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를 위한 묵념

남은-자를-위한-묵념

나는 오래 된 아파트에서 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때 잠시 강변의 신식 아파트에서 2년간 지냈던 시간 앞으로 이곳에서 태어나 살았고, 그 뒤로 다시 돌아와 여태 지내고 있으니 나고 자랐다는 표현이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이 꾸물거리다가 보슬비를 내리던,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그날도 우리 가족은 이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아가며 집으로 향하던 하굣길. 아파트 입구에 서 있던 응급차와 마침 차에 올라타려는 엄마. 그때 나는 어렸지만 철없이 물어보기엔 조금 자랐기 때문에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어깨너머로 들으며 짐작할 뿐이었다. 할머니는 갔지만 우리 가족은 여기 남았고 그래서 계속해서 살아갔다. 나는 이제 성인이 됐고, 할머니는 흐릿해진 기억 속에 그저 그런 그리움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조현택 , 2017, Inkjet, 130x87cm

조현택, Drama Set_Camera Obscura #10, 2017, Inkjet, 130x87cm

부산에서 열린다는 전시 소식과 함께 이 사진을 봤다. 철거를 앞둔 빈집의 영정사진을 찍고 싶었다는 작가는 작업을 시작한 그해 모친상을 당했다고 했다. 20년을 살았던 한 집에서 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마저 잃고 말았다는 작가는 도망치듯 집을 떠나 얼마간 괴로운 시간을 보내다 다시 사진기를 들었다. 빈집의 방 전체를 카메라 옵스큐라로 만든 그는 낡은 집이 평생을 바라보았을 풍경을 방 안으로 불러들였고, 어디가 방이고 어디가 마당인지, 어디가 생시이고 어디가 꿈인지, 경계 모를 사진을 완성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여러 사람이 오랜 세월 몸을 부대꼈을 집이라는 공간과 그들이 함께했던 지난 시간이 사진 한 장에 담겨있었다.

조현택 2015, 함평군 월야면 외치리 511, Inkjet Print, 150 x 100cm

조현택, Vancant Room #56, 2015, 함평군 월야면 외치리 511, Inkjet Print, 150 x 100cm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아빠도, 언니 동생도. 최근에야 깨달았는데, 우리 가족은 단 한 번도 그날의 일을 정식으로 입에 올린 적이 없다. 할머니의 죽음은 우리 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공통의 매듭을 짓지 못하고 제각각 생겨 먹은 기억의 조각을 쥐고 그 주변만 맴돌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엄마는 아버지를 잃었고, 아빠는 어머니를 잃었다. 소중한 누군가를 떠나 보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한 상처와 아픔으로부터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진을 보면서 남아있는 사람을 위한 장례가 치러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글 : 강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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