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Book] 현대미술과의 소통을 위한 도구 만들기

 

《대중문화와 미술-수백 개의 마릴린 먼로와 수천 개의 모나리자》 유현주 지음 미진사 2014

DF2B0574현대미술의 개념에 다가가는 과정은 다양한 레퍼런스를 요구한다. 이는 현대미술이 단지 미술사의 흐름을 따라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식의 토대 위에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상으로서의 현대미술은 그 자체의 기술을 이해하기 보다는 그것을 읽어내는 방식과 도구를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유현주의《대중문화와 미술》은 모더니즘적 인식론에 기반을 둔 현대미술의 탄생부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현대미술 전개에 이르는 과정을 다양한 인식의 툴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서설부문에서는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특정한 관점’을 앞세워 이 책의 전체적인 시각 틀을 제시하고, 둘째 본문에서는 본격적인 모더니즘의 전개를 미니멀로 매조지된 미술사조와 극단적인 대중매체인 만화, 그리고 사진 등에서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립항을 제시한다.
흡사 인상주의 이후 현대미술사와 미학사를 요약, 정리한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래서 책의 성격은 “현대미술이론을 항해할 수 있는 내비게이터”라는 필자의 말로 요약된다. “책의 후기에 썼듯이, 처음엔 학생들을 위한 강의록으로 시작했습니다. 책을 쓸 때 가급적 누구에게나 쉽게 읽혀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전공 학생들도 듣는 만큼, 그들의 지적 욕구도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큰 부담이었습니다.” 개론서 역할을 하는 변변한 미술이론서 하나 없는 우리의 현실이 뼈아프다. 이러한 현실은 대중이 현대미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기회를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판적이란 것은,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현대미술이 사진, 비디오, 영화, 컴퓨터, 인터넷 등 다양한 대중매체를 사용하지만 그러한 사용 자체가 미술의 다양한 형식과 새로운 미적 체험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벤야민의 매체 수용적 태도와 마셜 맥루한의 매체이론을 빌려 긍정적인 시각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입장의 대척점도 들었다. “그러나 아도르노의 시각에서는, 대중매체인 라디오, 사진, 영화 등과 같은 매체가 재현하는 현실(문화)에 대해 예술이 비판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현실을 수동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이 되는 것이죠. 아도르노와 보드리야르의 매체 비판적 시각은 그런 점에서 짝을 이루는 면이 있습니다. 어느 한쪽의 견해에 치우치기보다는, 대체로 이들의 대립적 관점을 함께 열어 놓은 채, 매체(대중매체) 그리고 매체에 반영된 대중문화 및 그러한 문화를 반영하는 동시대미술의 진행 경로를 그리고자 했다고 할까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 현재 미술은 하나의 틀로 규정되지 않는 비정형적인 ‘무엇’이다. 그래서 미술사나 미학을 공부하겠다는 이들도 다양한 레퍼런스를 접해야 한다.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어떻게 미술작품인지를 해석하기 위해 레디메이드로부터 내려오는 미술사의 계보만 필요한 것이 아니죠. 작가의 사유도 문화적 산물로, 사회구조의 텍스트로 놓고 본다면, 작가의 의도로만 작품해석을 하는 고전적 방식을 넘어서겠지요.” 이 말은 미술작품이 놓이는 시대와 문화적 상황을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지만 현대미술에서 일상성에 대한 담론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언뜻 ‘관성’으로 보이기도 해 허무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미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보드리야르가《소비의 사회》에서 언급하지만, 현대예술에서 일상성이 강화되는 한편 예술이 주는 일루전은 줄어드는 것에 당혹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중은 다양한 일상의 재료나 신체, 대지, 심지어 텍스트가 소재나 주제가 되고, 미술관의 제도와 정치적 성격을 벗겨내려는 예술가의 태도에 적잖이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피에르 만조니의 <예술가의 배설물>을 보고 무엇을 느끼라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받을 때, 저는 미술계에 몸담은 사람들과 대중의 간극을 많이 느낍니다. 예술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즉 예술 저변에 깔린 시대적 환경에 따른 미술의 변화에 대해 뭔가 얘기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즉, 대중이 현대미술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를 미술이 해소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은 현대미술이 ‘거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비전공자들은 어떤 경우 이론가들의 글을 통해 오히려 난해함이 더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전공자를 위한 글이나 논문도 물론 있어야 하지만, 비전공자나 대중을 위한, 즉 소통의 어휘도 당연히 필요하죠.” 일상을 예술로, 예술을 일상으로 가져와도 대중에겐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두자는 의미다.
필자는 ‘생태미학’, ‘생태예술’이라는 주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고 이를 토대로 전시 <지속가능한 도시-꽃>(스페이스 씨, 2013.12.18.~31)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발전시켜 ‘지속가능성’에 대해 더 심도 있게 파헤쳐볼 생각이다. “그것은 또한 실존을 규정하는 환경을 설정하는 정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예술이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확언하기 어렵지만, 요셉 보이스의 ‘사회적 조각’과 같은 맥락에서 일정 부분 예술계에서도 불가피하게 관심을 가질 분야라고 봅니다.”
현재 ‘문학과 미술의 통섭’에 대한 저술을 계획하고 있다는 필자는 상호 작품을 매개로 문학가와 미술가가 토론하는 인상의 문체로 쓰고 싶다고.“예컨대 19세기 시 한 편에서 인상주의 그림에서 읽힌 사회의 인상학을 끌어내고, 다시 그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추하는 인문학적 사유가 된다면 흥미롭지 않을까요. 그 외에도 저는 생태예술 혹은 미학과 관련된 책을 번역하고자 합니다.”

황석권 수석기자

유현주는 1968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저로 《열린미학의 지평》(사문난적, 2008), 《폭력 이미지 재난》(앨피, 2012)이 있다. 현재 생태미학예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남대, 상명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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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936손의 흔적

유이화 지음
돌과 바람과 나무를 담은 건축으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표현한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의 건축 사상과 철학을 담았다. 그의 딸인 저자가 이타미 준의 건축 작품 사진, 드로잉, 스케치, 에세이를 모아 낸 작품집으로 주목 받는다.
미세움 240쪽·1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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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932인도미술사
왕용 지음/이재연 옮김
<세계의 미술>시리즈 5번째로 중국인민대학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을 완역했다. 방대한 인도미술사를 형성 초기부터 무갈 왕조가 멸망한 근대까지 편년사적으로 다루었다. 430여 컷의 컬러 도판과 본격적으로 소개된 세밀화는 책의 완성도를 높인다.
다른생각 752쪽·6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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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929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

민길호 지음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작품세계를 살펴 본 책이 디자인을 전면 교체하고 도판을 보완한 개정판이다. 네덜란드에서 보낸 유년시절부터 파리, 아를 등 고흐의 인생에 주요한 지역을 중심으로 소설적 전기가 생생하게 이어진다.
학고재 400쪽·1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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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926값비싼 잡동사니는 어떻게 ?

이지희 지음

세계에서 인구 대비 박물관이 가장 많은 나라 영국의 박물관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브리티시 뮤지엄부터 웰컴 컬렉션, 커티 삭 등 다소 낯설지만 특징 있는 미술관까지 영국 곳곳에 숨어있는 보물창고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예경 368쪽·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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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921루시언 프로이드

조디 그레이그 지음/권영진 옮김
2013년 최고 경매가를 기록해 주목을 받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작가 루시언 프로이드의 생애를 다룬 책. 사생활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것으로 유명한 그를 생전에 직접 인터뷰한 저자의 글은 정교하고 정확한 자료로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다빈치 400쪽·2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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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924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

김광현 지음
건축계를 향한 독설과 비판을 서슴지 않는 저자가 지난 40년간 한국 건축계에서 활동하면서 지켜본 현장에 대한 생각을 글로 풀어냈다. 사람과 사회의 관계에 있어 건축의 태도와 역할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살펴본다.
공간서가 432쪽·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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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937일러스트 최초의 인간
알베르 카뮈 지음/김화영 옮김
알베르 카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글로 사후 30년 만에 출간되어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소설. 출간 20주년을 기념해 재출간된 이 책은 특별히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호세 뮤노스의 흑백 일러스트가 더해져 글의 무게감을 더했다.
미메시스 400쪽·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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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934무지개에는 왜 갈색이 없을까?

주드 스튜어트 지음/배은경 옮김

색은 각 문화권마다 공동의 상징을 지닌다. 저자는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적용해 색이 가진 의미, 역사뿐 아니라 색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연을 소개한다. 무지개 색을 포함 12가지 색으로 구성된 각 챕터는 우리가 모르던 색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아트북스 204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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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928박물관의 탄생
도미니크 풀로 지음/김한결 옮김
박물관과 문화유산 분야를 오랜 기간 연구해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은 저자가 박물관의 정의와 그 탄생 지점부터 지금까지 흘러온 변화의 양상을 원론적으로 설명하고 더불어 궁금증을 자아내는 기발한 의견까지 제시한다.
돌베개 296쪽·15,000원

[Art Journal]

조민석, 12년간 축적해온 건축 완성의 전후 과정 공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건축전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 열어

<2014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로 참여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 수상의 영예를 입은 건축가 조민석(《  월간미술》 7월호 59페이지 참조)이 개인전을 열었다. 11월 20일부터 2015년 2월 1일까지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가 12년간 진행해온 69개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도면, 모형, 드로잉 등을 통해 선보여 조민석의 건축관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전시는 총 3가지 섹션으로 나뉘는데 전시장 입구인 글라스 파빌리온에 위치한 <링돔>은 특히 눈에 띄는 작품이다. 750개의 훌라후프를 엮어서 원형의 임시구조물을 만든 것으로 공공미술로서 기능을 한다. <링돔>은 뉴욕 스토어프런트 갤러리 25주년 기념행사를 위한 임시 구조물로 처음 제작되었다. 열림과 닫힘이 모호한 이 기하학적 원형 공간은 이후 밀라노, 요코하마 등에서 선보인 적은 있으나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곳은 단순히 작품이 전시되는 것을 넘어 간담회, 워크숍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그 외에도 건축물의 완성 이전 과정을 보여주는    ‘Before(이전의 세계)’와 건물의 완성 이후를 살펴볼 수 있는 ‘After(이후의 세계)’로 나눠 조민석의  자료 283점을 다각도로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실제 건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끝난 프로젝트까지 전시된 ‘Before(이전의 세계)’섹션은 건축가의 창의적 상상력이 발산하는 공간을 재현해 그가 운영하는 매스스터디스 사무실을 상상할 수 있게 돕는다. 반면 완성작을 모아서 보여주는 전시실에서는 건축 모형뿐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의견이 교차하며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함께 보여준다. 전시장 전체 벽면에 암호처럼 새겨진 코드들(01B, 04G 13D 등)은 그간 그가 진행한 프로젝트들의 코드명이다. 결국 전시장은 그가 지금껏 구현해온 모든 것의 시종(始終)의 과정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셈이다.
또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강연회와 워크숍이 진행된다. 12월 6일에는 아름지기와 함께 조민석, 박경 등이 참여하는 전시가 열린다. 더불어 <2014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 참여했던 이들의 폐막 후 보고 간담회(12월 20일)도 진행될 예정이다. 이와함께 3회에 걸친 건축가와의 대화를 통해 독창적인 자기만의 색깔을 고집스럽게 보여주는 조민석의 건축관을 심도 있게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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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성미술상이인성미술상이 이렇게 달라집니다

