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윤향란 線의 詩學
2016.10.4∼12.3 환기미술관
박춘호 |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문학박사
화가 윤향란’이 6년 만에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그녀가 금속 파이프를 불로 달구고 망치질하여 제작한 조각 작품을 전시하였다. 평면에서 입체로의 전환이다. 전시장 한가득 그녀의 손길에 의해 생명을 얻어 살아 꿈틀거리는 금속 파이프들이 넘쳐난다. 장관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일탈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변신이라고 해야 할까?
윤향란의 〈선의 시학?〉?은 화가가 평면작품을 실체로서 현현하고자 하는 충동을 발산한 전시라 할 수 있겠다. 6년 전 그녀는 화가로서 파리에서 오래 거주했음에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드로잉으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였다. 명암을 배제하고 선만으로 그린 추상화였다. 당시 전시한 드로잉 작품 중 일부는 이번에 전시한 드로잉 작품과 유사하다. 윤향란에게 드로잉은 여느 작가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실제 작품을 위한 검토 과정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작업을 시작하기 전 그녀는 감각의 촉을 세우기 위해 마치 운동선수가 워밍업을 하듯이 드로잉을 한다. 이렇게 쌓인 드로잉 중에 선별한 것을 그녀는 캔버스에 조합해 붙이고 다시 떼어내기를 반복하며 드로잉 작품을 완성한다. 한편 그녀의 목탄 드로잉을 보노라면 재료는 다르지만 서예에서 추구하는 필묵의 기운생동과 유사함이 느껴진다. 그녀의 드로잉은 그야말로 오랜 습작기를 거쳐야만 드러날 수 있는 선의 맛이 돋보인다.
이번에 전시한 철조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시장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드로잉 작품들과 똑 같은 방법으로 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그녀는 각각의 성형된 파이프들을 여느 조각가들과 달리 용접으로 완성하지 않았다. 먼저 그녀는 평면에 선을 긋는 것과 같이 파이프로 각각의 선을 만든다.
그 후 캔버스에 조합하듯이 그녀는 각각의 선들을 철사로 묶어 조립하여 형태를 만들어 나간다. 입체이기에 작업 중 여러 방향에서 살펴보며 묶고 풀기를 반복해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러니 현장 조립이자 가변설치라 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윤향란에게 평면작품과 입체작품은 전혀 별개의 작업이 아니다. 차이점이라고는 이차원에서 삼차원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불로 달구고 망치질하고 구부려 만든 금속 파이프 선들의 느낌이 드로잉 작품에 드러난 선의 느낌과 너무나 흡사하다. 금속 파이프를 이 정도로 다룬 것을 보면 지난 3년간 화가인 그녀가 이 전시를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화가가 느끼기 힘든 노동의 기쁨을 그녀는 이 작업을 하면서 참으로 만끽하고 있는 거 같다.
이번 전시가 앞으로 ‘화가 윤향란’의 작업에 새로운 돌파구가 되리라고 기대한다. ‘화가’ ‘조각가의 구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가 윤향란’ 작품에서의 진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도 그녀가 자신의 작업을 낯설게 바라보며 성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오랜 시간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는 그녀를 보며 ‘혁신은 항상 중심부와 일정한 거리를 둔 곳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에 귀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그녀의 다음 전시를 더욱 기대하게 된다.
위 윤향란 〈선의 시학〉 전시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