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욕망의 메트로폴리스
디스토피아의 우울한 판타지
이영준 | 김해문화의전당 예술정책팀장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거대 도시를 다양한 관점으로 재해석한 “욕망의 메트로폴리스”전을 선보였다. 부산을 비롯해 서울 일본에서 작가 18명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크게 3개의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환영의 도시”, “도시의 이면들”, “아래로부터의 사람들”이라는 소주제로 도시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성찰한다. 이번 전시는 우리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환경적 요인 중의 하나인 ‘도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과 큐레이터의 시각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전시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사실 도시는 세계인구의 절반이 만나는 환경이다.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숭고한 구조는 너무도 상식적이고 일상적이어서 그 존재를 감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산복도로의 비좁은 골목길을 많은 사람이 찾는 이유는, 이곳에서 알 수 없는 편안함과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도시의 허울 좋은 욕망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얼굴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이번 전시는 도시를 거울에 담아 비춰줌으로써 우리의 잃어버린 감각을 상기시켜준다. 그 감각은 잘 보이지도 드러나지도 않지만, 불편한 우리 ‘욕망의 형태’들이다.
욕망은 현실에서는 채워질 수 없는 무엇이며, 그 부재의 공간에 판타지가 개입한다. 도시의 판타지는 당연히 유토피아적인 공간이다. 높이 솟은 건축물들은 이러한 우리들의 욕망을 수직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안세권의 작품은 도시의 수직적 욕망에 대한 일종의 기념비이다. 작가는 일찍부터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극명하게 기록해왔다. 이번 전시 출품작 중에서 압권은 해운대 해수욕장과 수직적인 건물을 합성한 <해운대파노라마>다. 희미한 안개 너머의 도시와 해변의 인물이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묘한 긴장을 자아내고 있다. 신기루처럼 처리된 도시 이미지는 더는 오를 수 없는 욕망의 임계점이나 순간 사려져버릴 것 같은 허무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세피나 리는 세계의 마천루들을 3D 프린트로 재현해 놓은 <신바벨도시>를 비롯해 진입 금지를 알리는 러버콘 158개로 <금지된 영역 – LCT>를 선보였다. 김태연은 영상작품 <웰컴 투 더 시티>를 통해 장소성이 사라진 특색 없는 근대도시의 미적 획일화를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정혜련의 작품은 일종의 ‘공간 드로잉’이다. 이 작품을 구성하는 것은 공간과 이에 반응하는 작가의 감각이 유일하다. 그리고 이 공간 드로잉은 하나의 선이 새로운 선을 호출하는 연쇄적인 반응의 산물이다. 그런 면에서 정혜련의 작품은 욕망이 또 다른 욕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도시적 삶에 대한 추상적인 형태일지도 모른다.
도시 이미지의 페러독스
도시의 이면들이라는 소주제를 통해 압축 성장한 한국 근대도시의 어두운 그림자를 읽을 수 있다. 가령 조형섭의 경우 국가가 개인의 수면 시간까지 통제했던 – 19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하는 ‘새마을노래’를 매일 새벽 6시에 들어야 했다. 박정희 시대에 새마을운동과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한 시각적 상징이었던 “근대화”를 다룬다. 그 시리즈 중의 하나가 바로 <근대화 슈퍼>다. 조형섭은 한국 근대화의 과정에 뿌리깊게 새겨진 ‘집단적 무의식’을 탁월하게 호출해낸다.
또한, 서평주의 <새천년 생명체조>는 위험으로 가득 찬 도시적 삶에 대한 패러독스다. 위험시설인 고리원자력발전소 앞에서 건강을 위한 체조를 선보이는 상상력은 서평주만이 가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시선에서만 가능한 작품이다. 너무도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일상적인 삶에서 허술한 구조를 발견해내는 이광기는 모순으로 점철된 우리 삶을 위트있게 비판해왔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세상은 생각보다 어이없이 돌아간다>라는 3분24초의 싱글채널비디오는 현대인의 삶을 은유하고 있다. 수족관 물고기가 횟감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 속 물고기는 소모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았다.
그 외에도 영도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구술을 기록한 김정근의 <그림자들의 섬>, 도시의 생성과 소멸, 계층 간 상반된 이미지를 대비시킨 허병찬의 <기억의 풍경>, 공간에 대한 어긋난 기억을 이야기하는 임봉호의 <콘크리트 맛 솜사탕>, 일상이 된 불안의 풍경을 보여주는 정주하, 시대의 흐름과 미시적인 삶의 관계를 드러낸 김아영, 영상에 대한 메타비평적 의미를 탐구하는 변재규, 재개발의 폐허에서도 남아있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박자현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사람들은 도시의 이미지에서 배제된 ‘말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백현주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촬영장소에서 주민들이 기억하고 있는 영화의 장면들을 재구성해 새로운 영상을 만든다. 세대와 거주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 영화에 대한 기억을 통해 공동체의 여러 문제를 환기한다. 감윤경은 홍티아트센터에서 진행했던 <A Piece of Cake <달콤한 무지개>>를 통해 개념에 짓눌린 현대미술을 관계의 미학으로 치환한다. 소통과 참여의 가치를 강조하는 작가의 작품에서 예술 속에서 지워진 이름 ‘관객’을 호출하는 정성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감윤경과 기타가와 타카요시는 공동 프로젝트로 작품 ‘찾자! 챗!(Chat)!’ 과 ‘차차차 프리즘’을 통해 부산시민들을 만나고 함께 부산을 발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정윤선의 <도시 그 욕망의 계보학 ‘Dienamic-K’>는 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오마주이다. Dynamic에서 착안한 Dienamic은 개발과 동시에 삶에서 멀어져간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부산시립미술관 박진희 큐레이터는 도시를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재구성하고, ‘유토피아의 환상이 사라진’ 우울한 공간으로 재현했다. 그 우울의 원천은 도시가 인간이나 생명보다는 이면에 숨은 자본이나 권력의 욕망을 더욱더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의미를 반성하고 성찰하려는 기획자의 선명한 의지는 작가와 작품 선정에서 뚜렷한 맥락을 보여주었고 큐레이터십이 살아있는 의미 있는 전시를 만들었다. 그러나 개념에 너무 깊이 천착한 나머지 관람객의 생각이 개입할 어떤 여지나 여백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시종일관 진지한 작품의 나열이 피로감을 불러일으켰다는 한계는 있지만 이 전시의 장점에 비하면 애정 어린 투정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부산시립미술관의 “욕망의 메트로폴리스”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디스토피아의 우울한 판타지’로 가득하지만, 우리가 성찰해야 할 도시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