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뿔의 자리

6.2 ~ 7.2 인사미술공간

김인선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대표

〈뿔의 자리전〉은 〈2015 ARKO 시각예술분야 작가 / 큐레이터 워크숍〉에 참여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기획안 공모에서 선정된 세 개의 전시 중 하나이다. 김한나, 노은주, 윤지영, 전현선 4인의 작가가 함께 만든 전시이다. 이 전시는 이들이 초대한 장혜정 큐레이터의 전시와 작가이자 기획인 4인의 작품들, 그리고 마지막 동선에 위치한 10명의 필자에 의해 구성된 책자로 구성된다. 네 명의 작가는 기획자로서 일정 기간의 논의를 통하여 하나의 개념을 도출한다. 워낙 각자 작업 방향이 뚜렷한 이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는 과정에서 결국에는 가장 원론적인 의문점으로 나아갔던 것 같다. 그것은 ‘무엇을 표현하는가’에 대한 각각의 대답에서 드러나는 시각예술의 해법인데 이들은 그 공통된 대답을 ‘형태’를 상징하는 ‘뿔’이라는 단어로 묶게 되었다. 이후 이들은 구체적인 관점에서 ‘뿔’을 의식한 채 스스로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 전시의 중심이 되는 ‘뿔’을 연구하는 과정은 이들에게 실험적인 공간을 끌어냈다. 전시를 제작하는 과정은 여느 기획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전시를 끌고 나가는 이들이 모두 작가라는 점은 특수한 상황이다. 이 전시 속에서 이들의 작업 결과물은 각자가 해온 기존의 형식과는 조금 다르다. 그들이 하나의 단위로 묶이기 위한 공통적 형태를 ‘뿔’이라고 부르는 순간 이들은 스스로의 희생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음을 혹은 서로를 의식하는 행위로의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타자와 나를 동일시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타자가 되어 볼 수밖에 없다. 교집합을 찾아서 스스로 내뱉은 언어를 실행하기 위해 자신의 작업을 객관화 해야 했을 것이며 성공적인 개념화를 이루어내고자 하는 일종의 의무를 지녀야 했을 것이다. 인사미술공간에서 선정한 세 개의 전시 모두 작가의 기획안이었다는 점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작가와 기획자가 분리되지 않은, 전시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서 협업적 연구 과정이 드러나는 일종의 커뮤니티적 전시를 기대했다면 이 전시는 꽤 성공적인 결과물로 보인다.
작가들은 자발적으로 큐레이터 한 명(장혜정)을 초대하여 전시에 삽입하였는데 이로써 지하 전시장의 풍경은 기획 행위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된다. 미디어로서의 전시를 요청받은 큐레이터는 벽면에 나열된 이미지들과 텍스트 등 나름의 아카이브와 공식에서 산출한 다양한 사이즈의 원형 좌대 위에 올라갈 각자의 ‘뿔’을 다시 요구하여 작가이자 기획자들에게 본연의 기능을 실천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리고 벽면의 텍스트에서 서술하고 있듯 이성과 감성의 혼성적이며 시각적인 결과물을 확인하고자 공간 중앙에 이들을 위치시킨다. 작가들은 기획자들이 어떤 과정으로 작가를 선정하고 이를 보여주는지를 궁금해 한다. ‘전시’라는 형식을 매체로 다루게 된 기획자는 퍼포먼스 작가처럼 그의 작업 구상과 실현(전시)을 제시해 나갔다. 작가들의 궁금증에 비추어 온통 기호화된 이 공간 속에서 한 개인 기획자의 노트와 개념화 과정의 공간 속에서 기획의 일반론을 찾아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전시 전체에 깔린 텍스트적 흐름에 기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층과 2층의 전시 공간에 배치된 작품들은 이들의 주제를 향한 논의가 시각화 되면서 구체화되는 비논리적 현상을 확인하게 한다. 노은주와 전현선 작가가 함께 작업한 거대한 화면이 정면에 자리 잡았다. 이들이 함께 만든 회화작업이 전시장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노은주와 전현선은 의식적으로 완벽한 협업을 위한 조건을 만들었다. 두 작가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하나의 캔버스를 놓고 구도와 색체, 대상의 선택과 이를 그려나가는 방식을 논의하면서 번갈아가며 붓질을 하였다(〈하나의 기록들〉).
이 작업 후에는 같은 오브제를 두고 각자 따로 그렸는데(〈두 개의 기록들〉) 이 후속 작업이 오히려 힘들었다고 한다. 서로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 나올 수 있도록 서로를 의식한 것이다. 이러한 실험을 통하여 이들은 결국 다시 각자의 영역을 만들어내야 하는 작가의 근원적 활동에 대하여 진지한 고찰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구조와 회화적 표현이 공존하는 김한나의 작품 역시 ‘뿔’을 향해서 스스로의 작업 스타일을 비껴가본 작업이다. 김한나는 회화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하여 구조적 배치의 제스처가 삽입된 구조물을 만들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안과 밖의 환경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교차하는 재료의 선택과 이를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회화의 표면이 구조 속에 흡수되도록 하였다. 그는 무엇이든 그 어떤 것이 될 수 있는 (천장이 바닥이 될 수도, 벽이 될 수도 있는) 형태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늠하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영상작업을 볼 수 있는데 이를 제작한 윤지영은 퍼포먼스 작가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는 영상작업을 위한 시나리오와 편집과정을 거친다. 불편한 옷을 입고 불편한 신발을 신고 작은 구멍을 향해 끊임없이 창을 날리러 가는 작가의 행위가 이어진다. 이 행위는 어느 순간 익숙해지지만 동시에 숨이 가쁜 체력 고갈을 느끼며 지쳐간다. 결국 원하는 바를 힘겹게 얻게 되며 더 이상 움직이기 버거운 상태에 있는 스스로의 모습과 아주 낮은 확률의 성취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예술가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떤 종류의 뿔을 지향하는지를 찾아내기 위하여 예전 작업의 기록을 동원하여 이 영상작업 속에 삽입하였다. 또한 참여 작가들의 ‘버려진 창작물’을 수집하여 이전의 작업 기록을 보여주는 영상물과 함께 배치한다.
마지막 동선에 배치된 책자에는 10인의 필자가 쓴 글이 실려 있다. 필자 각자가 가지고 있는 ‘뿔’의 개념을 글이라는 구조로서 드러내게 하여 이 전시의 개념을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는 다시 지하 공간에 구현된 전시 형식의 작품으로부터 각자의 작업 과정을 상기시킨다. 장혜정 큐레이터가 전시를 의뢰받으면서 작가들에게서 받은 뿔에 대한 자료는 대부분 버려지고 새로운 자료가 생성되었다. 공간 어디선가는 각자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재생되었다. 기획의 글에서 밝혔듯 이 프로젝트가 뿔에 대한 전시이면서 뿔에 대한 전시가 아님을 상기시키듯 말이다.

위 노은주〈두개의 기록-납작한 조각-2〉캔버스에 유화 130.3×97cm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