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박재철

 
동양화가 박재철의 그림에 담긴 시선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해서 사회로 확장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소소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박재철의 사유는 특유의 회화적 형식을 거쳐 독보적인 형상회화로 완성된다. 박재철은 광주은행에서 제정한 〈제2회 광주화루〉에서 대상작가로 선정됐다. 이를 계기로 작가 박재철의 과거 작품세계와 현재 모습을 살펴본다. 4월 11일부터 5월 7일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문화창조원 복합6관)에서 열리는 〈제2회 광주화루〉10인의 작가전에서 박재철의 작품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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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철의 서사회화

김최은영 | 미학, 경희대 겸임교수

박재철 〈비천한 길Ⅰ, Ⅱ〉 한지에 먹, 채색 162×130cm(각)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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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무엇이냐?’ 물었다. 원론을 묻는 것 외에 ‘당신, 동화작가이기도 하지요?’ 라는 속내가 포함된 질문이다.

박재철의 시각예술작품과 동화책 양쪽 모두를 좋아하는 필자에게 작가론을 쓰는 것은 내심 부담스러운 일이다. ‘좋아한다.’라는 개인적 취향 때문에 객관성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점도 적지 않은 고민이지만, 더욱 큰 문제는 감정을 무장 해제시키는 박재철의 글쓰기를 익히 알고 있다는 데 있다. 시각예술을 문자언어와 음성언어로 옮기면서 미학적 살을 붙이는 것이 필자의 직업이다. 간혹 이론으로 중무장한 작가를 만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리 당혹스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작정하지 않은 진솔함으로, 허술한 말솜씨로 전달되는 진심을 목격할 때 곤혹스러운 글쓰기가 되리라 직감하게 된다.

요즘 미술계에 흔한 단어인 ‘일상’이란 낱말 없이 그려진 박재철의 1998년 작품 〈박이야〉, 〈마셔〉, 〈난 나비야〉를 다시 본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박재철 개인전, 서남미술전시관, 1999) 회화적 장식 없이 그려진 수묵의 손 위에 작은 박이 심어진 화분이 놓였다. 화면 위에 흐릿하게 글을 적었다. ‘박이야’, ‘고마워’. 뻗은 두 손 위엔 소박한 박 바가지에 수묵과 대조적으로 파란색 물이 시원하게 담겼다. 화면 귀퉁이, 말풍선에 작은 글이 적혔다. ‘마셔’. 활짝 핀 박꽃의 수분을 돕는 붓질을 하는 작가는 ‘난 나비야’라는 상상과 현실을 화면에 동시에 담았다. 동양화에 대한 새로운 담론과 현대적 계승으로 미술계에 온갖 실험이 득실거릴 때 박재철은 화면에 달랑 손 하나, 화분 하나, 그야말로 소소한 일상을 담았다. 이데올로기도 없고 시대적 담론도 없다. 화자(話者)의 시선은 온전히 일상 안에 있었고, 그 일상의 작은 것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존에 학습한 필법과 각종 규칙을 버리는 것으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박재철이다. 방법을 버린 후 남는 감성에 대해 깊이 고민한 작가는 서양철학과 미학, 사회학 등의 강좌를 돌다 가장 하찮은 행위의 하나인 그림을 소박하게 하기로 마음먹고 일상을 마주했다. 각각의 화면으로도 읽히는 이야기는 작품을 연이어 보면 서사구조가 더욱 도드라진다. 먹과 물(水墨)만으로 그려낸 박과 인물은 화려하고 윤기 나는 장식 없이도 감정이 살아 있고, 새싹인 박과 꽃을 피우는 박, 바가지가 된 모습까지 연속성을 담고 있지만 소박한 구성이 억지스럽지 않고 편안하다. 동아시아 미학 중 의경(意境)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직접적이면서도 간접적이고, 확정적이면서도 불확정적이며, 형상적이면서도 상상적이라는 데에 있다. 1 박재철의 작품은 특정한 형상의 직접성, 확정성, 감수성을 지니면서도, 상상의 유동성, 개방성을 지니고 있다. “사물의 의미를 빌려 살아가면서 겪는 삶의 의문을 얘기해보는 방식을 취한다.” – 박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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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철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책 《봄이의 동네 관찰일기》와 《팥이 영감과 우르르 산토끼》(길벗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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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철은 회화뿐 아니라 동화작가로서의 역할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풀어간다. 구전동화를 재해석한 〈팥이 영감과 우르르 토끼〉는 읽는 이에 따라 선악의 구조가 바뀔 수 있다. 나쁘고 좋은 것으로 양분된 흑백논리가 아닌 나쁜 것과 더 나쁜 것을 고르거나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행복한 봉숭아〉는 관찰이란 단순히 어떤 대상을 보고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꿰뚫는 연습을 하는 일로 풀어내준다. 생각하게 하는 글과 그림인 셈이다. 작가는 고백처럼 생계형(?) 동화작가라 말하지만 필자는 동화 역시 그림과 마찬가지로 박재철의 생각을 담아내는 하나의 채널로 보인다. 그림으로 표현한 문학은 그의 그림 속 서사와 많이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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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철 〈나비 물을 만나다〉 화선지에 먹, 채색 91×116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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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철의 그림 속 서사는 〈15년 만에 숨을 쉬는 남자〉와 〈울지 못하는 남자 1, 2〉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아물지 않은상처〉 박재철 개인전, 갤러리 H, 2016) 이제 그는 일상을 소재로 그리고 있지만 단순히 일상 자체가 주제인 작품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비교될 만한 작품은 〈울지 못하는 남자 1, 2〉와 첫 번째 개인전의 〈스위티를 맛있게 먹다〉이다. 공원의 벤치 위에 앉은 남성은 화면 구조에서 다분히 유사성을 갖는다. 젊은 그는 정면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스위티를 맛있게 먹다〉) 여백이라 불릴 만한 화면처리는 주변보다 인물 자체에 집중한 표현으로 읽힌다. 밝은 표정과 손과 옷의 꼼꼼한 붓질은 작가가 주목하여 공들인 대상이 그 자신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년의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보고, 벌거벗은 몸은 허술하기만 하다.(〈울지 못하는 남자〉) 남자와 벤치 주변에는 공원용 꽃나무가 잘 정리되어 있고, 보도블록마저 장식으로 꼼꼼하게 채워졌다. 콜라주처럼 구성된 화면 곳곳에는 깨진 액자 속 결혼사진, 움켜쥔 천 원짜리 지폐 등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짐작 가능한 요소들이 산재한다. 이 요소들은 특정한 감정과 연상을 유도하며 줄거리를 엿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몇몇은 화면 전체의 분위기를 퍼뜨리고 성격을 만들어낸다. 다시 말하자면 공원의 벤치, 남성, 꽃나무 등의 형상은 그대로인데 작가의 마음에 따라 화면에서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화면 요소는 대부분 함축적 의미가 포함된 환경과 줄거리, 세부 묘사, 표정, 눈빛, 손짓 등 언어를 갖추고 있다. 형상은 뜻에 따라 변하고 뜻은 감정의 발산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보는 동아시아 화론으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2 여기서 박재철 회화의 간단한 표현 방식을 아이처럼 그리기로 읽어내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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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철 〈울지 못하는 남자Ⅰ〉 화선지에 먹, 채색 130×162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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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철 〈15년 만에 숨을 쉬는 남자〉 화선지에 먹, 채색 91×116cm 2016

