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BOOK]
불안과 가능성 사이 미세한 떨림의 도약
한명식 지음 《바로크, 바로크적인》 연암서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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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는 르네상스 이후 17세기 유럽의 시공을 풍미한 예술사조로 기록된다. 한편으로 바로크는 심연으로부터 근대적 세계관을 열어젖혔으며, 나아가 많은 사상가에게 근대로부터 탈근대를 사유하는 영감을 주기도 했다. 한명식의 신작 《바로크, 바로크적인》은 바로크의 사유를 ‘바로크적’으로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는 바로크의 다양한 조류를 찾기보다 바로크 건축, 미술, 문학, 철학 등 전방위 흔적들을 연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바로크적 사유를 직관적으로 풀어낸다. 그에 따르면 바로크는 특정 시기 유럽의 미적 양식 너머 시공의 변화를 관통하는 인간의 본원적 역동이다.
중세 이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근본적으로 세계관의 지각변동을 시사한다. 르네상스의 세계관이 인본주의 질서를 만들어냈다면, 바로크는 분리로부터 인간의 불완전성을 심화한다. 신적 영향력에서 독립된 인간 능력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지만, 구원의 응답이 없는 침묵 속에서 영원한 고독에 사로잡혀 제 길을 찾아가야 하는 운명에 사로잡힌다. 종교의 위세가 무너진 자리, 바로크의 현재성은 세속에 연결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집단은 기독교다. 바로크 양식은 종교개혁에 반대하는 마케팅전략으로 활용되었다. 숭엄의 효과는 회화와 조각, 건축의 유기적인 무대연출로 구성된다. 표상뿐인 세계는 구원과 피안을 묘사하지만, 이마저 연극적 장치 아래 구현된다. 종교적 효과와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을 선전하는 광휘의 스펙터클 뒤로 바니타스 미학이 공허의 생채기를 남긴다.
바로크적 현재란 선적인 시간질서가 무너진 심연의 수면으로 떠오른 표상이다. 표상은 어둠으로부터 미립자로 구성되어 끊임없이 증식한다. 바로크 미술의 촉감적 사물과 영화적 공간은 시각의 동세를 반영한다. 색이 형을 넘어서고, 개별성은 음영 아래 하나의 덩어리가 되며, 얼굴을 가린 가면이 거울에 난반사된다. 영원성을 추구하지만 세계는 결국 죽은 자연물의 흔적으로서 ‘나투르 모르트’(Nature Morte)이자 정물화(still life)이다. 본질까지도 허상으로 구성된 세계는 죽음을 왜상(歪像)처럼 남기며 알레고리를 증식한다.
저자는 인간의 정신과 세계를 분리하는 데카르트 대신, 세계로부터 미세한 단위로 지각하는 인간 지각으로부터 정신을 이끌어내는 라이프니츠를 바로크 철학의 본령으로 삼는다. 어둠 속에 서로 연결되어 패턴의 연속체를 구성하는 바로크 회화의 형상을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와 모나드론에 어렵지 않게 연결시킨 문장들은 오랜 기간 바로크를 연구해온 저자의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다. 광휘와 침묵이 무한 반복하는 바로크미학의 양극성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것은 책의 강점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다시 읽은 질 들뢰즈의 바로크적 세계관을 가져와 주름으로 만들어진 내재적 자율성 아래 무한한 증식과 자기분열의 세계를 비춘다면, 다른 한편에서 주체와 타자의 경계가 심연에 묻히는 불안과 결핍을 읽는 지점은 바로크의 상이한 해석들을 불안과 가능성 사이 진동으로 울려낸다.
책의 구성은 위계를 두고 대칭을 이루기보다 자의적인 키워드들을 추출하여 주관적으로 배치된다. 예의 미세지각적 접근은 바로크적 세계관을 다른 시공의 면면과 공명시킨다. 신비주의, 모노크롬회화 등 다방면에 연결하는 서술은 바로크를 보다 확장된 시간으로 해석하는 것이자, 바로크의 거울에 비춰 상이한 역사를 서술하고자 하는 ‘바로크적’ 시도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크를 보편적 세계관으로 확장하는 시도는 탈역사적 비약의 효과를 내기도 한다. 단적으로 동양화의 여백을 바로크 테네브리즘(Tenebrism)의 역전된 형태로 접근하는 시도는 동양사상의 내용과 맥락을 변별하지 않는다. 설령 바로크시기 유럽 선교사들이 중국에 왕래한 기록이 있고, 이들이 바로크 미학에 영감 받았다 하더라도 바로크적 주체는 유한성과 불안으로부터 다시금 주체를 향한다는 점에서 동양화의 여백과는 의미를 달리한다. 그렇기에 독자는 바로크를 인간 보편의 미학적 사유로 끌어올리는 확장된 ‘바로크적’ 사유로 성찰하는 한편, 역사적 매듭으로서 17세기 바로크미학의 특수성을 인지할 필요가 있겠다. 이는 작가가 주장한 ‘바로크적’ 사유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것인 바, 덩어리로서 탈역사적 시간을 관조하는 동시에 미세지각의 촉수를 섬세하게 뻗어 역사의 주름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 남웅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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