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Taipei Biennial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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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Female Natives 2010 Medicine Men 2010 Field of Teleportation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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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파비바라OPAVIVARÁ의 Fromosa Decelerator 16개의 해먹 다기 나무 220×1000×1000cm 2014

타이베이비엔날레 2014

<타이베이비엔날레2014>는 여타 비엔날레에 비해 매우 조용한 행보를 보인다. 그러나 그에서 비롯되는 공명은 결코 작지 않다. 9회째를 맞이한 <타이베이비엔날레 2014>가 2014년 9월 13일 개막해 새해 1월 4일까지 타이베이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다. 이번 비엔날레 주제는 ‘극렬가속도劇烈加速度, The Great Acceleration’이며 우리에겐 이른바 ‘관계의 미학’으로 저명한 니콜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가 총감독을 맡았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인간에 의해 변화되는 지구에 대한 각각의 단상이 펼쳐졌다. 그 현장을 《월간미술》이 직접 찾았다.

확인하는 비엔날레? 살피는 비엔날레?
황석권 본지 수석기자

아시아 미술계에서 타이완臺灣이 갖는 의미는 의외로 미미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중국, 일본 등 인접한 국가에 비해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데는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향에 함몰돼 <타이베이비엔날레>를 간과한다면 이 비엔날레의 독특한 이면을 놓치는 일이 될 것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타이베이비엔날레>는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점을 그간의 전시를 통해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타이베이비엔날레 2014>는 어땠을까? 예술감독으로 니콜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가 선임되었을 때부터 기대감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 자신이 동시대미술에서 저명한 기획자이자 이론가로서 니콜라 부리요의 관계의 미학은 1990년대 이후 등장한 미술의 혼재성hybridity 등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이론으로 손꼽히고 있다. 따라서 이번 <타이베이비엔날레 2014>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총감독 니콜라 부리요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자신의 프레임이 견고한 총감독이 풀어내는 전시는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일까?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관계의 미학의 이론적 내용과 사변적 실제론 사이의 대화”라고 이번 비엔날레를 정의한 그가 풀어낸 지금의 세상은 인간과 관련한 모든 것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지 않아도 드러난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에서 처음 비엔날레 큐레이팅을 한 부리요가 주제로 제시한 ‘극렬가속도劇烈加速度, The Great Acceleration’가 그의 이론과 어떻게 맞물릴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극렬가속도’는 말 그대로 가속화된 인류의 문제, 즉 산업화, 글로벌화, 그리고 환경문제, 기술적 변화 등을 함축하는 매우 농도 짙은 다중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에서 인류가 새로운 지질학적 힘으로 작용한다는 비공식적 지질학적 용어에서 차용한 ‘인류세the Anthropocene’의 의미가 새삼 부각되는데 전시에서 이 용어의 개념을 어떻게 풀어낼지도 궁금했다.
<타이베이비엔날레 2014> 취재를 위해 지난 대회에 이어 타이베이시립미술관을 방문한 기자는 비정형 전시공간인 미술관 동선에 적응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동선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듯하다가도 다시 겹쳐 그 구조를 한 번에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자칫 길을 잃었다는 느낌을 준다.
입구에 들어서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협업그룹 OPAVIVARÁ의 가 맨 처음 관객을 맞이한다. 관객이 자연스럽게 해먹에 누울 수 있게 한 이 작품은 이전 대회에서 한나 후르트치히의 가 관객을 맞이한 바로 그 장소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작품 외형이나 내용은 전시 성격을 가늠하게 하는 일종의 선입관을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정자亭子를 떠올리게 하는 목재 구조물과 그 내부의 해먹, 다기茶器 등이 구비된 이 작품은 대번 부리요가 말한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제시로 보인다. 흡사 부리요 《관계의 미학》 도입부에 등장하는 가브리엘 오로즈코Gabriel Orozco의 <모마의 해먹Hamoc en el MoMA>을 연상하게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번 전시 도입부는 부리요가 제시한 이론의 확립을 위해 준비된 것이겠구나 하는 강한 선입견을 주입하는 공간이었다. 이런 작업을 접하면 이번 전시를 관람하는 나름의 가이드라인이 제시되는 법이다. 입구를 지나면 타이완 작가 황포친 Po-Chin Huang의 을 만날 수 있다. 타이완의 경제혁명 시기를 거친 작가의 가족사를 대비시킨 이 작품 옆에는 펑훙친Peng Hung-Chin의 가 3D프린터로 제작돼 있다. 이곳을 지나면 부리요가 “선사시대의 풍경”으로 지칭한 전시장이 연결된다. 산업화시대의 풍경과 인간이 자연의 단순한 일부였던 자연의 시대 풍경이 전시장 벽을 사이로 전개되는 것이다.
데쓰미 구도 Tetsumi Kudo,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 카미유 앙로Camille Henrot 그리고 양혜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이 전시장은 연대기 순으로 나열된 발굴 현장을 재현한 박물관을 보는 듯한 광경을 선보였다.