 

〈스위티를 맛있게 먹다〉의 청년에서 〈울지 못하는 남자〉가 되어버린 중년 작가의 시선은 개인에서 사회로, 개별에서 보편으로 확장된다. 특히 〈비천한 길〉 연작은 상징과 서사가 공존하는 새로운 국면의 채널을 동시에 보여주는 박재철의 신작들이다. 공공의 공원, 아파트 단지 내의 그곳은 여전하다. 이제 주인공은 울지 못하는 남자가 아닌, 공원을 장식하는 나무들과 환경들이다.
아파트 단지에 조경해놓은 나무는 가지와 뿌리가 절단되고 심어진다. 아마도 운반의 편리와 아름답게 보일 목적으로 다듬어졌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이렇게 상처 낸 나무를 다시 살아나게 하려고 천을 감고 쓰러지지 않게 버팀목을지지하고 영양제를 꽂아 놓는 일이다. 아이러니로 서있는 이런 나무에서 작가는 강요된 삶을 살을 살아온 자신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3 박재철은 이 연작에 등장하는 소재에 대한 해석도 서슴지 않는다. 의자는 쉬는 것, 지폐는 자본, 보도블록은 길 등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들을 잘리고, 꺾이고, 상처 입은 후의 모습으로 재현하면서 전혀 다른 감상과 생각을 제시한다. 일상이 모아지고 축적되어 형성되는 삶의 태도나 관념에 대해 서술한다. 사회적 약속과 규범들, 공공(혹은 가족)을 위한 개인의 희생 등 시각예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생각이 깊이로 인해 추상화된 사유의 작용들을 말이다.

 

박재철 〈이 나비는 무엇을 쫓는 걸까?〉 화선지에 먹, 채색 91×116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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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붓질은 작가가 긴 세월 숙련을 통해 얻은 동양화 필법을 버리기 위해 시작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복잡해진 화면은 서사적 구조로 풀어야 할 작가의 목소리다. 복잡해진 화면은 아주 많은 대상을 포함하기 때문에 이미 여러 겹과 여러 가지의 표상이 서로 짜여서 하나로 엮이게 된다. 대상들은 화면에 직접 병치되거나 대비되면서 시각적으로 공간성과 예술성을 부여하기도 하고, 다층적이고 다각적인 사색을 제공하기도 한다.

박재철의 이러한 서사공간이 회화이든 글이든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창작자가 선택할 수 있는 우월한 경우의 수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박재철의 시각예술은 창작의 공간을 마련하고 동화라 불리는 그의 글들은 두 가지 이상의 장면을 연결해서 깊은 생각을 일으킨다. 시각적 공간과 깊은 생각은 사실 글과 그림 양쪽 모두에 해당하니 필자의 창작 폭은 박재철의 그것보다 작음에 틀림없다.

‘그림은 무엇이냐?’ 물었다. 필자의 우문에 박재철 작가는 현답을 준다. ‘나의 존재감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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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재 철

1968년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첫 개인전은 1999년 서남미술전시관에서 열었고, 두 번째 개인전은 2016년 갤러리 H에서 열었다. 쓰고 그린 어린이 책으로 《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 《행복한 봉숭아》가 있고, 그린책으로 《통일의 싹이 자라는 숲》, 《연습학교》, 《옛날에 여우가 메추리를 잡았는데》 등이 있다. 현재 경기도 김포에서 작업하고있다.


1 푸전위안,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 의경》,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3. p.117.
2 形勢豈有窮相, 觸則無窮. 심종건, 《개주학화편芥舟學畵編》권1.
〈산수山水〉 중 〈용필用筆〉
3 박재철 작가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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