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너머의 미술관: 할렘 스튜디오뮤지엄
‘블랙 아트’가 숨쉬는 곳
정하영 한화문화재단 스페이스 제로원 큐레이터
World Report | New York

스튜디오뮤지엄 재개관 캠페인 전경
사진: Kris Graves 제공: 할렘 스튜디오뮤지엄
“역사적인 귀향.” 뉴욕의 한 현지 언론이 할렘가에서 재개관한 스튜디오뮤지엄을 두고 붙인 말이다. 17세기 중반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에 농촌 마을로 시작한 뉴욕의 ‘하를럼(Haarlem)’은 20세기 초 남부 흑인들이 대거 이주해 들어오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도시 ‘할렘(Harlem)’이 됐다. 이곳에서 1968년에 설립된 이래 아프리카계 예술가들의 커뮤니티를 자처해 온 스튜디오뮤지엄은 이번 재개관을 통해 역사적 중심지로서의 유산, 지역에 봉사하는 사회적 플랫폼, 교육을 담당하는 학습 공동체,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실천의 장으로서 미술관의 새 페이지를 쓰고 있다.
2016년 뉴욕, 내가 처음 살던 동네는 어퍼 이스트와 할렘 사이의 경계선에 위치했다. 주로 노인들이 한가롭게 산책하는 풍경이 펼쳐지는 92번가에서 북쪽으로 네다섯 블록만 걸으면, 희한하게도 공기가 급격히 바뀌었다. 건물의 마감은 좀 더 거칠었고, 길가에 앉아 있는 사람도 많아졌다. 사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데도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한번은 한밤중 급행열차를 타고 가다 깜빡 졸아 이스트 할렘 125번가에서 눈을 떴다. 밤중에도 사람이 가득한 승강장에서 동양인은 나 하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유년기를 한국에서 보내며 미디어로만 접했던 ‘할렘’은 낯설었고, 그 낯섦은 나에게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어느덧 쌓인 시간만큼, 내가 보는 ‘할렘’의 얼굴은 조금이나마 다양해졌다. 문화적 레퍼런스에서 실제 삶까지. 예를 들면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2024년 전시 《The Harlem Renaissance and Transatlantic Modernism》, 토니 모리슨의 소설 『Jazz』(1992), 아이작 줄리앙의 영화 〈Looking for Langston〉(1989)에 담긴 할렘 르네상스에서부터, 주택 로터리 웹사이트에서 발견한 저소득층 공공주택 단지까지 말이다.
올해 초, 125번가 대로변을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걷다 고개를 드니 작년 연말 반짝이며 거리를 밝혔을 “Welcome to 125th Street(125번가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조명 장식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대로변의 배너들. 한참을 걷다 보면 할렘에서 서서히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흐름을 포착하듯, ‘Now Leasing(임대중)’이라는 문구를 단 말끔한 고층 빌딩, 맥도날드, 그리고 편집숍이라 부르기엔 조금 머쓱한 (장갑을 2달러에 파는) 로컬 옷가게까지 이어진다. 그 모든 것이 뒤섞인 풍경 한가운데, 데이비드 해먼스의 깃발 〈Untitled〉(2004)가 펄럭이는 회색의 기하학적 새 건물이 육중히 자리 잡고 있다. 7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2025년 11월 재개관한 ‘스튜디오뮤지엄 인 할렘(The Studio Museum in Harlem, 이하 스튜디오뮤지엄)’이다.

2025년 재개관한 스튜디오뮤지엄 건물 외관. 1층에 데이비드 해먼스의 깃발 작품〈Untitled〉(2004)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 Albert Vecerka/Esto 제공: 할렘 스튜디오뮤지엄
To Be A Place
총 7층에 이르는 이 현대적 건물의 6층에는 사진과 서신 등으로 구성된 아카이브 전시 《To Be A Place》가 자리해, 반세기가 넘는 미술관의 역사를 간결하지만 명확하게 보여준다. 전시는 1966년에 쓰인, 스튜디오뮤지엄의 출발점이 된 한 제안서로 시작한다. 문서 속 이 새로운 기관의 목표는 분명했다. “예술이 일어나는 장소가 되는 것(to be a place where art happens).”
20세기 초 남부의 인종차별을 피해 벌어진 대이주를 계기로 아프리카계 주민들이 대규모로 유입된 이후, 할렘 르네상스와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등 굴곡의 시간을 지나온 이 지역에 아프리카계 작가들의 예술을 중심에 두는 기관을 세워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에 공감한 예술가와 활동가, 자선가, 지역 주민 등 다양한 주체들이 뜻을 모아 미용실과 주류 판매점이 입주한 5번가 건물의 2층을 임대해 1968년 가을, 지금과는 사뭇 다른 스튜디오뮤지엄이 문을 열었다.
