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밥과 예술

고암 이응노(顧庵 李應魯, 1904~1989).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직접 본 건 1989년이었다. 대학 2학년 때, 지금은 없어진 서소문 호암갤러리에서였다. <군상(群像)> 시리즈가 개미떼처럼 보였던 기억이 또렷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알지 못하면 제대로 보지 못하는 법’, 그때는 그랬었다. 고암을 깊이 알지 못했기에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백남준과 더불어 고암이야말로 세계 미술계에 자신있게 자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국인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고암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2000년 평창동에 이응노미술관이 생기면서였다. 이응노미술관이 개관하기까지 부인 박인경 여사와 윤범모 교수 같은 후학들의 숨은 공력과 가나아트의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후 이응노미술관은 2007년 대전시립미술관 바로 옆에 독립 건물을 지어 이전해 오늘에 이른다. 2011년엔 충남 홍성에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도 건립됐고, 올해 프랑스 파리 근교 보쉬르센(Vaux-sur-Seine)에 고암아카데미 건물도 개관한다고 한다.
대전 이응노미술관을 다녀왔다. 그곳에 가면 6월 1일까지 고암의 미공개 기증작품 500여 점을 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 유독 눈에 띄는 조그만 작품이 있었다. 이번호 표지에 실린 <구성>이 그것이다. 훼손된 원작을 복원한 것으로 고암이 윤이상, 천상병 등과 함께 이른바 ‘동백림(동베를린)사건’에 연루되어 2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동안 교도소 안에서 종이와 밥풀을 짓이겨 만든 작품이다.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서 고암을 생각했다. 차디찬 감방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꼼지락거리며 그것을 만들었을,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뱃속을 채워줄 눈앞에 밥보다 창작에 더 굶주리고 목말라했던 고암을 말이다.
이 대목에서 유진상 교수의 컬럼(p.60-61)이 오버랩 됐다. ‘전시 지원비’를 받지 못했다고 SNS에 불평불만을 표출하는 (일부) 젊은 미술인의 행태 말이다. 물론 예술가라고 해서 먹고사는 문제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작가로서의 합리적인 권리요구 또한 정당하고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제 맘대로 작가를 ‘을’로 규정하고 ‘갑’이라고 칭한 선배 세대를 향해 볼멘소리는 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 주려해도 어린애 투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작 예술에 대한 절실함이나 진지함에 대한 고민보다 기껏 당장 제 앞에 놓인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특집에 소개된 13명 ‘미술 친구들’이 오히려 제도권 미술계를 욕망하는 이런 젊은 작가들보다 더 순수하고 진솔해 보인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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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달성 AHAF 운영위원장
황달성 금산갤러리 대표는 미술계에서 늘 새로운 시도로 한국 현대미술을 해외 미술무대에 소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화랑협회에 제안해 2002년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를 탄생시켰고, 1995년 제정된 <서울판화미술제>를 세계 유일의 판화·사진 전문 아트페어인 <아트 에디션>으로 발돋움시켰다. 취재 차 방문한 <아시아 호텔 아트페어(AHAF) 홍콩 2014> 현장에서 황 대표는 한국미술의 도약을 위해 아시아권 갤러리와의 네트워크 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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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숨SUMM 대표
조덕현의 개인전과 자하 하디드의 전시를 모두 기획하였다. 이번 달 유난히 자주 만나게 되었는데 늘 친절한 설명으로 취재에 도움을 주었다.《 월간미술》의 2012년 2월호 특집 <2012년을 빛낼 미술인20>에 선정되기도 해 인연이 깊다. 현재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이자 아트디렉터로서 강의와 전시기획 글 연재까지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문화교류 행사를 진행하는 그녀가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길 기원한다.

edi2이경민 이응노미술관 홍보담당전시
홍보담당자는 그 기관의 얼굴이다. 그 임무의 중함이야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그렇게 보면 대전 이응노미술관 홍보담당 이경민 큐레이터도 그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셈. 고암의 미공개 작품 500여 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인 이번 <신소장품전> 취재를 위해 각종 자료와 일정을 준비하고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해줬다. 국내 대학에서 불문학과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는 이 큐레이터가 앞으로 이응노미술관을 더욱 빛나게 하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

