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p.2(전소정&안정주) 장미로 엮은 이 왕관
아뜰리에 에르메스 6.25~8.23
안경화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실장
안정주와 전소정의 공동 작업으로 구성된 <장미로 엮은 이 왕관전>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한 작가와, 그녀의 일상을 촬영한 영상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가는 두 명의 작가를 교차 편집한 <카메라를 든 여자>로 시작한다. 새로운 작업실을 둘러보고, 흙으로 무언가를 빚고, 카메라를 들고 낯선 도시를 기록하는 그녀의 행위는 “다 자르고 진짜 중요한 것만 남기자”거나 “그녀의 눈 말고 카메라의 눈으로 찍은 풍경들”을 넣자는 작가들의 대화 내용에 따라 갑자기 정지하고, 때로는 다음 장면으로 급격히 전환된다. 서로 간의 의견 교환을 통해 영상을 완성해가는 작가들의 대화와 카메라를 든 작가의 독백에는 안정주와 전소정이 p.2(두 번째 페이지)라는 이름으로 협업하기 이전부터 공유한 예술에 대한 생각이 들어있다.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던, 지금보다 젊은 시절의 그들에게 예술작품을 제작하는 일은 “일상에 대한 기록과 수집, 그것들의 변형”이자 “남에게는 하찮지만 지금의 나를 이루는 것들”로 규정되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평가나 인정에 얽매이지 않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가야 한다고 다짐한 작가들은 두 번째 영상작업 <누드 모델>에서도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한 고민과 함께 일상과 예술, 주체와 타자, 관습과 혁신 사이를 오가면서 예술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구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누드 모델들은 남녀의 신체적 특성을 과장되게 표현한 누드 옷을 입은 채, 서양미술사에서 미(美)의 기준으로 평가받는 옷을 벗은 인물들의 포즈를 자랑스럽게 모방한다. “아름다움은 꿈에서나 가능”하다고 울적해 하다가 “아름다움은 내 안에 있”다고 흐뭇해하는 누드 모델의 상반된 감정 표현은 지난한 작업 과정 중에서 희비(喜悲)를 오갈 수밖에 없는 예술가들의 숙명을 희화화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천박할 것도, 숭고할 것도 없는” 예술을 업으로 삼고자 노력하는 연습생들에게 감정을 몸짓으로 전달하는 행위(예술작품을 만드는 일)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 않다. 등장인물들은 모델과 아티스트의 시각을 오가며 예술과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펼쳐 나간다.
이 전시에 소개된 마지막 영상작품 <소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안정주의 영상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절대적인 존재와 개념에 대한 의문과, 전소정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실제와 허구를 넘나들며 포착한 사소하지만 소중한 삶의 모습이 결합된 작업이다. 전쟁과 재난처럼 인간이 초래한 사건들을 기록한 영상 자료를 기반으로 한 이 작업은 현실의 장면을 보여주는 영상과 그 장면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작업 과정을 기록한 영상, 그리고 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춤으로 소개하는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택한 영상과 이와 연결된 춤과 소리는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혀내기 어려운 부조리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제시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읽어내며 이를 다시 뒤집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예술의 힘을 경험하도록 한다.
전시 제목인 ‘장미로 엮은 이 왕관’은 <누드 모델>의 대사인 동시에 예술가의 지위를 의미한다. 가시의 고통을 견뎌낸 자만이 쓸 수 있는 장미 왕관은 모든 예술가가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 2는 앞으로도 개별적으로 또는 협업을 하며 두 손의 모습을 형상화한 을 통해 현실의 이면을 바라보고, 이를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예술로 만들고자 노력할 것이다. 어쩌면 예술가에게는 상을 받거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보다 이러한 과정 자체가 장미 왕관이 아닐까.
위 왼쪽 p.2 <소리를 만드는 사람들> 3채널 비디오 & 스트레오 사운드 16분 50초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