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위 〈문자도 영상〉 원화 안상수, 디지털 재제작 스튜디오 호호호, 사운드 디자인 지미세르 서울시립미술관 2017

디자인이 어떤 용도나 목적을 극대화하기 위한 모든 형식적, 물리적 개입 과정과 그 조형적 결과를 지칭한다면, 글자는 특정 언어를 표기하는 수단이자 그 자체로 조형 원리를 가진다는 점에서 하나의 디자인이다. 한글은 한국어를 표기하는 수단이자 동시에 한국인이 태어나자마자 접하는 디자인이다. 시각디자이너 안상수는 한글을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디자인”으로 생각하고 한글의 조형성을 공감각적으로 탐구해왔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진행 중인 SeMA Green 2017 〈날개.파티〉(3.14~5.14)는 안상수의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대표 작품들과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PaTI) 아카이브를 통해 그가 추구해 온 디자인의 철학적, 실천적 의미를 한 자리에서 살펴본다.

PaTI 아카이브, PaTI 중간공간연구소,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2017

PaTI 아카이브, PaTI 중간공간연구소,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2017

파롤(parole)도 랑그(langue)도 아닌, 방법

최범 | 디자인 평론가

〈날개.파티〉는 디자이너 안상수와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의 협동 전시이다. 날개는 안상수의 별명이며 파티는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PaTI: Paju Typography Institute)의 약칭이다. 파티는 안상수가 설립한 학교이다. 안상수는 파티 설립에 대해 학교를 디자인하는 일(designing school)이라고 하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디자인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날개.파티〉는 안상수의 확대된 개인전이면서 동시에 단체전인 것이다.

따라서 이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날개 섹션과 파티 섹션. 먼저 날개 섹션을 보면 그의 대표작인 안상수체의 원리를 보여주는 작업부터 문자도, 문자 영상작업, 문자 타일 벽화작업 등이 다양하게 연출되어 있다. 안상수를 잘 모르는 사람은 작업의 전체적인 연결성은 알지 못하더라도 ‘자유롭고 다양한 작업을 하였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안상수를 잘 아는 사람들은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를 이어가면서 그의 작업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날개 섹션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자유롭고 다양해서, 안상수가 디자이너와 아티스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작가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파티 섹션은 꽤 많은 양의 작업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어쩌면 혼란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개교 5년차를 맞은 파티 학생들의 다양한 작업과 활동 내용을 제한된 공간에서 보여주다 보니 체계적이지 않다. 다만 일반 미술대학과는 확실히 다른 실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전시 구성에 대한 인상을 넘어서, 안상수와 파티를 어떻게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까. 앞서 말한 확대된 개인전이나 협동 전시라는 외형적 차원을 넘어서서 말이다. 먼저 안상수가 장르를 넘나드는 다종(多種) 작가라는 사실은 전시를 봐도 그렇지만,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원래 한글 타이포그라퍼인 안상수는 안상수체를 만들어내면서 이름이 알려졌고, 그것이 그의 ‘파롤(parole)’이다. 그런데 그가 개발한 안상수체는 단지 파롤을 넘어서, 이른바 ‘탈네모꼴’ 글자라는 시각적 형식의 ‘랑그(langue)’를 만들어냈다.

안상수체가 랑그가 되었다 함은 그것이 크리에이터 안상수 개인의 발화로서의 파롤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시각적 문법을 형성했다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안상수체는 차라리 랑그화된 파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안상수는 안상수체라는 파롤을 통해 랑그를 만들어냈고, 그 랑그에 기반을 두고 다시 새로운 파롤을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문자도 〈홀려라〉(2017)와 도자기 타일 벽화 작업 등은 랑그인 안상수체가 다시 새로운 파롤로 갈라져서 전화(轉化)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도 안상수는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올라운드 크리에이터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하겠다.