[컬럼] 후배 미술인들에게

후배 미술인들에게

한국의 현대미술 창작영역, 다른 말로 우리가 ‘미술계’라고 부르는 공간은 그것이 생겼을 당시(다시 말해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많은 왜곡과 결여를 드러내고 지녀왔으며 앞으로도 상당히 그럴 것처럼 보인다. 미술대학, 미술시장, 미술정책, 미술제도, 미술비평, 미술출판, 지역미술 등등 심지어 미술창작과 그에 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문제점을 안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나는 이 문제점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전부 개선되거나 혁파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현재의 지점에서, 이제까지 해 온 이야기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에 한 가지 이슈가 거론되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전시에 참가하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 지원비’에 대한 것이었다. 대안공간 루프 서진석 디렉터가 담당한 <제4회 공장미술제>(사진)에서 불거진 지원비 지급 여부에 대한 이슈는 처음에는 공장미술제라는 기획 자체에 대한 성토처럼 보였으나, 그 이후에 이어진 토론의 초점은 공장미술제를 넘어서는 범위의 것이다. 처음부터 ‘전시 지원비’ 정도가 문제 되었을 리 없다. 실은 기성세대, 나아가 사회 전체가 체계적으로 젊은 세대의 예술가들을 착취하고 이용하고 있다는 좀 더 광범위한 이슈가 제기된 것이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군대문화처럼 선배에서 후배로 이어져 온 몸에 밴 악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만 치부해버릴 수 있는가?
이번 논쟁은 마치 기업의 노사분쟁처럼 전개되었다. 회사 측 간부들이 노조 측 대표들과 노동조건 등에 대해 따져보는 것처럼 다뤄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기성세대라고 토론에 나선 서진석, 김노암 등은 사용자라고 하기엔 턱없는 개인이고 젊은 세대를 대변한 이들 역시 연대를 자처할만한 뚜렷한 예술가 집단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서진석이나 김노암은 지난 15년여의 기간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대안공간을 묵묵히 꾸려온 ‘자원봉사자’ 같은 인물들이다. 정부나 기업, 각 재단의 기금을 열심히 타서 자신들의 기획을 펼쳐온 것 외에 이들이 미술계의 해묵은 열악함의 원흉이 될 만한 이유는 없다. 이들의 활동이 비평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대체로 존중받을 만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다른 독립 기획자들 역시 이들이 거쳐 온 경로를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영역은 아직 대안적 지점들에 머물러 있다.
<공장미술제>에 대해 말하자면 1999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서울대, 홍대로 양분되어 있는 미술계에서 대학 간의 교류와 학벌을 탈피한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촉진한다는 것이 주된 이슈였다. 2012년에 이것이 다시 등장한 배경에는 젊은 세대 작가들의 과도한 상업화에 대응하여 실험적 작품들을 프로모션한다는 이슈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서 큐레이터에게 실행을 위임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공장미술제>가 2회로 멈췄던 이유는 매우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는 이 전시기획을 맡고자 하는, ‘총대를 멜’ 자원자가 없었고, 교수들 역시 너무나 피곤한 이 프로젝트에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프로젝트는 미술대학 교수연합인 ‘대학미술포럼’을 탄생시켰고 이후 ‘대학미술협의회’로 이어져 미술대학 간 연대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번 논란 이후 공장미술제의 지속 여부가 시험대에 오를 테지만, 미술대학교육의 연장선상에서 공유 플랫폼으로서 어떤 방식이 좋을 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리라 본다. 홍태림이나 안광휘 같은 젊은 미술인들이 촉발시킨 이번 논의가 전시 지원비나 부실한 전시기획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더 확대해서 미술에서 불합리하게 과대평가된 비합리적 가치들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들이 제기한 문제는 그물처럼 엮여있는 더 큰 문제들의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허름한 신비주의로 포장된 예술의 가치나 의의에 대한 논의들, 교육 수혜자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미술대학 교육 프로그램의 개선 및 평가방안, 비평에 요구되는 인정하기 어려운 도덕주의적 편견들, 근거 없는 복종이나 추종을 요구하는 선후배 관계나 사제 관계의 관행들, 타인의 노동에 대해 돈으로 표시되는 보상과 거래관계를 평가절하하거나 금기시하는 주제넘은 비난들, 예술가들을 우습게 여기거나 예술을 공짜라고 생각하는 저열한 관료주의, 주제를 검열하는 파시즘과 안 그래도 힘겨운 예술가들에게 현실정치와 창작을 반드시 뒤섞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죄의식을 조장하고 극단적 진영으로 나눠대는 정치적 징발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이 조건들은 2014년 현재 예술적 중세를 지속하거나 재생산하는 핵심적 요인들이다.
나는 이들이 기왕 비평가로 방향을 설정했다면, 그리고 자신들의 세대를 구축하고 또래의 젊은 예술가들이 당대의 독자성을 실현하도록 하고 싶다면 전선(戰線)을 정확히 설정할 것을 권하고 싶다. 큰 전선들과 지엽적인 전선들을 구분하고 현재의 논의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를 가늠해야 한다고 본다. 이들은 평생에 걸쳐 동시대미술을 냉소의 대상으로 깎아내리려는 온갖 ‘무식한 자들(philistines)’과 싸워야 할 것이다. 미술계 내부에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미술계 전체를 빈곤으로 몰고 가는 사회 전체의 무관심, 평가절하, 편견, 고립 등과 싸워야 할 것이다. 이번 <공장미술제>를 둘러싼 논의가 내포하고 있는 함의가 서진석과 같은 개인이나 공장미술제에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이 논의를 ‘먹고사는’ 문제로만 다루어서도 안될 것이다. 이것이 복지논쟁이나 노사분쟁 혹은 세대 갈등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 모든 이슈는 예술적 ‘수월성’을 통해 어떻게 탁월한 동시대미술을 제공할 것인지, 그것을 통해 어떻게 미술 전반의 환경을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비평으로 수렴되어야 한다. 이제 50대에 접어드는 우리도 더 치열하게 노력할테니 당신들도 노력하기 바란다.

유진상・계원예술대학교 교수

[핫피플] 한국문화예술연구소장 김미경

아카이빙, 리얼리티에 다가가기 위한 밑거름

강남대 회화과 김미경 교수가 설립한 한국문화예술연구소(Korean Art Research Institute, 이하 KARI)가 4월 10일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 새롭게 문을 연다. 김 소장이 2006년 강남역 인근 오피스텔을 빌려 연구소를 연 지 8년 만이다. 갤러리 공간까지 마련해 아카이브, 연구, 전시, 아카데미, 아티스트 워크숍이 한 건물 안에서 가능하다. 김 소장의 오랜 염원이 실현된 것이다. 그동안 연구소는 아카이브 작업을 중심으로 출판, 번역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한국화에 대한 비평을 연구한
《 우리그림 비평》(2008)을 출간했으며, 2011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 <코리안 랩소디전>에 ‘이상’과 ‘최승희’, ‘1960~70년대 한국의 행위예술’ 영상 제작, 그리고 같은해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데페이즈망-벌어지는 도시전> 기획 등을 해왔다. 김 소장은 “연구소는 비영리기관으로 지원금을 받아서 연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보다 안정적인 연구를 위해 재정 확보 의 자가동력으로서 갤러리를 영리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ARI는 1960~70년대 미술을 중심으로, 1940~50년대 해방공간, 최근 작가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며 아카이브 정리를 하고 있다. 현재 이우환을 비롯해 400명의 작가가 기본적으로 정리되어 있고, 앞으로 계속해서 작가 수를 늘리고 작업 전반에 걸쳐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작가 강국진, 하종현의 경우 숨어있는 자료까지 모두 확인해 작업 전반의 아카이브를 정리하는 방대한 작업을 마쳤다. 아카이브는 심층 연구를 토대로 전시까지 이어진다. 스페이스 카리아트에서 열리는 첫 번째 전시 <더 모노톤–리피티툼(repetitum)>(4.10~5.30)은 이우환, 하종현, 최병소 3인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반복성을 철학적 증상 혹은 징후로 조명한다. 앞으로 ‘모노톤’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작가들의 작업을 선보일 것이며 8월에 전시와 연계해 영문학술서도 발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단색조 회화, 모노하, 모노크롬 등 용어에 대한 재검토부터 시작해, 한국의 단색조 회화와 서양의 모노크롬이 공유하는 지점과 차이점을 재조명해 논의의 장을 적극적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 모든 연구의 발판은 ‘아카이빙’이다. 김 소장은 1990년부터 한국 근현대미술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며 아카이빙 작업에 돌입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아니면 누가 한국미술을 연구하겠느냐는 심정에 사명감이 들더라. 한국의 실험미술은 유신시대 언더그라운드로 발생해 미술계 내에서 논의된 적이 거의 없었다. 자료 수집을 위해 마이크로필름을 통해 7종 신문을 비롯해《 선데이 서울》,《 주간경향》등 4대 주간지까지 꼼꼼이 살폈다.”
하지만 아카이브는 단순한 자료 수집이 아니다. 김 소장은 “아카이브를 검토할 때에는 작가 집에서 굴러다니는 접시도 다시 확인한다”고 말한다. “강국진의 아카이브를 정리하면서 그의 퍼포먼스 <색 물을 뽑는 비닐 주머니>가 한국 최초 행위예술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카이빙의 결과로 퍼포먼스 연구의 궤적이 달라질 수 있다. 아카이브는 당대 리얼리티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최근 미술계에서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아카이브 기관이 늘고 있다. 김 소장은 반가운 소식이라며 “자료를 많이 수집하는 기관이 있다면 이 자료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팀이 협업해서 결과물이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또한 “KARI는 앞으로 세계와 교류하는 통로도 넓힐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지난 2월에는 홍콩 파라사이트(Para Site)에서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sia Art Archive)’와 연계해 일본, 한국, 대만의 1960년대 행위예술을 조명한 전시 <거대한 초승달(Great Crescent)> 한국 섹션에 참여해 한국의 실험미술 작업을 선보였다. 그리고 김 소장은 4월 15일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한국의 실험미술과 단색조 예술’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슬비 기자