이 기관은 지난 반세기 동안 느리지만 확실한 성장의 단계를 밟아왔다. 1970년대에는 상설 소장품 정책을 수립하고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제도화하는 등 핵심적인 시도를 통해 미션을 점차 구체화했으며, 1980년대 초 예전 뉴욕저축은행 건물을 기증받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물리적 기반을 갖추면서 회고전과 주제전 등 보다 본격적인 전시를 선보이는 동시에 199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흑인 예술과 문화, 더 나아가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에 대한 연구와 담론의 확장에 힘써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맥락을 염두에 두고 새 건물을 둘러보면, 지난 7년에 걸친 리노베이션 역시 “예술이 일어나는 장소”를 구현하려는 노력의 연장선임이 분명해진다. 2018년부터 진행된 이 공사는 텔마 골든 관장의 전례 없는 모금 활동을 통해 가능했다. 전시와 레지던시 등 핵심 프로그램을 위한 맞춤형 공간 구성, 그리고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이 유연하게 활용하며 머무를 수 있는 실내외 공공 공간의 확장이 특히 두드러진다. 언뜻 차가운 느낌의 기하학적 건물 외관 또한 할렘의 건축적 맥락을 세심하게 재해석했다는 평이다. 할렘의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액자형 창문은 크기와 비율이 서로 다른 창들로 구성된 파사드로 변주되었고, 지역 교회의 건축적 요소는 충분한 채광과 각 층에서 공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지그재그로 설계된 중앙 계단으로 대응된다. 특히 1층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아래로 펼쳐지는 계단은 할렘 브라운 스톤 주택의 상징적인 현관 입구 계단, 스툽(stoop)을 연상시키며 이곳이 모두를 환영하는 장소임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Lauren Halsey〈Yes We’re Open And Yes We’re Black Owned〉
나무에 아크릴릭, 에나멜, 거울 120.65×125.73×121.92cm 2021
베스 루딘 드우디(Beth Rudin DeWoody) 기증
《From Now: A Collection in Context》 스튜디오뮤지엄 전시 전경 2025
사진: Kris Graves 제공: 할렘 스튜디오뮤지엄
《From Now》
미술관은 개관 당시 소장품이 없는, 이른바 쿤스트할레(Kunsthalle) 모델로 출발했다. 공식적으로 소장품 정책을 수립한 것은 1977년이지만, 개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1970년 다나 C. 챈들러의 판화 다섯 점을 시작으로 작품 기증이 이어졌다. 특정 공동체의 대표성을 지닌 미술관이라는 뚜렷한 방향성을 고려했을 때, 흑인 작가의 작업을 소장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자처하는 건 당연했다. 현재 소장품은 19세기 초 작품부터 2024년 새롭게 소장하게 된 캐런 데이비스의 〈Fix Me〉(2023) 등 동시대 작가들의 신작에 이르기까지, 약 800명의 작가가 제작한 설치, 회화, 미디어, 퍼포먼스, 사진, 조각, 섬유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른다.
방대한 소장품 가운데 선별된 약 200여 점이 복수의 전시장과 미술관 공간 곳곳에 자리한 재개관 소장품전 《From Now: A Collection in Context》에 포함되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개개의 작품보다도 “From Now”, “in context”라는 구절에서 엿보이듯, 미술관 학예팀이 이 작품들을 선보이는 방식이다. 첫째, 지금(Now)은 언제인가. 지난해 11월 15일 재개관 당일 이 전시를 마주한 이의 ‘지금’과,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1월 중순 이 소장품전을 찾는 이의 ‘지금’은 다르다. 물론 오늘날이라는 대략적인 시간의 주기로 환산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이 ‘지금’은 지극히 즉각적인 순간으로 읽히기도 한다. 1년간 이어지는 전시 기간 동안 작품은 순환된다. 언제 이 전시를 찾느냐에 따라 확연히, 혹은 미미하게 다른 전시를 관람하게 되며, 그 즉각적인 순간들은 하나하나 생생하다.
