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미술 현장 돌아보기
마켓은 주춤,
다양성과 가능성으로 채운 2024년

심지언 편집장

Special Feature

2024년 미술계는 다사다난하고 분주했으나 빅이슈는 없었다. 베니스에서 시작된 비엔날레는 부산과 광주로 이어져 하반기 비엔날레 릴레이가 전국으로 퍼졌고, 키아프-프리즈 주간을 맞아 미술계 전체가 동시에 들썩였다. 뒤이은 한국 작가들의 해외 주요 기관 전시가 뉴스 화면을 장식하며 한국미술의 국제화가 궤도에 올랐음을 알렸다. 미술시장은 2023년 이후 거래 규모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으나 전시와 아트페어를 찾는 방문객 수는 늘고 기업 및 해외 기관들과 여러 협업이 전개되며 일 년 내내 분주했다. 비엔날레와 아트페어라는 주요 플랫폼을 중심으로 과도할 정도로 많은 이벤트가 동시에 쏟아지며 볼거리는 풍성하고 관람객 경험이 확장되는 동시에 피로도가 절정에 달하는 꼭짓점을 두세 차례 찍었다. 원로작가와 미술관의 갈등, 해외미술관의 한국 근대미술품 위작 논란 등 작지 않은 이슈들이 홈런 없는 잦은 안타와 같은 형상으로 2024년 미술계를 채웠다.


한국미술의 국제화 : 비엔날레, 미술관, 갤러리 두루 점령
2024년 한국미술의 국제화는 서울에 지점을 둔 해외 갤러리의 활동으로 시작되었다. 해외 갤러리들은 연초부터 한국인, 한국계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 작가 발굴에 시동을 걸었다. 페로탕(이상남 ), 리만머핀(유귀미, 현남, 켄건민, 임미애, 성능경(뉴욕 ) ), 타데우스 로팍(제시천, 정유진, 권용주, 이해민선, 남화연, 양유연, 정희민(런던 ) ), 페이스갤러리(김정욱, 김진희, 류노아, 박광수, 서용선, 이우성, 이재헌, 정수정 ), 페레스 프로젝트(이근민(베를린 ) ) 등이 신진부터 원로까지 다양한 세대의 작가 전시를 서울과 해외지점에서 펼쳤다. 김윤신은 리만머핀과 국제갤러리와 동시 전속계약을 발표하며 국내외 프로모션의 출발을 알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미술의 국제화 흐름과 더불어 ‘한국 근현대미술 Re-프로젝트’와 리서치 펠로우, MMCA 리서치랩을 통해 미술사 연구와 국제적 네트워킹을 강화해 우리 작가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고 공표했다.

베니스비엔날레를 플랫폼으로 베니스에서 한국미술, 작가 전시가 집중적으로 개최되었다. 본전시에 초대된 김윤신, 이강승, 장우성, 이쾌대와 함께 유영국, 이성자, 신성희, 이배 등이 병행 전시로 개인전을 열었고,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기념하여 역대 한국관 전시에 참여했던 36명(팀 )의 작가를 소환하여 아카이빙 전시를 선보였다.

하반기에는 키아프-프리즈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 다수의 큐레이터, 미술기관 관계자, 갤러리스트, 컬렉터 등을 대상으로 한 작가 스튜디오 방문, 토크와 네트워킹 프로그램, 전시를 통한 한국미술 프로모션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프리즈 런던 시기에 런던 주요 기관에서 개최된 한국 작가들의 전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테이트 모던 터바인홀의 현대 커미션에 이미래가 초대되었고,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선보인 양혜규, 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의 정금형 개인전,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조민석 등 유럽의 영향력 있는 미술관과 기관에서 선보인 한국 작가의 전시는 작년부터 미주의 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한국미술 기획 · 개인전의 열기가 미국을 거쳐 유럽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문체부는 ‘K-브랜딩’을 바탕으로 한 대규모 패키지 프로젝트를 통해 공연-현대미술-전통예술영화-미식을 아우르는 한국 문화 홍보를 펼쳤다. 올해는 파리 올림픽을 계기로 ‘코리아시즌-프랑스’를 마련하여 5월부터 프랑스 전역에 K-컬처를 종합적으로 소개함으로써 마케팅 효과를 확산시키려는 전략을 선보였다.

제도권과 국제적 인정 받은 여성미술과 미술인
2019년부터 시작된 한국미술계의 ‘여성시대’, ‘여성파워’가 올해 ‘여성미술사 정리’와 ‘해외 미술계의 여성작가 주목’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접속하는 몸 :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은 1960년대 이후 아시아 11개국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 130여 점을 망라하며 국립미술관에서 ‘여성 미술가’를 별도로 라벨링하여 제도권 내로 편입하면서 재소환하였다. 호암미술관의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은 불교미술을 ‘여성’이란 관점에서 조망했고, 조영주(송은 ), 아니카 이(리움미술관 ), 김아영(ACC) 등 다수의 여성작가가 규모있는 미술관에 초대되었다. 김윤신, 강서경, 함양아의 갤러리 개인전이 이어졌고 구정아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되었다.