이론과 실재의 만남?
그러나 2층으로 올라가자 1층 전시장과 다른 양상의 작품이 전개되었다. 1층 전시작 피터 뷔게노Peter Buggenhout의 나 나타니엘 멜로즈Nathaniel Mellors의 유의 작업이 인류의 등장과 그 이후의 단상을 제시하듯 보여줬다면, 2층은 부리요의 의도보다 적극적인 제스처로 전체 전시의 주제를 구현하려는 작가 각각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만난 수라시 쿠솔웡 Surasi Kusolwong 은 단연 눈길을 끌었다. 작가는 5톤에 육박하는 실타래를 전시장에 가득 채우고 그 안에 12개의 금목걸이를 숨겨 놓았다. 물론 목걸이를 찾아낸 관람객은 그것을 가져갈 수 있다. 뭐랄까, 가장 아날로그적인 인터랙티브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디지털 신호로 변환시켜주는 센서가 설치된 인터랙티브 작업을 만났던 관람객은 자신의 욕망과 작품이 조우하는 공간에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궁금했다.
같은 층에 있는 시마부쿠 Shimabuku의 설치작업 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야만 하는, 그것이 숙명이라고 믿는 우리에게 ‘멈춤’과 ‘되돌아감’을 제시하는 작업이다. 또한 은 비슷한 크기의 석기와 최신 태블릿PC를 함께 제시하는데 ‘기억’을 상징하는 석기는 손에 들면 마치 전화기처럼 통화를 하거나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충동을 일으킨다.
요나 프리먼과 저스틴 로Jonah Freeman&Justin Lowe의 도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모형 건축물이 놓인 정식 전시장으로 인식되는 장소 옆문으로 들어서면 이곳이 과연 전시장인지, 아니면 스태프의 휴게공간 같은 미술관의 숨은 공간인지 착각을 불러일으켜 마치 공사 중인 미술관의 자투리 공간을 발견하는 인상을 주었다.
3층에서 만난 올라 페슨 Ola Pehrson의 (1999)는 의식적이지 않은 식물을 통해 인간 부재의 시대에 대해 생각해보는 작업이다. 사무직 노동자가 관상용으로 쉽게 마련하는 난초과 식물인 유카를 컴퓨터에 연결, 주식투자의 패턴을 학습시킨다는 내용. 유카에게 가는 물과 태양의 양이 주식시황에 맞게 조절된다.
린궈웨이Lin Kuo-Wei의 는 마치 지구본을 맞대놓은 듯한 형태의 작업이다. 자전축을 중심으로 전동장치에 의해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구체球體는 갈리는 소리와 함께 서로의 외부에 흔적을 남기게 된다.
부리요는 이번 <타이베이비엔날레 2014>를 통해 적어도 이론과 실재의 관계를 드러내려는 의도는 이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이 현지 작가나 기획자가 이번 비엔날레를 비판적으로 보는 빌미를 제공한 것도 같다. 1990년대 말부터 부리요가 이론과 일련의 전시를 통해 보여준, 어떻게 보면 동어반복을 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는 비판을 들었기 때문이다. 타이완의 한 기획자는 “어떤 비엔날레도 그러한 비판을 받겠지만 이른바 현지화, 즉 타이베이에서 유럽의 기획자가 보여준 것은 유럽의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며, “적어도 타이베이는 이 전시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고 말했다.
이는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미술 이벤트에서 해당 국가와 주변 국가의 담론들을 적극 수용하는 ‘변별력 있는 비엔날레가 되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적어도 ‘타이완의 현실이나 타이완이 속한 아시아의 문제’가 제대로 거론되지 못한 점은 분명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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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카 이Anicka Yi Le Pain Symbiotique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