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청춘과 잉여

커먼센터 2014.11.20~2014.12.31

얼마 전까지 힙스터가 해야 할 일 중에 하나가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허니버터칩’을 먹는 거란 말이 있었다는데, 굼뜬 일상인지라 하나도 이룬 게 없었는데 얼마전 허니버터칩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기존 감자칩과 다른 새로운 시도로 짭짤함과 달콤함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허니버터칩에 대한 소문과 기사 때문인지 신문물을 앞에 두고 조금의 기대와 긴장을 하고 먹었는데. 내 맛도 니 맛도 아님을 알고 난 후 과자 하나를 앞에 두고 여러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청춘과 잉여전>은 젊은 기획자 듀오 ‘유능사(안대웅, 최정윤)’의 입봉 전시이기에 작가 박찬경의 말처럼 어설픈 지도 그리기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시도 자체로 보기에 <청춘과 잉여>는 지나치게 야심 찬 기획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그리고 2010년대를 관통하는 한국 사회의 주제로 아시아, 이야기, 유토피아, 매체 그리고 어떤 주체(?)의 5개를 제시했다. 계보와 위치 짓기를 시도하는 기획에서 그 기준의 근거가 적확하지 않다면 기획의 의도나 의미를 공감하기 어려운데, 아무리 꿰어 보아도 왜 5개의 주제인가, 각각의 주제가 어떤 관계인가 알기 어려웠다. 송상희-이자혜 작가를 묶는 주제는 정리되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청춘’과 ‘잉여’ 의 대표 주자처럼 짝을 이룬 작가들은 (박찬경-이완, 안규철-김영글, 정연두-백정기, 박미나-이상훈, 송상희-이자혜) 이미 작업 맥락이 뚜렷한, 제도적으로 연착륙한 작가들이라 전시의 재료로써 작업은 보장된다. 그렇다면, 전시의 관건은 젊은 기획자로서 미술계에 이러한 이슈를 제기하고 주제에 맞게 작업들을 어떠한 맥락에 놓는가에 달려있다 할 것이다. 기획자는 장소 특정적 성격이 강한 전시에 공간 자체의 아우라보단 작품이 드러나도록 노력했다고 이야기했지만, 공간 배치에서 특정 소주제와 몇몇 작가에 집중해 최소한의 균형이 부족했고, 1층부터 4층까지 22개의 작업을 보는 과정은 분절적이고 부자연스러웠다.
한국사회에서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그리고 2010년대 초반은 20여 년에 불과하지만,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급진적이고 다층적 맥락을 지닌다. 그렇기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시 배경과 내용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준 기획자의 현학적 수사에 비해 주제 정리와 배치 과정에 대한 느슨함이 더욱 아쉽다. 차라리 역사화에 대한 힘을 빼고 분명하지 않고 중첩된 5개의 주제와 <댄싱 위드 더 스타>와 같은 작가 짝짓기 형식을 조금 줄여 집중했다면 잘 꿰어진 보배가 되지 않았을까.
<청춘과 잉여전>은 최근 20여 년의 한국 사회와 미술의 궤적에 대한 짭짤하고 달콤함을 뒤섞은 위치 짓기의 시도였다. 어쩌면 전시 자체의 의도나 기획의 역량은 거기까지였을 수도 있는데, 미술계의 과대 혹은 과소 비평과 감상이 있을 뿐이다. 첫 전시가 좋든 나쁘든 오르내렸으니 더할 나위 없는 성과이자 앞으로 행보가 주목받게 된 것도 힘이 될 것이다.
2010년부터 제도권에 등장한 젊은 기획자들의 자기조직화 방법 중에 동시대미술에 대한 계보학적 위치 짓기, 감각적 네이밍와 출판은 나름의 전략일 수 있고 대체로 효과를 발휘했다. 젊은 기획자의 야심 찬 기획과 전략의 방법론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1:8의 세상에서 예술의 가능성은 작아지지만 책임은 무거워지는 상황에서 기획자의 정신승리를 위한 시도에만 기대는 것은 조금 단순하고 순진한 마무리일 수 있다. 공공영역의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활동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젊은 기획자들이 귀한 자산이 되어야 하기에 조금 느리더라도 깊이 성찰하고 정진해주길 바란다면 요즘 실정 모르는 기성세대라고 할까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하고 부탁하고 싶다.
채은영 우민아트센터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