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Topic] Money and Art – Thirty Silver Coins Collection Haupt

미술과 돈,
그 특별한 관계의 신선한 화학작용

‘미술’과 ‘돈.’ 미술이 본격적인 시장의 시대로 빨려들어가는 지금 이 두 가치가 가지는 의미는 상호 이질적이거나 불가분의, 극한의 관계로 인식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돈을 주제와 모티프로 한 작품 앞에 선다면? 하우프트 컬렉션이 펼치는 <Money and Art전>은 극대화된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경전과도 같은 ‘돈’을 미술이라는 도구로 풍자하고 있다. 더불어 일관된 맥락에 근거한 컬렉션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신원정  미술사

독일의 오래된 격언 중에 “돈은 그에 대해 떠들어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잠자코 소유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돈에 얽힌 문제를 입에 담는 것을 경계할 뿐 아니라 자신의 부와 재산을 자랑하는 것도 경고하는 이 속담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되지만 때로 대놓고 언급하기에는 껄끄러운 존재, 돈과 자본—그건 미술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활발히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그와 불가분의 관계지만 상황에 따라 금기시되기도 하는 돈이 떳떳하고 당당하며 그러면서도 고상함과 품위를 잃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미술현장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돈을 다룬 미술작품들이 큰 목소리를 내는 장소이다. 베를린을 관통하며 흐르는 슈프레 강가에 자리한 하우프트 컬렉션이 바로 그곳이다.
개인 소장의 미술컬렉션은 특정 예술사조나 장르에 초점을 둠으로써 전문성을 살리고 여타 컬렉션과의 차별화를 추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뒤셀도르프에 있는 율리아 슈토섹 컬렉션의 경우 동시대미술 중에서도 비디오아트나 영화 등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에 전문화된 컬렉션으로 인정받고 있다. 베를린만 해도 쟁쟁한 현대미술 전문 컬렉션이 여럿 되지만 개념미술을 표방하는 하우브록 컬렉션을 제외하면 모두 별다른 제한 없이 포괄적으로 작품을 수집하고 있다. 한 가지 테마에 중점을 둔 현대미술 컬렉션은 정말 보기 드물다. 한국에도 수입되는 리터 스포츠 초콜릿사의 공동대표인 마를리 호페-리터가 설립한, 초콜릿 모양처럼 정사각형의 작품만을 수집하는 리터 컬렉션 정도가 테마 컬렉션으로서 비교적 단기간에 자리 잡았을 정도이다. 하우프트 컬렉션은 게다가 돈이 주제라니 뭔가 새롭고 신선하다.
약 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비교적 젊은 컬렉션은 독일작가 그리고 베를린에서 작업하는 작가 작업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국제적이고—아쉽게도 아직 한국작가의 작업은 없다—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200여 점 작품의 공통점은 오직 한 가지, 직간접적으로 돈을 다룬다는 점이다. 주제가 명백한 만큼 수집 대상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 전체적인 컬렉션의 모양은 다소 단조로울 수도 있지 않을까 했던 예측은 기우에 불과했다. 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전이나 지폐를 구체적인 소재나 재료로 사용한 작품에서부터 돈의 교환가치와 같은 추상적 측면에 초점을 둔 작품, 거시적인 관점에서 ‘부’의 개념에 접근하거나 비판적인 시각으로 오늘날 자본의 의미와 영향력을 탐구하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소장 작품들의 깊이와 스펙트럼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화폐가 직접적인 재료로 사용된 작품의 경우 지폐 위에 문구를 적어 넣기, 그림을 그리거나 인쇄하기, 종이접기나 오려내기, 훼손과 같은 물리적 변형 또는 특정 부위만 남기고 색칠해서 새로운 상징을 창조해내는 등의 방식이 있다. 또한 공작・공예에 가까운, 감탄을 자아낼 정도의 수작업으로 제작된 작품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전 세계 통화 중에서도 미국 1달러 지폐는 미술 재료로 압도적인 인기를 누린다. 비록 불황과 미국 경제의 약화로 예전만 못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의 영향력을 자랑하며 국제통화로 통하는 게 미국 달러권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큰 상징성을 지니는 1달러 지폐가 재료로 사용되면서 그 위에 투영된,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강대국 미국이 가지는 힘과 영향에 대한 암시나 풍자가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있다. 유로화를 다루는 작업에서는 지폐에 내재된 다층적인 의미가 작품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부’를 대변하는 화폐 자체로서 다루어지기도 하지만 오직 경제원리 하나로 한 배를 타게 된 유럽공동체의 딜레마(역사・문화・종교・정서적으로 많은 것을 공유하는 동시에 또한 지극히 이질적인 유럽 국가들의 모순성)를 상징하는 매체이기도 한 점이 유로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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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베궁 누르 & 플로리안 괴페르트 <캐시 풀> 3D 애니메이션 스틸 4분25초 2006 Repro: Hermann Büchner

