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가는 길: 강익중》

청주시립미술관
2024.7.4~9.29
Exhibition

〈삼라만상 해피월드〉혼합 매체 가변 크기 1984~2020
《청주 가는 길 : 강익중》청주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사진 : 박홍순

〈탁구대〉혼합 매체 가변 크기 2019

40년간의 궤적을 고향에 담다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품수장센터운영과장


이번 개인전은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개인적인 헌사이자, 어떻게 장소가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우리가 그 장소들을 떠난 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작가적 탐구과정을 담고 있다.

〈1,000개의 드로잉〉(부분) 혼합 매체 가변 크기 1985~2024

청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는《청주 가는 길: 강익중》은 청주시와 청원군 통합 출범 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난 40년 동안 제작해온 〈삼라만상 해피월드〉,〈달항아리〉 시리즈,〈1,000개의 드로잉〉, 한글 프로젝트〈내가 아는 것〉,〈우암산〉,〈무심천〉등을 선보이고 있다.

지역미술관이 개인전, 특히 시정(市政)과 관련된 기념비적 행사를 개최하기 위하여 작가를 선정할 때는 정무적인 감각과 관계자들 간의 공감대를 필요로 한다. 작가가 해당 지역 태생이거나, 그 지역에 이바지한 바가 공인되거나, 또는 지역 출신으로서 타지에서 활동하는 명망있는 작가를 최우선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미술관은 전시관람 너머 작가의 작품세계를 통해 지역을 더 홍보하고 문화적 맥락을 배가하면서 실제 관광으로까지 연결하는 부가적 효과를 기대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해외에 진출한 한국 작가가 급증하는 가운데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확보된, 지역성과 국제성을 모두 겸비한 작가를 선호하는 경향이다.

그렇다면 작가에게 이러한 전시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일회성의 개인전이 아니라 작가가 지나온 시간의 경과를 살펴보고, 작품을 분석하는 회고전은 작가의 작업세계를 어느 정도 정리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제목만으로도 향수를 자극하는 회귀성 전시는 작가의 개인적인 역사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출생, 양육, 인적 교류, 교육 등의 정보는 자칫 작가의 예술적 활동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이러한 정보는 작가의 배경에 대한 단초를 제공함으로써 작품 해석에 대한 새로운 비평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의 주요한 포인트는 첫 번째로, 40년의 작업세계 중 현재까지 지속되는 대표적인 작품을 추려서 강익중 작업의 고유한 특성을 반추하는 것, 두 번째로 과거로부터 시작되어 현재를 반영하고 나아가 미래를 상상하는, 시점과 주제를 복합적으로 연결하는 것, 세 번째로 청주 태생이라는 점을 드러내며 작가의 지역, 문화적 맥락을 재배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회고적 성격을 살펴보자. 이번 전시는 강익중의 기존 전시 중 회고전 성격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뉴욕으로 건너간 직후부터 제작하여 현재까지 지속되는 대표적인 작품들이 대거 출품되었다. 전시디자인이 연대기적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지만 1층에서는 신작 설치 작품을 전시하고 2층에서 기존 작업들을 보여주고 있어 시대적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다. 2층 전시장에는 뉴욕 시기 대표작품인 가로 세로 3인치의 캔버스 1만여 개와 오브제, 그림으로 이루어진〈삼라만상 해피월드〉,〈달항아리〉 등이 전시되었다. 가로 세로 각 3인치의 작은 캔버스는 작가가 뉴욕에서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작업할 수 있는 사이즈를 설정하여 끊임없이 작업에 몰두한 결과이다. 작가가 작은 퍼즐들을 공간과 주제에 맞도록 조합하여 더 큰 설치작으로 전환하는 방식은 익히 알려져 있다. 퍼즐의 파편은 그 자체로서도 고유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집합과 나열이라는 방식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조화와 연결’, ‘소통과 화합’이라는 작가의 일관된 주제의식을 시각화하는 데 효과를 거두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거의 모든 작품이 이러한 조합과 증폭의 작업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작업의 출발점, 현재의 모습, 양식적 완결성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이는 작가를 비롯 우리를 둘러싼 온갖 사물과 현상을 표현하는 삼라만상 그 자체를 의미하고 있다.

두 번째로 시점과 주제를 복합적으로 연결하는 태도이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삼라만상 해피월드〉,〈달항아리〉 시리즈,〈1,000개의 드로잉〉 등은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는 시리즈 작업들이다. 작가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을 단선적이라고 파악하고 과거의 작업에 새로운 형식적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작품의 경험과 스토리를 변화시킨다.〈1,000개의 드로잉〉은 기존의 작업을 유지한 채 2024년 전후 TV를 통해서 본 일상의 모습을 추가하였는데 이미지의 프레임은 브라운관 모니터의 모습을 그대로 이용하여 보여준다. 바탕재를 잡지로 처리하고 흰 종이를 붙인 후 그 위에 드로잉을 함으로써 국경, 세대, 시간을 초월한 미디어 이미지의 영향력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가 포착한 TV의 장면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한 일상의 이미지로 전환되는 것이다.