서양화가 김지원, ‘제15회 이인성미술상’ 수상

‘제15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로 김지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선정됐다. 송미숙 심사위원장은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는 내적인 성찰을 통해 전통적 회화의 틀을 벗어나 독창적인 작업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김지원은 인하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크푸르트 국립조형미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하이트컬렉션, 금호미술관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1999년 대구시가 제정. 대구미술협회가 주관해 온 이인성미술상은 올해부터 대구미술관에서 주관을 맡으며 상의 정체성을 재정비했다. 최근 미술상이 젊은 작가에 편중된 점을 고려해 이 상은 중진 작가, 특히 회화 장르로 제한을 두었다.
김선희 대구미술관 관장은 “동시대 다른 미술상과 차별화하여 한국현대미술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상을 개편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상이 보수성을 갖게 되었지만 그 보수성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자신만의 실험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수상자는 내년 대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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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자인위크2014_SDF  (1)

민간 디자인의 확장을 꾀하다

서울디자인위크 2014

디자인 관련 전시, 포럼, 세미나 등으로 구성되는 국내 최대 디자인 축제 ‘서울디자인위크 2014’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의 주요 프로그램은 DDP(동대문 디자인플라자)와 코엑스를 중심으로 한 서울 도심 150개 장소에서 11월 26일부터 30일까지 이어졌다. 같은 기간 ‘2014 서울디자인페스티벌’, ‘헤럴드디자인포럼2014’, 디자인마켓도 열려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2014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은 디자인 하우스 주최로 <균형 잡힌 삶을 위한 건강한 디자인전>을 코엑스에서 열어 웹툰 작가들과의 대화, 3D 프린팅 특별전 등을 진행했다. 이 행사는 다수의 해외 디자인전시에 참여했던 에어비앤비가 공식파트너로 함께했다.
한편 지정된 카페, 레스토랑, 스튜디오, 공방 등을 방문해 다양한 디자인 관련 행사를 즐길 수 있는 ‘서울디자인 스팟투어’는 본행사보다 이른 11월 17일 시작해 2주 동안 진행되었다. 서울디자인재단과 디자인하우스가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는 대중이 디자이너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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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우 (2)

한지의 물성을 실험한 선구자

권영우 타계 1주기 추모전

해방 1세대 작가로 동양화의 본질에 주목했던 권영우의 타계 1주기 추모전이 11월 19일부터 25일까지 갤러리 원과 갤러리 EM 전관에서 열렸다. 그는 한지의 물성에 집중하며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법으로 자신만의 예술영역을 구축한 작가다. 특히 1970년대에 일어난 단색화 바람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 것으로 화단의 평가를 받는다. 서울대 미대 개설 후 1회로 입학했으며 6·25전쟁 당시 종군미술대에 입대해 종군화가단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후 1955년 휘문고등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1957년에는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가 화단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시기는 1960~1970년대로 초반의 동양화적인 필묵법에서 벗어나 화선지 콜라주를 하면서부터다. 이후 젖은 한지에 칼집을 내거나 오브제를 캔버스에 붙이고 그 위에 한지를 덮는 등 한지를 이용한 다양한 미술적 실험으로 주목 받았다.
故 권영우 작가는 1926년 함경남도 이원 출생으로 대표작으로는 <바닷가의 환상>, <폭격이 있은 후>, <섬으로 가는 길> 등이 있으며 1958년 제7회 국전 문교부장관상을 비롯해 2003년 제9회 허백련상까지 상을 휩쓸었다.  9월 13일 미국 LA 블룸엔포에서 열린 단색화 전시 <From All sidesLTanaekhwa On Abstraction>에 작품이 소개돼 해외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으며 그의 작업이 에 대한 재조명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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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SeMA-하나 미디어아트어워드, 제14회 송은미술대상

백남준의 예술정신을 기리는 ‘2014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자로 하룬 미르자(오른쪽 사진)가 선정됐다. 영국 출신의 작가는 사운드아트, 설치미술, 비디오, 퍼포먼스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테크놀로지의 다양한 실험을 예술에 접목시키는 실험성과 개방성 측면에서 높게 평가 받았다. 시상식은 백남준 9주기를 맞는 2015년 1월 19일에 열린 예정이며 수상자인 하룬 미르자에게는 5만 달러의 상금과 2015년 하반기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의 기회가 주어진다. 한편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에서 올해 처음으로 시행된 ‘SeMA-하나 미디어아트어워드’는 에릭 보들레르(왼쪽 사진)를 첫 수상자로 선정했다. 탄탄한 리서치가 돋보이는 작업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그는 2014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에서 다큐멘터리 <시게노부 메이와 시게노부 후사코, 아다치 마사오의 원정과 27년간 부재한 이미지>를 선보였다. 시상식은 12월 3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며 에릭 보들레르에게는 상금 5000만 원과 유리 아티스트 박성원이 만든 트로피가 수여된다.
또한 제14회 송은미술대상은 도수진, 이진주, 전소정, 조소희 작가가 선정됐다. 작가가 선정되어 12월 12일부터 2015년 1월 31일까지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전시를 연다. 2015년 1월 중 4인의 작가 중 한 명을 선정해 대상수상자를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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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기획전시와 아트페어의 어색한 마주보기

<청년미술프로젝트 YAP 2014>

11월 12일부터 닷새간 열린 <2014 대구아트스퀘어>에서 <2014 대구아트페어>와 쌍을 이루어 <청년미술프로젝트:YAP 2014>가 열렸다. 이수균 큐레이터가 전시감독을 맡은 이번 행사는 40세 미만 청년작가 42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담았다. 이번 전시의 표제는 <Sugar Apple Daegu>이며, ‘다양성에 바쳐진 예술’을 주제로 정했다.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이 주를 이루는 이 연례행사에서는 올해에도 여덟 개 나라에서 초청받은 작가들의 미디어, 회화, 조각, 퍼포먼스, 영화, 설치, 디자인, 사진작품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보인 몇 가지 특징은 첫째 수도권 출신 작가들과 대구 경북 출신 작가들의 형식적인 지역 안배, 둘째 프랑스 출신 작가가 상당수 포함된 점, 셋째 전시 공간의 가운데에 짠 암실을 중심으로 평면작품을 가장자리로 배치할 수밖에 없는 관람 동선의 한계가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점, 넷째 천장으로부터 내리비치는 일괄적인 조명의 간섭을 최대한 통제하려 한 고심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수균 전시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기획의 주제는 “현대사회의 변화 속에서 불안한 상황에 몰린 예술의 아노미적 상황을 제시하고 치유하는 법”이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아노미 개념은 정치제도나 하위집단 연구에 인용되는 옛날 이론이다. 하지만 정치 기술이 음험하게 작동하는 현 시대 미술계에서, 작가라는 서브컬처 집단의 계급의식을 반영하는 장치로 써도 무방하다. 이와 같은 작가들의 불안은 예컨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스스로 되묻는 류현민의 <한국에서 390cm의 알맞은 판을 찾을 수 없었다(Demonstration)>나 얼마 전 무고한 표절 시비에 휩싸였던 박정현의 항변 <0.917>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참신함으로 포장되는 청년성보다 완성도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미술계 상황에서, ‘청년미술’은 같은 공간에서 벽을 사이에 두고 열린 아트페어의 미술작품들과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을 단지 액자를 씌워서 파는 그림인지, 그렇지 않은지로 구분하는 모순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기획 전시는 시간을 요구한다. 최소한 3주에서 한 달의 기간은 보장받아야 된다. 긴 전시는 관객뿐 아니라 기획자와 작가들을 좀 더 현명하게 성장시킨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사람이 몰렸다가 뜸해지는 주기가 반복되면서, 그 전시는 올바른 환류가 벌어진다. 하지만 이 전시는 그럴 사이가 없었다. 청년미술프로젝트가 대구아트페어 개장 기간에 같이 벌어지는 현재 상황에서 전시 스태프들과 참여작가들의 노력은 개런티와 경력 뒤로 파묻힐 수밖에 없다. 대구=윤규홍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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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수 작품

파리 중심에서 선보인 한국사진

김대수 개인전

16년간 대나무를 소재로 한국의 자연스러운 멋을 표현한 작가 김대수가 파리 이브갤러리에서 11월 13일부터 2015년 3월 28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이번  사진 전시에 장노출, 반전효과 등을 활용한 다양한 분위기의 대나무 사진 15점을 출품했다. 김대수는 홍익대 교수로 재직 중이고 2009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적인 사진축제인 파리포토에 참가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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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진

내적 언어의 순수한 표현

이은진 개인전

거칠면서도 대담한 표현으로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구축한 작가 이은진이 여덟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11월 19일부터 11월 25일까지 갤러리 루벤에서 진행된 이번 전시 출품작은 포근하고 아름다운 소재를 두터운 선묘로 그려 독특한 심상을 구현했다는 평을 들었다. 눈을 사로잡는 색상의 조화와 꽃, 햇살을 담은 공간에 대한 지각이 특히 인상 깊다.
이은진 작가는 대한민국 회화대상전 대상, 미술세계대상전 특선 등 다양한 수상경력이 있으며 서울을 포함해 일본, 중국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했고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현재 현대미술작가연합회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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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갤러리사우스_정종기2

도시 속 소외된 이들을 위해

정종기 개인전

소외된 현대인의 모습을 담는 작가 정종기의 개인전이 10월 24일부터 11월 14일까지 표갤러리 사우스에서 열렸다. <talk & family>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에서 그는 도시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외로운 사람들의 뒷모습을 담았다.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한 정종기는 1995년 단성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 <자연으로의 회귀>를 시작으로 20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기획 전시에 참여했다. 2004년에는 제23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홍익대 회화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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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관 빼닮은 국립나주박물관

고고학 중심의 박물관, 소통의 창을 열다

국립나주박물관개관 1주년

국립나주박물관(관장 박중환·이하 나주박물관)이 11월 22일로 개관 1주년을 맞았다. 나주박물관은 영산강 유역에 남아 있는 선사와 역사시대 유적지, 그중에서도 영산강 유역 고분유적의 중심지인 반남 고분군 위에 세워지면서 ‘유적지로 파고든 박물관’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개관 전에는 광주 등 인근 도시와 다소 떨어져 있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개관 이후 나주박물관은 자연과 역사 속에 자리 잡은 열린 문화공간이라는 특성을 활용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과 전시를 통해 많은 이의 관심을 끌었다. 나주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도 개관 이후 지난 11월 18일까지 모두 15만282명에 달한다.
관람객들에게 사랑받은 프로그램은 가족과 함께 1박2일 캠핑을 하면서 역사·자연 체험을 하는 ‘1박2일 달빛 역사여행’과 ‘뮤지엄 스테이’다. 주말을 이용해 캠핑카에서 숙식하며  ‘마한시대 유물’을 중심으로 영산강 유역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색적인 프로그램이다. 또 국내 최초로 개방형 수장고 시스템을 도입했고, 유물 복원 처리 작업 과정을 공개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다. 관람객 각자가 가진 스마트폰을 이용한 전시안내시스템도 다른 국립박물관과의 차별화를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나주박물관은 ‘고고학 중심의 박물관’이다. 주변의 고분들이 박물관의 전시 유물과 다름없다. 특히 지난해 개관과 함께 9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국보 제295호 <나주 신촌리 9호분 출토 금동관>을 비롯해 영산강 유역 대형 옹관 등과 출토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나주박물관은 개관 첫돌을 맞아 내년 1월 18일까지 1주년 기념 특별전 <영상으로 되살린 문화유산>을 진행한다. 광주=박진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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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w (2)

신생 갤러리 | 갤러리 W가회

“작지만 큰 복합 문화공간”

