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OR'S VOICE 복행술
2016.11.17~12.11 케이크 갤러리
조은비 | 독립 큐레이터
〈복행술〉 전시의 철수 작업은 단 세 시간 만에 끝났다. 설치와 철수를 반복해온 지난 몇 년간 줄곧 그러했지만, 전시를 준비를 해온 수개월의 시간에 비해 전시 공간의 ‘리셋’은 너무나 신속하고 명쾌하게 끝이 난다. 물론 전시의 생명력이 그 물리적 현존에 의해서만 유지된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전시 도록과 아카이브, 작가-기획자-관객이 공간에서 함께 나눈 질문과 이야기들의 무형의 연결… 그렇게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지난 시간을 복기한다. 물론 아직(혹은 영원히) 전시와의 거리두기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이를 통해 전시라는 일시적 사건을 향해온 내 생각의 실타래를 짧은 지면을 빌려 공유하고자 한다.
이 전시는, 오늘날 언어가 처한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말의 생산과 유포, 전파가 빠른 시대에 문장은 짧아졌고 단어들은 ‘우물가(井)’를 맴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키워드에 익숙하지 검색창에 ‘문장’을 써넣지 않는다. 조합된 문장보단 파편적인 단어가 더 많은 검색 결과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효율적인 소통을 가능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대상이나 사건을 ‘키워드’로 지시해 이외의 것은 빠르게 망각시킨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몇 개의 ‘키워드’는, 지금 이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환원이며 본질 실종일 것이다. 정치인들의 각종 레토릭에서부터 혐오 발언 등 오늘날 더욱 교묘하고 악랄해진 ‘말’의 홍수는, ㅡ???인터넷의 위력이 거세진???ㅡ 동시대적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손쉬운 명명 행위를 통해 대상과 사건에 딱지를 붙이고 낙인을 찍어 분류하는 폭력을 일상적으로 목격하고 있다.
하나, 내가 주목한 것은 비단 매체 환경의 변화와 맞물린 언어의 무기력함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명료한 개념 속에 자리하기 힘들거나 자극적인 말에 의해 배제되어온 ‘언어’를, 단순화하지 않으면서 그 의미에 더 섬세하게 주목하고 싶었다. 이러한 고민을 둘러싸고, 나는 언어의 표면에 ‘막(veil)’을 친다는 비유로 전시의 알레고리를 제시했다. 의미를 하나로 규정하려는 ‘익숙한’ 의지 앞에서, 미술(언어)에 잠재한 ‘불확정성’을 전면에 내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무언가를 직시하기 위해선 ‘키워드’가 대상의 표면에 완전히 들러붙기 전에, 그 사이로 침투해야 한다는 일종의 ‘미적 개입’에 대한 개념적 은유였다. 물론 전시에 참여하는 다섯 작가(팀)의 작품이 실제로 언어적 작용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의 집단적 망각과 퇴행의 징후들을 ‘해마’를 통해 우화적으로 드러낸 김영글의 영상부터, 유토를 입힌 구조물이 케이크 갤러리의 표면을 느린 속도로 회전하는 이미래의 “뼈가 있는 것”, 전시장 곳곳에 의뭉스럽게 걸려 있는 정희승의 사진과, 둥근 표면 안쪽에 공통적으로 ‘빈 공간’을 품고 있는 이제의 회화, 그리고 서신의 물음표에서 출발해 미지의 오브제를 만들어낸 양윤화+이준용의 작업까지. 말하자면,
그들의 개별 작업은 공통적으로 물음에 즉답하지 않고, 행위는 일정 자세를 유지하며, 사물은 미완의 상태에 머무른다. 하나의 ‘언어’에 ‘안착(landing)’하지 않고 기표와 기의 사이를 끊임없이 배회함으로써 말의 어리석음 또는 오류를 시각적, 감각적으로 포착하는 것이다.
‘전시기획’이 삶에서 생겨난 구체적인 질문을 미술이란 형식을 통해 물질화해내는 ‘(공동의) 순간’이라고 한다면, 나에게 전시의 첫 질문은 과연 어떻게 되돌아올 수 있을까? 요컨대 나는 이 전시를 통해서, 무수한 말에 짓눌리는 작금의 사회에서 쉽게 잊히거나 누락된 존재의 발화 방식을 제안하고 싶었다. 미술에 있어 그 모호성이야말로 이야기를 발생시키고, 이를 ‘전시화’하게 하는 가능성이지 않을까? 글을 마무리하며 〈복행술〉 서문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고자 한다. “규정되지 않는, 그럼으로 미지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불확정적인 것들은, 한 가지 해석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을 스스로 배태하고 있기에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 〈복행술〉은 조은비가 기획해 케이크 갤러리(2016.11. 17∼12.11)에서 열린 전시로, 김영글, 이미래, 이제, 정희승, 양윤화+이준용 작가가 참여했다. ‘복행’(復行)은 항공기가 착륙 직전에, 행로를 뒤집어 다시 날아오르는 조작을 의미한다. 이 전시에서는 안착하지 않고 우회하는 기술이라는 의미로 ‘복행술’이란 조어를 만들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cakegallery.kr 참고.
위〈복화술〉 전시광경. 이제 〈더미〉(왼쪽 벽) 캔버스에 유채 150×200cm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