[핫피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축가 자하 하디드

건축물이 곧 지형이다

시작단계부터 완공까지 기대와 우려 속에 큰 관심을 모았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가 3월 21일 문을 열었다. 개관을 앞둔 지난 3월 11일 DDP의 건축가 자하 하디드방문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자하를 취재하기 위한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러나 DDP의 운영 방향을 소개하고 패트릭 슈마허(자하 하디드 건축설계사무소 파트너이자 상임 디자이너)의 건축소개가 있기까지 그녀는 등장하지 않았다. 얼마 후 그녀는 스타 건축가답게 DDP의 잔디공원을 가로지르며 골프장에서나 봄직한 카트를 타고 등장했다.
그녀는 1993년 독일 바일 암 라인의 ‘비트라 소방서’를 첫 완공작으로 시작해 굵직한 건축 프로젝트를 맡아왔을 뿐 아니라 각종 디자인 전시를 수차례 열며 2004년에는 여성 건축가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가도를 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그녀 건축의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어색한 부조화, 지나치게 큰 규모와 비용의 효율성 등을 지적하기도 한다. DDP 역시 이러한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가운 시선 속에 개관한 DDP의 건축적 핵심, 더 나아가 자하의 건축철학은 무엇일까.
자하 하디드가 건축관으로 내세우는 중심은 두 가지다. ‘커브(curve)’ 와 ‘어버니즘(urbanism)’. 무빙 이미지가 난무하는 현대 도시 사회에서 그녀의 건축은 정적으로 멈추지 않고 함께 흘러간다. 불규칙하고 복잡한 곡선을 사용하여 어느 공간에 위치하든지 마주하는 이미지는 무한히 변화하여 건물 내부 어디에도 같은 뷰가 보이지 않는다. 자하와 함께 내한한 페트릭 슈마허는 DDP에 대해 “얼개가 없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곡선이 전체 건물을 구성한다”라며 “지붕이 잔디로 덮여 있는 것만 봐도 건축물이 존재하는 것 자체로 새로운 지형을 인공적으로 창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시적인 감각과 흐르는 듯한 곡선은 창문 없이 외부를 장식한 45,133장의 알루미늄 패널과 기둥없이 이어지는 내부에서 강조된다.
DDP를 둘러싼 또 다른 비판은 건물 주변의 역사에 대한 고려가 미흡하다는 점과 필요이상으로 크게 지어진 것 아니냐는 규모(총사업비 4840억원, 연면적 8만5320㎡)의 문제였다. 이에 대해 자하는 “건물의 용도에 맞게, 의뢰자의 희망에 따라 설계했다. 어떠한 근거로 규모가 크다고 하는지 반문하고 싶다”며 방어적이면서 공격적인 입장을 취했다. 더 이상의 질문은 무의미했다. DDP에 대한 논란은 결국 주체 없이 공회전하는 메아리였다. 규모가 그녀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한 그녀의 입장은 어떠한가. “DDP는 형태적 독창성과 주변과의 조화를 중시한 작품이다”라며 곡선을 사용해 도시의 특성을 살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지형임”을 강조했다. 페트릭 슈마허는 “DDP 이전 그 자리에 있던 야구장의 역사성을 설계에 반영했다. 경기장의 조명탑을 보존하였고 설계에서 경기장의 느낌을 살렸다”라고 부연 설명했다.
peo2최초의 3D 비정형 건축으로 주목받는 DDP에 대해 자하는 일단 “성공적”이라 자평했다. 안도 다다오, 알바로 시자 등 외국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 국내에 지어진 경우 무조건적 주목을 받듯 DDP가 과연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일단 자하 하디드란 여성 건축가의 이름을 국내 대중에게 널리 알린 점에서는 ‘성공적’ 이다. 건물 개관과 함께 DDP에서는 작은 숟가락부터, 가구와 신발 보석 등 그녀가 디자인한 40여 점을 소개하는 전시를 3월 26일까지 열었으며 2차로 4월 4일부터 5월 31일까지 1차 전시품 외의 건축 모형과 샹들리에 등을 선보이는 <자하 하디드_360도 전>을 선보인다.
다음 행보는 도쿄 올림픽경기장(2020)이다. DDP 설계자로 선정됐을 때와 유사하게 일본 언론에서도 자하의 건축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과연 일본에서는 어떤 도시적 건축을 만들어낼지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역사성과 지역적 특수성이 도쿄에서는 어떤 형태로 구현될지 궁금하다. 이슈를 몰고 다니는 그녀의 예술행보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하다. 

임승현 기자

[현장] Art Fair Tokyo 2014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일본 미술시장의 현주소