한옥이 겹겹이 들어 않은 동네 중앙에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살롱이 등장했다. 작은 계단을 올라가 갤러리 W 가회에 들어서면 전면이 유리로된 벽면으로 언덕 너머의 북촌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갤러리 입구는 좁지만 전시장은 시야가 시원하게 트여 북촌 전체를 정원삼은 듯 보인다. 한옥을 개조한 갤러리의 모든 벽면은 개폐가 가능해 전시장의 공간을 작품 크기 및 전시 목적에 따라 변형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갤러리는 매체를 가리지 않고 회화, 미디어, 조각, 공예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공간을 운영하는 유세종 관장은 “가정집 같은 아늑한 분위기와 아담한 공간이 컬렉터에게 장점으로 작용한다. 작품을 집에 두었을 때를 어림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공간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유세종 관장과 유웅종 운영위 대표 모두 20여 년간 미술작업을 해와서일까. 이들은 젊은 작가 발굴에도 관심이 있으나 오랜 기간 뚝심있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작가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에 더 관심을 갖는다.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오랜 기간 작가 외길을 걷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애정이 더 간다고.
갤러리 W 가회는 지난 4월에 개관해 지금까지 쉬지 않고 기획 초대전, 대관전 그리고 상설전을 이어왔다. 내년에는 연간 6회 이상의 기획 초대전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공간의 탄생 배경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이탈리아에 약 10년간 유학 생활을 한 유세종 관장은 유학 중  런던에 1년 반을 머물며  일반적인 화이트큐브를 벗어난 대안공간을 마주하고 무릎을 탁 쳤다고 한다. 각종 문화예술 행사가 끊이지 않는 공간을 접하고 한국에 돌아와 유사한 공간을 마련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유학 중간 잠시 귀국한 2000년대 초에 바라본 한국의 대안공간은 대부분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의 의도가 투여된 전시가 아니라 자유로운 표현의 기획이 가능한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복합문화공간을 꿈꿨다.
갤러리 W 가회는 그들이 운영하는 ‘컬쳐 허브 조:타’의 일부다. 이 전시공간에서는 전시 외에도 프로젝트 하우스 유유소와 한옥서당 가회학당이 함께 운영된다. 유세종 관장과 유웅종 운영위 대표는 이 3가지 문화사업을 총칭해 ‘컬쳐 허브 조:타’를 설립했다. ‘조타’는 마음에 기꺼이 찼을 때 내뱉는 형용사 “좋다”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프로젝트 하우스 유유소는 기발하고 재미난 발상의 예술연계 파티와 모임을 주최한다. 개인적인 파티나 각종 소규모 행사에 장소를 빌려주고 케이터링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편 한옥서당 가회학당은 인문학 예술 강좌 프로그램이다. 지난 7월 14일부터 8월 24일까지 1차로 운영된 인문학 강좌에서는 신화, 첨성학, 에니메이션, 월드뮤직 등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1주일 단위로 강연을 펼쳤다. 소규모로 진행되는 데다 워낙 가족적인 사랑방 분위기라 많은 이들이 심도있는 얘기를 거리낌없이 주고받았다는 후문이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접근법을 융합한 공간으로서 갤러리 W 가회는 분명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북촌마을이 훤히 내다보이는 이 공간이 미술계에서 누구에게나 ‘좋다’는 말을 들을 수 있길…
www.culturehubgiotta.com 02-745-7253
임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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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2)

브누와 피에롱 <침대> 혼합재료 2010

에르메스 장인 공방에서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 결과물

‘아뜰리에 에르메스’ 재개관, <컨덴세이션전> 선보여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의 지하 1층으로 이전 재개관한 ‘아뜰리에 에르메스’ 첫 번째 전시로 <컨덴세이션(Condensation)전>(10.2~11.30)이 열렸다.
이 전시에서 에르메스재단 지원으로 4년간 에르메스 장인 공방에서 진행된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제작한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엘리자베스 S. 클라크, 올리비에 세베르, 시몬 부드뱅, 안드레스 라미레즈, 가브리엘레 키아리, 마리-안느 프랑크빌, 오유경 등 다양한 국적의 젊은 작가 16명이 참여했다.
에르메스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신진 작가에게 크리스털, 진귀한 가죽, 실버, 실크와 같이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재료들과 그것을 다루는 뛰어난 장인의 노하우를 작품에 접목시켜 창작할 기회를 준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각 공방 소속 장인들 또한 신진 예술가와의 교류를 통해 평소에 하던 일상적인 작업에 색다른 시각을 확보할 수 있다.
2013년 파리 팔레 드 도쿄에서 처음 선보인 이 전시는 2014년 도쿄에 있는 긴자 메종 에르메스의 ‘르 포럼’에 이어 마지막으로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렸다. 이 전시의 기획을 맡은 가엘 샤르보(Gaël Charbau)(사진)는 16점의 작품의 연결고리를 ‘응축(Condensation)’이라는 개념에서 찾았다. 예술가와 장인의 협업이 마치 연금술사의 언어처럼 응축된 작품을 전시 장소마다 주어진 환경과 지역성에 따라 다르게 연출했다.
샤르보는 “예술가와 기업이 협업하는 경우는 많지만 기업의 취지에 예술가가 맞춰야 한다면, 에르메스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예술가에게 온전한 자유를 주는 굉장히 드문 기회다”라고 이 프로그램의 의의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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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3)

울림과 색깔의 합주를 테마로 한 도예가 심상옥 개인전

이브갤러리에서 11월4일부터 16일까지 열려

이브 (2)도예가 심상옥의 개인전 <울림과 색깔의 합주>가 삼성동 이브갤러리에서 11월 4일부터 16일까지 열렸다. 작가는 국내는 물론 대만과 일본 유학을 통해 도예 이론까지 를 폭넓게 공부하고 18회의 개인전과 30회 이상의 그룹전을 거치며 도예작가로서 위상을 확고히 했다. 이번 전시에는 도예에 글을 입혀 이야기를 풀어내 예 (藝)와 문(文)을 추구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도자의 형태와 도화는 마치 추상화를 연상시키며 자유로운 변주를 시도해 심상옥만의 독특한 예술혼을 펄쳐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선의 추상화와 구성의 상징성, 공간의 조형성을 도예작품에도 대담한 변혁의 의지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끝없이 새로운 조형도예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잠 못 이루면서 고민해온 그가 이룩한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의 울림이다. 선과 점, 문양은 한층 깊이를 더해 생명력이 솟구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1983년 서울샘터화랑에서 제13회 심상옥 도예전이 열렸을 때 미술평론가 김인환은 “흐름시리즈는 기형이 갖는 공간적인 형태는 심플하고 모더나이즈된 아름다움을 지녔다. 자유로운 필선으로 그어진 추상적 형태는 회화가 가질 수 있는 미적 효과에 접근하고 있다. 그어진 선의 그림이 마치 수묵화의 감필법을 연상하게도 하거니와 기형도 현대 감각과 전통의 본원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킨 작품이다”고 평했다. 이같은 호평을 바탕으로 심상옥은 세계 미술계로 뻗어 나갈 초석을 다졌다.
1986년 제15회 심상옥 도예전이 파리 리아그랑빌레화랑에서 열렸을 때 비평가 Par Mondher Ben Milad는 “<기원전시리즈>는 과감하게 3차원적(입체적인)인 중의성(애매성)이 내재된 도예를 보여준다. 작가는 조형도예를 거쳐 보다 추상화된 도예에 이른다. 재료는 산청점토인 이도자왕 흙을 쓰며 성형과 굽기, 유약 모두 고도의 기술을 보여준다. 거기에 조각된 두상은 원을 반복적으로 그렸다. 12개로 조립된 검은 신들의 영혼을 제시한 것이다. 전시장에 서 있는 검은 신들은 분홍, 초록, 황색, 하늘색 상감기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원통형으로 만든 어중간한 몸체는 동서양을 초월한 소박한 미를 추구했다”라고 평한 바 있다. 고희를 맞이한 작가의 작품에는 아직도 못다한 열정과 예술혼이 숨쉬는 듯하다.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조화의 미를 느낄 수 있다.
제정자 ・이브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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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MPOSIUM

• 서울시립미술관(관장 김홍희)에서 11월 22일 <20 14 한·중·일 아트 콜로키움-미묘한 삼각관계>가 진행됐다.
•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조선희)금천예술공장은 <서울시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노동하는 예술가, 예술환경의 조건>(서울 시민청, 11월 27일)을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 대학미술협의회(회장 윤동천)는 2014년도 하반기 학술행사로 12월 6일 한원미술관에서 <미술대학과 대학미술교육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을 주제로 난상토론회를 개최한다.

 

[Editor’s Letter]

우리 미술계 큰 어른은 어디 계십니까?

불미스런 사유로 대한민국 미술계를 상징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중도하차 했다. 최초 여성관장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취임한 제18대 관장말이다. 공교롭게 공학박사이자 ‘탱크주의’를 내세웠던   기업의 CEO 출신으로 정보통신부 장관까지 역임했던 17대 관장도   임기를 4개월 남겨놓고 돌연 자진사퇴한 바 있다. 기업경영 마인드로 미술관을 이끌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그는 결국 스스로 미술계를 떠났다. 미련 없이 뒤도 안돌아보고(비겁하게) 미술관 관장 자리를 내팽겨 친 것이다. 둘 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문제는 앞으로의 행보다. 누가 될지는 몰라도 후임 관장의 역할과   임무가 막중하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과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담론형성과 활력이 사라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운을 북돋아야 한다. 이합집산으로 분열된 갈등도 조정해야한다. 인사가 만사라 하지 않던가. 이번에야 말로 정말 제 몫을 할 수 있는 적임자가 등용 되어야 한다. 허울 좋은 국제적 감각을 지닌 인물이라든지, 정치권과 가까워 예산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등, 본질에서 비켜난 부차적 자격요건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보다는 우리 미술계 속사정을 저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잘 헤아려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창간된 지 3년 된 시각예술저널《경향 아티클》이 지난 9월호를 마지막으로 휴간에 들어갔다. 홈페이지 게시글에 의하면 3개월 동안만 휴간하고 내년 1월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간하겠다고 한다. 부디 그들이 바라는 대로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기 기원한다.
한편 지금까지 6회에 걸쳐 민화(民畵) 연재를 해온 강우방 선생은  편집디자인에 대한 불만과《월간미술》이 ‘천박하다’는 이유를 들어 일방적으로 연재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해왔다. 나는 그렇게 하시라했다.  대신 이에 버금가는 후속 연재물을 기획해서 조만간 선보이겠다.
요즘 들어 부쩍 건강 챙기라는 말을 주위에서 자주 듣는다. 안 그래도 몸 여기저기에서 이상신호를 보낸다. 발바닥도 아프고 팔도 저리고 기관지도 좋지 않다. 술 먹고 새벽이슬 맞고 다니니 당연한 꼴이라고 혀끝을 차면서도 마누라는 모과차를 만들어 놓았다. 후배기자들도 거들었다. “몸이 나른하고 피곤하시다고요? 드셔보신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을 비교해 보세요”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활성비타민제 6개월 치를 생일선물이라며 내밀었다. 육체피로, 눈의 피로, 신경통에 좋다는 이 알약을 아침저녁으로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만병통치 될 것만 같은 플라시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덕분에 기존에 복용해오던 혈압, 간, 콜레스테롤 약까지 합쳐서 한 움큼 알약을 매 끼니마다 삼킨다. 그것만으로도 배부른데 가끔씩 난데없이 여기저기서 욕도 얻어 먹는다. 이래저래 살기 참 힘든 세상이다.  쩝…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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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슬신보슬  토탈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이번 특집은 그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국내외를 종횡무진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는 큐레이터로서 동시대 작가들과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시작했다. 특유의 에너지와 사교적인 성격으로 다양한 기획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프로젝트로 이끌었다. 수십 명의 작가들을 이끌고 국내외 여행을 떠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축적된 노하우로 여행사를 차려도 성공할 듯. 2011년부터 말레이시아와 해외 교류프로그램 <플레이그라운드 인 아일랜드>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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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CO고승현  2014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위원장

