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윤진영
생물학을 전공한 윤진영은 마치 실험실의 학자와 같이 사진작업을 한다. 그녀가 취한 대상은 근작인 곰팡이를 비롯해 생선의 내장, 돼지껍질 등 인간에게 그 가치와 효용이 크게 떨어진다고 인식되고 괴기미(그로테스크)를 지닌 것들이다. 하지만 비가시적인 그것들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존재의 부당성을 거부할 수 없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최근 중앙미술대전 대상과 일우사진상을 수상한 작가가 위와 같은 소재를 취하는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로테스크와 경계의 미학
박상우 중부대 교수
윤진영은 인간이 불필요하고 징그럽다고 느끼는 생명체인 생선 내장, 돼지껍질, 곰팡이 등을 작업의 모티프로 삼는다. 작가는 이 생명체를 변형한 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여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한다. 과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작가는 자연스럽게 생물학의 실험 대상들을 작품의 오브제로 삼았다. 윤진영은 예술에서 낯설고 거북스러운 이 과학적 오브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할까? 작가는 사람들이 혐오스럽다고 인식하는 생명체를 새로운 차원의 오브제로 변형시켜 이를 통해 그로테스크의 ‘긍정성’ 혹은 ‘이면’을 드러내고자 한다. 작업의 출발점은 그로테스크이다. 하지만 작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그로테스크한 생명체에 숨은 비가시적인 세계이다.
초기 작업인 <변형(metamorphosis)>(2006)에서 작가는 생선의 눈알, 내장, 머리를 ‘변형(재배열, 재구성)’하여 사진으로 촬영했다. 초현실주의 작가인 프레데릭 좀머(Frederick Sommer)의 <닭 해부학(Chicken Anatomy>(1939) 사진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좀머가 해부된 닭에서 “믿을 수 없는 개성과 감동”을 발견한 것처럼 윤진영도 생선의 핏빛 내장에서 알 수 없는 미묘한 흥분을 경험했다. 작가는 그로테스크한 생명에서 혐오와 매력을 동시에 느낀 것이다. 또한 작가는 일상적인 식재료(묵, 젓갈, 고추장, 검은 쌀)에 숨은 그로테스크의 속성을 발견하고 이를 사진 시리즈인 <먹을 수 있는 것들(The Edibles)>(2008)로 표현했다.
이후 윤진영은 또 다른 그로테스크 오브제인 닭발, 돼지껍질이라는 생명체의 파편을 찍은 <사후연상(Reminiscence after death)(2010)>을 제작한다. 작가는 돼지껍질 위에 빔 프로젝터로 문신 모양의 이미지를 투사해 사진으로 촬영한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문양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혐오스러운 돼지껍질이다. 이것은 그로테스크 미학의 기원에 충실한 작품이다. 왜냐하면 그로테스크의 기원인 로마 시대 장식은 멀리서 보면 식물의 아름다운 형태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식물, 동물, 인간 그리고 기괴한 생명체가 ‘그로테스크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는 그로테스크가 하나의 의미에 머물러 있지 않고 처음과는 정면 배치되는 새로운 의미로 변형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한 생명체는 하나로 고정되거나 불변하는 가치가 아니라 서로 모순적인 양면의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을 암시한다. 생선 내장과 돼지껍질은 추함과 아름다움, 혐오와 경외를 동시에 지니거나 혹은 이들의 ‘경계’에 있다.
윤진영은 최근 이 같은 경계의 미학을 또 다른 그로테스크 오브제인 곰팡이를 통해 발전시킨다. 작가는 미리 주문한 조형물(인간 및 동물 얼굴, 도자기, 병 등) 위에 곰팡이를 직접 입히고 키운다. 곰팡이가 자라면서 조형적으로 원하는 효과를 보일 때 이를 사진으로 기록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나온 사진 시리즈가 <남은 것(The Remains)>(2012), <우월의 역행(Reversal of Dominance)>(2015)이다. 곰팡이는 작가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것은 이전 작업의 오브제처럼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아름다운 대상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해로운 ‘부패’이면서 동시에 유익한 ‘발효’이기도 한다. 그것은 또한 다가올 죽음을 상기시키면서도 힘차게 뻗어가는 생명력을 상징한다. 곰팡이는 작가가 추구하는 경계의 미학을 어쩌면 가장 충실하게 실천하는 대리인이다.