올해로 9회를 맞이한 <아트페어 도쿄>가 3월 6일 VIP 오픈을 시작으로 7, 8, 9일 사흘 동안 도쿄국제포럼 전시장에서 열렸다. 고미술에서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역을 대상으로 하는 <아트페어 도쿄>는 갤러리(Galleries), 아티스틱 프랙티스(Artistic Practice), 도쿄 리미티드(Tokyo Limited), 프로젝트(Projects), 디스커버 아시아(Discover Asia), 지-플러스(G-Plus), 아웃라인(Outlines) 등 7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이번 페어에는 일본을 비롯한 한국, 스페인, 인도네시아 등의 157개 갤러리가 참여했고, 국내 갤러리로는 갤러리 스케이프와 갤러리 엠이 참가했다.
2012년부터 아트페어도쿄는 지정학적 한계성과 일본 고미술, 크래프트부터 현대미술까지의 너무나 방대한 영역을 포괄하는 데서 발생하는 구조적 진부함을 해소하고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고민하고 노력해왔다. 특히 젊은 디렉터 다카히로 가네시마를 영입한 이후 아트페어의 구성을 세분화해서 다듬고, 해외 주요 컨템포러리 갤러리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 활동을 벌여왔다. 이에 ‘리뉴얼’된 <아트페어 도쿄>는 ‘지역 아트페어’의 이미지를 벗고 국제적이며 컨템포러리한 이미지로 어필함과 동시에, 페어 특유의 조직력을 극대화시켜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
아트페어도쿄의 ‘오버하지 않는’ 적절한 섹션 나누기도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인데, 특히 디스커버 아시아에는 서울을 비롯하여 타이베이, 홍콩, 마닐라, 자카르타의 ‘젊은’ 갤러리들이 초청되었고, ‘지-플러스’ 섹션에서는 지-도쿄(G-Tokyo, 도쿄 내에 있는 컨템포러리 갤러리들이 모여 개최한 아트페어)에 참여하던 갤러리들이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협업해 전시 형태의 부스를 선보였다. 김정욱, 정지현 등 한국 작가를 꾸준히 소개해 온 갤러리 스케이프는 도쿄라는 도시의 규모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내실 있는 <아트페어 도쿄>를 통해 컬렉터 층을 일본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로 넓히게 되었다.
이같은 긍정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아트페어 도쿄>는 아시아 주요 도시의 기존 아트페어들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아트바젤>이 성공적으로 홍콩에 입성함으로써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아트페어는 미술계의 모든 구조가 얽혀있는 유기체이며 예술의 고결함과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의 반어적 성질로 인식되는 상업성이 공존하면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자리다. 미술계 구성체의 복합적 이해관계가 한 자리에 모인 아트페어에서 참여기관 모두가 만족할 만한 균형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 균형점에 최대한 근접하는 아트페어가 정당성과 지속성에 힘입어 명성을 유지할 것인데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국내의 아트페어들과 마찬가지로 <아트페어 도쿄>도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야 할 부분일 것이다.

김윤경・갤러리 스케이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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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Art Space

중국 작가 쑹둥(宋東, 사진)과 한국 작가 김길후의 개인전이 송원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이장욱 큐레이터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최후의 수장고’를 주제로 한중 두 작가 각자의 방식으로 선보인다. 첫 번째 주자인 중국 설치미술가 쑹둥의 전시(3.22~4.18)를 관통하는 핵심 단어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다는 뜻의 ‘비흔교집(悲欣交集)’이다. 2층으로 구성된 전시장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설치작업으로 보인다. 지하 2층에는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12명의 초상과 재난 현장을 담은 영상작업을 배경으로 중국 침대 60개가 9층으로 쌓여 있다. 플라스틱 거울이 벽면 전체를 채운 지하 1층에는 지하 2층의 설치작과 연결되어 가축의 깃털로 만든 학 두 마리가 놓여 있다. 쑹둥(사진)은 “침대는 생사가 교차하는 환승역입니다. 아래층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시작도 끝도 없는 현실의 세계라면 위층은 천상의 세계를 표현한 것입니다.
거울 속에 반사되는 모습도 끊임없이 변하고, 새도 모두 허상이죠. 최후의 수장고에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요? 결국 담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이번 전시가 ‘올해에 열리는 전시 중 나에게 가장 중요한 전시’라고 강조했다.

 

hot2최정아갤러리에서 3월 6일부터 27일까지 <Space:Life&Routine>란 제목의 기획전을 열었다. 풍경을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전시로 김대수 박노을 정직성 황선태 김병주가 참여했다.일상을 둘러싼 풍경을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하는 사회적 해석으로 조명한 작가들의 독창적 시각을 볼 수 있다.

hot3서완 이윤희 정혜윤 한성재 한수정 현정윤 6명의 젊은 작가가 우리 전통악기를 재해석해 다채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3월 13일부터 31일까지 space k 서울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장인과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이 참여한 ‘아티잔스(ARTisans)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선보였다. 6명의 작가는 전통 현악기 제조기술을 보유한 이영수, 이동윤 장인과 함께 한 워크숍을 통해 악기를 직접 만들며 그 영감을 작업 속에 담아냈다. 예술을 통해 전통과 동시대가 교감한다는 취지 하에 루이비통코리아가 기획 및 후원을 맡았다.

 

hota35실재 세계를 그대로 캔버스에 옮기는 작가 박성환의 개인전 〈영적(靈的)-실재 그 자체의 세계_우주 최초 창시(創始)〉가 3월 5일부터 16일까지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 위치한 가온갤러리에서 열렸다. 작가는 스스로 회화를 표현하는 미학에 대해 “우주 시대의 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평한다.

 

hota36서양화가 강승애의 17번째 개인전이 3월 19일부터 25일까지 선화랑에서 열렸다. 말기 암 환자를 돕기 위해 마련된 이번 전시에 작가는 따뜻하고 선명한 색감으로 씨앗, 새싹, 풀잎, 둥지, 빛 등 자연의 생명력을 암시하는 풍부한 이미지를 선보여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자연과 함께 공명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다.

 

hota373월 19일부터 25일까지 가나인사아트센터 지하 전시실에서 조각가 허진욱의 첫 번째 개인전이 열렸다. 작가는 버려진 스테인리스 스틸판과 봉을 하나 하나 붙여 형태를 만든 다음 갈고 광을 내어 꽃과 나비,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작품 내부에는 조명을 설치해 전시장 작품의 그림자가 비치는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됐다.

hota38김선형 경인교대 교수의 개인전이 3월 12일부터 25일까지 갤러리 토포하우스에서 열렸다. 푸른색을 기조로 강렬한 붓의 움직임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 특유의 필획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캔버스는 단순하면서도 힘찬 기운으로 가득하다.

hota39한지 부조회화의 대표 작가 박철의 개인전 <紙에 壽福을 담다>가 3월 1일부터 5월 4일까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영은미술관에서 열린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한지로 멍석, 문틀, 떡살 등 오늘날 사라져가는 토속적인 오브제에서 차용한 작업을 선보인다. 또한 1991년부터 지속적으로 ‘앙상블’을 연구해온 작가는 멍석이나 고서와 바이올린, 첼로 등 동양과 서양, 옛것과 새것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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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염색의 현대적인 해석을 모색하는 작가 장혜홍의 개인전 <화양연화>가 3월 1일부터 5월 23일까지 수원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행궁재갤러리에서 열린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을 염색물감과 아크릴물감을 함께 사용한 염색기법으로 그려내어 은은한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스와로브스키와 진주를 더해 화려함을 표현했다.

hota42한국의 전통을 현대적 미감으로 재해석한 작가 오승윤의 개인전이 2월 21일부터 3월 23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음양오행을 상징하는 오방색과 십장생 등에서 우리의 삶의 기원을 찾고 한국의 상징적인 사물과 표현들에서 민족전통의 뿌리를 찾는다. 〈풍수〉 〈바람과 물의 역사〉등 초기작부터 이어지는 작가의 예술세계를 볼 수 있다.