특히〈삼라만상 해피월드〉는 기존과는 다르게 “작품이 보석상의 보석처럼 빛나 보이도록 해달라”는 작가의 요청에 따라 조명이 추가되었다.1만 개의 작은 블록은 다른 전시에서보다 더욱더 밝게 빛나고, 사운드가 더해져서 시청각을 모두 자극하는, 작가만의 시그니처 형식이 완성되었다. 밝게 빛나는 공간은 거리의 소리, 자연의 소리, 사람의 말소리가 더해져서 21세기 화려한 문명의 세계를 상징하는 듯하다. 높이 10m의 전시장 안에 설치된 한글 프로젝트 〈내가 아는 것〉은 2001년부터 작가가 삶의 지혜를 담거나 일기처럼 써놓은 3,000개의 글자로 이루어진 문장이 색면화처럼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당초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다른 색으로 구분하는 방식으로 쓴 글자들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미술의 근원으로서 색에 대한 애정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띄어쓰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는 한글의 특성을 완전히 무시한 채 문장들은 한 줄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바탕색과 글자색이 서로 다르며 손으로 일일이 그린 듯한 표현에다가 이번 전시에서는 문장을 읊조리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더하여 전시실을 몰입형의 공간으로 전환한다. 시각적 언어와 청각적 언어의 상호작용은 그가 일찍이 뉴욕에서 영어를 배울 때 경험했던 언어 습득의 과정을 새롭게 환기시키고 있으면서 각양각색의 글자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문명을 이루어낸 바벨탑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 )’이라는 개념을 품고 있기도 하다.

〈무심천〉 나무에 아크릴릭 가변 크기 2024
《청주 가는 길 : 강익중》청주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4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려는 작가의 노력은 복도에 설치된 실향민들의 이야기, 남과 북을 연결하기 위한 염원으로서 제작한 〈탁구대〉, 나아가 아직 실현되지는 않은 상상의 작품인 〈꿈의 다리〉 등에서도 엿보인다. 드로잉과 모형으로 소개된 〈꿈의 다리〉는 임진강 DMZ 위에 남과 북을 잇는 원형의 다리를 설치하는 아이디어다. 끊어진 국경선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남과 북, 나아가 전 세계인이 자유롭게 거니는 상상의 다리인데 작금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기가 매우 어렵다. 작가는 2010년부터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대중이 참여하는 다양한 형태의 공공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작가는 이러한 공공프로젝트를 통해 작품으로서 물질적 성과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참여자들의 꿈과 생각에 주목하여 사람들의 생각을 모으는 그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렇듯 비물질적 요소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최근 작가는 조명을 포함한 빛과 사운드 역시 중요한 효과로 여기고 있다. 빛과 사운드는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 방점을 찍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기존 작업들을 새롭게 보이도록 만드는 요소들인데 이번 전시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세 번째로 회귀적 성격을 살펴보자. 1960년 청주에서 출생하여 1963년 서울 이태원으로 이사하였고 1984년 뉴욕으로 건너가 활동한 그의 노정 속에서 청주라는 지역과 자연의 배경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다루어진다. 작가는 잊고 있었지만, 새로 발견한 청주의 모습을 세부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와 기억의 본질을 전달하기 위한 인상주의적 접근을 시도한다. 작가에게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재고(再考)의 기회는 새로운 창작의 의지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1층 계단과 2층 전시장 입구로 연결되는 계단에 설치된〈무심천〉은 야외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최초로 선보이는 대규모 설치작업이다. 이 작품에서는 검은 붓의 굵고 빠른 필치를 통해 도심을 가로지르는 하천의 자연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음양오행에서 검은색이 물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무심천〉과 〈우암산〉은 산과 물이 서로 어우러진 청주의 자연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작가를 낳은 환경적 근원을 의미한다. 또한 작가에게 이 두 자연적 요소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처럼 상호작용하여 청주라는 지역을 구성하는 기호로서 간주되기도 한다.

〈꿈의 다리〉(가운데) 혼합 매체
가변 크기 2024 《청주 가는 길 : 강익중》
청주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작가는 캐서린 앤 폴(Katherine Anne Paul, 버밍엄 미술관 아시아미술 책임큐레이터 )과의 인터뷰에서 고향에 대한 기억 속 어머니를 떠올리며 인간의 영혼이 모성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런 작가의 느낌을 담아서 전시실 벽에 직접 시를 자필로 남기기도 했다.

청주 가는 길
묻지 않아도 아는
손을 잡지 않아도 통하는
오랜만이라도 낯설지 않는
멀지만 가까이 있는
마음 한구석에 숨쉬고 있는
그 플라타너스 터널이 반겨주는
잠 못 이루는 밤에 생각나는
우암산이 기다리는
바람이 들려주는
보듬지 않아도 피어나는
울 어머니 좋아하셨던
레이니어 체리 같은

작가는 이 시 외에도 고향 청주를 떠올리며 여러 편의 시를 미술관 공용공간에 자필로 남김으로써 시각적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을 보여주기도 했다. 작가의 배경을 이해한다 함은 그의 작품에 담긴 여러 경험과 감정을 여러 층위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실 작가의 배경에 대한 지식은 작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에 입각한 비평을 가능하게 하는 시작점이다. 관람객은 작품을 작가의 의도, 작가로서의 도전 그리고 작품이 만들어진 환경의 맥락 안에서 평가할 수 있는데 출생 이후 영위되는 개인의 역사는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상의 가장 근원적인 요소이므로 간과해서는 안된다. 작품 속에 담긴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다 열린 시각으로 관람객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개인적인 정보를 아는 것만으로도 작가의 의도를 보다 정확하게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작가의 배경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작품의 가치나 의미들이 간과되거나 오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예술에서 더 깊은 층위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강익중의 이번 개인전은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개인적인 헌사이자 어떻게 장소가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우리가 그 장소들을 떠난 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작가적 탐구과정을 담고 있다. 관람객들은 작가가 고향에 대해 느끼는 온기, 우울함, 깊은 애정 등을 공감하면서 그들만의 시작으로 돌아가는 상상의 여행으로 초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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