독창적인 테마에 근거한 컬렉션
바튼 리디체 베네스는 세계 여러 나라의 지폐를 접거나 말아서 해당 국가의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템을 만들었다. 미국인인 작가의 눈에 비친 각 나라의 정체성은 그야말로 개성만점이다. 약통처럼 동그랗게 말린 미국 1달러 지폐에서는 캡슐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1회용 티백 모양으로 접힌 영국 파운드 지폐 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초상이 관람객과 눈을 맞춘다. 맥주병 뚜껑과 와인 코르크 마개 모양으로 접힌 독일 마르크 지폐, 고행을 위한 못 박힌 침대를 연상시키는, 가시들로 뒤덮인 인도의 루피화와 초밥을 집어 든 젓가락 모양으로 길쭉하게 말린 일본 엔화가 각각 액자 안에 전시되었다. 만약 한국 지폐가 있었다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대만 작가 리밍웨이의 <미술을 위한 돈>(1997)은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 5점과 미국달러 지폐를 접은 것으로 이루어진다. 작가는 1994년 1월 1일 10달러 지폐 아홉 장을 접어서 각각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고 1년간 두 차례에 걸쳐 이들을 방문하여 상황을 기록했다. 12월의 방문 시에 그중 절반이 넘는 5명이 지폐의 오리가미 조각을 여전히 예술작품으로 인지하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반면 3명은 쇼핑이나 먹을거리를 사는 데 돈을 써버렸고 나머지 1명은 조각을 도둑맞은 상태였다. 레디메이드 작업을 대하는 시각에서 현격한 개인차를 실감할 수 있으며 미술의 맥락 안으로 끌어들여진 평범한 일상용품이 아니라 교환가치를 가진 화폐가 실험의 대상이었기에 나온 흥미로운 결과이다. 예술과 현실을 두고 저울질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된다.
소장품 중에는 화폐의 도안이나 이미지를 모티프로 한 작품도 다수 보인다. 영국의 저스틴 스미스는 <비거 뱅-블랙>(2009)에서 세계 각국의 지폐 이미지로 각 나라의 땅 모양과 크기를 재현했다. 나라별로 상이한 영토와 국력,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의 상관관계를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직접 주화나 지폐를 제작하는 작가도 많다. 네덜란드의 안네 드 브리스는 자신의 작업 <기억에 근거한>(2012)을 위해 사람들에게 1유로 동전의 앞면에 있는 그림을 보지 않고 오직 기억에 의존해 그려볼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들 중에서 4개를 선정해 동전으로 주조했다. 같은 사물을 놓고도 사람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인간의 기억이란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인가. 니콜라우스 에버스탈러는 <크라스코브 I> 연작에서 ‘허니’화를 제작했다. 10~1000허니에 달하는 총 6장의 지폐 앞면에는 유럽작가지원재단이 있는 폴란드의 크라스코브성이 인쇄되어 있고 뒷면에는 비양심적이고 무분별한 자본과 권력의 남용이 빚어내는 피폐한 결과가 우의적으로 묘사되었다.
현실과 긴밀하게 연관된 돈 혹은 자본을 주제로 하는 작품들을 수집하기 때문에 소장품들에서 특히 세계정세와 급변하는 동향을 읽을 수 있는 것도 하우프트 컬렉션의 강점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대해 공동 큐레이터인 티나 자우어랜더는 말한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인해 신자본주의를 향한 비판은 미술에서 가장 시의성 강한 주제 중 하나가 되었다. 최근에 구입한 작품들인 매튜 생피엘의 <위키달러>나 한스 티햐의 <금융상품>은 바로 이런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한편 그 못지않게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아프리카의 식민지 역사를 들 수 있는데 페리스테리 온의 <부서진 아프리카>와 같은 작품이 그 예이다.” 한국에 체류하며 작업하는 캐나다 작가 매튜 생피엘이 1달러 지폐 이미지를 변형해서 만든 디지털아트 작업 <위키달러>(2013)를 보면 한때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은 스캔들이 절로 천연색으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양이 아니라 질로 승부한다는 건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크기와 작가들의 인지도만 앞세울 뿐 실제로는 실망스러운 퀄리티의 작품들만 가득한, 빛 좋은 개살구 식의 진부한 컬렉션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독창적으로 테마를 선택하고 거기에 집중하는 모습은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이고 다른 컬렉션과의 차별화를 위한 효과적인 전략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새로운 작품을 구입할 때 옥석을 가려내는 선구안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그 여부에 따라 향후의 입지와 발전상이 결정될 것으로 여겨진다. 성장통을 갓 넘긴 젊은 컬렉션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하우프트 컬렉션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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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생피엘 <위키달러> 디아섹 21×50cm 2013 Photo: Mathieu St-Pie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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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스미스 <비거 뱅-블랙> 잉크젯 프린트 104×135cm 2009 Photo: Justine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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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돈을 주제로 한 작품을 수집하는 컬렉터 슈테판 하우프트