hota43해학과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 토시마츠 구레모토 개인전이 3월 18일부터 30일까지 갤러리 담에서 열렸다. 오랫동안 회화작업을 해온 작가의 조각은 회화성이 짙다. 15점의 조각을 선보인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바쁜 일상에서 자아를 잃고 살아가는 샐러리맨의 모습을 양쪽이 다르게 그려진 눈, 벼랑 끝을 붙잡은 팔 등으로 표현하는 등 힘겨운 현실을 해학적이면서도 담담하게 나타냈다.

hota44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는 2011년 <미디어극장전>에 참여했던 작가 중 지속적으로 새로운 화두를 모색하는 작가들의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그 첫 전시로 심철웅의 개인전 <De-Sp[l]ace>(3.6~23)를 선보였다. 작가는 서울성곽의 흔적을 다각도로 보여주며 성벽 이면에 담긴 시간성을 복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2011년 전시 이후 작가의 작업 양상과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hota45아날로그 방식을 통해 자연과 인체를 독창적이고 구조적인 시선으로 담는 사진가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의 국내 첫 개인전이 2월 22일부터 4월 19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다. 〈Unlikely Landscape〉란 제목의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지를 찾아다니며 만난 자연과 토착민의 모습을 계획하고 조정하여 생산해낸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사진을 찍기 전 끊임없는 모색과 구상을 통해 자연의 모습을 철저히 “계획하고 생산”한다고 말한다.

hota46작가 최성환의 개인전이 3월 10일부터 4월 11일까지 삼성동에 위치한 카이노스갤러리에서 열린다정감어린 배경과 따듯한 색채로 표현된 풍경과 간간히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은 도시의 각박한 환경에서 벗어나 서정적이고 향토적인 감성을 전한다. 작가는 소재를 과감히 생략하고 골격만을 화면에 배치하여 관객에게 잊혀 가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여 동화적 상상력을 북돋워준다.

hota47윤곽이 간결하고 명확한 회화를 선보이는 작가 김성은의 개인전 가 3월 14일부터 29일까지 에프앤아트스페이스에서 열렸다. 현재 외국계 금융사 사내변호사로 근무 중인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사무실 풍경을 그렸다. 회사에서 근무하며 자신의 삶이 매몰되지 않도록 절대적인 시선을 갖고 주변을 둘러보며 이를 팝아트적인 작품으로 나타냈다.

hota48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독자적 회화세계를 개척한 작가 박영대의 개인전 〈보리, 생명의 소리〉가 3월 12일부터 19일까지 청주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섬세한 필치, 울렁이는 생동감으로 보리에 생명을 더한 사실적 표현의 작품과 추상으로 보리를 표현한 작품 등 일관된 소재를 다채롭게 표현함으로써
그의 농익은 회화관을 확인할 수 있다.

hota49<창조적 역설전>은 2011년 타계한 故 이원일 큐레이터를 추모하며, 생전에 그가 기획한 미완의, 동명의 전시를 재구성한 것이다. 2월 21일부터 3월 6일까지 쿤스트독에서 열린 이 전시는 이경호 이이남 이탈 세 작가의 작품과 이 큐레이터의 아카이브 자료로 구성되었다. 결국 이 전시는 고인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 셈이다.

hota50문화공장 오산에서 <뜻밖의 풍경>(3.7~4.17)이란 제목으로 기획전을 연다. 풍경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9인의 작가 김동기 김종구 노주환 박철호 송대섭 심영철 이성실 임근우 한석현이 참여했다. 풍경의 범위를 미시적 의미의 자연을 넘어 인공, 가상현실 등으로 확장시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며 우리를 둘러싼 환경 이면에 담긴 의미를 찾아간다.

hota51아트선재센터는 북촌 일대 5개 갤러리(갤러리 인, 갤러리 스케이프, 이화익갤러리, 원앤제이갤러리, 옵시스 아트)와 함께 <하늘 땅 바다>(2.22~3.23)를 연계전시로 진행했다. 아트선재센터와 호주 브리즈번을 중심으로 호주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미디어아트를 기획 및 지원하는 MAAP가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는 한국, 중국, 호주 3개국을 순회하며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동시대 예술가 20여 명의 ‘수평선(horizon)’을 표현하는 독창적이고 도전적인 영상작업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중국 상하이(4.20~7.20, OCT-OCAT Contemporary Art Terminal, Shanghai)와 호주 브리즈번(9~11월, MAAP SPACE, Griffith University Art Museum)으로 순회할 예정이다.

hota52단국대 예술대 학장인 작가 조기주의 개인전 <삶의 흔적들 1998-2014>이 2월 27일부터 3월 9일까지 금호미술관에서 열렸다. 작가는 원형과 편형 캔버스에 흑연과 시멘트를 칠한 후 얼룩처럼 물감덩어리를 부착해 현재까지 이어진 자신의 흔적을 표현했다. 물성이 강조된 작품들로 우연과 의도 사이, 의미와 무의미 사이의 무한한 반복을 통해 그 속의 균형잡기를 시도한다.

hota53작가 다음이 깊이 있는 맛과 멋을 즐기는 자리를 마련했다. 2월 27일부터 3월 28일까지 〈윤회매, 차를 피우다〉라는 제목으로 가인갤러리에서 윤회매를 전시했다. 윤회매란 벌인 만든 꿀에서 생긴 밀랍을 재료로 매화의 형상을 만든 것을 뜻한다. 특히 2월 27일에는 다음과 함께 산당 임지호, 행위예술가 신용구, 해금연주자 강은일이 참여해 매화의 멋을 다각도로 즐길 수 있는 합동 퍼포먼스를 벌였다.

hota54<Body and Nature전>이 3월 11일부터 4월 25일까지 분당에 위치한 사진전문갤러리 아트스페이스J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그간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4명의 작가를 선보이는 기획전이다. 몸을 주제로 탐구하는 가브리엘라 후크(Gabriela Huk), 카야 도브로볼스카(Kaja Dobrowolska), 로테 플뢰 크리스텐센(Lotte Fløe Christensen), 한경은이 주인공으로 이들의 사진은 몸을 매개로 인간의 내면을 성찰한다.

