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정동석
정동석은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그룹 ‘현실과 발언’ 창립멤버 가운데 유일한 사진작가다. 그는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일관되게 이 땅의 풍경에 주목해왔다. 작품의 궤적은 분단현상을 비판적으로 드러낸 초기작 <反-풍경> 연작을 시작으로 1990년대 <신미(辛未)에서 경진(庚辰)까지>와 <서울 묵상>(2000~2001)을 거쳐 <밤의 꿈>, <가득 빈>, <마음혁명>, <묘행(妙行)> 시리즈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사진작가 정동석은 대면한 세계와 불화하는 현상들을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 용해시킨다고 주장한다. 또한 작가 자신의 ‘내면’과 ‘사진’을 통일시키려는 사유를 적극 실천한다는 점에서 정독석이야말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매우 중요한 사진작가임을 밝히고 있다.
삶의 말, 삶의 꿈, 삶의 꽃
김진하 미술비평, 나무아트 대표
정동석은 사진 ‘작가’다. 작가라는 말에 방점을 둔 것은 그가 사진으로 자신의 지향점을 증명하고 표현하는 사람임을 강조해서다. 사진을 찍는 게 작업이 아니라, 정동석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와 만나는 매체가 사진이고 작업이라는 뜻이다. 정동석은 외부의 대상에 그의 미적 감성이 감응해서 사진을 찍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내면으로부터 느끼고 사유한 주제를 증명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외부의 소재를 사진 속으로 수용한다. 외부 세계보다는 그 세계를 마주하고 느끼고 인식한 주체, 즉 정동석 본인에게 내포된 서사를 사진이란 매체로 증명하는 데 무게가 실려서 그렇다.
이럴 경우 사진 속의 피사체는 작가의 의도를 가시화하기 위해 빌려온 질료나 기호의 기능을한다. 또한 기계적 메커니즘의 결과인 사진적 현상이나 효과도, 정동석에게는 작업의 부수적인 요소가 된다. 우선적인 것은 역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이며, 거기에 다다르기 위해 사진을 풀어가는 과정과 방법, 그리고 사진이란 매체에 대한 그의 인식이나 논리 등이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된다. 그러면 대상성을 우선시하는 일반적 사진과는 다르게, 작가 내부세계에 무게를 두는 정동석이 사진작업을 통해서 추구하는 궁극적 주제가 무엇인지 그의 작업 궤적을 편년(編年)적으로 돌아보며 찾아보자.
1970년대 후반, 서른 즈음의 정동석은 10여 년간 제작한 사진을 모두 불태웠다. 정확한 노출에 정교한 재현, 빛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포착한 드라마틱한 시각효과, 스펙터클한 대상성, 실험적 암실 작업, 여타의 다큐 등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잘 찍은” 사진들이다. 20대 내내 명동의 외국잡지 서점 골목에서 거의 모든 현대사진을 탐독하고 섭렵하다가, 어느 날 자신의 작업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태워버렸다는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명 사진가들의 작품은 결국 그들의 것일 뿐인데, “왜 여기서, 내가, 하필이면 남의 것을 열심히 보고 뒤따르려고 하는가?”란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때까지 자신이 찍은 사진들이 그의 내부로부터 도출된 이야기나 관점이 아니라는 걸 자각한 것이다. 자신의 사진이 습관적으로 반복되고 유형화된 채로 교육받은 유명 사진가들의 스타일이나, 외국잡지에서 본 서구 사진가들의 아류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든 것이기도 하고. 내 것 또는 주체에 대한 성찰인 셈이었다. 그것은 곧 사진과 자신에 대한 통일된 인식의 바탕에서 독자적인 작업을 하겠다는 결심으로 연결된다. 패기와 도전과 의지가 교차하는, 이 젊은 반성이 그의 작업 궤적에서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지점이다.