“돈은 시대의 미학적 감성을 반영하고 중요한 문화적 성과를 담고 있다”

sth_vor_herfurth_2013_kirsten_700 groß하우프트 컬렉션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화폐의 변화나 시대의 미학적 감성을 반영하고 중요한 문화적 성과를 담고 있으며 , .
수집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1990년부터 내 소유의 법률사무소를 운영해오며 20년이 넘는 기간 미디어와 출판물 관련 저작권 전문 변호사로 꾸준히 일했다. 의뢰인 중 상당수가 갤러리스트, 미술관 관계자, 영화감독이나 작가들였던 까닭에 일찍부터 그들의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컬렉팅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의 작품을 새로 구입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헤르만 뷔히너 박사와 티나 자우어랜더로 이루어진 큐레이터팀과 함께 주기적으로 아트페어나 전시를 방문하며 돈을 주제로 하는 작업을 찾는다. 그리고 수시로 작가나 갤러리스트들에게서 다양한 제안을 받는다.
이런 정보들을 세심하게 평가해서 작품 구입 여부를 토론하고 결정한다.
컬렉션의 역사를 뒤돌아보았을 때 어떤 부분이 특히 자랑스러운가.
소장품들을 총괄하는 첫 번째 컬렉션 도록이 2013년에 출간되었다.
208쪽에 달하는 책에서 두 큐레이터는 120개의 도판을 바탕으로 총 15장에 걸쳐 하우프트 컬렉션뿐 아니라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머니아트의 역사와 의미를 다루고 있다.
유경험자로서 장차 개인 컬렉션을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작품 구입 시 장물이나 모조품을 피할 수 있게 정확한 출처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지난 2001년 한 갤러리스트가 나를 대신해 <크노헨겔트-견본집>을 경매에서 낙찰받았다. <크노헨겔트>는 볼프강 크라우제가 베를린 프렌츨라우어 베르크 지역에서 펼친 퍼포먼스로 에이알 펭크, 올라프 니콜라이, 클라우스 슈택 등 54명의 작가가 참가해 지폐를 제작하고 1993년 11~12월에 그 지역의 여러 상점과 술집에서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그에 병행해서 전 지폐의 견본을 담은 책 두 권이 제작되었고 바로 그중 하나를 내가 소장하게 된 것이다. 몇 년 후 볼프강 크라우제와 얘기를 하던 중 사실은 그가 도둑맞은 책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가의 너그러운 이해 덕분에 좋은 결말로 끝났지만 정말 아찔한 경험이었다.
20년 후의 하우프트 컬렉션은 어떤 모습일까.
독일에서 전시들을 성공적으로 열고 난 후 우리는 이제 유럽과 전 세계로 무대를 넓히려 한다. 20년 후에는 많은 국제적 전시를 멋지게 해낸 컬렉션으로 자리매김 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리 컬렉션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인식의 장을 넓히게 되기를 바란다. 훌륭한 작품 구입을 통해 컬렉션의 확장과 발전이라는 목표가 계획대로 잘 이루어지기를 희망하고, 마지막으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고향인 베를린에 우리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전시할 수 있는 미술관이 생긴다면 정말 행복할 거다.

베를린=신원정 통신원

슈테판 하우프트(Dr. Stefan Haupt, 1962년생)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베를린에서 변호사로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면서 1997년 이래 각종 강의 및 강연활동을 해왔다. 2006년부터 《저작권 보호를 위한 베를린 도서관 연합》 총서의 발행자 및 저자로 활동하고 있다.
www.sammlung-haupt.de
www.facebook.com/sammlung.haupt
매월 첫째 화요일 오후 5시에 큐레이터가 직접 컬렉션을 안내한다.
방문을 원하면 ts@sammlung-haupt.de에서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