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노순택 Dance of Order/Really Good, Murder
런던 43 Inverness Street 1.28~3.12/The Fitzrovia Gallery 1.21~2.26
임근혜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장
2013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으로 한반도에 긴장감이 절정에 달하던 당시, 영국 BBC의 한 시사프로그램 기자가 대학생 방북단의 지도교수로 위장한 채 평양을 취재하여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취재가 발각될 경우 학생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었기에 거센 항의가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은 논란만큼이나 시청률도 높아서 평소보다 약 70% 상승한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텅 빈 공장과 병원, 기아 상태의 어린이들의 모습과 신으로 추앙받는 김일성과 후계자들의 모습 그리고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 장면을 남한의 부유하고 자유로운 모습과 번갈아 보여준 30분짜리 프로그램은 서구 언론이 북한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재현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처럼 지극히 제한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은 ‘잠입 취재’ 등 약간의 흥미 요소를 곁들인 채 센세이셔널리즘으로 소비되곤 한다.
재영(在英) 큐레이터 이정은의 기획으로 런던시내 두 개의 갤러리에서 동시에 열린 노순택 사진전은 이처럼 제한된 정보와 검열로 왜곡되고 변질된 채 인식되는 북한의 이미지와 남한 속의 일상화된 정치적 폭력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남북한이 “두 개의 무대에서 공연되는 하나의 무용처럼 상호 공존을 반영”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전시는 이미 한국과 독일 그리고 스페인에서 선보인 바 있는 작가의 대표작 시리즈 중 일부를 선별하여 소개한다.
43 인버네스 스트리트 갤러리는 북한이 대외 선전용으로 자랑하는 호화롭고 일사불란한 매스게임과 어둠 속에 홀로 빛나는 주체사상탑을 담은 <붉은틀>과 미군 주둔을 둘러싼 공권력과 주민 간의 대치상황을 군사시설인 레이돔과 정찰헬기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얄읏한 공>과 <블랙후크다운>로 구성된 한편, 피츠로비아 갤러리 전시는 살인 기계를 자랑스럽게 과시하는 남한의 국군의날 행사를 다룬 <좋은, 살인> 및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화제가 되었던 안상수의 발언에 관한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로 구성되었다. 남북한이 서로를 의식하고 자신을 표상하는 방식은 상호 유사하며, 극한의 이데올로기 대립과 군사 대치 상황 속에서도 체제 유지를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아름다우면서도 블랙코미디적인 이미지를 통해 역설적으로 전달했다.
이처럼 파편화된 기억을 정치적 역사적 맥락으로 엮어내는 작가의 통찰력은 언어보다 강력한 이미지의 힘으로 한국의 상황에 익숙지 않은 영국인들을 매료시켰다. 갤러리와 런던대 SOAS에서 열린 아티스트토크에서는 전쟁 이후에도 여전히 분단이라는 정치적 상황이 지배하는 한반도의 일상과 남북한의 관계처럼 정치적 생존을 위해 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지구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테러와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과도 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