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5 고재욱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사랑의 상처는 많은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 사랑의 아픔을 주체하지 못한 개인이 저지른 행동이 나비효과로 사회적 사건, 사고에 영향을 끼친 사례도 많다. 작가 고재욱의 작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느끼는 ‘사랑’이란 감정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진중한 언어로 작업을 풀어나가기보다는 자신의 일상 속 이해의 폭 내에서 재치있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업은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면서 솔직하다. 모든 작가가 이해하기도, 다가가기도 힘든 거시적인 문제에 집중해 이러쿵저러쿵 무겁게 풀어나갈 필요는 없다. 작가 고재욱의 개인적 고민은 진정성을 갖고 관객은 이에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그는 주변부를 건드려 세대의 목소리, 사회의 문제들이 은연중 작품에 드러나는 것을 즐긴다.
고재욱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인터랙티브 작업을 주로 한다. 그리고 이 작업은 그것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차치하고서 일단 관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작가가 미리 선곡해둔 이별노래의 반주가 흘러나오는 반투명 유리 노래방 작업인 이 그 중 하나다. 작가는 살짝 문이 열린 노래방에 들어가 열창하고 관객은 그를 바라본다. 이 작업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원하면서 한편으로 이를 숨기려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풍자했다. 는 헤어진 연인의 물건을 3개월간 보관하는 프로젝트였다. 2013년 당시 60여 명의 신청자가 몰려 카메라 가방부터 헝겊조각까지 다양한 물품이 수집되었다. 작가는 개인적인 역사가 담긴 오브제를 병치해 그들이 가진 저마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2009년부터 진행했던 는 관객과 작가의 상호관계가 더욱 강한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사진을 물리적으로 가기 힘든 지역으로 보냈다. 이 사진을 받은 이는 작가의 자신들을 함께 찍은 사진을 작가에게 되돌려주게 한 프로젝트였다. 허구의 이미지가 세계를 이동하며 실존하는 인물들 간의 묘한 관계를 형성했다. 이미지가 부유하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이는 지극히 일상적인 발상이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을 모아 전시장 한 벽면을 채운 방식은 마치 SNS에서 테그에 걸린 여러 사진을 펼쳐놓은 듯한 인상을 주었다.
2014년, 그의 관심은 유휴공간을 이용한 대안주거에 쏠렸다. 서울 시내에도 주위를 둘러보면 곳곳에 공터가 있다. 그러나 막상 점유할 수 있는 ‘나만의’ 주거공간을 구하기란 어렵다. 최근 빈집, 빈고 등 대안적 공동거주 형태들이 생겨나는 상황에서 그는 이동할 수 있는 <렌터블 룸> 프로젝트를 생각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4년 11월 11일 공간해방을 시작으로 오렌지 연필(2014.11.27~2014.12.3), 반지하(2014.12.4~7), 가우스(2014.12.10~17) 그리고 서교예술실험센터(2014.12.22~27)로 옮겨갔다. 설치된 방을 연인에게 대실하는 프로젝트다. 본래는 미술과 무관한 서울시내 유휴공간에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임차공간을 구하지 못해 아쉽지만 문화관련 공간 일부를 빌려 진행했다. 이용객은 미술작품이라는 인식 없이 온 경우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미술과 숙박업의 경계가 모호한 상황이다. 일종의 ‘대실’ 프로젝트이다보니 한 숙박업체 사이트에 이벤트 형식으로 공고되어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숙박업체를 공유하는 사이트에 올라온 사용자후기를 보고 예약문의를 하는 등 웃지못한 에피도드도 있었다. 덕분에 프로젝트 기간 내내 룸은 만실이었다. 작가는 찾아온 이들에게 작업의도를 설명하고, 자신이 꿈꾸는 집의 구조를 그려달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프롤로그 역할을 하는 짧은 소설을 읽도록 했다. 누군가는 작업이 가볍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참여미술로 분류할 수도 있겠고, 거주형태에 대안을 제시하는 사회 참여적 메시지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겹겹의 층을 제거하더라도 1차적인 레이어는 단순하다. 결국 ‘방’이다. 이해를 떠나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작업을 바란다.”
임승현 기자

고재욱 인물 (2)고재욱 Koh Jaewook
1983년 태어났다.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코에스펠트에서 열린 을 시작으로 4차례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2013년 첫 개인전을, 2014년에는 으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