지난 9월 취재차 방문한 기자들을 태우고 직접 승합차 운전대를 잡은 그는 쌍신공원 일대를 돌며 친절하게 가이드를 해주었다. 자연미술가 그룹 ‘야투’를 이끌고 비엔날레를 펼쳐 매력적인 국제적무대로 일구어낸 장본인. 국제레지던스를 진행하며 작가들에게 기술 자문까지 한다. 야외 설치작업은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데 오랜 노하우가 축적되어야 가능하기 때문. 최근 연미산 일대 땅을 확보해 자연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하여 더 많은 이가 자연미술을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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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사진2이정윤 대전 통신원

1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대전, 충청지역  미술계 소식을 생생히 전해주었던 그녀가 이달을 마지막으로  본지 통신원을 그만둔다. 집이 분당으로 이사를 해서다. 그동안 매달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대전, 청주, 공주, 천안 할 것 없이 동분서주했고,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2002년 1월에는 마감 전날 예정일보다 일찍 출산하게 되어 남편이 미처 쓰지 못한 기사자료를 속달로 부치는 스릴 넘치는 일도 있었다고. 변덕스러운 기자의 요구에도 늘 밝은 목소리로로 답해줬던 그녀의 앞길을  응원한다.

 

[Column]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년, 그러나 10년은 된 듯한 고단함이 묻어나는…

11월 13일이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한 지 1주년이 된다. 하지만 1주년을 축하한다고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글을 쓰게 되어 마음이 착잡하다. 적어도 개관 시점에는 고립된 섬처럼 자리하던 과천 시대를 뒤로하고, 명실공히 국립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도심형 미술관이 탄생했다는 생각에 기쁘고도 뿌듯했다. 과천에서는 기대하지 못한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관람객 증대, 그리고 장소성을 살려 낮고 열린 공간으로 설계된 건축 언어의 매력과 함께 오랜만에 미술관 문화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동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관전 이래 이런저런 잡음으로 위태한 상황을 보이더니, 결국 학예사 부당 채용 의혹과 관련하여 정형민 관장의 직위 해제로 결론이 난 지금의 모습은 심히 곤혹스럽다.
그동안 정형민 관장이 보여준 행태는 한마디로 디렉터십의 곤궁함이었다. 아니 디렉터십 이전에 국립 기관의 수장으로서, 사회적 공인으로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갖추지 못한 모습이었다. 개관전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이미 미술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곤욕을 치렀지만, 사실상 정형민 관장은 2012년 1월 취임한 이후 소장품 구입이나 운영 방식 등에서 본인이 재직하던 서울대와 연관된 의혹을 꾸준히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기야 전시 기획자 선정에서부터 작가 선정에 이르기까지 서울대 편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가운데, 제자 및 서울대 박물관장 시절 함께 일한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채점 결과 조작 및 면접에 부당 개입한 정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공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이해관계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곧 권력 남용에 다름 아니고, 이는 우리 미술계에 오래된 전근대적 관행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한국 전 지역에서 미술관이 건립되고 있고, 그래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절실한 때이다. 하지만 관장 선임이 정치적 맥락에서 이해관계로 얽혀있음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점차로 나아질 것이고 또 어떤 지역은 나아진 곳도 있지만, 지역 미술관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되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주목하면서 리더십을 보이는 관장의 디렉터십은 거의 기대하기 힘들다. 제도와 인프라는 빠르게 성장하는데, 미술계 내부의 역량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럴 경우 미술계 출신 인력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결국 이해관계로 움직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유례없는 기업 후원의 세례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그동안 미술관에 기업 후원이 거의 주어지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행이라 여겨 이를 단순히 실적과 성과로 자화자찬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먼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체제가 책임운영기관제인 만큼 후원에 따른 예산 운영에 한계가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또 재단을 설립하여 식당과 커피숍, 아트숍 등을 위탁 관리하고 있지만, 그 자체의 수익금이 미술관으로 오지 않고 국고로 환수되는 시스템이다. 미술관 재정 자립도에 도움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주변 상권 침해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굳이 과도하게 상업시설을 유치할 필요가 있었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다른 한편 기업 후원을 어느 지점까지 받을지도 문제다. 지난 국감에서 현대카드 소지자에 대한 입장료 무료 혜택이 지적된 바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카드를 소지하지 않은 사람만 입장료를 낸 셈이 되면서 논란이 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견해나 입장은 다양할 수 있지만, 사실상 국립현대미술관이 기업 후원을 받는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은 제기돼야 할 것 같다. 부족한 예산에 전시회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인가? 워낙 전시회 기획력이 뛰어나 기업 후원이 절로 이루어진 것인가? 기업 후원 자체가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쟁력 지표가 된다고 믿어서인가? 기업은 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후원하는가? 혹시 유명 작가에 집중하면서 브랜드 효과를 노리는 것은 아닐까? 후원 열풍은 서울 최고의 장소인 북촌에 입지하면서 일종의 상승세를 탄 결과는 아닐까? 추후 다른 미술관에도 기업 후원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
이제 개관한 지 1년, 그러나 마치 10년이 지난 것 같은 피로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갑작스러운 상승세에 비해 우리 미술계의 내적 역량과 문제의식이 준비되지 못한 데에 따른 불안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박신의・미술비평, 경희대 교수

 

[Hot People]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소장 최완수

“이념이 뿌리라면 예술은 꽃입니다”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을 처음 만든 사람은 간송 전형필이다. 그리고 지금의 간송미술관이 있게끔 이끌어온 주인공은 가헌 최완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송미술관의 학예연구실 격인 한국민족연구소 최완수 소장은 겸재로 대표되는 진경시대를 세상에 널리 알린 학자이자 추사 김정희 연구의 최고 권위자다. 최 소장은 간송 전형필만큼이나 세상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인물이다. 최근 《추사집》 개정본을 내고, 10월 12일부터 26일까지 2014년 가을 정기 전시로 <추사정화전(秋史精華展)>을 개최한 최 소장을 간송미술관 보화각 2층 연구실에서 만났다.

