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

정강자 50 YEARS OF WORK

작가 故정강자(1942~2017)의 첫 회고전이 아라리오갤러리 천안(1.31~5.6)과 서울(1.31~2.25)에서 열렸다. 작가가 2015년 위암 투병 중에 그린 작품제목 〈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와 동명인 이번 전시에는 정강자의 대표작과 근작이 대거 출품되며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를 선보인다. 사회정치적으로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감당해내며 한국 현대미술사에서는 퇴폐와 선정적 이미지로 인해 평생 체제 밖을 떠돌아야 했던 정강자의 예술가적 열정과 애환이 느껴지는 현장을 만나본다.

 


자화상 속의 신체

고동연 |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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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여인들(감비아)〉(사진 오른쪽) 캔버스에 아크릴릭 160×200.5cm 1989 |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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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벗었다는데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어요. ‘누드’ 자체가 하나의 ‘오브제’로 쓰이고 있을 뿐인데…”라면서 속안(俗眼)을 탓한다.

비평가가 작업이 지닌 미학적인 측면에만 집중하고자 할 때 작가 개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방해가 되곤 한다. 작업 대신 작가의 ‘독특한’ 삶에만 독자의 관심이 집중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정강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1968년 세시봉 음악감상실에서 열린 〈투명풍선과 누드〉에서 팬티만을 입은 채 가슴 부위에 투명풍선을 달고 터뜨리는 행위예술의 주인공이었던 그녀의 ‘스타성’은 미술계뿐 아니라 세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두드러진 것 역시 작가 개인의 신체 이미지였다. 국내 여성작가들이 자화상을 제작하는 일은 흔히 있지만, 자신의 신체를 중점적이고 지속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인 맥락에서 활용하거나 재현한 경우는 흔치 않다. 전시된 작가의 유품 사진들 중에 관광지 유적 앞에서 찍은 모습은 자화상과 신기할 정도로 일치한다. 특히 1970년대 초 명동 거리의 중심을 활보하는 여성으로부터 1990년대 작업복 차림의 여성,2000년대 들어서 간략화된 자연추상과 여성의 몸을 중첩시킨 최근 풍경화에 이르기까지 정강자는 행동하는 자신(여성)의 신체를 전면에 내세운다. 1960년대 말 이젤 앞에 놓인 자화상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나 1990년대 이후 그녀의 거대한 자화상들이 필자의 이목을 끈 것도 이 때문이다.

정강자는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에 참여하면서 ‘아방가르드 여성 1세대’로 불려왔다. 1960년대 국내에 오브제의 개념이 도입되었고 국내 미술계에서도 순수미술의 지위에 대한 철학적인 논쟁이 제기되면서 미술계의 권력구조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들이 전개되었다. ‘무동인’, ‘신전’, ‘오리진’ 등의 소그룹이 벌인 전시나 해프닝은 작업의 재료나 형태가 비물질적이거나 완결된 형태를 띠지 않았고, 내용에서도 〈한강변의 타살〉(1968),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1970)은 1972년 유신체제로 향해가는 억압적인 사회 현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풍자하였다. 정강자는 〈투명풍선과 누드〉등의 행위예술 이벤트를 통하여 남성 멤버들 위주로 조직된 소그룹 운동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동시에 보수적인 성문화에 과감하게 맞섰다. 그를 한국 여성미술의 선구자로 언급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1세대 여성 실험예술가로 분류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번 전시를 위해 다시 제작된 〈억누르다〉(1969)는 정강자의 여성주의적인 관점을 암시하는,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업이다. 엄청난 무게의 쇠 파이프가 대형 목화솜을 누른다. 쇠 파이프는 무거워 보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완벽하게 솜과 밀착되어 있지 않기에 위치를 변경하거나 제거할 수 있다. 현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쇠 파이프가 상징하는 사회적 억압을 극복해보려는 작가의 ‘의지’를 짐작게 한다. 뿐만 아니라 설치작업〈키스미〉(1967)는 동료작가 심선희의 〈미니1〉(1967)과 함께 대중문화 친화적이었던 젊은 세대 여성작가의 관심사를 반영한다. 전후 한국 화단을 대표한 여성작가 천경자가 꿈의 이미지나 뱀과 같이 문학적이고 상징적인 소재를 가지고 순종적인 여성상을 거부했다면,〈키스미〉에서 여성의 성적 해방은 립스틱이나 선글라스와 같은 대중소비문화의 파편을 통해서 구현되었다.

