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 임 옥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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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131-작가-임옥상-1사진 : 박홍순⠀⠀⠀⠀⠀⠀⠀⠀⠀⠀⠀⠀⠀⠀⠀⠀⠀⠀⠀⠀⠀⠀⠀⠀⠀⠀⠀⠀⠀⠀⠀⠀⠀⠀⠀⠀

임 옥 상 |  Lim Oksang
1950년 태어났다. 서울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 회화과, 앙굴렘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광주비엔날레, 시드니 비엔날레, 베이징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등 다수의 그룹전에 출품했다. 광주교대, 전주대 미술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민족미술협의회 대표를 지냈다. (사)세계문자연구소 대표이며, (사)평창문화포럼과 흙과 도시에서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현재 임옥상미술연구소 소장이다.

임옥상의 홍콩 개인전은 ‘흙’이라는 주제와 소재를 파고드는 그에게 일대 전환점이었다. 땅의 서사와 흙의 물성에 몰두하던 그가 또 다른 지향점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에서 ‘획’으로의 환원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환은 그를 민중미술가냐 아니냐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임옥상은 이분법을 넘어 관계항을 설립하고 다시 그로부터 벗어날 이유를 찾고 있다. 그의 거친 작업의 표면을 매만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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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흙, 선과 획의 경계를 넘나들다
김준기 | 미술비평

홍콩 SA+에서 열린 개인전 〈 임옥상: 흙 〉 전시광경

홍콩 SA+에서 열린 개인전 〈 임옥상: 흙 〉 전시광경

임옥상은 땅과 흙의 예술가이다. 그에게 흙은 물질인 동시에 서사 그 자체다. 흙을 미술 재료로 채택하는 예술가는 많지만, 그것을 자신의 주요 서사로 끌고 가면서 동시에 물성 실험의 영역으로 삼는 작가는 그리 흔하지 않다. 임옥상 예술을 소개하는 수사는 대부분 ‘땅의 서사’와 ‘대지의 예술’에 초점을 맞추곤 한다. 그것을 좀 더 좁혀서 ‘흙의 예술’이라고 명명해야 할 만큼 그는 흙 속으로 점점 더 깊이 파고들어갔다. 40년에 걸친 임옥상 예술이 땅과 흙의 문제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기도 하거니와 최근에 홍콩에서 열린 개인전 〈 임옥상 : 흙 〉(2.15~3.16, SA+)은 그의 예술이 분기하는 또 하나의 변곡점을 이룰 정도로 문제적인 논점을 만들어냈다.

임옥상의 예술에서 흙은 긴 연원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대 청년작가일 때부터 땅 연작을 해왔으며 그에게 땅은 자연의 것만이 아니라 인공의 것이었다.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땅, 자본주의 사회가 잉태한 구조적 모순이 발화하는 지점으로서의 땅, 정치와 경제가 규정하는 경계 위의 땅 등 임옥상의 세계에서 땅은 역동하는 생태이자 움직이는 구조 그 자체이다. 임옥상의 땅 이야기에는 땅의 생명력 예찬만이 아니라 땅의 정치학과 사회학이 들어있다. 특히 농촌과 도시의 관계를 들여다본 작품들 속에서 그러한 경향을 강하게 읽을 수 있다. 이촌향도(離村向都)의 사회적 환경을 체험한 바 있는 임옥상은 농촌사회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공동체를 상실한 현대사회의 공허함 등을 표현했다. 산업사회를 넘어 소비사회로 변화해가던 198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담은 작품도 많다.