hota55hota562008년부터 도쿄, 서울, 홍콩 등 아시아 주요 도시에서 선보여온 <아시아호텔아트페어(AHAF)>가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마르코 폴로 홍콩 호텔에서 열렸다. 호텔 객실을 전시장으로 활용한 이번 행사에는 홍콩, 중국, 일본, 한국의 갤러리 70곳이 참여해 5000여 점을 선보였다. 본전시장인 호텔 외에도 하버시티 내외부 곳곳에 설치미술가 이은숙의 (위), 조각가 정욱장의 (왼쪽) 등 대형 작품들을 설치해 현지 매체와 일반 관람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행사에는 800여 명의 방문객이 다녀갔으며, 약 10억 원의 수익을 창출했다. AHAF 이사장을 맡은 황달성 금산갤러리 대표는 “홍콩은 세계 경제 금융의 중심지로 미술시장이 급부상했지만 아직 기초예술 분야가 약한 편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컬렉터층이 두텁지 않고 미술시장이 어렵지만 우수한 예술가가 많아 공급 면에서 풍부하다. AHAF는 아시아의 중요 작가들을 프로모션하고 홍콩을 중심으로 아시아 미술시장의 활로를 개척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콩=이슬비 기자

[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사진, 처음 만나는 자유_신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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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처음 만나는 자유

아나운서 신성원

무거워진 마음을 끌어안고 지낼 자신이 없을 때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금세 마음이 사뿐사뿐 가벼워질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카메라를 들었고 일단 나갔고 일단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시간을 버티다 보면, 입술 끝도 살짝 올라가 있고 머릿속도 텅 비워졌다. 일에 치여 놓쳐버린 수많은 일상의 순간들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카메라에 담아내고 싶었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며 감동받고 행복해 하는 지인들을 보면 내가 먼저 행복했다. 그러다가 누구도 포착하지 못했을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찍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하기까지 했다. 이 오래된 습관은 사진을 좋아하던 친구와 어울리던 10년 전쯤부터 시작되었다. 셔터스피드나 조리개 수치, 심도 같은 카메라의 기술들은 잘 몰랐어도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프레임 안에 담고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이었다. 정확하면서도 맥락에 딱 맞는 적확한 단어로 말해야 하는 방송과는 다르게 사물과 상황에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표현하는 사진은 마음마저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게다가 사진에 집중하는 동안의 나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았고 남의 시선에 눈 돌릴 여유가 없었다. 그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뿐이었다. 무엇에 그렇게 몰입해본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언젠가부터 집을 나설 때는 무조건 카메라가 동행했다. 찍고 싶은 장면은 한 번 놓치면 다시는 찍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 생긴 버릇이기도 했다. 함께 여행할 친구가 없어도 카메라를 들고 떠나면 든든했고 사진을 찍으면서 자유로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이름도 낯설고 지리적으로도 머나먼 나라, 쿠바다. 내가 갔을 땐 우기에 접어들 무렵인 5월이었는데, 적도 부근의 나라라서 그런지 하루 종일 뜨거운 햇빛이 쏟아졌다. 아침에 샤워를 하고 길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그 무더운 곳에서 나에겐 남보다 항상 짐 하나가 더 있었다. 카메라와 렌즈 몇 개를 넣은 묵직한 가방은 마치 달팽이의 집이나 거북의 등처럼 늘 내 등 뒤에 붙어 있었다. 그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로 여기저기 다녔다. 체 게바라의 도시로 알려져 있는 산타클라라에 갔을 땐 쨍쨍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무려 2km를 걸은 적도 있었다. 시내 광장에서 체 게바라 기념관까지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걷는 그 길은 누군가에게는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거리겠지만 나에겐 고행의 길처럼 느껴졌다. 안 그래도 더위에 괴로운데 무거운 카메라 가방 때문에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티셔츠는 이미 흥건하게 젖었다. 카메라 따위 던져버리고 싶었다.
이 풍경들 다 머릿속에 담아가면 될 텐데 왜 굳이 사진으로 남기겠다고 하는 건지. 스스로를 책망했다. 얼마나 좋은 풍경을 담겠다는 건지. 그리고 이 무거운 카메라가 무슨 소용인지. 스스로를 원망했다. 그래도 끝끝내 포기하지 못한 것은 그렇게 고생해서 찍은 사진들에는 나조차 잊고 있었던 내 생각과 감정들이 오롯이 투영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보고 있으면 기억과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 시간과 공간에서 가졌던 생각들과 감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돌파구가 필요했던 때,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열정을 다 바칠 무엇이 절실했던 때 사진을 만났다. 카메라의 파인더를 통해서 팍팍한 현실을, 지루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아름다운 풍경에 푹 빠지기도 했고, 매일 반복되는 우리네 소박한 삶의 또 다른 이면을 찾아보려 애쓰기도 했다. 사진작가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는 “사진이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고,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허가증”이라고 말했다. 사진을 알게 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위한 무언가에 푹 빠져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다이앤 아버스의 말처럼 자유로 향하는 허가증을 갖게 되었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보는 동안만큼은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복잡했던 세상의 모든 고민은 내려놓은 채로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어서 살 것 같았다. 나는 살아있었고, 나는 자유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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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원은 <문화공감 신성원입니다>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밤10시 라디오에서 인사하고 있는 KBS의 아나운서다. 1997년 KBS 24기 아나운서로 입사해 KBS음악실, 문화탐험 오늘, 시사플러스, 문화읽기 등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맡아왔다. 2009년 3월 <신성원의 사진일기전>을 열었고 같은 해 12월 에세이 《속삭임》을 출간했다. 얼마 전 상명대 문화예술대학원을 졸업하며 방송국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연작을 선보였다.