몇 년 뒤인 1982년, 정동석은 ‘문화공보부’의 국정홍보물 게시판을 찍었다. <1982 in Seoul>이란 제목이 붙은 흑백사진 연작이다. 앞서 태워버린 사진들은 작품이 아니라 여겼으니, 이 사진이 그 스스로가 인정하는 처녀작인 셈이다. 화면에는 텅 빈 게시판만 있다. 각종 홍보물들이 항상 넘치도록 덧붙여지는 그곳인데, 상단의 강원도, 충청남도, 부산직할시… 등의 글씨만 무표정하게 붙어 있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런 말도 없는 공간, 정동석은 바로 그 ‘없음’을 찍은 것이다. 장면 자체로는 어떤 감각도 자극하지 않고 내용도 없이 무미건조하고 평범하다. 그러나 이 장면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느끼고 자세히 보게끔 만든다. 게시물이 부재한 이 게시판에서 5공화국 초의 시대상이 반영되어서다. 1980년대 초 언론통폐합 직후부터 벌어진 일련의 상황적 단서들이 거기에 있다. 급속하게 보급된 컬러TV 방송, 프로야구 창설 및 중계, 영화제작 지원 등의 3S정책으로 자신들의 군복에 묻은 핏빛 행적을 가리려던 군사정권의 행태. 급조된 대중문화의 방만해진 오락성과는 정반대로 집행된 언론통폐합, 보도지침… 등. 정동석은 그 빈 게시판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소통 과정에서 관객 스스로가 그 사진에 해석학적 접근을 하게끔 만든 것이다. 그것은 무력에 의한 검열과, TV라는 컬러 표백제로 탈색시킨 언론 통제의 맨얼굴이자, 그런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을 견인하는 정치적 메타포였다.
보통 다큐사진의 직접적 시사성이나, 현란한 예술사진의 모던함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이 사진은 내러티브를 이끌어낸다. 객관적 다큐와 주관적 작가주의의 경계를 무화시키면서 비판성으로 작품의 리얼리티를 확보한 것이다. 정치적 슬로건이 거론되지 않으면서도 사진의 역할과 자신의 발언이 정묘하게 결합되어 드러난 것. 이는 사진을 찍기 전에 설정한 “내게 사진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찍는가?”, “어떤 목소리로?” 등과 같은, 자기 내부를 향한 회의를 통해서 확립된 사진에 대한 의식과 방법론이 그 바탕에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만약 정동석이 당대성과 자기 사진의 방법론과 정체성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연관하지 않았다면, 볼품없이 비어 있는 이런 게시판을 주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또 기존에 없던 이런 사진 언어를 남기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 작품을 제작하고 난 다음 해인 1983년 정동석은 ‘현실과 발언’ 동인에 가입한다. 사진계가 아닌 미술계로 데뷔한 것. 당시로서는 자기 문법으로 자유롭게 활동하기에는 사진계보다 미술계가 더 적합했던 모양이다. 제도화된 1970년대 미술계의 관념적 행태를 극복하면서 미술과 삶의 간극을 좁히려던 ‘현실과 발언’ 그룹과, 기존 사진계의 사진 전반에 대한 암묵적 카르텔과 카테고리로부터 일탈을 꿈꾸던 리얼리스트 정동석이 결합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정동석의 1980년대를 관통하는 주요작품인 <反-풍경>연작이 ‘현실과 발언’ 활동 시기에 제작되고 발표되었다.
<反-풍경 Anti Landscape, 1983~1989>은 분단의 현장을 찍은 일련의 작품 제목이다. 풍경을 찍으면서 그 사진이 풍경에 반하는 것이란 역설에는, 정동석의 풍경에 대한 반성적 인식이 녹아 있다. 여기에서 정동석은 풍경을 ‘자연미’의 범주에서 이탈시키고 분단 상황의 표지로 빌려온다. 이름 그대로 <反-풍경>인 이 작품들에서는 보편적인 사람들의 시각이 선호하는 멋지고·숭고하고·장엄한 스펙터클이나 서정성은 없다. 해변가 철책선·방호벽·초소·D.M.Z풍경 등 우리 일상의 이면으로 소외된 분단 현장의 건조한 풍경만 있다. 사진의 그곳은 덩그러니 초라하고 무덤덤하다. 풍경 특유의 자연을 찬양하는 원초적 관능미가 거세된 이 소박한 흑백사진들은 풍경에 대한 우리들의 습관적인 미적·관념적 아우라를 사살한다.
이 점에 대해 평론가 박찬경은 미첼(W.J.T Michell)의 ‘풍경에 대한 테제’를 참고하며, “정동석은 ‘그림 같은’ 풍경의 죽음을 찍는다.”고 썼다가, 더 나아가서 “정동석은 이미 죽어 있는 풍경을 찍는다.”1고 단언한다. 미첼에 따르자면, 풍경이란 장르는 그 프레임 내의 장면이 무엇이든 ‘자연미’나 ‘생동미’라는 미적 범주로 일반화되고 물화되어 그 자체가 이미 제도적 ‘미디어’가 된 지 오래다.