이렇듯 땅에 담긴 생태와 정치, 사회의 의제들과 그 흐름을 같이하면서 임옥상은 늘 흙의 문제에 천착했다. 그는 땅의 서사와 더불어 흙의 물질성에 주목했다. 1995년 개인전 〈 임옥상 : 일어서는 땅 〉에서 그는 땅에 대한 문명비판적 작업의 일환으로 땅을 치환하는 흙 작업을 했다. 흙을 전시공간에 투척한 것이다. 당시 전시장을 가득 채운 실물 흙을 통하여 그는 땅과 흙의 서사와 물성을 동시에 채택했다. 이후 임옥상 작업에서 흙은 늘 유화물감으로 그린 흙 이미지를 넘어선 흙 그 자체로 떠올랐다. 그는 흙을 미술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부단히 조사하고 연구했다. 흙으로 설치작업을 하기도 하고, 흙을 이용한 공공미술 작품도 제작했으며, 드디어 흙을 회화와 입체 작업의 안정적인 재료로 사용할 수 있기까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실험했다.

〈 흙 A5 〉 캔버스에 흙과 먹, 200×350cm, 2018.

〈 흙 A5 〉 캔버스에 흙과 먹, 200×350cm, 2018.

근작에서 임옥상이 흙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러한 과정의 일단락을 의미한다. 이제 미술 재료로서의 흙을 넘어서 예술적 차원에서 흙의 질료를 다시 사유하는 단계에 들어서서 그는 일종의 흙 예술을 선언했다. 다시 흙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이 걸어온 40년 예술에 또 한 번의 변곡점을 찍겠다는 야심찬 새 출발이 그에게 있다. 땅으로부터 흙으로의 환원은 그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재료로부터의 자유는 예술가에게 언제나 최대 현안이다. 최근의 한 기획전에서 그는 3D프린터로 제작한 입체에 흙을 바른 오브제설치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제 그는 ‘땅의 예술’에서 ‘흙의 예술’로 환원하면서 새로운 매체와 결합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는 땅에서 흙으로, 다시 흙에서 그 무엇으로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아 변화할 것이다.

임옥상의 환원적 태도는 ‘땅에서 흙으로’의 환원만이 아니다. 근작에서 임옥상이 선보인 최대의 실험은 ‘선에서 획으로’의 환원이다. 이번 전시에서 임옥상은 흙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런데 흙보다 더 관심을 끈 것은 선이었다. 이 전시의 선들은 예전의 선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선들과는 차원이 다른 선이다. 임옥상 근작의 선들은 무언가를 그리기 위한 선이 아니라 선 그 자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형상과 서사를 구축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선이 아니라 선 그 자체로서의 선이다. 그의 근작에 나타난 선들은 회화적 환영의 대상을 가리키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선은 무엇을 그린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 선들이다. 따라서 그것은 선이 아니라 획에 가까울 정도로 환원주의적인 것이다.

〈 흙웅덩이 〉 종이에 흙, 137×241cm, 2011.〈 흙웅덩이 〉 종이에 흙, 137×241cm, 2011.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상정할 수 있다. 임옥상 그림에서 선이란 무엇인가? 왜 임옥상과 같이 민중미술의 주역으로서, 수십 년 동안 형상을 통해 서사를 구축해온 예술가가 선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일까? 그의 선이 이토록 선 그 자체로서의 존재감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면서 선이라기보다는 획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과감한 변화를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그림의  본질 문제에 다가서고 싶은 욕망을 발견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미술사에서 환원주의 태도는 임옥상과 같은 형상과 서사의 예술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미술의 문제를 미술의 본질로 좁혀 들어가는 환원주의는 그리기와 칠하기, 붙이기와 깎기와 같은 미술적 행위와 그 결과에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가설 위에서 지난 수십 년의 시간동안 맹렬한 창작과 비평의 과정을 거쳐왔다.

민중미술가 임옥상이 단색화가들이 하는 것처럼 선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당연히 임옥상의 출발점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선의 여정을 살펴보는 데에서 나올 것이다. 회화에서 입체, 오브제 설치에 이르기까지 임옥상의 예술에 선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때의 선들은 선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인가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형상표현 수단으로서의 선이었다. 그는 땅이나 흙 이미지 위에 동그라미와 직선과 같은 선을 그어서 경계의 서사를 펼치곤 했다. 땅이나 흙처럼 보이는 평면 위에 선을 그은 것처럼 보이는 선을 그은 것은 일종의 환영(Illusion) 회화이다. 그는 캔버스 위에 흙처럼 보이는 유화물감을 발라 그 평면을 땅처럼 보이게 만든 후, 그 위에 땅 위에 선을 그은 것처럼 보이는 선을 그었다. 이처럼 임옥상은 선을 위한 선을 그린 것이 아니라 선처럼 보이기 위한 선을 그린 것이다.