[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패션은 안경이다_김홍기

패션은 안경이다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사람들은 나를 패션 큐레이터라고 부른다. 책을 쓰면서 저자 소개란에 그렇게 적은게 화근이었을까? 사람들은 특화된 직업명에 대해 궁금해 했다. 미술사를 공부했는지, 혹은 패션계에서 일한 이력을 갖고 있는지, 심지어는 올 계절에 유행하는 패션 트렌드에 대해 알려달라고 한 이도 있다.
이 자리를 빌려 말하지만, 나는 대학에서 미술사를 비롯한 패션관련 영역을 공부한 적이 없다. 패션에 대한 관심은 대형 유통업체에서 패션 바이어로 우연하게 일하게 되면서, 내 업무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독한 맘을 먹고(?) 독학을 시작했던 게 그 출발점이다. 아동복 바이어로 성장하면서 다양한 패션기업들과 디자이너들을 만나야 했는데, 그때마다 느낀 건 패션에 대한 누적된 지식 없이 관련 업무를 깊게 이끌어가는 건 힘들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매년 봄/여름 가을/겨울로 나뉘어 생산된 수많은 옷 중, 시장에서 먹힐 만한 것들을 선별하고 관리하는 일,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왜 특정한 옷을 선택하고 다른 것은 버릴까 하는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해야 했다. 어떤 상품은 세일(Sale)을 위해 가격을 인하하고 업체와 함께 시장을 만들어가야 했다. 책임을 함께 지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특유의 복식업계 및 디자인계 언어들에 친숙해져야 했다. 대학시절 영화를 부전공하면서 영상미학을 비롯해 문화이론, 기호학 등을 공부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요즘 뜨는 말로 인문학적인 패션 공부를 하게 된 셈이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이질적인 영역들을 결합시켜서 제3의 것들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
유학을 위해 떠난 영국 여행길에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봤던 시각의 구조〈 Fabric of Vision전〉은 내 인생을 바꿨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그림 속 패션에 나타난 주름의 의미를 통해 각 시대의 미감과 사회적 체계, 사람들의 열망의 코드를 읽어내는 전시였다. 머리를 탁 칠 수밖에 없었다. 패션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해왔다고 했고, 대학시절부터 갤러리를 자주 다니며 작은 판화작품부터 컬렉팅을 해왔던 내가 미술사를 비롯한 인문학이 패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두 개의 영역이 어떻게 공동의 땅을 경작하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지를 몸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독학해온 복식사에 대한 나만의 입장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 결과물이《 샤넬 미술관에 가다》이다.
서양미술사의 명작에 나오는 옷의 의미들을 다층적으로 풀었던 것. 책을 쓰는 문제를 앞에 두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내게 용기를 준 이가 있다. 바로 영국 법조계의 스타 변호사 앤소니 줄리어스다. 그는 홀로코스트 문제를 변호하다가 관심을 갖게 된 유대인 미술에 대해 연구하며《 미술과 우상》이란 책을 냈다. 무엇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미술을 역사적으로 공부하고 자신의 일과 관심사를 결합시켜 풀어내는 작업을 한다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4년에 걸쳐 자료를 다시 모으고 편집하면서 책을 썼다. 이 과정에서 패션이란 렌즈로 미술전시를 하게 될 경우, 생산적인 교집합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구체화했다.
패션의 역사는 당대의 옷 스타일을 묘사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패션은 일상에서 입는 옷이란 오브제를 미학적으로 표현, 승화시키는 기본적인 문화 활동인 동시에 지역적 차이와 시대적 변화의 방향을 반영하는 변화의 바로미터다. 인간이 입는 사물이란 점에서 일상성을 사유할 수 있고, 특정한 지리적 경계 내부의 사람들, 즉 공동체가 수용할 수 있는 미감의 수준에서 입을 수 있는 것들, 패셔너블(fashionable)의 개념을 정의한다는 점에서 사회성을 띤다. 패션은 그 자체로 삶과 예술, 실천과 미학, 생산과 소비, 개인의 취미와 집단정신을 연결하는 삶의 현장이 된다. 되짚어보면 패션이란 단어가 그저 한 벌의 옷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많은 발언을 할 수 있는 오브제인지를 알게 된다. 나는 옷에 담긴 이런 정신성들을 전시란 양식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지금껏 저술에 온 힘을 쏟은 것은 옷이란 사물을 전시하기에 앞서, 패션이란 개념의 외연을 확장하고 지금껏 ‘패션’을 규정해온 우리 사회가 협소한 시각을 넘고자 한 시도였다.
최근에 나온《댄디, 오늘을 살다》도 그런 연장선이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사회는 새롭게 등장하는 유통체계와 패션의 논리로 뒤덮였다. 이때 새롭게 부상하는 지배적 스타일에 저항하는 정신의 소유자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을 댄디라고 부른다. 댄디즘은 일종의 생활철학으로서 삶의 많은 부분에 적용될 수 있다. 음식을 먹고 소비하는 섭생의 방식에서 옷차림, 신체를 가꾸는 일,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하는 방식 등 다양한 측면을 성찰할 수 있다.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 속에 나타난 소비문화와 패션에 대한 해석들을 함께 소개함으로써, ‘우리나라’ 작가들의 감성을 통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큐레이팅이란 어떤 점에서 보면 삶을 위한 편집된 태도를 갖는 것이다. 패션이한 벌의 옷을 넘어, 그것을 입는 인간의 표정과 태도를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인간의 행위는 항상 이해관계로 연결된 이들의 시각 속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패션을 큐레이팅하는 일은 제2의 피부라 불리는 옷을 해석하는 안경을 사람들에게 씌워주는 일이다. 좌와 우를 가로지르며(안경에서 코에 걸치는 부분을 브리지(Bridge)라고 한다) 누군가의 가교가 되는 일을 하고 싶다. 평생 패션이란 황홀한 소울메이트와 업고 빨고 사랑하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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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는 국내 1호의 패션 큐레이터.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연극영화와 의류학을 복수전공했다. 졸업 후 신세계에 입사해 아동복과 상품기획을 익혔다. 현대미술과 패션을 독창적인 시선으로 결합한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방송활동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꾸준히 하고 있다. 저서로는 《샤넬, 미술관에 가다》 《하하 미술관》 등이 있으며 《패션디자인 스쿨》 《패션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등을 번역했다. 그의 글을 읽고 소통을 원한다면 www.facebook.com/fashioncurator1 혹은 twitter.com/fashioncurator에 들어가보면 된다.

[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암에 대한 시각예술적 리서치_노상익

암에 대한 시각예술적 리서치

외과의사 노상익

‘C25.0 췌장암, 전씨, 81세/남, 서울 홍은동 거주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며 그의 통증, 황달, 전신쇠약은 해소되었다.
3기 췌장암 수술 후 항암/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14개월을 생존하였고 2011년 1월 12일 사망하였다.’

