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6 김하나

불안전한 시대의 온화한 풍경

고요한 풍경, 느슨한 움직임. 새하얀 빙하는 세월의 흔적을 겹겹이 담고 이동하며 일상에서 볼 수 없는 낯선 풍경을 선사한다. 작가 김하나는 일상과 동떨어진 백색의 빙하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작가는 빙하가 지닌 수만년의 시간과 하얀 빙하 벽에 흡수되고 산란되는 수많은 빛과 빙하 층의 결, 사이의 틈과 구멍에 집중했다. 그는 실견한 빙하를 캔버스에 옮기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본 빙하 이미지와 영상자료를 통해 그만의 빙하를 상상한다. 실견하지 않은 물질을 그리다 보니 표현의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 거대한 자연에 억눌리지 않고 재해석할 수 있는 해석의 자유로움을 얻는다. 이미지를 통해 자연의 모습을 접하니 거대한 자연에 압도되지 않고 미시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시각적 미학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빙하의 새하얀 ‘색’은 작가가 빙하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다. 흰색은 빛을 머금고, 내뿜으며 빛의 스펙트럼을 키우는 특징이 있다. 빙하 주변에 빨간 토양이 있으면 빙하는 붉은 빛을 띤다. 시간과 날씨에 따라 흰색은 다양한 옷을 입는다. 작가에게 빙하는 프리즘과 같다. 빙하가 빛을 흡수해 새로운 색을 뿜어내듯 작가는 순백의 캔버스를 다양한 색의 온도로 채운다. 흰색과 다른 색의 자연스러운 만남은 그의 작업을 안온한 분위기로 만드는 결정적 순간이다. 그의 작업에 차가운 빙하는 존재하지 않는다. 빙하가 바다를 부유하듯 안단테로 그어진 붓의 속도감과 봄날의 꽃망울 같은 따뜻한 색이 유독 많이 사용됐다. 차가운 빙하가 아니라 따뜻한 빙하다.
빙하가 지닌 시간성은 작가의 불안감을 표현하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담는 ‘도구’로 빙하를 선택한 데에는 그것이 지닌 불안한 운동성과 시간성도 한몫 한 듯하다. 빙하풍경은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물 위에서 천천히 흐르고 서서히 변화한다. 그러나 빙하가 녹아내릴때는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파괴력으로 소멸한다.
작가가 가진 불안감과 빙하의 관계를 살피다 보면 “왜 빙하일까?”라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 질문은 작가 스스로도 자주 던지는 물음이다. 처음 시작은 개인의 불안감에서 비롯됐다. 작가는 “졸업 후 작가로의 전환 과정에서 ‘나’를 찾고 안정이 되면, 그때 작업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작업 속에서 안정을 찾는 자신을 발견했다”며 “나를 받아들이는 시간 자체가 그림을 그리는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빙하는 곧 시간의 유한함을 나타낸다. 젊은 작가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작업과 동행하는 숙명과 같다. 어쩌면 작가는 빙하의 가변성에서 그가 느끼는 불안함을 찾은 것은 아닐까?
이번 전시에는 2년 반 정도 준비한 작업이 출품됐다. 젊은 작가의 개인전 준비기간으로 꽤 긴 시간이다. 작가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간에 불안감은 느끼지만 조급함이 없어 보인다. 느리게 흐르면서 다양한 색을 머금고 풀어내는 빙하는 작가의 모습과 닮아있다. 물론 앞으로의 작업에서 다른 풍경이 펼쳐질 수도, 작업을 해나가는 속도에서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인터뷰 내내 작업을 시작하는 작가로서 작업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두는 그에게서 그림에 녹아있는 찬찬한 부드러움과 침착함이 느껴졌다. 작업의 소재나 주제가 바뀌더라도 작품을 닮은 그의 모습이 작업에서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
임승현 기자

김하나
1986년 태어났다. 첼시 런던예술대학교 순수미술과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서 활동 중이다. 2015년 커먼센터 그룹전 〈오늘의 살롱 2015〉에 참여했고, ‘2016년 Shinhan Young Artist Festa’에 선정되어 5월 2일부터 6월 8일까지 신한갤러리 광화문에서 개인전이 열린다.

〈 Untitled 〉 캔버스에 유채 130.3×162.2cm 2016

〈 Untitled 〉 캔버스에 유채 130.3×162.2cm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