물론 1960년대 말부터 국내에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대중소비문화를 성적 해방과 직결하는 부분은 논쟁의 소지가 있다. 대중문화의 편린을 사용해서 보수적인  유교문화에 제동을 걸고자 한 정강자의 시도는 군부독재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서구 대중문화를 활용해서 민중이나 대학생, 지식인들의 사회비판적인 관심을 분산시켜온 역사에 비추어 보아 비판받을 만하다. 여성의 성을 자발적으로 대상화한 ‘키스미’라는 문구도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스미〉가 1960년대 말 남성 위주의 성적 관념이나 순수예술에 대한 젊은 여성작가의 솔직하고 저돌적인 발언이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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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작가의 자화상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청바지 162×130cm 1992 © Estate of JUNG Kangja. Courtesy ARARIO GALLERY

1974년 한국을 떠난 정강자는 이후 몇 차례 개인전을 갖기는 했으나 국내에서 최근 자화상을 포함해서 그녀의 작업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이에 작가가 타계하고 처음으로 열린 〈정강자: 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전〉에서 한복 변형 시리즈, 동남아시아의 바틱 기법을 사용한 2차원 작업, 암투병기에 제작된 자화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였다. 

그런데 최근 작업들에서 필자의 이목을 끈 것은 역시 신체가 강조된 자화상이었다. 〈자화상〉(1992)에서 작가는 푸른 청바지를 입고 연장에 해당하는 붓을 들고 있고 1996년 자화상에서는 청바지에 가죽점퍼를 입은 작가가 팔레트를 옆에 두고 서있다. 이국적인 풍경이나 모티프들 속에 위치한 자화상은 타문화를 탐구하고 해석해가는 화가의 적극성을 암시한다. 여기서 팔레트와 붓은 창조의 원천이나 도구로서 남성작가들의 자화상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소재이다. 재스퍼 존스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마초적인 창조적(성적) 에너지를 풍자하고자 붓을 거꾸로 붓통에 꽂아놓은 모습을 브론즈로 주조한 바 있다. 따라서 거대한 팔레트 옆에 서있는 정강자의 자화상은 여성 작가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통상적인 젠더 구분에 도전장을 내민다. 또한 살결이 검은 남태평양의 원주민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한 모습은 일찍이 서구권의 남성작가들이 비서구권의 문화를 대상화해온 관행을 꼬집는다고도 볼 수 있다.

정강자의 자화상은 철저하게 여성의 신체를 타자화하는 방식으로부터도 비껴나 있다. 말년 자화상에서 여성의 신체에는 수술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캔버스 밖에 위치한 여성은 자신의 모습을 측은하다는 듯이 손을 뻗어서 쓰다듬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작가는 최후까지 자신이 그림 속 대상에 머무르는 것을 거부하였고 그림 안과 밖,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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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자의 행동하는 몸으로부터 배우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진행된 전시 전경

결론적으로 정강자에게 몸은 직접 경험하고 행동하는 인간 실존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단 하루를 더 살더라도 자신의 열망을 숨김없이 표현해야 한다’는 작가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1960년대 말 행위예술 분야에 적극적으로 몸을 던진 것처럼 작가는 외국으로 이주한 후에도 이국적인 풍경의 중앙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그 부분이 되고자 애썼다. 덕분에 필자는 1960년대 말〈투명풍선과 누드〉에서 그가 보여준 저돌적인 작가의 자의식과 존재감을 최근 자화상들과도 쉽게 연관시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정강자의 신체 이미지를 통하여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몸이 갖고 있는 위상에 대하여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성의 해방을 부르짖은 지 5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여성의 몸은 공공의 장소에서 기이하고 불편한 존재이며,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투(#MeToo) 운동이 제기하는바 남성의 욕망을 ‘본의 아니게’ 자극한 여성의 성은 처단되어야 할 대상이다. 정강자의 파격적인 용기가 다시금 필요한 때다. ● 고동연 |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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