〈날개.파티〉 전시 광경 2017

〈날개.파티〉 전시 광경 2017

문화를 생산하는 방법론으로서 디자인

그런데 크리에이터 안상수에게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의 파롤이나 랑그보다도 오히려 방법이 아닐까. 그것은 일종의 창작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단지 작가에게 철학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것은 모더니즘 미학이나 리얼리즘 미학 같은 반열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창작방법론이란 창작의 과정이 일정한 이념과 뿌리를 가지되 그것이 일관된 조형적 전개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완성도 있는 작업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안상수는 자신만의 고유한 창작방법론을 확립한 보기 드문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방법론은 한글과 세종이라는 민족주의적인 뿌리에서 시작하여 서구 모더니즘 미학을 관통하고 마침내 자신만의 개성 있는 그래픽 언어들을 산출해낸 과정 전체를 일컫는다. 이러한 안상수의 방법론은 한국적 모더니즘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창작 이념의 뿌리는 한국적인 것이지만, 그것을 철저히 모더니즘 미학과 조형 언어로 해석하여 빚어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안상수에게 주목해야 할 것은 단지 그의 조형 어휘로서의 파롤도, 그러한 파롤이 구축한 랑그도 아닌, 일종의 풀 프로세스(Full Process)로서의 방법이다. 이점이 그를 다른 크리에이터와, 무엇보다 현대 한국문화의 일반적 양상 전체와 구별짓는 요체이다. 현대 한국문화의 가장 큰 문제는 문화 생산의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지 못한 점이다. 이것이 바로 식민지적인 것이다. 탈식민주의 연구자 조혜정은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나는 여기서 ‘자신의 문제를 풀어갈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회, 자신의 사회를 보는 이론을 자생적으로 만들어가지 못한 사회’를 ‘식민지적’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미술이건 디자인이건, 아니 그 이전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부문에 걸쳐 현대 한국 사회에는 이러한 문화 생산의 프로세스가 결여되어 있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서구 문화의 어설픈 흉내 내기로서의 파롤이거나, 어쩌면 거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옹알이 정도라고 하겠다. 랑그 없는 파롤은 잡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알아듣지 못할 웅성거림일 뿐이다. 한국적 미술, 한국적 디자인 대부분은 랑그 없는 파롤이며, 옹알이다. 이처럼 개별 작가의 개별적인 목소리, 파롤만이 넘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웬만한 거장이라 하더라도 감히 랑그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안상수는 드물게 랑그를, 랑그로서의 파롤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안상수가 파롤이 아니라 랑그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말했듯이 그에게 프로세스로서의 방법론이 있기 때문이다. 기실 문화는 프로세스다. 프로세스로서 문화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식민지 근대화를 넘어설 수 있다.

그래서 안상수의 디자인 학교 프로젝트인 파티는 파롤도, 랑그도 아닌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문법이 만들어진다. 문화는 문법이며 문법은 방법이며 방법은 프로세스이다. 과정신학(화이트헤드)이 아니라 과정미학이다. 그런 점에서 파티는 과정을 가르치는 학교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안상수의 방법은 어디까지나 안상수 버전의 모더니즘 방법론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본질주의적이며 일원론적이다.

자신의 문화 생산 방법론을 갖지 못한 현대 한국 사회에서 안상수의 모더니즘 프로세스는 매우 참신하고 유용하다. 하지만 이러한 모더니즘 프로세스가 계속 재생산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안상수 모더니즘’은 장차 한국적 포스트모더니즘을 생성하기 위해 필요한 발판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국적 포스트모더니즘이 해체해야 하는 것은 서구 모더니즘이 아니라 안상수 모더니즘일지 모른다. 그럴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파롤도 랑그도 아닌 방법이다. 바우하우스와 파티의 유사성이 있다면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까. ●

〈홀려라〉캔버스에 아크릴 193.9×259.1cm(각) 2017

〈홀려라〉캔버스에 아크릴 193.9×259.1cm(각) 2017

* 조혜정,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1》, 1992. 또하나의 문화, 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