분단을 표지하는 전략적·인공적 설치물들이 우리 국토에 가한 폭력성은, 풍경을 풍경이 아닌 분단의 한 장면(정치, 역사성)이나 기호로 간단하게 전치시켰다. 실제 풍경으로서도, 또 우리에게 작용하는 인문적 소스(Source)로도 그것은 이미 풍경이 아닌 <反-풍경>의 상태였다. ‘사실’이 아니라, 풍경이란 장르적 프레임 속에서 박제된 ‘그림 같은’ 환영(Illusion)으로 말이다. 관능이 거세된 ‘풍경의 죽음’과 ‘죽어 있는 풍경’이 공고하게 물화된 이 지점을 정동석은 그의 사진에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대상을 사진 속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의 철저하게 인식적인 거리두기로, 분단에 접근하는 시각과 해석의 새로운 장르적 코드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찍은 것이다. 그러자 죽어 있던 풍경이 분단현실에 대한 시각적 인식소(素)로 코드화되어 부활했다. 그래서 이 현장 사진들은 풍경에 대한 감각적 향유보다는 분단현실에 대한 사유의 단서를 관객에게 제공한다.
사진이란 그런 게 아닐까. 재현이나 묘사의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간과해버린 문제를 비판적으로 ‘재귀’시키는 가장 리얼한 양식이란 것. 그 재귀의 이미지들이 예술이자 기록으로 당대와 후대를 아우르는 시각언어로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 그래서 이런 탈(脫)스펙터클한 풍경을 작가는 왜 찍힌 풍경은 어째서 풍경(경관)에 反하며 해석학적 코드인 <反-풍경>의 인식적 문제로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 이럴 때 사진은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보여지는 수동적 텍스트로부터, <작가-사진 속 이미지-사진 표면-관객> 사이를 진자처럼 넘나드는 정치적 기의로 콘텍스트화하며 능동적으로 소통 기능을 하게 된다.
이런 작업 프로세스로 분단을 환기시키면서, 정동석은 자신의 미적 기호(嗜好)도 이 사진 한쪽에 살포시 얹는다. 사진의 중성적 표면에 부드러운 시각적 감촉을 얻기 위해, 암실작업에서 사진의 색 계조를 최대한 부드럽게 단순화시키면서 인화2한 것이다. 화면으로 불러들인 분단 현장은 물론 을씨년스럽다. 그러나 인화된 사진의 질감은 고운 색상과 중·저채도의 부드러운 톤으로 덮여 있다. 이는 작가의 지극히 내밀하고도 순박한(?) 감성의 미적 표상이자, 다소간의 딱딱한 형식적 모색 뒤에서 자연스럽게 출몰하는 고운 마음결이라 하겠다.
1990년대 작품인 <辛未에서 庚辰까지 Project 1991~2000>, 그리고 2000년 서울로 입성하며 작업한 <서울 묵상 Contemplation in City, 2000~2001> 연작까지는 카메라의 재현적 메커니즘을 어느 정도 활용하는 방식을 유지했다. <신미에서 경진까지>는 강원도의 이름 없는 야산을 다니면서 채집한 풍경이다. 산·강·들판·농경지 등에 흐드러지며, 그 종과 장소와 공간의 경계 없이 함께 피고 어울리면서 생장하는 나무·잡초·채소·곡식들의 모습을 정밀하게 제시한 사진이다.3 그것은 구분·분단·갈라짐·갈등이 없는 식물성으로 만물의 상생과 생명력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 상징이자 알레고리들이다. <反-풍경>에서의 건조한 비판성에서, 민초적인 생명성의 끈질김과 더불어 그 아름다움에 대한 서정성으로의 변주이기도 하다.
뭇 생명이 서로 얽히면서 더불어 사는 이런 모습은, 이후 서울에서의 욕망과 꿈을 아우르는 정동석의 사진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생태론적/존재론적 성찰로 여전히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2002년 이후 서울의 밤풍경을 통해서 도시인의 세속적 욕망을 승화된 아름다움으로 기호화(記號化)한 작품들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로 연결되고 적용된다. 분단풍경(1980년대)/강원도풍경(1990년대)/서울풍경(2000년대)은 시공간·피사체·카메라·사진 찍기 방식·조형성·발성법 모두가 서로 다르지만, 이 모두를 가로지르는 작가의 사진에 대한 접근 태도와 의도는 모두 공통분모에 기반을 둔 것이다. 갈등과 대립과 분단을 넘어서려는 순연한 마음에 대한 사진적 접근이라는 분모 말이다.
