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6 라선영

인간을 말하다

더 이상 ‘조각’이라는 장르 개념은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설치, 영상 등이 대세를 이루는 지금의 미술계에서 나무로 인체 형상을 제작하는 라선영의 작업은 조금 특별해 보인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작업은 아니다. 어쩌면 나무로 만든 인물조각이 전통적이라는 인식은 어디까지나 편견에 불과할 것이다. 작가는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을 따라가지 않고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을 할 뿐이다.
인간의 다양한 행태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작업 초기부터 70억 명의 인물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나무를 깎는 행위는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가장 잘 맞는 표현방식이다. 나무 특유의 따뜻함도 인물 형상과 잘 어울린다. 그녀가 만든 인물조각은 특별한 기교도 디테일도 없다. 하지만 채색 작업을 통해 형광색 조끼를 입은 경찰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여중생 등 조각 하나 하나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작가는 나무 특유의 물성을 압도하거나 압도당하지 않고 사람 형태라고 인식할 만큼만 깎는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모든 작품은 그녀의 평생 프로젝트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다양한 인간 군상은 그 시대의 삶의 풍경을 반영한 거대한 아카이브가 될 것이다.
<런던>, <서울, 사람> 시리즈가 주변에서 관찰한 사람들의 풍경이라면 <빔(Beam)>, <타워>, <벽(Wall)> 시리즈는 인간의 내면세계, 특히 욕망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인물조각은 당대의 열망 또는 염원을 그대로 담아낸다. 예를 들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석기시대 다산의 상징이었고, 거대한 동상이 다수 제작된 시대에는 이데올로기 전달이 중요한 목표였다. 30cm 남짓한 크기로 바닥에 낮게 배치된 라선영의 목조 군상은 신이 사람을 내려다보듯 관객에게 전지적 시점을 부여해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만든다. 작가에게 조각품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지만 그것들이 연출된 상황도 중요하다.
6월 카이스갤러리에서 선보이는 개인전 <반짝이는 것들>에는 새로운 형태의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가는 모두가 주목받고 싶어하는 동시대 세태를 담아내기 위해 목조로 제작한 신부(新婦) 형상을 도자기로 대량 제작했다. 깨지기 쉬운 재료인 도자기는 현대인의 연약한 자아와도 맞닿아 있다. 도자기로 만든 신부 부대를 바닥에 깔고 천장에는 반짝이는 종이로 만든 낙하산 부대를 매달을 계획이다. 능력이나 자질 없는 낙하산 인사처럼 이들 형태는 반짝여서 눈에 띄지만 옆에서 보면 제대로 안보일 만큼 얄팍하다. 이처럼 동시대 삶의 모순을 담아내다 보니 라선영은 목조각이 아닌 새로운 표현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녀의 작업에서는 하고 싶은 말과 재료적 특성, 표현방식이 일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슬비 기자

라선영
1987년 태어났다. 이화여대 조소과와 영국왕립예술학교 조소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대중의 새발견>(문화역서울284), <플라스틱 신화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에 참여했다. 6월 23일부터 7월 22일까지 카이스갤러리에서 3번째 개인전 <반짝이는 것들>을 개최할 예정이다.

 나무에 채색 가변 크기 2015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전시광경

<타워> 나무에 채색 가변 크기 2015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플라스틱 신화> 전시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