혐오의 대상을 미적 대상으로 인식하다
곰팡이를 이용한 작업 과정은 다른 재료를 사용한 것과 비교했을 때 매우 독특하다. 그것은 곰팡이가 작업 과정에서는 ‘살아있는’ 물감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화가가 물감을 사용하여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윤진영은 생명체의 물감으로 조형물의 표면에 ‘그린다’. 하지만 화가가 캔버스에 물감을 전부 칠하면 작품이 완성되지만 곰팡이로 ‘칠할’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때부터 곰팡이 그림의 주체는 인간(작가)이 아니라 곰팡이 자신이다. 곰팡이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완성한다. 물론 인간은 과학 법칙에 따라 곰팡이의 성장을 통제한다. 하지만 곰팡이가 성장하는 과정에 항상 우연의 요소(배지 종류, 여러 곰팡이 혼합, 오염 등)가 개입하기 때문에 조형물에 입힌 곰팡이가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를 작가는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 결국 곰팡이 작업은 인간의 통제와 자연의 우연이라는 두 요소의 만남에서 이뤄진다. 그것은 필연과 우연, 인간과 자연, 과학과 생명의 결합 혹은 경계에 위치한다.
곰팡이는 사람들에게 혐오와 불편함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작가는 이 생명체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인식을 완화하기 위해 그것의 조형 요소들(질감, 색채, 형태)을 미적으로 강조하거나 통제한다. 작가가 곰팡이의 질감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다른 사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함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 질감은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처럼 응축된 역사와 시간을 보여준다. 또한 곰팡이에 사용된 차분한 색채는 원색을 사용했을 때 두드러지는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훨씬 완화한다. 게다가 곰팡이를 입힌 조형물의 형태와 배경도 곰팡이의 부정적 인상을 누그러뜨린다. 조형물을 둘러싼 검은 배경과 추상적인 형태를 통해 관객은 곰팡이의 존재를 잊고 혐오의 대상을 미적 대상으로 인식한다.
사진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곰팡이를 입힌 조형물이 최종 작품은 아니다. 그것은 사진으로 찍히기 위한 중간 단계일 뿐이다. 최종 작품은 사진을 통해 완성된다. 작가가 사진을 매체로 택한 이유는 우선 사진이 그로테스크한 오브제를 어떤 매체보다도 실제처럼 재현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진은 조명을 통해 곰팡이를 실제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미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진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많이 사용한 확대의 효과를 제공한다. 곰팡이는 촬영 과정에서 렌즈를 통해 확대되고 프린트 과정에서 대형 프린트를 통해 다시 한 번 확대된다. 사진은 또한 곰팡이처럼 불편한 대상을 마주할 때 느끼는 두려움을 완화하고 곰팡이의 최고의 모습만을 선명하게 확대하여 관객의 눈앞에 제시한다.
최근에 작가는 정지된 사진에서 보여주지 못한, 시간의 흐름에 따른 곰팡이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영상 매체를 도입했다. 대표 작품이 시간의 압축기법인 타임랩스를 사용한 <인식의 역전(Reversal of Cognition)>(2015)과 시간의 확장기법인 초고속 촬영기법을 이용한 영상 <그의 의지(His Will)>(2015)이다. 이 두 영상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눈에 비가시적이고 비현실적인 시간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비현실적인 시간 속에서 곰팡이가 펼치는 낯선 풍경을 표현한다.
2006년부터 10년에 걸친 윤진영의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중심축은 무엇일까? 그것은 현대예술의 핵심 경향인 ‘경계의 미학’이다. 작가는 그로테스크에서 출발하지만 결코 그 테두리 안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대신 그로테스크의 다른 면을 들춰내고자 한다. 작가는 서로 모순되는 대립항의 공존과 경계에 환희한다. 기괴함과 평범함, 추함과 아름다움, 부패와 발효, 불쾌와 쾌, 죽음과 삶의 공존과 경계에 열광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그로테스크에 대한 ‘인식의 전환’ 혹은 ‘우월의 역전’을 촉구한다. 그것은 결국 가치의 변화무쌍함과 인식의 확장을 의미한다.
하지만 윤진영이 그로테스크를 통해 추구하는 것은 ‘인식의 확장’보다 훨씬 근원적인 주제이다. 작가는 그로테스크에서 인간의 죽음의 징후를 보고 인간의 유한성을 재확인한다. 인간의 운명적인 한계를 자각한 작가의 시선은 인간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 혹은 미지의 세계인 ‘초월’의 세계를 향한다. 그리고 그 세계에 존재하는 무한한 것, 절대적인 것, 혹은 신앙심을 지닌 작가의 표현대로 ‘그[신]의 의지’를 추구한다. 결국 윤진영의 작품세계는 현대예술에서 중심 화두인 경계의 미학, 모호함의 미학, 비가시의 미학, 초월의 미학이 서로 교차하는 ‘그곳에’ 존재한다.
윤 진 영 Yoon Jinyoung
1969년 태어났다. 연세대 생물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사진디자인과, 애리조나 주립대 사진학과, 홍익대 대학원 사진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지금까지 총7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한국을 비롯 미국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제37회 중앙미술대전 대상(2015), 제7회 일우사진상(2016)을 수상했다. 현재 백석대 디자인영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