서울로 귀경한 2000년, 정동석은 도시와 그 주변의 다소 쓸쓸한 풍광을 찍었다. <서울 묵상, 2000> 연작이다. 도심 미관을 위해 가지치기된 나무, 일상적 공간에서 소외된 잡초들, 그것을 가르는 바람결 등의 황량함을 아름답게 연역해낸 컬러 작품이다. 1990년대의 <辛未에서 庚辰까지>와 이후 2000년대 전체 테마인 <Dreamscape, 2002~2014> 사이에서, 과거의 사진적 형식과 장소성 등에서 새로운 조형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중간적 역할을 하는 경향으로 여겨진다. <Dreamscape>는 <밤의 꿈 Dreamscape, 2002~2005/가득 빈, Full Empty, 2006~2009/마음혁명, Mind Revolution, 2010~2013/ 묘행(妙行), 2015>등 일련의 연작을 총칭하는 장기적 프로젝트다. 서울의 밤을 통해서 사람들의 욕망과 그 결과로서의 꿈, 그리고 거기에 대한 작가 본인의 존재론적·사진적 통찰과 반응을 드러낸 작업이다.
여기서부터 정동석 사진의 조형적 양식은 과거의 스타일로부터 혁명적으로 이탈한다. 자신이 현재 발디디고 서 있는 곳(Standing point)의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또 다른 동시대적 시선과 진부하지 않은 형식을 찾은 것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세계에 대한 인식은 더 깊어지되, 사진 형식과 언어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복을 실행한 것이기도 했다. <反-풍경>을 통해서 이미 자기 스타일이 구축된 50대가 넘어선 중견작가로선 부담스러운 도전이자 모험이었을 것이다. 비록 자신의 것이라도, 이미 체계화된 것에 대해서는 끝없이 회의하고 거역하는 체질로부터 연유한, 그리고 삶과 사진의 관계성에 대한 성찰이 더욱 민감해진 결과라 하겠다. 화면의 피사체(네온, 불빛)는 있는 그대로 재현된 사실이다. 도시의 밤, 그리고 불빛. 그러나 화면에서 최소한의 이미지로 환원된 조형적(그러나 피사체 그대로인 사진적) 기표는, 실재보다 훨씬 광의의 해석이 가능한 기의로 작동한다. 시각적으로도 그것은 재현된 풍경이라기보다는 일견, 정신성을 추구하는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나 몬드리안 유의 신조형주의 추상, 탈(脫)이미지와 중성구조의 미니멀 회화, 기하학적인 하드에지, 혹은 실험적 예술사진으로 보일 만큼 대상성과 감정과 표현을 철저하게 절제한 것이었다. 어둠으로 대상성을 해체하거나 제거해서 검게 덮어버린 화면엔 간단한 네온 불빛만이 기호처럼 명료하다. 그 최소화된 조형성으로 정동석은 서울의 삶에 대한 그의 인식적 내러티브를 상징화한 것이다.
<밤의 꿈>을 시작하면서 정동석은 2년가량 택시운전을 했다. 대략 2만여 명의 승객을 통해서 도시인들의 욕망과 현실과 꿈에 대해서 느끼고 인지했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척박하고도 화려한 도시의 밤이,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꿈으로 발화시키는 현장임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선/악, 욕망/이성, 빈/부, 남/녀, 성인/청소년… 등 조건을 가리지 않고 모두 꿈이 있었다. 꿈은 현실과 욕망의 이질성이 통일되며 생산한 꽃이다. 척박하고 차가운 어둠 속의 불빛이자 진흙 속 연꽃 같은 것. 욕망을 꿈으로 치환하며 스스로 살아남은 도시의 삶, 그 생명은 모두 고귀하고 모두 아름답다. 아무도 윤리나 관습으로 간섭하지도 제어하지도 못하는 온전한 자기만의 권리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온존하고 평등하게 마음에 자리한다. 사람들은 그 빛나는 꿈에 이르기 위해 현재의 차가운 일상을 기꺼이 유보한다. 정동석이 서울의 밤 풍경을 모두 <Dreamscape, 2002~2015>라는 어휘로 명제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꿈은 정동석이 찍고자 하는 소재이자 궁극적으로 그가 현실에서 다다르려는 이데아이기도 하다. <밤의 꿈>에 이어 2006년부터의 <가득 빈> 연작에서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시 2011년부터의 <마음혁명>에서는 존재론적인 철학적 통찰을 담아낸다. 이어서 2014년 <묘행(妙行)> 연작으로 서울의 밤 전체 시리즈인 <Dreamscape>는 끝난다.
