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화수보(寶華修補)
간송의 보물 다시 만나다
시간이 지나면 낡고 바래가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자연은 예술작품에도 같은 규칙을 적용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소중한 작품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시간을 지연시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전통 예술을 지키고자 사비를 털어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존했다.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1,000여점에 이르는 유물을 관리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은 오랜 기간 작품의 수명을 연장하고, 낡고 손상된 상태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고자 애써왔다. 이번 《보화수보(寶華修補)》전시에서는 보존 처리한 작품 중 32점을 대중에게 선보인다.
간송미술관은 문화재청 지원 사업을 통해 2020년부터 150건의 소장 유물을 보존 처리해왔는데 이번 전시에서 문화재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세심한 관리가 어려웠던 중요 비지정문화재를 대상으로 문화재청과 간송미술관 유물보존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지류·회화수리복원연구소가 함께 진행한 최초의 보존관리 사업의 성과물을 공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전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협력전시 이후 휴관상태에 있던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7년 만에 열리는 전시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운미난첩(芸楣蘭帖)
민영익(閔泳翊, 1860〜1914), 지본수묵, 각 30.7×58.2cm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학예를 계승한 운미(芸楣) 민영익의 묵란화는‘운미란(芸楣蘭)’이라 불리며 당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이 운미난첩《(芸楣蘭帖)》은 무려 72종의 다양한 양태의 춘란과 혜란을 그려 성첩한 묵란첩이다. 전통적인 묵란화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일면 추사 묵란화풍의 자취도 엿보이지만 동시에 운미란만의 독특한 개성이 묻어난다.
포도(葡萄)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견본수묵, 32.0×21.8cm
신사임당의 명성에 걸맞는 우아한 작품이다. 안정된 구도에 짙고 옅은 먹을 적절히 구사하여 싱그럽게 익어가는 포도알의 양태를 잘 옮겨냈다. 잎과 줄기는 먹의 농담을 적절히 이용하여 생동감과 변화감이 풍부하다. 먹으로만 그린 수묵화인데도 포도의 외양과 풍취가 생생하게 전해오는 듯하다.
매헌선생문집(梅軒先生文集)
권우(權遇, 1363-1419), 목활자본, 21.0×15.7cm(반곽)
문신 권우(權遇, 1363-1419)의 시문집으로 1452년 발간한 초간본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구를 통해 서문이 없고, 발문이 보사(補寫)로 나중에 엮인 점, 몇몇 장이 고의로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는데 이는 책을 만들 당시 정치적으로 민감한 인물과 관계된 부분이나 단어를 의도적으로 감추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원형을 고증하여 찢어진 부분을 공지로 보강하거나, 역사적 사실로 남겨야 하는 부분은 보강하지 않고 찢어진 그대로 장정하여 유물의 원형과 더불어 유물이 지닌 역사적 맥락까지 보존하고자 했다.
한편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미술관으로 8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수장, 연구, 전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온 ‘보화각(葆華閣)’은 노후로 인해 이번 전시를 끝으로 보수 정비에 들어간다. 그간 보물을 담아온 건물이자 그 자체로 소중한 보화각도 우리 곁에 영원히 함께하기를 바란다.
전시는 2022년 4월 16일부터 6월 5일까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보화각 전시실에서, 사전 예약(www.kansong.org) 후 관람할 수 있다.
글: 문혜인
자료: 간송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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