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노충현 자리
2016.12.8~2.11 페리지갤러리
김소영 | 출판기획
몇 해 전 겨울, 함박눈이 내려 흰 눈에 잠긴 한강시민공원을 보았을 때, 노충현의 그림이 떠올랐다. 장마철 홍수에 불어난 한강을 보았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한강을 보거나, 한강시민공원에 갈 때마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유독 어떤 ‘계절’에 그랬다. 한강을 담아내고 있는 노충현의 〈살풍경〉에서 내가 본 것은 그래서 한강시민공원의 모습이 아니라, 앞서 지나간 계절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곤 했었다.
이번 겨울, 페리지 갤러리에서 열리는 노충현의 개인전은 앞서 언급한 〈살풍경〉 시리즈와 함께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 시리즈다. 10년 전인 2006년에 대안공간 풀에서 처음 선보인 이 시리즈에서 작가는 ‘동물원’이란 장소를 그렸다. 특히 오랑우탄이나, 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사람(관객)을 위해 쇼를 하는데 쓰이는 기구와 장치들을 그린 그림들이 이 시리즈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 작가는 이런 구조물을 그린 그림의 제목을 ‘서커스’라 붙였다. 그리고 그림 속 모습은 어쩐지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어딘가 기이하고 아슬아슬한 동물원의 위태로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2006년 대안공간 풀과 2015년 소소 갤러리 개인전에 이어, 세 번째로 선보이는 이번 〈자리〉 시리즈에서 이전의 작품들과 크게 달라진 두 가지가 있다. 우선 그림에 등장하는 동물원의 벽화 그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동물원의 벽화에는 동물들이 그려있다. 홍학이나 물새, 그리고 원숭이 같은 동물이 그려진 벽화를 작가는 다시 그림으로 그렸다. 그래서인지 어떤 그림은 벽화가 아니라, 실제 동물이 희미하게 나타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자리’ 시리즈는 동물이 없는 동물원이었던 앞선 시리즈의 내용과 크게 달라진 것일까.
그런데 여전히 동물이 주인공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수의 그림에서 동물은 벽화에 그려진 모습으로 나타나고, 실제로 동물일지도 모르는 존재들은 무척 조심스럽게 그려져 있으며, 그 존재감이 미미하다. 또한 동물일지도 모르는 존재가 희미하게 등장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그림의 배경에는 강렬한 색채를 사용한 것도 눈에 띄는데, 이 부분도 이전 그림들과는 다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노충현 작가는 ‘자리’를 장소(space)나 공간(place)으로 번역하지 않고 ‘Zari’라 표기했다. 따라서 그의 그림 속 ‘동물원’은 물론 작품의 주인공이겠지만, 어떤 역사적이고 문화 정치적인 장소이거나 공간으로만 한정할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충현의 〈살풍경〉에서 ‘계절들’이 감지되던 것처럼, 이제 〈자리〉 시리즈에서도 다른 것을 볼 차례이다.
위 〈사다리〉(오른쪽) 캔버스에 유채 194×261cm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