1976년 5월 초판이 나온 이래 38년 만에 《추사집》 을 다시 펴내셨습니다.  제 욕심이 한정 없이 발동해서 이렇게 오래 걸렸나 봅니다. 그래도 너무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순서를 정해놓고 일정에 맞추느라 아주 혼이 났지요. 교정과 편집이 쉽지 않았지만 출판사(현암사) 직원들이 잘 대처해줬어요. 내가 까다로운 사람인데, 내 안목에 찰 만큼 능력 있게 해줬어요. 38년 전과 비교도 안될 만큼 지금은 제작환경이 좋아졌지만, 의외의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어요. 요즘 젊은 세대(편집자)가 한자를 너무 모른다는 거였죠.
언제부터 개정판을 내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초판이 나온 직후부터, 그러니 38년 동안 내내 수정을 하고 있었다고 봐야죠. 그때는 책이 뭔지도 모르고 번역하는 데 급급해서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던 것 같아요. 추사의 문장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아서 오류가 눈에 띄는 대로 계속 고쳐왔어요.
선생님과 간송(澗松) 전형필 선생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혜곡(兮谷) 최순우(1916~1984) 선생의 주선으로 맺은 간송가(家)와의 인연은 그야말로 운명적입니다. 그럼에도 간송선생과는 직접 만나신 적이 없는데?  간송선생이 돌아가신 건 1962년이고, 나는 1966년 4월, 스무다섯 살 때 간송미술관에 처음 왔어요. 당시 이 일대는 모두 포도밭이었고, 성북동에서 가장 높은 최신식 건물이던 보화각(寶華閣)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었죠. 사실 간송선생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는 간송이 누군지도 잘 몰랐어요. 그분은 광복 직후 보성고등학교 교장 잠깐 맡은 거 외엔 평생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으니까요. 간송은 일절 소문내거나 드러내지 않으셨어요. 옛말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그러니까 지금껏 간송의 유산이 지켜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사학(史學)을 전공하셨어요?  역사 공부를 안 하면 미술사를 할 수 없어요. 요즘 서양미술사는 물건만 봐요. 식물학도 표본만 보고는 알 수 없잖아요. 미술사 자료 가운데 역사자료는 기록으로 남긴 자료라서 기록자의 시각이 투영돼 있죠. 여차하면 흑(黑)이 백(白)이 될 수 있는 자료란 얘기죠. 개인의 일기조차 자기한테 불리한 얘기는 안 써요. 그러니 역사기록이라는 건 그렇다는 전제를 하고 공부해야 하죠. 이렇듯 미술자료라는 건 한 시대 문화역량의 총아입니다. 내가 늘 하는 얘기지만, ‘이념이 뿌리라면 예술은 꽃’입니다. 그중에서도 미술, 즉 조형예술은 눈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으니, 보고도 믿지 못하면 어쩔 수 없어요. 제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미추(美醜)를 판단 못하면 미술사를 공부할 수 없어요. 그 능력이 있어야 예술사, 미술사를 할 수 있어요. 결국 역사를 알아야 미술사를 알 수 있고 미술사를 알아야 진정한 역사를 알 수 있는 법입니다.
선생님과 일군의 후학을 일컬어 간송학파라고 칭합니다. 간송학파의 학풍은 무엇인가요?  간송학파란 앞서 얘기한 사관(史觀)에 입각해,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우리의 역사를 긍정적인 사관으로 평가하자는 겁니다. 일제 식민사관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기술해놨어요. 우리는 처음부터 슬픈 민족이고, 비참한 민족이고, 정체된 민족이라고 기술해놨어요. 그렇다고 일본사람들이 사료 자체를 날조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여태껏 그 논리에 꼼짝 못하고 끌려 다닌 거죠. 사료를 날조했으면 날조했다고 따질 텐데 그건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세요. 좋은 시기일수록 자신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냉철하게 자기를 반성하는 기록을 남겨놓습니다. 개인도 그렇잖아요. 건전할 때 자기에게 스스로 비판을 가해요. 하지만 망조(亡兆)에 들어가면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태평성대라고 해요. 망조를 이끄는 주역들이 만든 기록이니까, 이때가 좋은 시대라고 기록을 남겨요. 그래서 사실은 양당(兩黨) 이상이 존재할 때가 이상정치 시대예요. 내가 주장하는 진경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였죠. 치열한 당쟁이 전개되던 시기란 말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그때 당쟁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당쟁 당사자들이 기록해놨어요. 그러니까 그걸 보고, 일제가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조선은 당쟁 하다가 당쟁 때문에 망했다고. 하지만 정작 당쟁 때문에 망한게 아니라 오히려 당쟁 때문에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절정기를 맞은 거죠. 이건 현재도 아주 간단한 상식이에요. 양당 이상의 당이 존재하며 서로 견제하면서 이상정치가 이뤄진단 말입니다. 일당 독재를 할 때는 견제세력이 없으니 자화자찬을 합니다. 일당 독재는 망하는 길이에요. 조선도 척족 세도가가 등장해 독재를 하면서 태평성대라고 기록돼있지만, 실제로는 백성은 한정 없이 도탄에 빠져 힘들었어요. 이런 잘못된 역사관을, 그걸 밝히는 게 간송학파의 학맥이고 경향입니다.
그럼 간송학파에 속한 학자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누구누구가 간송학파라고 얘길 할 수 없어요. 내 학풍에 공감하고 내가 인정하는 제자들이 모여서 묵묵히 공부 할뿐이죠. 봄 가을 정기 전시 기간 외에 연구자는 계속해서 공부합니다. 각자 여러 분야를 연구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기 공부를 하는 거죠. 요즘 세태가 마치 홍수처럼 한쪽으로 휩쓸려가는데 거기에 안 쓸려가고 우리의 독자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매번 정기 전시에 맞추어 발행되는 《간송문화(澗松文華)》가 간송학파의 실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1971년부터 시작해서 이번에 87호에 이르기까지 여태껏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지속됐죠. 어떤 국가기관도 하지 못한 일입니다.  《간송문화(澗松文華)》야말로 간송학파, 학풍의 결정체로 봐야죠.
어떻게 변함없이 이렇게 오랜 세월 한결같이 한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을까요? 기본적으로 간송의 정신과 내 생각이 일치해서입니다. 그분과 내가 지향하고 지향하려 했던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서로 대타협을 이뤘다고 봐요. 나의 학문적 지향점을 실현하고 유지하는데 가장 적합한 장소가 이곳이고, 적합한 선구자가 간송이라는 걸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간송이 일제강점기에 전력을 기울여 문화재를 수집하고 지킨 것은 우리 문화의 독자성과 우수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밝히기 위해서였습니다. 나 또한 그것을 평생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간송의 뜻을 이어온 겁니다.
얼마 전 DDP에서 전시가 열리기도 했지만, 과거 간송미술관은 관람객에게 친절하지 않았던게 사실입니다. 불평불만과 요구사항도 많았는데요?  모든 층이 다 만족하고, 만족시킬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간송미술관은 애당초 입장료도 안 받았고, 돈과 상관없이 시작한 전시니 관람객이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기부터 그랬으니까요. 삼성미술관 리움은 쾌적한 공간에 전시물을 오래 걸어놔도 견딜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해요. 각기 형편이 다른거죠. 리움은 리움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이번 <추사정화>전에 처음으로 예약제를 시행했는데, 경험해보고, 실험해보고 개선할 것은 개선해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간송문화재단 쪽 일은 내가 잘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공부하시는 시간 외에 휴일이나 여가활동 등 소소한 일상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휴일이 있을 새가 없이 살았으니까. 공부 안 할 때가 있어야지(웃음) 그저 꽃 기르고 기이한 새 기르고…, 지금은 힘이 부쳐서 다 나눠주고 없어요. 미술사 하는 사람은 당연한 거지요. 취향이 그럴 수밖에 없어요. 아름다운 것을 보면 거기에 취해서 다른 건 안보이니까. 가끔씩 여행이나 고적 답사 가서도 평소 못 보던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주인을 찾아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꼭 분양 받아오곤 했답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운전도 안하시죠?  난 평생 손목시계도 안 차본 사람입니다.(웃음) 그만큼 늘 곁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얘기고, 지금은 완전히 제자들 도움으로 살고 있는 거라고 봐야죠.
완전히 인간문화재시네요?  인간문화재라, 그 이름이 천박해서.(웃음)
후학들 외에 평소 주로 어떤 분들과 교류하시는지요?  많지는 않지만 고등학교시절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고 함께하는 친구가 예닐곱 명 됩니다. 공부하는 일이 외롭고 적적하고 힘들지만, 그때마다 물심양면으로 후원 격려해주는 옹위세력이죠.(웃음) 전시 열어놓고 누가 와도 내려가서 설명하지 않지만 그 친구들한테만은 꼭 설명해준답니다.
외람되고 무식한 질문입니다. 겸재와 추사(의 시대)를 우열(優劣)로 견주어 평가한다면 어떤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요?   겸재와 추사 모두 조선후기 문화절정기를 장식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추사는 조선후기 사회가 멸망기로 접어드는 내리막길이었던 시대를 살았죠. 다시 말해 새 시대를 열어야 할 시기, 즉 진경문화를 일으켰던 조선 성리학 시대를 청산하고 새 사회를 열어야 하는 시기, 새로운 이념의 시대를 열어야 할 당대의 기수 역할을 한 인물이란 말입니다. 반면 겸재는 진경문화를 절정을 열어간 주인공이고요. 진경시대는 청나라를 완전히 라이벌로, 심지어 오랑캐로 여겼어요. 그러면서 조선이 중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진경산수와 풍속화를 창안했습니다. 그런데 추사는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면서, (여기서 추사에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진경사회를 부정해야 하는, 부정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겸재(1676~1759) 사후 약 30년 후에 추사(1786~1856)가 태어납니다. 그토록 단기간에 문화적으로 이렇게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겸재는 추사의 고조부 세대 사람입니다. 충분히 바뀔만 할 시간이죠. 문화란 파도와 같이 늘 변합니다. 문화가 발전했다고 끝없이 지속되는 건 아닌 것처럼, 왕조가 바뀌는 것 역시 문화가 기멸(起滅)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죠. 늘 하는 얘기지만, 내가 역사를 통괄해 보니까 그 기간이 대체로 250년 정도 되더군요. 중국이나 일본은 그 기간에 딱딱 맞게 왕조가 바뀌었는데 우리 조선만 500년 동안 유지됐어요. 우리 선조가 중국문화에 현명히 대처하고 대응, 대항하면서 우리 문화의 독자성을 유지하고 지켜온 거죠. 조선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중국이 문화적으로 앞선 선진이니까,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받아들인 상태로 충분히 소화하면서 250년을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동화되거나 따라가지 않고 심화 발전시켜 우리 것을 만들었지요. 이렇게 조선은 중국 것을 우리 것으로 완성시켜 다시 250년을 살아온 거죠. 성공적인 후기 문화란 항상 ‘고유성’, ‘독자성’, ‘완결성’을 보여줍니다. 조선후기 완결성의 대표적인 결과가 바로 진경산수와 풍속화고, 서예에서도 그 완결판을 보여주는 게 바로 추사의 추사체입니다. 물론 진경시대에 ‘동국진체(東國眞體)’가 있었고, 그것이 있었기에 추사체라는 세계적인 서체를 완성시킨 거지만, 중국 역대 서법의 특징과 장점을 융합해 추사체를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더 주목해야 합니다. 이렇듯 추사는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서 우리 독립성을 처음부터 이뤘지요.
결국 추사 쪽으로 조금 기우시는 군요.(웃음) 추사를 연구할 때는 안타까워요. 겸재를 연구할 때는 갈수록 신바람이 나는데 말입니다. 겸재는 우리문화가 절정기 독자성 발현할 때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추사는 아쉬워요. 자꾸 망조로 들어가니까 공부하며 아주 힘들어요. 추사 개인사적인 입장에서도 비참해서 참 안타깝고 마음 아파요. 반면 겸재는 시대를 정말 잘 만난 사람이죠. 겸재는 기세가 하늘로 뻗는 시대를 만났고 추사는 내리막길을 만난 사람이잖아요. 새 시대의 기수를 자처하기에 딱 좋은 시기였으나, 좌절당하고 그러면서 나라는 망해가고….
요즘 화가들이나 그들의 그림을 보면 어떠신가요.  새로운 화풍을 창조한다는 것, 새로운 예술의 경향을 창조해서 이끌어가는 사람은 결국 인문학자, 선비들이에요. 생각할 능력이 있고 이념을 자기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일컫는 거죠. 선진 문물이나 전통을 자기 나름대로 제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인문학자입니다. 일반 기술자는 이념기반이 없어서 진정한 의미의 창조를 못 합니다. 단원이나 혜원 같은 사람은 창조자라기보다는 화려한 대미를 장식한 사람이죠. 화려한 기법, 기교를 부려서 마무리는 짓되, 새로운 기법을 창조하지는 못했어요. 지금 그런 분위기를 바꾸려면 인문학자인 화가가 나와야하는 데, 그건 이념기반이 확립되기 전에는 불가능해요. 앞서도 얘기했듯, ‘이념이 뿌리고 예술이 꽃’이에요. 지금은 뿌리가 형성이 안되어 있어요. 지금 세상은 완전히 미국뿌리를 옮겨 논 상태에서 미국뿌리로 살고 있어요. 요즘 화가들은 동양화 그리라면 미국 동양화를 그려요. 발상이 그렇고 사고한계가 거기 있으니까 좋은 그림이 안 나와요. 한편으론 이런 상황은 자연스러운 이치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하면 미국 따라갈 수 있을까 거기 모두 매달려 있어요. 하지만 나는 그걸 무작정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지는 않아요. 이게 우리 문화 발전의 동력이에요. 이 과정을 거쳐야 우리문화의 독자성이 나오게 돼요.
아이쿠! 이번호에 함께 실릴 손동현 작가 작품 보시면 놀라시겠네요.(웃음)  지금 내가 하는 이런 주장은 욕 얻어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아요. 남보다 상당히 앞서 있으니까.(웃음)
외국 여행은 가보셨나요?  한 번도 가본 적 없어요. 불상 연구할 때도 한 번도 안 가봤어요. 그래서 내 불상 연구를 가짜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웃음) 그렇다면 할 말 없지만,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서울 얘기 더 잘해요.(웃음) 우리의 공부 경향이라는 게 외국 가서 공부해야 제대로 된 공부고 국내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안 가도 할 수 있다는 오기가 있었어요.
밤늦게까지 공부하시나요?  아니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요. 옛날 선비들도 그랬어요. 승려들이 그렇듯이 술시(戌時, 저녁 7~9시)에 자고 인시(寅時, 오전 3~5시)에 일어나요. 뭐든지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 그래요.
오랜 말씀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 찍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은 두루마기를 입고 찍어야 하는데…. 대담할 때는 상관없지만, 이 저고리는 속옷 차림이니까.(웃음) 이준희 편집장

가헌(嘉軒) 최완수는 194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4월부터 간송미술관에서 근무하며 연구실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제10회 일민문화상(2012), 제21회 위암장지연상 한국학부문(2010), 우현학술상 미술사분야(2010) 등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추사집》, 《우리 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 1, 2》,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 《겸재의 한양진경》, 《겸재정선》 등이 있다.