연작 ‘Biography of cancer’ 중 세 번째 부분 ‘RESULTs’ 작업에 포함된 도큐먼트의 일부이다. 환자의 개인자료, 임상차트 기록, 여러 가지 감시 장치의 모니터링, 다양한 검사결과, 수술 등 일반인이 보기엔 난해하고 이해불가능하며 무미건조한 기록물들이 병원의 캐비닛과 전자차트에서 튀어나와서 전시장에 걸릴 수 있는 이유는 이런 기록물들이 품고 있는 다양한 의미 때문이다. 이 작업은 고통을 받고 있는 ‘암환자’에 대한 것이 아니다. 동시대에서 감추기에는 너무 흔해진 ‘암’이라고 하는, 불멸하는 질병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성격을 이해하고 행동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려는 시도이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비유적, 의학적, 과학적, 사회적 함의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2008년 전 세계적으로 760만 명이 ‘암’으로 사망하였다. 이런 비극적인 세계지표 위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의학 논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리서치였다. ‘암’을 둘러싼 다양한 함의에 대하여 시각예술적 질문을 던지려고 하는데 그것이 어쩔 수 없이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나서 우선 과거의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미 흘러갔지만 아직 흘러가지 않고 정지 상태에 있는 엄청난 분량의 자료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물리적으로는 지나간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아직도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 있음을 느꼈다.
먼저 자료 수집의 룰을 만들고 리스트를 완성한 뒤 다양한 루트를 통한 접촉을 시도했다. 자료의 양이 많아지고 현대예술이 포용할 만한 수사를 포함시키기 위한 사고의 전개와 고리를 풀기 위해 체계적인 방법론이 필요했는데, 이미 말랑말랑한 머리는 한참 지난 후여서 어쩔 수 없이 가장 익숙한 의학 논문의 형식을 차용했다 (효과적이기는 하다). 의학 논문과는 전혀 별개의 작업을 하려는데 방법은 그것과 똑같은 것을 사용하니 아이러니했다. 작업을 ‘Introduction’ ‘Material and Method’ ‘Result’ ‘Conclusion’ ‘Discussion’의 다섯 부분으로 나누었고 현재와 미래의 자료를 위해 전향적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했다.
실제 작업에서는 다양한 함의의 내러티브를 포함하기 위한 이미지의 컨텍스트가 중요했고 도큐먼트와 사진자료의 발굴, 생산뿐만 아니라 수용되는 지점까지 고려해야 했다. 이러한 것들에 실패하면 어떤 수사를 가져다 붙여도 단순히 자료를 수집해서 나열하고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업은 ‘암’을 매개로 만나게 되는 의사, 환자, 그 주변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투쟁, 환상, 희망, 절망, 죽음과 생존에 대한 작업이다. 작업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존재하며, 실제로 내가 만난 이들이다. 신원을 보장하려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지만 인지 못하는 와중에 공개된 것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부디 그들의 신원과 영역을 존중해 주기 바라고, 이러한 시각자료가 훗날 2000년대 초반을 살았던 한 외과의사가 남긴 가치 있는 아카이브가 되기를 희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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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익은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간담췌외과 전문의로 서울중앙보훈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암 환자들의 진단에서부터 진료, 수술, 수술 이후에 이르기까지의 전체 과정을 기록한 자료들을 선별하여 작업을 하는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2012년에는 란 타이틀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된다.
홈페이지: http://jasonnoh.com/

[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조선 초상화는 왜 자랑스러운가_이성낙

조선 초상화는 왜 자랑스러운가

피부과 의사 이성낙

필자가 초상화에 눈을 뜬 계기는 반세기 전 의과대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뮌헨 의과대학 마르히오니니(Alfred Marchionini) 교수는 학기 마지막 피부학 강의를 ‘미술품에 나타난 피부 질환’이란 주제로 마무리하였다. 저런 시각에서도 예술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우쳤다. 그 강의는 필자가 피부학을 전공하며 서양 초상화에서 병변(病變)을 찾는 ‘습관’을 가지게 된 동기가 된다.
1975년에 귀국하며 동양화에서는 피부 병변을 찾아볼 수 없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였다. 부끄럽지만 동양화 하면 아름다운 산수화만 생각하였나 보다. 그런데 어느 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시대 초상화를 만난다.
《 한국귀인초상대감(韓國貴人肖像大鑑)》을 편찬한 이강칠(李康七, 1926~2007) 선생을 만나는 큰 행운이 따랐다. 선생은 조선시대 초상화가 얼마나 꾸밈없이 정교하면서 정직하게 제작되었는지를 강조하며《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숙종 14년, 1688)에 정확히 기록된 초상화 제작 지침을 필자에게 가르쳐주었다. 즉 ‘한 가닥의 털(一毛), 한 올의 머리카락(一髮)이라도 달리 그리면 안 되었었다’고. 이는 필자의 논문 <초상화에 나타난 백반증(白斑症) (Vitiligo auf einem historischen Portrat)>이 독일 피부학 전문 학술지《DerHautarzt》(1982)에 실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논문에서 초상화에 나타난 병변인 ‘하얀 피부’와 정상 피부의 경계 부위가 불규칙하게 더 검게 그려진 것은 초상화의 안료(顔料)가 변색된 결과가 아니라, 백반증의 전형적 증상인 경계과색소침윤(境界過色素浸潤, marginal hyperpigmentation)이 선명하게 묘사된 것임을 지적했다. 즉 병변이 임상적으로 활성화하면 더 검게 되었다가 하얗게 변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번져 나가는 임상적 현상과 일치한다고 했으며, 조선시대《 승정원일기》를 인용해 임상적 신빙성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편집위는 이 논문의 임상적 과학성을 인정해 학술지에 게재하였다. 이는 조선 초상화가 과학적으로 인증 받은 생생한 증언이다. 한국 미술사에 큰 이정표라 아니할 수 없다.
spec15-4대학원 과정에서 필자는 조선시대 초상화를 더 넓게, 더 깊이 연구하면서 초상화에 담긴 사회성에 눈을 돌리게 된다. 유럽 초상화에서는 예상보다 적게 피부 병변을 확인할 수 있고, 동양 초상화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초상화에서도 드물게 볼 수 있으며, 일본 초상화(고승의 초상화 예외)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에 눈을 뜬다.
특히 두창(痘瘡), 일명 마마병(媽媽病, small pox)과 초상화를 키워드로 동양 초상 미술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관련 문헌을 살펴보면 명(明) 태종(太宗)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이 두창에 감염되었던 점. 17~19세기에 한반도는 물론 중국과 일본 열도에서도 전염성이 강한 두창이 만연했는데도 두창의 상흔(傷痕)을 중국 초상화에서는 아주 드물게 볼 수 있고 일본 초상화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데 반해 왜 조선시대 초상화에서만 두창의 상흔을 쉽게 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화가가 대상자의 얼굴을 화폭에 옮기면서 두창의 상흔을 ‘있는데도 못 본 듯’ 주관적으로 그렸고 조선의 화가는 대상자의 얼굴에서 보이는 피부 병변을 우직하리만큼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화폭에 옮긴 것이다. 조선 초상화는 과시성과는 거리가 먼, 거부감을 줄 수 있을 피부 증상마저 가감 없이 화폭에 옮겼다는 사실과 맥을 같이한다.
더욱 경외(敬畏)스러운 것은 심한 두창 상흔이 있는 ‘외모 장애자’인데도 초상화의 대상자들이 영의정을 비롯해 높은 관직에 올랐다는 사실에서 당시 사회의 포용성을 보았다. 당시 선비 사회의 정서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던지는 조용하지만 강한 메시지이다. 조선 초상화에는 자랑스러운 조선의 시대정신(Zeitgeist)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다. ●

이성낙은 피부과 의사를 은퇴하고 미술사학을 전공하기 위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 명지대 미술사학과 대학원생으로 돌아갔다. 2014년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병변(病變) 연구》로 석사논문을 썼다. 독일 뮌헨 유학에서 귀국 후, 1975년부터 전국 박물관과 사찰, 사당을 찾아다니며 조선시대 초상화를 살펴보고 우리 그림에 나타난 피부병을 연구해왔다. 현재 가천의대 명예총장이자 (사)현대미술관회 회장직을 맡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