반면 스튜디오뮤지엄의 《From Now》는 서사를 배열하기보다, 매 순간의 ‘지금’을 통해 미술사가 계속해서 재편성될 수 있음을 전시 자체의 구조로 드러낸다. 실제로 코니 최 스튜디오뮤지엄 큐레이터는 인터뷰에서 “미술관은 특히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의 작업과 관련해, 예술사를 하나의 단일한 서사로 규정하는 관점을 일관되게 거부해왔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단일 서사를 벗어나 여러 목소리가 공존하도록 하는 전략은 전시 속 작품들을 느슨하게 묶는 키워드(소리, 몸, 텍스트, 금, 색, 비가시성, 영성, 자연, 도시 등)를 각 섹션의 기준점으로 삼아 호응형(call-and-response) 형식으로 구현된다. 즉, 전시 기획에 참여하는 각 큐레토리얼 팀 구성원이 이전 회차의 전시가 제기한 대화에 응답하며, 전시는 끊임없이 확장된다.
시각적으로 이러한 전략이 완전한 성공인지 여부는 물론 또 다른 문제다. 한정된 전시장 안에 가벽을 켜켜이 세우고, 하나의 키워드를 공유하는 작업들을 가까이 배치한 구성은 때로 자유로운 대화라기보다 난상토론처럼 보이기도 한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작품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면야 제각기 다른 작가들의 작업이 공명하는 순간을 관람객 나름의 방식으로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들이도록 발걸음을 붙잡기에는 일부 섹션 (예를 들어 전시장 밖 복도 벽을 살롱처럼 평면 작업으로 가득 채운 섹션 ‘1968’)은 ‘이렇게나 많은 작가와 작품이 있다’는 시각적 압도감에 그치기도 한다. 오히려 출입층 로비에 위치한 섹션 ‘US’의 경우, 로비 벽면을 “WE”와 “ME”라는 글자로 점유하는 글렌 라이곤의 네온 조각 〈Give Us a Poem〉(2007)처럼, 작품과 미술관 공간 자체를 엮는 서사를 제시함으로써 각 소장품의 ‘지금’의 맥락을 효과적으로 환기한다.

Barkley L. Hendricks〈Lawdy Mama〉캔버스에 유채, 금박 136.53×92.08cm 1969
스튜어트 리브만(Stuart Liebman) 기증
사진: John Berens 제공: 할렘 스튜디오뮤지엄
《Tom Lloyd》
한편 3층에서 선보이는 톰 로이드(Tom Lloyd)의 개인전은 미술관이 재개관과 함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또 다른 방식으로 담는다. 이 전시는 텍스트보다 감각에 가깝다. 전시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높은 아치형 천장이 한눈에 들어오고, 삼면의 벽에 충분한 여백을 두고 자리 잡은 그의 반짝이는 빛 조각(light sculpture)들이 시야를 채운다. 중앙에 부유하는 섬처럼 놓인 흰 스툴에 앉아 고개를 젖혀 작업을 올려다보는 동선은 성스러운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특정한 패턴으로 반복되며 점멸하는 작업 사이에서, 벽면의 여백과 흰 스툴, 빈 공간은 색색의 빛으로 채워진다. 이는 조각을 ‘본다’기보다, 작가와 큐레이터가 만들어 놓은 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경험에 가깝다.
이러한 순환 방식은 미술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하려는 뉴욕 내 다수의 미술관 전략과는 분명히 다른 지점에 서 있다. 예컨대 뉴욕현대미술관은 연대기적 배열을 기본으로 삼되, 특정 작가나 주제를 강조함으로써 서사를 조정한다. 완전히 선형적인 서사에 머무르지는 않지만, 그 실험은 여전히 ‘정리된 역사’를 전제한다.

퀸즈 자메이카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톰 로이드와 그의 아들 오마르를 포함한 제자들 약 1968년
사진: Reginald McGhee
이 빛의 근원인 반짝이는 조각들 가운데 일부는 1968년 스튜디오뮤지엄 개관전에 기획되었던 톰 로이드 개인전 《Electronic Refractions Ⅱ》에 출품된 작품들이다. 〈Moussakoo〉(1968) 역시 기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구조를 기반으로, 크리스마스 장식에 쓰이는 색색의 전구들이 점등되며 특정한 패턴으로 교차한다. 이 작품은 1996년 미술관 소장품으로 편입되기 이전 원래 사용되었던 모터의 일부가 유실되었다. 현재의 점등 패턴은 당시 프로그래밍을 근사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본래 실린더 형태의 모터가 회전하며 전구가 점등되는 기계적 소리까지 포함되었을 로이드가 추구한 추상은, 개관 당시 ‘미술 작품’이라는 미시적 맥락 속에서 소개되었다. 보도자료를 살피면 당시 30대의 젊은 작가였던 로이드의 작업은 “깜빡이는 신호등, 극장 전광판, 자동차 신호에서 영감을 받은 로이드의 가변적 빛 조각은 이러한 일상적 풍경과 그의 매체를 뒷받침하는 기술을 모두 넘어선다”는 문구로 묘사된다.

