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양유연 불신과 맹신

2016.11.24~12.29 갤러리 룩스

신양희 | 아마도예술공간 큐레이터

양유연의 〈불신과 맹신〉에서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연민을 엿볼 수 있다. 어떤 날 어떤 시간에 벌어진 사건, 그리고 그가 마주했던 순간이 그림이 되었을 때, 그 세계가 밝지 않다는 것, 그 세계를 살아내는 인간의 모습도 결코 가벼울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그 세계는 음울하게 보인다. 이처럼 양유연은 세계의 모순 앞에서 불안하고 불완전한 상태에 놓인 인간을 그려냄으로써 모순의 한 측면에 주목한다. 그래서 빛을 세밀하게 조절하였지만 어둠은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물감이 깊숙이 스며들었음에도 비집고 나온 상처와 같은 흔적을 마주할 수밖에 없게 한다.
그림들을 몇 가지 층위로 나누어보는 것은 전체적인 맥락을 훼손하는 행위이겠지만, 그럼에도 구별되는 세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허수아비1〉, 〈쇼윈도우〉, 〈명암〉, 〈질식〉에서 허수아비와 마네킹은 인간을 대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그 자신의 본분에 맞게 경화된 표정과 부자연스러운 신체를 가진다. 그들을 인간이라 볼 이유는 없을 테지만 그렇게 보지 않을 이유도 없다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 희망 없음 앞에 속수무책이 된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나’는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그렇게 무기력하게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작업들이 인간의 모습을 표면으로만 다루고 있다면, 〈엉킨 손〉, 〈에우리디케〉, 〈붉은 못(사냥)〉, 〈흔(痕)〉, 〈Stuck〉은 좀 더 극적인 사건을 끌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인물들은 외부로부터의 충격 혹은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여러 손에 짓눌린 얼굴, 얼굴을 죄어 오는 손, 핏빛 물속에서 몸을 온전히 숨길 수 없는 헐벗은 신체, 온몸에 남은 구타의 흔적,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야 마는 신체. 이 인물들의 고통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알 길은 없다. 다만 이 그림들이 현실의 어떤 사건들과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이들의 통증을 어루만지는 작가의 손길이 느껴질 때,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삶이 우리를 응시하고, 우리는 그것을 방기하거나 기만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그림 속 인물들은 안정된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인물이 부재한 〈백열〉, 〈결코, 이어지지 않는 길〉,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에서도 음울한 상태는 이어진다. 현재의 어떤 장소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이 그림들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어둠 속의 빛마저 구원을 약속하지 않고,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지도 까마득하다. 이 풍경들은 현실을 회피하듯 막을 내린다. 그렇게 작가가 유보한 세계는 또다시 우리의 현실로 이어질 것이다.
양유연이 마주한 현실은 어둡고 우울한 감정을 유발하는 인물, 사건으로 치환되어 있다. 세상을 향한 그리고 인간을 향한 작가의 연민은 한 측면으로 귀결됨으로써 우리 삶의 어두운 측면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서치라이트〉의 응시하는 그 사람처럼, 우리는 양유연이 그려낸 고통스러운 삶과 그 삶에 놓인 인물들을 응시하는 목격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배제된 그 어떤 그림도 무의미하다고 그와 함께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나친 연민을 넘어서는 일도 필요할 테지만.

위〈허수아비1〉(오른쪽) 장지에 아크릴 148.5×105.5cm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