 빠듯한 삶을 사는 사람이 많음을 보여주고 백선생은 그 점을 너무나 잘 아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쿡방은 식품회사의 거대한 광고판이기도 하다. 〈집밥 백선생〉의 요리법은 가족이 모여 있는 집의 것이 아닌 대중식당의 것이다. 〈오늘 뭐 먹지?〉는 언뜻 보기에는 쿡방이지만, 두 진행자에게 요리법을 알려주는 이는 대중식당 주인이다. 대중식당의 레시피는 많은 사람의 입맛과 판매가격을 맞추기 위해 달고 매운 자극적인 양념과 MSG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현재 쿡방을 주도하는 tvN과 올리브채널 등을 소유한 CJ E&M의 모기업은 CJ다. CJ는 설탕과 다시다를 팔아 성장해온 기업이다. 이런 기업이 자신의 프로그램에 ‘슈가보이’라는 별명을 가진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가를 출연시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증권가에서는 쿡방을 보면 주가를 알 수가 있다는 말까지 한다. 〈집밥 백선생〉이 방영된 다음 날 대형마트의 설탕 매출액이 4배 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1964년 미국의 상원의원 조지 맥거번은 미국의 식량원조 프로그램의 영향을 전망하면서 “제3세계의 수많은 이가 미국산 농산물에 맛을 들이는 곳에 미래의 거대 식품시장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형 식품기업은 먹방과 쿡방에서 미래를 본 것일까?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포이에르바흐는 “네가 먹는 것이 곧 너다”라고 말했다. 오늘 우리가 보는 먹방과 쿡방이 곧 우리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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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특집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