 

[Hot People]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윤진섭

“아시아 미술비평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2014 국제미술평론가협회 학술대회 및 총회(2014 AICA International Congress Korea, 아래 사진)’가 10월 8일부터 16일까지 수원 라마다호텔과 SK아트리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등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올해 47회째를 맞은 이번 대회는 32개국에서 모인 국제미술평론가협회(Association Internationale des Critiques d’Art, 이하 ‘AICA’) 회원 58명을 비롯, 비회원까지 총 145명이 참여했다. 유네스코(UNESCO) 산하단체인 AICA는 1950년 창설, 현재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62개국 4600명의 회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비영리 미술비평 단체다.
한국에서는 처음 개최된 이번 대회는 국제적인 비평대회가 전무하다시피한 한국 현실에서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이번 AICA 총회와 함께열린 AICA 어워드를 통해 故 이일이 특별공로상을, 이선영이 젊은비평가상을 받았다.
이번 AICA 총회를 계기로 이 단체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윤진섭 전 호남대 교수를 만났다. 대회 준비부터 본대회 진행과 기조발제, 마무리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는 윤 부회장은 다소 피곤한 얼굴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전날까지 이번 총회에 참여한 AICA 회원 30여 명과 함께 타이베이비엔날레 등을 참관하고 막 귀국한 터였다.
일단 이번 서울 총회를 마무리지은 소감을 물었다. “보통 AICA 회장직에 입후보하면 공약 일순위가 자신이 속한 국가에서 총회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나도 회장직에 입후보하면서 그러한 공약을 했던 터라 어찌 보면 서울 총회는 개인적으로도 숙원사업이었던 셈이다. 이는 1986년 故 이일 선생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AICA에 가입한 후 30여 년 만에 이룬 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전 세계 면적과 인구에서 3분의 2를 차지하는 아시아가 비평에서 변방 취급당하는 것에 대해 늘 아쉬웠다고. 그래서 서울대회는 이러한 선입견을 깨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추진했다. “2004년 타이완에서 총회가 열린 이후 10년 만에 아시아에서 열린 총회이다. 그래서 이번 대회를 AICA가 아시아로 확장하기 위한 전진기지 구축의 모멘텀으로 삼았다. 현재 AICA 국가지부 중 아시아에 속한 곳은 한국을 비롯 일본, 싱가포르, 타이완, 파키스탄 정도다. 중국, 홍콩, 인도도 국가지부가 아닌 회장 관할의 프리섹션으로 분류되어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AICA는 미국과 유럽 국가지부를 중심으로 회장이 선출되는 등 지역적 편중현상이 심화됐다고 한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아시아를 통해 AICA의 지역적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AICA 총회에서 회장직에 출마했다. 기폭제가 될 요량으로 말이다. 다행히 이번 서울대회에 대한 평가가 좋다.”
최근 그는 16년간 재직한 학교를 그만두었다. 바쁜 스케줄 때문이다. 오래 재직하며 정든 만큼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을 터. “원래 결정하면 감행하는 스타일이라.(웃음) 그런데 오히려 더 바빠졌다. 비평은 비평대로, AICA 부회장직과 시드니대학교 명예교수직은 또 그대로 충실해야 한다, 또한 작가로서, 기획자로서 전시도 열고 있다. 일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윤진섭을 정의하는 직책은 비평가이다. 현재 우리 비평의 현황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미 2005년 아시아비평포럼을 만들어서 그 문제를 제기했다. 포스코빌딩에서 열렸던 <비평의 위기: 미술비평과 전시기획 사이>를 통해서 말이다. 국공립미술관 큐레이터의 힘은 현장에서 커지는 반면, 비평은 그렇지 않다.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비평이 힘이 있었고 작가가 미술운동에 앞장서서 작가 기획전시가 즐비했다. 현재와 같은 비평의 퇴조는 미술계 상업주의의 확장과 관련이 있다. 힘의 균형추가 이동해서 그렇다.”
한편, 작가로서 그는 현재 윤진섭이라는 본명 외에 ‘왕싸가지(四家之王)’, ‘한큐(HanQ)’, ‘빈들 빈들(Vindle Bindle)’ 등 수많은 예명을 만들어 장르별로 바꿔서 활동하고 있다. 이를 두고 그는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라 말했다. “추사 김정희는 300여 개가 넘는 자와 호가 있으며 서구 현대미술을 뒤집은 뒤샹은 로즈 셀라비라는 예명을 썼다.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 까닭이다. 이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꺾인 인간의 자유를 찾는 행위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저항해야 한다는 강변의 표출이다.”
총회는 끝났고 손님은 돌아갔다. 이제 남은 일을 물었다. “총회 백서를 내야 하고, 비평집을 내야한다. 또 故 이원일 큐레이터의 추모전으로 ‘한중일 미디어아트전’을 공동으로 기획 중이다. AICA의 노쇠함을 극복하기 위해 ‘아시아비평포럼’도 그 논의의 장을 확장할 계획이다.” 여기까지가 두 달 남짓 남은 올해 그의 계획이다. 황석권 수석기자

2014아이카어워즈

윤진섭은 1955년 충남 성환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미학과(석사), 호주 웨스턴 시드니대(박사)를 졸업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비평 당선(1990),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1회, 3회), ‘상파울루비엔날레’ 국제전 커미셔너, 제3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전시총감독 등을 역임했다. 《행위예술감상법》(1995), 《미술관에는 문턱이 없다》(1997), 《현대미술의 쟁점과 현장》(1997), 《한국 모더니즘 미술연구》(2000) 등 다수의 공저가 있다. 호남대 교수,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이다.

[Hot People] 타이페이 비엔날레 2014 총감독 니콜라 부리요

 

 

“관계항을 확장시켜라”

1990년대 니콜라 부리요가 현대미술 비평서《관계의 미학(Relational Aesthetics)》을 출간했다. ‘관계의 미학’은 1990년대 미술에서 나타난 새로운 시도들을 예리한 관점에서 바라본 시기적절한 비평적 키워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해석될 수 없는 현대미술의 작가군을 설명하는 새로운 방식의 제안이었다. 현재 매우 영향력 있는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리크릿 티라바니자, 리암 길릭, 피에르 위그,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은 《관계의 미학》에서 언급된 후 미술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반면에 니콜라 부리요가 제시한 비평이론에서 ‘인간 상호관계(inter-human relationship)’ ‘참여미술(participatory art)’등의 특징을 호출한  몇몇 이론가들은  날선 비판을 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된 이 현장비평 이론은 현재까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니콜라 부리요는 이후 계속되는 전시(<플레이리스트>(2004, 팔레 드 도쿄), <2009 테이트 트리엔날레>(2009, 테이트 모던)와 이를 근간으로 한 비평서 (《포스트프로덕션)》(2002),《   레디컨트》(2009)) 출간을 통해  개념을 발전 및 확장시키면서 새로운 모색을 꾸준히 하고 있다. 최근 그는 자신이 감독한 타이베이 비엔날레 2014에서 새로운 개념인 ‘Exform’을 제시해 재주목 받고 있다. 《월간미술》은 지난 10월 13일 삼성미술관 리움개관 10주년 강의를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지금까지 제시한 일련의 개념과 최근 전시에서 제시한 새로운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관계의 미학》이 출간된지 어느덧 약  20년이 흘렀다. 당대의 미술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으로서 제시했던 ‘관계의 미학’이 오늘의 미술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가.  세월이 흘러도 의미는 같다고 본다. 사실 이는 《   관계의 미학》에 주로 등장하는 1960년대 출생 작가들의 삶의 배경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관념이 사라지고 동네슈퍼가 아닌 대형마트가 출현하는 새로운 시각환경의 산업사회구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다. 이들은 1990년대 서비스 중심 사회로 접어 들었을 때 인간상호 관계만이 완전히 상업화, 상품화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영역이라 생각했다. 당시의 작가들은 이 점을 매우 정확히 꿰뚫었고 이 상업화 경향에 대해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들은 미술에서 만큼은 시장과 거리가 먼 새로운 형태를 만들려고 애썼다.  결국 ‘관계의 미학’의 의미는 같다. 하지만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외려 확장되었다. 내가 《   관계의 미학》을 저술한 1998년만 해도 스마트폰, SNS는 존재하지 않았고 인터넷도 지금처럼 확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기계는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하게 자리 잡았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전시 <교감>은 ‘관계의 미학’에 기반을 두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전시에 일명 ‘관계의 미학 작가들’(리크릿 티라바니자, 리암 길릭 등)이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전시가 ‘관객 참여’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는 인상도 든다. 사실 관계의 미학이 참여미술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관계의 미학’을 처음 제시한 큐레이터로서 이번 전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생각에 <교감전>의 핵심은 ‘대화(dialogue)’인 것 같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대화 말이다. 특히 바이런 킴의 청자 유약색 회화와 고려청자, 마크 로스코의 작품과 고려불화가 함께 놓인 구성은 전시의도가 잘 살아난 큐레이팅이라 본다. 반면 리크릿 티라바니자와 리암 길릭 등의 작품이 있는 기획전시실과 로비의 전시는 비교적‘관계의 미학’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하지만 ‘참여’는 ‘관계의 미학’의 일부일 수 있지만 결코 필수적인 개념은 아니다. 내가 관계(relational)라고 말한 것은 예술에서 이론적, 형태론적으로 인간상호 관계(inter-human relationship)의 장을 여는 시작점을 뜻했다. 이는 일종의 ‘생산의 형태’다. 예술가는 어떤 구조를 통한 사회적 만남을 만든다. 특별한 방법과 미학적 의미에서 ‘관계’는 전시 자체의 관객 참여 여부보다는 전시 이전, 중간,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일종의 열린‘장’이다. 그러므로 훨씬 포괄적인 의미이다.
전시감독을 맡은 타이베이 비엔날레 2014 는, 당신이 기존에 제시한 인류 상호(inter-humanity) 관계의 범위가 확장된 듯 보인다.
타이베이 비엔날레 2014를 준비하면서 ‘인터넷상에는 인간보다 로봇의 개체수가 더 많다’는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생태학적 알고리즘과 로봇의 관계는 충분히 이야기될 만하다. 기계와의 대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러한 기계의 알고리즘에 ‘관계’가 직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계의 미학’의 원본적인 개념을 우리의 새로운 세계에 좀 더 생태학적인 측면에서 보고 다가가려고 했다.
타이베이 비엔날레 2014에서 선보인 개념을  Exform이라는 용어를 앞세워 곧 책으로 출간한다고 들었다. 그동안 포스트모더니즘의 실체 없는 불가해성을 이야기하며 모더니즘 안에서 대안을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번에 제시하는 개념 Exform을 대안적 모더니즘(얼터모던)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전시는 알터모던을 포함한다. 모든 전시는 그다음 전시를 수반하는데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9년 기획한 테이트 트리엔날레의 연장선에 있다. 물론 다음 전시를 준비하면서 되돌아보면 내가 이전 전시를 준비하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전시들의 어떤 연결성말이다. Exform의 영향을 준 인류세(Anthropocene)는 훨씬 폭넓은 개념이다. 이는 환경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 준다. 전체성과의 관계 말이다. 알터모던(Alter-modern)이 ‘문화적 재평가와의 관계’였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즉 규모나 범주에서 알터모던과 다르다.
인류세(Anthropocene)에 대한 설명 부탁한다. 인류세(Anthropocene)란  1980년대에 대두된 과학용어다. 즉 후기빙하기 시작 이후 약 1만 년간 인류의 활동이 지구의 생물권에 영향을 미쳐온 시간의 발생을 말한다. 인류가 세계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인데 이 개념에는 자명한 모순이 있다. 우리의 변화가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삶에서는 우리를 해치고 있고 개인의 무력감은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컴퓨터화된 경제시스템에 직면한 인간은 자신이 만든 인프라스트럭처의 희생자이자 방관자가 되고 있다. 우리는 개인 혹은 시민과 종속계급 사이의 전례없는 정치적 연합이 출현하는 시대의 목격자들인 셈이다. 기계 산업 시스템은 시민사회와 확연히 분리된 구조다.
결국 과학용어인 인류세(Anthropocene)의 개념을 철학용어인 사변적 실재론(speculative realism)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면서 논의를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사변적 실재론(speculative realism)은 철학적 동향으로,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완전한 평등을 말한다. 그리스철학에서부터 데카르트의 ‘코기토 아고숨’까지 인간의 사고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인간중심주의)는 서양철학의 오랜 개념이다. 즉 인간이 경험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만이 존재할 수 있었다. 사변적 실재론은 객체를 넘어서는 인간의 사고 우위를 비판한다. 사변적 실재론의 대표적 학자인 그레이엄 하만의 ‘객체지향 존재론(object oriented philosophy)’이나 레비 브리언트의 《  The Democracy of Objects》에서 이들은 형이상학적 자율성을 부여해 의식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객체를 시도한다. 다른 요소들 간에 계급이 없는 존재론(flat ontology)을 주장하는 것이다. 정치적 의미로서 사변적 실재론을 해석하자면, 이는 pre-marxist의 상황이다. 내 생각에 그 배경은 자본주의의 논리적 결말로도 분석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것은 객체가 된다. 우리는 모두 물질/객체(object)고 거기에는 어떤 인식도 없고 각 물질/객체 간의 변형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술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뒤섞임의 장을 연다. 결국 사변적 실재론이 제안하는 존재론은  Exform의 새로운 예시가 되고 이는 현대미술에 주요한 영향을 끼친다. 모든 객체가 같이 놓일 때(flat ontology) 오직 예술만이 예외적인 상황을 즐길 수 있기에 객체는 예술 속에서 변주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이베이 비엔날레2014는 관계의 미학의 이론적 내용과 사변적 실재론 사이의 대화라고 볼 수 있다.
당신의 미학은 미학화한 정치, 정치적 미학이라는 표현으로 묘사된다. ‘정치적’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미술을 읽는 방법 및 시각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당신에게 ‘정치적인 것’이란 어떤 의미인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알랭 바디우가 철학에 대해 설명하며 “세계는 철학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은 사고의 방식으로서 스스로 변화한다”라고 한 말을 깊이 생각한다. 예술은 예술 내부의 변화로서 세계를 바꾼다. 어떤 정치적인 콘텐츠나 발언보다 예술 스스로의 변화가 더 정치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다. 그들은 예술을 정치적으로 생산해낼 수고 혹은 작품에 정치적 해설을 부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이페이 비엔날레2014에서 정치적이란 말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앞서 말한 인류세(Anthropocene)의 명백한 역설은 상기시키는 바가 크다. 즉 자연, 기계, 인간 간의 역할과 관계 맺기가 “정치적인 것”이다. 모든 관계는 정치적인 것의 메타포다.
‘예술이 보다 더 직접적인 표현으로 일종의 ‘정치적 선언서’ 역할을 해야한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술작품은 늘 정치적인 것에 대한 해설이다. 그러나 한 시민으로서의 입장과 생산자로서의 예술가가 취하는 내용은 다를 수 있다. 작가가 정치적인 내용을 포함한다고 그 인물 자체가 진보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정치색과 작품 속 정치적인 내용을 다루는 것은 일치되지 않고 혼동되고 섞일 수 있다.
글로벌한 이슈를 다룬다. 동일한 개념을 다른 지역에서 전시한다면 그 의미와 표현이 동일하게 이해될 수 있을까.  우선 이번 타이베이 비엔날레2014의 주제는 대만의 상황에서 고안했다. 현재 대만은 동서양의 대화에 대한 그들의 관심, 즉 에고(ego)를 중심으로 하는 서양철학적 근간과 그 외의 다양한 시각적 측면을 다루는 수많은 타래의 동양철학 사이 어디에도 발을 내디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역성은 전시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비엔날레의 특성상 지역 작가들의 전시참여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동안 많은 비엔날레를 진행해왔다. 당신의 전시기획 방식이 궁금하다. 또한 아직까지 비엔날레가 현대미술을 보여주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어떤 전시도 구상의 시작점은 이미지로부터 나온다.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아이디어의 언어들을 생각해낸다. 그 후 이들을 건설할 나의 시각을 구축한다. 사실 내가 구상한 대로 정확히 되지는 않는다. 마치 영화를 찍을 때 구상을 하고 크랭크인을 하더라도 촬영을 하면서 여러 요인에 의해 시나리오가 중간 중간 변경되는 것과 같다. 현실적인 예산, 지역, 상황 등 현실적 문제와의 싸움에 끊임없이 봉착한다. 나 역시 비엔날레가 가진 특정한 의미에 대한 인식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비엔날레가 열린다. 전시는 단순히 같은 장소에서 작품을 나열하기보다 그 속에 많은 지적인 주장이 담겨 있어야 한다. 물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장소의 우연성에 기댄 전시를 이끄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대안적 비엔날레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자문하고 있다. 임승현 기자