서울의 밤 시리즈는 점차적으로 도시와 사람들로부터 작가 자신의 안으로 이행되고 환원되는 시선을 담는다.
그 시선은 외부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자기의 내부로 옮겨간다. 렌즈가 향하는 대상성은 좀 더 추상적인 기표로 바뀌었다. 그만큼 내면으로의 간구를 향한 그의 사진 찍기는 소재의 소거라는 결과로 이행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서울의 밤이란 실제 현장을 찍은 것이지만, 엄밀하게는 대상과 작가의 ‘사이’에서 발현되고 생성된(아(我)도 비아(非我)도 아닌) 새로운 이미지를 포착한 것이라서 그렇다.
거기엔 구상성보다는 작가의 내면적 기호가 더 두드러지게 자리한다. 특히 숨을 쉬고 카메라를 움직이면서 찍은 <마음혁명>에서는 밤의 꿈으로 피어난 현실, 거기에서 발현한 영성적 경건함을 통해 그와 세계가 통일하는 지점에서 움직이며 생성하고 생장하는 제3의 현상과 이미지가 진술된다. 여기에선, 과거 <反-풍경>에서 의도적으로 제거했던 아우라를 절제되고 긴장된 정신성으로 부활시킨다. 서울에서의 일상적 삶에 대한 내면적인 자기성찰을 통해서 다다른 최소한의 핵심 이미지를 얻으면서 발생한 긴장도 때문이다. 마치 중도(中道)의 수행처럼, 서울에서의 꿈에서 깨달음의 꽃을 얻으려는 간구처럼, 그 긴장은 사리처럼 엄격하게 절제된 결과다. 그 많은 일상과 서사들의 핵심으로 환원해서 구한 이미지는 그래서 아름답고 깊다. <Dreamscape>의 형식에 대한 설명은 예전에 필자가 기술했던 글의 부분적 인용으로 갈무리하자. 새로 써도 같은 내용이 될 듯해서다.
“눈으로 본 것을 넘어선 이 이미지들은 정동석의 마음의 결이자, 이성적 사유와 희구가 최소 단위로 환원된 결정체다. 도시의 욕망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며 정동석은 거기에 대한 인식을 극한까지 밀어 붙여 마침내 하나의 세계, 혹은 깨우침으로 주체와 대상이 서로 교차하며 합일하는 풍경을 형상화한 것이다. 도시의 밤을 의미소(意味素)로 하여, 사진 고유의 원근법적 재현을 거부한 평면적 조형성, 카메라 흔들어 찍기로 도출한 동적인 내면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그 결과 피사체의 사실적인 재현에서 벗어나면서 작가의 마음을 반영하는 또 다른 움직이는 형상이 나타난 것이다.”
“카메라를 흔드는 것은 곧 시차(視差)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바라보는 주체의 초점의 위치에 따라 대상이 다르게 인지됨으로 대상에 공고하게 각인된 주체의 시선이 흔들릴 때, 마음속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현상을 정동석은 카메라로 포착한 것이다. ‘카메라 드로잉’이라 명명할 수도 있는 그것은, 정동석과 삶의 현장인 도시의 밤 풍경 사이에서 발생하는 제3의 현상에 대한 진술이다. 사진이자 그림이고 그림이자 사진이면서, 주체와 피사체 간의 수평적 만남으로 시선을 넘어서는 이미지가 발아하는 과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세계를 마주하는 정동석의 이런 작가적 태도에 데리다(Derrida, Jacques)의 다음 문구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카메라 셔터가 감겼다 떠지며 사진이 찍히는 특성상 우리는 대상을 보고 우리가 본 것을 찍는다고 생각하지만, 카메라 셔터가 터지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한 그 순간을 찍는 것 이라는. 여기서
‘보지 못한 순간’은 대상을 찍으려는 사진가의 욕망이, 그대로 피사체에 담기고 드러나는 권력적 시선의 작동방식을 해체시키는 그 시간이 아닐까.”