《Tom Lloyd》 스튜디오뮤지엄 전시 전경 2025
사진: Kris Graves
그러나 오늘날 이 전시장을 점유한 그의 빛 조각은 보다 확장된 거시적 맥락 안에 위치한다. 이번 전시는 그의 초기 조각과 더불어 한동안의 작업 휴지기 이후 제작된 1970~1980년대의 기하학적 추상 평면 작업을 함께 소개하며, 아프리카계 예술가의 작업이 사회적 메시지와 재현성을 담아야 한다는 기대가 지배적이던 시기에 추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미술사적 의미를 되짚는다. 동시에 활동가이자 기획자로 헌신한 그의 행보를 아카이브와 영상 자료를 통해 조명한다. 1969년 예술가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결성된 ‘예술노동자연합’의 창립 멤버이자, 퀸즈에 스토어프런트뮤지엄/폴로브슨 극장(Store Front Museum/Paul Robeson Theatre, 1971~1986)을 설립·운영하며 로이드는 자신의 예술 활동을 내려놓고 아프리카계 예술가들의 작업을 지원하는 데 전념했다는 서사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던 무렵,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린 논쟁적인 전시 《Contemporary Black Artists in America》 (1971)에 대한 응답으로 발간된 에세이집 『Black Art Notes』(1971)에 실린 그의 글 한 구절은, 로이드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했던 수많은 개인의 선택과 헌신이 오늘의 스튜디오뮤지엄을 가능케 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흑인 예술가들은 백인 비평가들과 백인 중심 제도들이 흑인 예술을 희석하고, 윤색하고, 백색화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 답은 분명히 ‘아니오’다.”

《From the Studio: Fifty-Eight Years of Artists in Residence》 스튜디오뮤지엄 내 아티스트 인 레지던시 스튜디오 전시 전경 2025
사진: Albert Vecerka/Esto 제공: 할렘 스튜디오뮤지엄
“Where Black Art Lives”
스튜디오뮤지엄의 핵심은 작가, 더 나아가 사람과 공동체다. 이러한 방향성은 4층 라운지와 실제 레지던시로 운영되는 공간에 위치한 전시 《From the Studio: Fifty-Eight Years of Artists》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1968년 설립 당시 아티스트 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아프리카계 및 아프로-라틴계 시각예술가들의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서로 배우고 작업하는 친밀한 예술가 공동체”로 구상되었다. 할렘이라는 장소성에 주목하고 이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도록 제안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작가들은 작업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동시에 할렘 공동체와 교류할 기회를 얻어왔다.
150명이 넘는 작가가 거쳐 간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마련된 전시는, 이곳을 거친 작가들의 소품과 평면 작업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전시 자체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실제 레지던시로 쓰이는 공간에 마치 작은 아트페어처럼 가벽을 세워 마련한 전시장에서 2022년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을 대표했던 시몬 리의 소품, 할렘 거리에서 마주친 흑인 남성들의 초상을 그려온 조던 캐스틸 등 서로 다른 세대와 매체, 주제를 다뤄온 작가들의 작업이 촘촘히 이웃한다. 전시에서 더욱 인상적인 것은 함께 비치된 과거의 출판물과 실제 레지던시 기간 동안 사용될 싱크대 등 이 공간 자체다. 이곳은 곧 당신이 사용할 공간이라는, 2026년 봄 입주할 새로운 작가들을 향한 다정한 인사와 다름없다.
전시를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미술관을 천천히 돌아보던 중, 한 무리의 학생들과 마주쳤다. 그들이 신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곳은 이번 재개관과 함께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처음으로 마련된 전용 공간이었다. 교실 안쪽에 위치한 크리스토퍼 마이어스의 장소 특정적 작업 〈Harlem Is a Myth〉(2025)에서 할렘의 상징적 인물들이 신화적 존재로 그려지듯, 왁자지껄한 이 학생들은 또 어떤 새로운 르네상스를 만들어낼까. 건물을 나서 다시 125번가에 서니 이제야 스튜디오뮤지엄의 재개관을 알리는 대로변 배너가 또렷이 보인다. 배너에 적힌 “Where Black Art Lives”라는 문구. 적어도 이곳에서 오늘은 수사가 아닌 현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