니콜라 부리요는 1965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큐레이터이자 평론가, 이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제롬 상과 함께 팔레 드 도쿄의 공동 창립자로 1999년부터 2006년까지 공동 디렉터를 역임했다. 1990년부터 베니스비엔날레, 리옹비엔날레 테이트 트리엔날레 등 다수의 비엔날레 감독을 맡았으며 최근에는 타이베이비엔날레 2014 의 감독을 맡았다. 현재 파리 국립미술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의 디렉터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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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관계’의 장을 여는 작가 리크릿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

리크릿 (6)“작품을 통한 메시지의 강요를 원하지 않는다”

‘팟타이’작업으로 크게 이름을 알렸다. 그 이후 작업을 하면서 부담감은 없었는가.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고 나서 그에 대한 짐을 갖지 않는다. 수많은 명작을 남긴 피카소가 어떤 작품을 끝내고 난 후 부담감을 가졌겠는가. 내 작업들 사이에 간극을 만들어 오히려 사람들에게 혼동을 주는 작업을 보여주고 싶다. ‘팟타이’작업을 이어가고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짐이 될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 예상하지 못한 것을 만들어 작은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넓은 생각을 펼치게 하고 싶다.
팟타이를 만들어 나눠 먹고, 티셔츠를 제작해 거리로 나가는 등 기존 미술관의 전시 틀에서 벗어난 다양한 형식으로 전시를 이어왔다. 화이트큐브 전시와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인가.
매체보다는 소재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나의 작업 소재는 ‘삶’과 ‘삶 속의 시공간’이다. 전시와 작업의 장소는 중요치 않다. 예술적 경험이란 ‘무엇이 예술이 될 것인가’에 대한 것인지 ‘무엇을 만들고 보여주냐’에 대한 것이 아니다.
당신 작업은 끊임없이 유동(flux)하는 것 같다.
내 작업은 변화하고 부유한다. 사실 예술은 상품화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예술을 특정 장소에 두고 소장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예술이 분명 존재한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무한히 확장가능하지 않은가.
‘관계의 미학’에 해당하는 작가들의 작업이 정치적 유토피아를 나이브하게 펼친다는 비판적인 견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모두는 사람들이 삶을 이해하도록, 그래서 더 자유롭게 되기를 바란다. 그 방법은 다양한데 그중 하나가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자유란 무엇인지를 교육학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서구적인 헤게모니다. 나는 동양적인 방식으로 접근했다. 모든 것은 자기 내부에서 일어난다. 스스로 내린 결정은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 결국 정치적 자각은 내부에서 일어난다. 차를 나눠 마시며 그 차가 시작된 식물에서부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정치적인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적인 것은 특정 그룹의 의견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어야 한다. 장을 여는 것까지가 나의 작업이다. 나머지는 관객의 몫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관계의 미학》을 읽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분류하는 작업은 작가가 아니라 이론가와 세상이 하는 것이다.
현재 준비 중인 작업이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인위적인 개입없이 식물이 스스로 자라도록 하는 방식의 식물 키우기에 푹 빠져있다. 나의 사고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3년 전부터 타이완에 사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제작 중이다. 얼마 전 퇴직한 농부에 대한 작업을 마친 상태다.
임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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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리움 <교감전>에 설치된<데모 스테이션 N.5> 2006~2014

 

[Sight & Issue]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2014: 옆으로 자라는 나무

자연을 품은 예술, 예술을 품은 자연

공주 금강변을 따라 모래사장과 강물이 햇볕에 반짝이고, 강변의 모래땅에는 나무와 풀들이 제각기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공주보(洑)가 설치되고 수변공원이 조성되면서 모래사장은 사라지고, 땅에서 자라던 나무와 풀들은 물속에 그 뿌리를 박게 되었다. 천변을 따라 난 사람의 걸음을 닮은 산책길과 그 주변에 자라던 야생화의 고운 시선과 향기들도 시멘트 블록과 자갈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사라졌다. 그런데 공주 금강변의 과거와 현재의 풍경 사이에 지속적인 관계를 생성시키는 자연미술운동 그룹이 있다. 1981년 여름, 젊은 작가들이 금강 백사장에서 만나 ‘자연의 품에 예술가의 몸을 던지기’를 약속하며 의기투합한  그룹 ‘야투(野投)’다. 고승현, 허강, 임동식, 정장직, 이종협 등 당시 청년작가들은 1970년대 개념미술, 대지미술의 유행과 추종적 행위로부터 벗어나 예술가의 원초적인 몸짓에 초점을 맞추었고, 예술의 형식이나 개념을 창출하기보다는 예술가와 자연의 순환적 관계, 예술가 자신의 주된 방법론을 벗어나 자연과의 동화와 생성적 감응을 예술창작의 원동력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러한 자연미술운동은 1991년 첫 국제전을 시작으로 2004년  <제1회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를 개최하고 2014년 6회를 맞이했다. ‘야투’ 그룹운동의 역사는 33년에 달하고, 국제전으로서는 23년을, 비엔날레로서는 11년이라는 짧지 않은 역사를 갖게 되었다. 현재의 전시에 부쳐 긴 과거사를 짧은 지면에 설명한 의도는 자연미술운동이 오늘날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 무엇을 생산하고 있는가?를 되묻고자 함이며 현행의 다양한 비엔날레 중 하나인 이번 전시를 통해 어떻게 그 의미를 생성시키고 차이를 발생시켜 나아갈 것인지가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4년 현재 공주 금강변 자연공원은 올해 설치된 작품과 2012년에 설치된 작품들이 금강의 자연-작품-풍경을 이루고 있어 일회성 전시와는 사뭇 다른 감상을 제공한다. 자연미술이 갖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적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되며 자연과 동화되는 작품들과 인간의 환경개입과 파괴로 인해 생명의 질서를 벗어나 언제든 소멸해버리는 자연세계가 한 공간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이번 <6회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2014> 전시총감독 김성호는 “우리에게 자연에 대한 피상적이고도 관성적인 인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순환과 네트워크의 자연 본성을 성찰하게 만드는 하나의 화두”로 ‘옆으로 자라는 나무(Horizontally growing trees)’를 제안했다. 주제 안의 키워드 ‘옆으로’는 ‘대결’이 아닌 ‘조화’를 도모하고, ‘하나’가 아닌 ‘더불어’를 지향하는 자연의 근원적 본성에 관한 하나의 메타포임을 강조한다. 자연이 미술 표현의 대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 자체가 미술 안에서 직접 작용하는 실험적 태도를 중시한다. 이 주제 아래 본전시-숲(林)과 특별전-비밀정원을 기획하고, 부대행사로 어린이자연미술전, 시민강좌, 취약계층을 위한 특별프로그램 등의 참여프로그램과 쌍신공원,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의 상설전시를 마련하여 자연미술운동에 대한 폭넓은 체험과 이해의 기반을 구축한다. 공주 금강변의 쌍신공원(야외)에 마련된 본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26명이, 특별전(실내전)에는  12명이 참여한다.
본전시 ‘숲’은 복수성, 유목성, 우연성, 메타포적 자연미술 등을 내용으로 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베티노 프란치니(Bettino Francini) 작가의 <안(inside)>은 인간과 자연의 재결합을 시도하는 작품으로 아슬아슬 수면을 걷듯 그물다리를 지나 물고기의 몸으로 들어가면 강의 세계를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인공물이 자연에 대한 신체적 경험을 제한하는 것과 달리 작품을 통해 자연의 내부로 직접 들어가 보는 신체적 경험을 제공하고 인간이 본디 자연과 하나였다는 감각을 다시 일깨운다. 허강 작가의 <흐르는 나무(Flowing Tree)>는 강물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나무나 식물, 열매를 상기시킨다.
노란색 부표로 제작한 이 작품은 물의 흐름과 바람에 의해 유동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을 인식하게 한다. 제임스 에드워드 토윌리스(James Edward Towillis)의 작품 <MC2=E>는 나무를 둘러싼 큐브와 빈공간을 드러내는 큐브를 병렬설치한 작업으로 ‘나무와 인간=에너지’ 혹은 그 역이 주제다. 관객이 빈 공간을 채우는 인간-오브제로서 작품의 일부가 되고 자연과의 관계성을 경험케 한다.  특별전 ‘비밀정원’은 “자연의 소소한 요소들이 확산해서 또 다른 전일체 구현”이란 형식에서 ‘인공(일상) 안의 자연’과 ‘자연 안의 인공(일상)’을 오고가며 탐구한다. 이이남 작가의 <옆으로 자라는 산>과 이명호 작가의 <사진-행위 프로젝트>, 석리(Seok Lee) 작가의 <공공연한 반항 II> 등은 테크놀로지와 미디어아트가 그릇이 되어 자연을 담아낼 뿐 아니라 자연물과 아날로그적 사유가 그릇이 되어 일상과 인공을 담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트랙터마차를 타거나 걸어서 전시장 곳곳을 탐색하는 중에 고승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위원장은 올해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를 모태로 추진한 “글로벌 노마딕 프로젝트-자연미술 프로젝트”의 중요성과 차이성을 강조했다.
필자는 세계의 자연미술 관계자들이 집결하는 이 프로젝트에서 인간에 의한 자연의 훼손 내지는 생태의 위기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극복하고, 보다 건강한 삶의 조건과 환경을 복원하고자 하는 염원과 의지가 충만함을 느꼈다. 만연한 비엔날레의 관행으로부터 탈주하여 신선한 대안을 찾고자 하는 세계 자연미술가들이 함께 하는 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자연미술운동의 참뜻을 지속적으로 확장할 것이란 기대를 품게 되었다. 황찬연・대전시립미술관 객원큐레이터

