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장파 레이디 엑스
갤러리 잔다리 7.2~25
임대식 아터테인 대표
얼마전 누군가의 SNS 프로필에 무지개색이 등장한 걸 보았다. 내막을 몰랐을 때는 프로필 장식치고는 좀 어색하다는 생각을 했다가 이게 단순히 자신의 프로필 장식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피식 웃은 적이 있다. 동성애자의 합법적 결혼을 지지한다는 암묵적 응원의 메시지로서 무지개색 배경을 택한 것이었다. 아니 암묵적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메시지였다. 얼마전까지 소수의 의지를 누군가에게 밝히려면 치열하고 전투적이어야 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정도는 나름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그게 SNS의 또 다른 사회적 기능일 수도 있겠다.
사실 이와 같이 자신의 프로필 배경을 무지개색으로 바꾸면 왠지 자신의 삶과 사회적 이슈를 대하는 데 있어 더 넓은 이해의 폭을 지닌 듯 보이기도 한다. 시쳇말로 시크하다. 작가 장파의 레이디 엑스(Lady-X) 역시 시크하게 여성, 그 자체의 성에 대해 정말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의 레이디는 여성이라는 성 역시 너무나 소외되어 왔음을 말한다. 성은 본능적 집착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이러한 성은 철학적이거나 문학적으로 보다 고상하게 포장되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날것 그대로 소통되기 시작하면 통제되지 않을 것 같은, 인간은 두발로 걷는 고상함을 포기하고 네발로 걷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해서 도덕과 윤리가 우리의 무의식을 장악할 수 있도록 뇌를 세척시켰다. 따라서 여성, 남성이라는 이분법에서 소외된 여남성, 남여성들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지지로서 무지개가 아니라 성 그 자체에 대한 자율적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지지로서 또 다른 빛깔의 무지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성적 집착은 일종의 분리불안에 대한 극복의 한 형태다. 성은 인간의 감정을 결정짓는 요소들 중 비교적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성적 집착에서 중요한 것은 집착 대상이 아니라 내가 집착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집착의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또한, 다양한 종류들로 확장해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성적으로 집착하는 대상은 이러하기 때문에 그것을 잘 파악하여 내 성적 기호와 정체성은 이렇다고 결정하는 것은 다소 섣부른 판단이 될 수 있다. 내 집착의 정도에 대한 이해에 따라 타자와의 관계 설정이 보다 부드러워질 수 있다. 또한, 사랑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해 서로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다. 사랑은 언제나 나에게 한계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더더욱 우린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성적 집착의 이유에 대해 늘 고민해야 한다.
장파의 레이디 엑스의 사랑은 이러한 성적 집착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순수한 사랑의 경계로 이어진다. 사랑은 인간 감정의 복합체다. 따라서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러나 작가는 스스로의 성적 집착에 대한 판타지, 일종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사랑은 순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진정한 성은 단순히 나와 타자의 관계가 아니라 나에 대한 이해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사랑은 서로의 마음으로 통할 수 있는 문으로 변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