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임영숙

임영숙

월전미술문화재단 한벽원갤러리 8.26~9.7

향기 향(香)자는 벼(禾)가 햇볕(日)에 익어가는 것을 뜻한다. 들판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는 분명 시각적인 것이지만, 이를 감성적인 것으로 변환시켜 그 감동을 배가시키는 옛 선인들의 지혜가 새삼 놀랍다. 이 벼(禾)가 사람의 입(口)에 들어가게 되면 평화로움을 뜻하는 화(和)가 된다. 이에 이르면 단순한 글자 하나에 담긴 의미가 예사롭지 않게 전해진다.
작가 임영숙의 작업은 밥을 주제로 한다. 하얀 쌀밥에 꽃을 더하는 그의 화면은 정갈하고 소박하다.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진 화면은 현대미술의 난해한 설정이나 교묘한 복선의 구조 같은 것은 지니고 있지 않지만, 그 평범한 일상성을 통해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직설적인 듯하고 즉물적인 듯하지만 그것을 통해 전해지는 시각적 메시지는 결코 단순한 한두 마디의 단어로는 정리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의 내밀한 삶의 어떤 부분들과 연계되어 묘한 여운을 증폭시키며 전해진다. 그것은 지식을 통해 읽힌 이성적인 앎의 결과가 아니라 극히 인간적인 감성을 통해 감지되는 안온한 정서의 확인이다.
우리 사회에서 하얀 쌀밥으로 대변되는 삶의 상징성은 이미 그 의미가 반감되었지만, 밥은 여전히 특정한 정서와 감성의 상징으로 읽힌다. 작가는 하얀 쌀밥을 가득 담고 갖은 꽃으로 장식하였다. 그것은 작가가 지니고 있는 삶과 인간에 대한 의식의 구체화인 셈이다. 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물을 통해 내밀한 사유를 개진하는 작가의 섬세한 감각은 그 자체가 소박하고 따뜻한 것이다. 굳이 과장하거나 꾸밈이 없이 소박하게 드러내는 작가의 감성은 수용성 안료 특유의 부드럽고 침착하며 깊이 있는 색조를 통해 효과적으로 수렴되고 있다. 그것은 한국화가 지니고 있는 고답적인 전통주의나 경직된 소재주의에 함몰되지 않은 것이기에 더욱 신선하고 반갑다.
미술, 혹은 문화가 지닌 공능 가운데 하나가 영혼, 혹은 정신적인 것에 대한 치유라 할 것이다. 작가가 전해주는 한 그릇의 따뜻한 밥은 그저 한 끼의 배를 채우는 물질이 아니라 문명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물질이 범람하는 시대에 인간과 그 삶에 대한 정신적인 위안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밥 한 그릇으로 축약된 시대적 담론이자 밥 한 그릇으로 표현된 감성의 확인이라 할 것이다. 향기 향(香)자가 시각적 이미지를 감성적인 내용으로 수렴하여 그 상상의 외연을 무한대로 확장하듯이 작가는 흰 쌀밥으로 이루어진 소박한 화면으로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감성의 성찬을 배려해주고 있다 할 것이다.
김상철・동덕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