제임스 에드워드 토윌리스 (나무/인간/바위=에너지) 2014

제임스 에드워드 토윌리스 <MC2=E>(나무/인간/바위=에너지) 2014

베티노 프란치니   혼합재료 설치 2014

베티노 프란치니 <안(inside)> 혼합재료 설치 2014

 

[Sight & Issue] Moving Triennale Made in Busan

무빙트리엔날레 메이드인 부산

부산의 중심에서 대안을 외치다

<무빙트리엔날레_메이드인부산전>은 부산의 미술단체와 공연예술, 인문학 단체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번 전시는 9월 27일부터 10월 26일까지 부산연안부두터미널을 본전시장으로 하고 용두산공원 입구 (구)노인복지회관, 원도심창작공간 또따또가, 부산지방기상청, 복병산 창작여관, 하동집 등 부산일대에서 열렸다. 다양한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인 만큼 프로그램도 다양했다. <Last Exit-가방, 텍스트, 사이트 프로젝트>를 비롯해, 공연과 학술행사, 그리고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복합 프로그램 등이 진행됐다.
취재를 위해 찾은 부산연안부두터미널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한산했다. 과거 인근 도서지역으로 향하는 배가 출항하던 곳이지만 거가대교 개통 등으로 그 기능이 축소돼 매우 한산했다. 전시는 과거 여행객의 승선편의를 위해 설치된 길이 240미터에 달하는 무빙워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지금은 가동을 중단했지만 과거 섬과 뭍을 오가던 수많은 이의 족적이 아로새겨진 곳이다. 전시에 참여한 100여 명의 작가는 ‘여행용 가방’을 매개로 작품을 출품했다. 이를 보면 본전시는 장소 특정적 작업들로 채워진 것 같다. 전시 장소가 부산을 대표하는 항구에서 산 꼭대기까지 고루 분포하니 그렇게 생각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하겠다. 그러나 이번 전시 주제는 ‘무빙’은 아니다. 전시감독인 김성연 전 대안공간 반디 대표는 “무빙은 전체 ‘행사명’일 뿐입니다. 공간의 특성에 따른 전시구성과 추후계획 등 무빙을 전제로 진행되기는 하지만, 출품작가들은 지극히 사적인 문제나 일상 등을 가방 속에 담아 표현하고 있어요.  다만 가방이 여행과 이동을 전제로 하니 무빙과도 연관되어 있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네요”라고 설명했다. 기계적인 해석을 경계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작가에게 주어진 제안은 오로지 가방을 매개로 할 것이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시각적 효과나 미학적 관점으로 작품의 수준을 논하기는 곤란한 성격”임을 전제로 했다. 그렇다면 출품작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 수 있겠지만 수준차를 논한다는 것은 전시의도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그래도 무빙워크를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장소가 주는 아우라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가방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마치 멀리서 여행 온 이방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과 관객의 괴리는 오히려 작품 내부를 관찰하게끔 유도하는 또 하나의 장치가 된다.
이번 전시가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선정 과정에서 빚어진 일련의 잡음과 무관하지 않다. 무빙트리엔날레의 김성연 전시감독이 바로 그 문제의 핵심에 있었고,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단체가 부산비엔날레 보이콧 선언을 하면서 무빙트리엔날레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국내외 40여 개 문화예술단체와 300여 명의 작가가 동참했다.
김 감독은 이에 대해 “부산비엔날레의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지역의 단체들이 모여 행사를 계획한 것으로 알고 있고, 이들로부터 제안을 받은 것은 맞습니다”라면서도 “그러나 이번 행사가 비엔날레의 ‘안티’라기보다는, 이러한 시도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대안 제시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래서 전시만을 두고 평가하기보다 인문학과 공연 등 여러 장르가 혼재되어 벌어지는 전체 프로그램을 두루 살피고 그 맥락을 살펴야 이번 대회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시로서 비엔날레의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다양한 층위의 예술적 시도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의미가 큽니다. 소모적이거나 일회적이지 않으면서 많은 예술인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준비과정에서 벌어진 다양한 논의와 협업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참여 작가의 층위와 지역도 다양하다. 130여 명의 작가 중 부산 출신 작가는 30여 명 정도이며 나머지 작가는 비영리 활동을 하는 국내외 기획자들의  추천을 받았다. 따라서 무빙트리엔날레를 부산비엔날레에 반하는 전시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김 감독은 말했다. 다만, 전시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부산’이라는 도시의 속살이었다며, 만약 부산이라는 지역성이 강하게 느껴졌다면 이 행사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낸 반증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제 전시는 끝났다. 이 대회가 지속성을 갖는 대회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지역의 단체들과 예술가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다 3년에 한 번씩 회합해 행사를 지속하자는 취지의 트리엔날레지만, 조직이나 예산 등 아직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가방프로젝트의 경우, 연내에 다른 국가, 다른 도시로 ‘무빙’할 것을 계획 중입니다. 그 도시의 예술가와 시민들이 참여하여 가방 속에 그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또 텍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그 지역 예술인들의 생각을 추가해서, 지역과 지역을 이동하며 여행을 하다 3년 후에 다시 돌아오면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 감독이 남긴 마지막 말이 3년 후 어떻게 실현될지 궁금하다.부산=황석권 수석기자

이창진  2014

이창진 <캐리어에는 짐만 넣어지길 바란다.> 2014

 

 

[Sight & Issue] Jirisan Project 2014: Universe-Art-Zip

2014 지리산프로젝트:우주 예술 집

지리산, 우주를 품다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산은 지리산(智異山)이다. 전라남북도, 경상남도에 걸쳐 있는 지리산은 백두대간의 종착지라는 지리적 의미와 우리 현대사의 질곡의 장였던 역사적 의미가 깊은 이른바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지리산을 배경으로 예술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지리산프로젝트추진위원회(예술감독 김준기)가 주관한 ‘지리산프로젝트 2014: 우주예술집’이 바로 그것. 이 프로젝트는 10월 3일부터 11월 2일까지 남원의 실상사(南原 實相寺), 산청의 성심원 그리고 하동의 삼화에코하우스에서 각각 나눠 열린다. 참여작가는 총 30여 명(팀)이다.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의도는 “개인과 공동체와 자연의 생명평화의 가치를 담아 우주를 품는다”이며, 개별의 집합체로서 우주가 되듯 모든 가치를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이에 특정예술, 융합예술 그리고 서로예술이라는 3가지 방향성을 제시하여 전시로 구체화했다.
먼저 실상사를 찾아 전시 관람을 시작했다. 알려졌다시피 실상사는 신라시대(828년)에 창건되어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3층석탑을 비롯 국가지정 보물을 품은 천년고찰이다. 그러한 실상사가 이번 지리산프로젝트를 통해 품은 작품은 오랜 시간의 켜를 현재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작가가 풀어내거나, 분열을 극복하고 상호 ‘존중’의 가치를 담아내는 내용으로 설치된 것들이다. 이에 현재 실상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발굴현장을 기록하고(장유정, <천년 묵은 먼지>), 구(舊) 해우소(解憂所)에서 사찰 주변에서 채집된 소리를 재생하거나(정만영, <실상사의 소리풍경>), 불상의 광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김기라, <광배프로젝트>) 등의 작품이 선보였다. 또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이들의 원혼을 달래고(장영철, <실상사 기도소>/안상수 마고 신믿음, <생명평화깃대, 빛 304>), 타인과 상처에 대한 인간의 마음을 탐구한(천경우, <하늘이거나 땅이거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발걸음을 산청으로 옮겼다. 이곳에 위치한 성심원은 개원한 지 50여 년이 지난 곳으로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이룩한 마을이다. 강제적으로 격리되었던 한센병 환자의 한과 원이 서려있는 이곳은 현재 지리산 둘레길과 연결돼 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한센인들이 생활하던 공간은 작가들의 레지던스 공간으로 변모했다. 성심원은 지리산을 매개로 만난 이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등 주변 커뮤니티와 교류가 활발하다. 이곳에 이방인과도 같은 작가들이 또 하나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그 결과를 전시에 담았다. 오늘과 내일이 별반 다르지 않은 곳에 낯섦을 선사하고(구헌주, <‘교환, 서로 다른 익숙한’ 그래피티 프로젝트>), 지리산의 신화를 소재로 작업했으며(서용선, <지리산 풍경, 역사, 신화_마고성 사람들>), 자신이 머물렀던 타지에서 만난 이들과 성심원을 세우고 살아온 신부를 투사한 작업(인진미, <패러럴 시티>, <미상(nobody) 트레일러>),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봐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본인의 이름 밝히기를 꺼려했던 이들의 존재를 찾아나선 작품(정용국, <첫 번째 사람>) 등을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하동의 삼화에코하우스에서는 강영민과 팝아트조합이 함께 한 캠핑과 무궁화나무 심기, 감따기 농활 등의 퍼포먼스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전시 개막일과 그 다음날까지 이틀간 열린 학술심포지엄도 이번 프로젝트의 당위성을 구축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장소로서 지리산의 의미를 상정하고, 예술이 공동체와 바로 여기 지리산에서 무엇을 매개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제안과 질문, 그리고 대담이 쏟아졌다.
지리산프로젝트는 1회성 사업이 아니다. 10년을 생각하고 기획한 프로젝트라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수적이다. 기획의도에도 밝혔듯 지리산프로젝트가 우주의 마음의 품고 개인과 자연의 에너지 운행을 어떻게 화(和)할 것인지 향후 행보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남원/산청=황석권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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