“정동석의 카메라를 흔드는 행위는 외부의 사물을 보기만 하는 주체의 입장에서 벗어나서, 역으로 주체 자신의 내면을 대상화하는 것이다. 피사체의 묘사를 넘는 서사가 주체와 피사체란 분별을 넘어 서로 해방되면서 진화하는 사진 이미지는 그래서 싱싱하다. 카메라를 흔들며 정동석이 다다른 곳은 자기 호흡으로 만난, 그리고 자기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대상과 숨을 나누는 지점이다. ‘주체의 시선’이라는 사진의 독점적 메커니즘으로부터 벗어나서, 피사체인 도시인들의 삶의 의지와 작가의 마음을 담은 열린 공간의 창출이기도 하다.”4
최근 정동석은 서울의 낮 풍경을 사진에 담고 있다. 그동안 <Dreamscape>에서의, 의식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던 긴장에서 이완해서 비교적 유유자적하게 나무가 있는 풍경을 찍는다. 고희(古稀)가 다 되어가는 이제 소요유(逍遙遊)의 입장으로 뷰파인더를 대면하려는 것으로 느껴질 만큼 여유롭게 보인다.
근작에서의 나무는 유연한 형태들이다. 나무는 같은 뿌리에서 자라도 가지나 위치·생긴 모양·생장 속도·색깔·생사가 서로 다르다. 그래도 나무는 자기 자리에서 이런 모든 차이와 다름을 수렴하면서 굳게 서 있다. 바로 그런 나무의 넉넉하고 통일된 생명성을 마치 카메라를 처음 잡았던 40년 전처럼 재현적 방식으로 찍고 있는 것이다. 고수들에게서 느껴지는 허허실실 같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렌즈에선 나무의 자연스러운 생명력에 대한 서술과 함께 존재에 대한 문제의식도 여전히 묻어 나온다. 자신의 내면에서 서사적 인식으로 상상한 사진을 완성하고 난 뒤, 외부로 출사해서 원했던 피사체를 찾은 다음에라야 셔터를 누르는 습관으로 인해서 그런 듯하다. 몸에 축적된 발화(發話)방식은 바꾸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그래서 담담하고 “릴랙스하게” 진행한다는 <Deep Contemplation>으로 지칭되는 그의 현재 작업에서도, 여전히 어떤 독자성이 또 드러날지를 기대하게 된다. 개별적 인식과 총체적인 서사를 사진으로 연결하는 문법에서 정동석은 한국 현대사진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한다. 그의 작업엔 늘 ‘反’이란 접두사가 붙어 있는 듯해서다. <反풍경> 뿐만 아니다. 반어(反語)적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것도 그렇고, 기존에 제도화된 사진 문법에의 반성(反省)도 그렇고, 부조리한 현실이나 구조에 반역(反逆)하는 것도 그렇다. 머무르거나 안주하지 않는 태도가 고집스러운 그만의 작업을 체계적으로 긴 시간 지속시켜 온 힘이고, 그것이 작가로서 그의 큰 저력이자 매력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그가 대면한 세계와 불화하는 현상들을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서 용해시키며 그의 ‘내면’과 ‘사진’을 통일시키려는 작가적 사유와 실천이다. 사진으로 나와 너를 말하고, 사진으로 우리를 꿈꾸고, 사진으로 갈등을 넘어 관계의 꽃을 피우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을 동반해서 더 그렇다. 정동석이 진짜 사진 ‘작가’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 동 석 Chung Dongsuk
1948년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사진과에서 수학하고 《한국일보》기자를 지냈다.
1983년 현실과발언 동인전(관훈미술관)에 참여했고, 1992년부터 12회 개인전을 열었다. 작품집으로 《반풍경》(눈빛, 1999) 《밤의 꿈》(세상의 아침, 2004) 《나다》(글을읽다, 2008) 《마음혁명》(나무아트, 2011) 등이 있다.
1 박찬경 《정동석의 反-풍경/反-풍경》 도서출판 나다 2008
2 이런 사진표면의 질료적 분위기와 이미지의 감성적 통일을 위해 카메라도 라이카 M시리즈로 바꿨다. 더불어 암실에서 인화할 때 색상의 명도와 채도를 의도적으로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었다. 색상과 채도가 곱게 연결된 하늘이나 바다 같은 피사체들의 리드미컬한 연결은 작가의 감성적/미적 기호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3 이때는 좀 더 섬세하고 세밀하게 자연물들의 얽히고설킴을 포착하기 위해서 대형 목재바디인 ‘비스타’카메라와 ‘슈나이더’렌즈를 사용했다.
4 김진하 《사진으로 가는 ‘마음혁명의 길’ 정동석-MIND REVOLUTION》 나무아트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