〈 웅덩이2 〉 캔버스에 아크릴, 126×190cm, 1980.

〈 웅덩이2 〉 캔버스에 아크릴, 126×190cm, 1980.

2000년대 이후의 선은 다른 차원으로 진화했다. 그는 선처럼 보이는 선에서 점점 선 그 자체의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필의 맛을 제대로 살린 강렬한 필선의 힘을 그는 종이나 캔버스와 같은 전통적인 평면 재료만이 아니라 철판과 흙판과 같이 재료 위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실험들은 손글씨를 그림이나 조각에 대입하면서 본격화했다. 손글씨 조각의 대표작 〈 허허금강 〉(2007)은 금강경을 필사한 그의 글씨를 철판 글씨로 오려내고 그것을 구부리고 휘어서 불두로 만든 것으로 이후 글씨를 이용한 다양한 입체설치 작품으로 이어졌다. 2011년에 물과 불과 철과 흙을 주제로 한 전시에서 그의 손글씨는 더욱 뚜렷하게 선 그 자체로서 문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철판 위에 산의 형상을 굵은 필선으로 긋고 손글씨를 결합한 9m 대작  산수풍경 〉(2011)은 임옥상이 환영으로서의 선을 극대화하고 있음을 공언한 작품이었다. 근작에서 임옥상은 지난 10여 년간 지속해온 모필 선 작업들의 성취를 기반으로 선 자체의 맛과 멋을 살리는 작업에 집중했다.

〈 흙 C1 〉 캔버스에 흙, 먹, 아크릴릭, 145×227cm, 2018. 〈 흙 C1 〉 캔버스에 흙, 먹, 아크릴릭, 145×227cm, 2018.

지난해부터 임옥상이 집중적으로 제작해온 〈 흙 〉 연작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첫째는 오랜 시간 쌓여온 형상을 집약하여 압축적인 필선에 담아내는 작품들, 둘째는 종이나 모필과 달리 흙이라는 물질과 만난 모필의 섬세하면서도 힘찬 표현력에 집중한 작품들, 셋째는 손가락과 나이프 등 다양한 방법으로 흙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는 데 집중한 작품들이 그것이다. 그것은 땅의 서사를 흙의 서사로 환원했을 때의 태도와 마찬가지로, 선의 멋과 맛을 획의 멋과 맛으로 환원했을 때의 감성학적인 성취를 보여주었다. 그는 서사로서의 땅을 물질로서의 흙으로 환원한 것과 같이 방법으로서의 선을 목적으로서의 획으로 치환함으로써 한층 더 깊게 자신의 세계를 일구었다.

임옥상은 거의 모든 예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여기까지 왔다. 그에게 근작의 환원주의적 태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려는 탈경계의 실험이자 도전이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대립이 극심한 한국에서, 민중미술이냐 모더니즘이냐 하는 이분법이 명확한 한국미술계에서 임옥상의 실험과 도전은 일종의 모험이다. 땅과 흙과 선과 획을 가르는 경계 위에 선 임옥상의 고뇌는 환원과 확산, 서사와 물성이라는 미술의 근본 문제와 만났다. 그의 도전이 고뇌의 환원인 이유는 환원 그 자체가 아니다. 그의 고뇌가 땅과 흙, 선과 획의 관계항 단계를 거쳐 다시 어디로 향할 것인가! 고뇌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땅과 흙, 선과 획, 서사와 물성 등 이 모든 이분법적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가의 자유가 있는 한 임옥상의 고뇌는 이미 해답을 내포하고 있다. ●

●  < 월간미술 > vol.412 | 2019.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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