출판 분야에서도 의미있는 성과가 있었다. 페미니즘 이론가와 기획자로 활동해온 김홍희, 윤난지가 한국 여성 미술가를 정리한 저서가 출간되었다. 김홍희는 페미니즘의 15개의 화두를 바탕으로 44명의 작가를 소개하는 『페미니즘 미술 읽기 :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 (열화당, 2024 )와 『Korean Feminist Artists : Confront and Deconstruct』 (파이돈, 2024 ) 두 권의 책을 한국과 영국에서 출판했다. 윤난지 교수는 현대미술포럼 연구자들과 함께 여성작가 105명의 스펙트럼을 조명하는 『그들도 있었다 1 · 2- 한국 근현대 미술을 만든 여성들』 (나무연필, 2024 )을 출간하며 한국 여성 미술가들을 미술사에 편입시켰다. 이렇듯 전시-연구-출판으로 이어지며 여성미술의 정리 작업이 진행되었다.

또한 김수자, 이불, 이미래, 양혜규, 정희민, 정금형, 유귀미 등의 작가가 메트로폴리탄, 테이트 모던 등 주요 미술 기관에 초대받으며 한국 작가, 특히 여성작가에 대한 해외 미술계의 높은 주목도가 확인되었다. 더불어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 전시감독으로 김해주(싱가포르 ), 이설희(한국 ), 이숙경(일본)이 선임되며 한국 여성 기획자의 역량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전시 : 스타와 비주류의 혼주
세계적 거장 및 현대미술 작가의 규모있는 개인전이 일년 내내 이어졌다. 필립 파레노(리움 ), 칸디다 회퍼(국제갤러리 ), 노먼 포스터, 구본창(서울시립미술관 ), 우고 론디노네(뮤지엄 산 ), 에드바르 뭉크(예술의전당 ), 엘름그린&드라그셋(아모레퍼시픽미술관 ), 니콜라스 파티(호암 ), 아니카 이(리움 ), 서도호(아트선재 ), 이강소(MMCA), 김아영(ACC), 와엘 샤키(대구미술관 ) 등의 개인전이 미술계 안팎의 관심을 끌었으며, 다수가 서베이형 전시로 마련되어 작년부터 이어진 서베이 전시의 흐름을 이어갔다. 공립미술관을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 자수와 조경, 그리고 여성 등 비주류 미술을 조명하는 시도가 이루어졌으며, 코로나 이후 대두된 생태와 환경, 비인간 객체 사물(유물 ) 등의 주제 기획전을 통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동시대 전시의 화두를 살필 수 있었다.

비엔날레 릴레이 : 베니스에서 제주까지
2024년은 비엔날레의 해였다. 상반기에 해외 비엔날레가 먼저 시작되어 3월 휘트니와 시드니비엔날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4월 베니스비엔날레에 이어 10월 방콕과 자카르타비엔날레로 이어졌다. 한국의 비엔날레는 8월 부산비엔날레를 시작으로 광주, 경기 도자, 창원 조각, 평창 트리엔날레, 대전과학예술, 제주비엔날레까지 하반기 릴레이를 이어갔다. 올해는 비엔날레의 풍년인 동시에 베니스비엔날레는 60회를 맞았고, 한국관 개관 30주년, 광주비엔날레 30주년을 맞은 해로 아카이브 전시와 자료집 등이 제작되며 비엔날레의 역사와 역할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비엔날레는 여전히 유효한지, 초기와 동일한 형식의 반복이 비엔날레 정신에 부합하는지, 동시대의 비엔날레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각성과 더불어 오랜 역사가 무색하게 축적되지 않는 운영 노하우와 행정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올해 개최된 국내외 비엔날레는 주제적으로 기후, 환경, 생태, 다양성, 불확실성, AI 시대의 현실 인식, 공존, 연대와 포용 등의 키워드를 다루며 동시대 주요 담론이 반복되었다. 비엔날레와 함께 미술인들의 전국으로의 지역 이동과 서울 관람객의 지방행도 잦은 한 해였다.

아트마켓 : 세일즈는 감소했으나 관람객, 관심도 등 양적 팽창은 지속
미술시장은 금리 상승과 경기 침체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술품 판매는 소폭 감소했으나, 아트페어 방문자와 해외 갤러리의 국내 아트페어 참가는 증가했고 젊은 세대의 미술에 대한 관심도 지속되었다. 2024년 상반기 미술품 경매는 낙찰액이 전년 대비 13% 증가했으나 낙찰률이 지난 5년간 낙찰률 중 최초로 50% 이하로 떨어졌다. 3분기 경매 낙찰총액은 동기 대비 26.19% 감소하며 하반기 경매는 더욱 위축되었다. 키아프 서울을 비롯한 주요 아트페어가 매출액 등 실적을 발표하지 않고 있으나 대체로 전년 대비 10% 이상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키아프-프리즈 3회차를 맞이하며 서울은 아시아의 주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으며, 미술시장과 기관, 공공과 지역의 협력이 확대되며 본격적인 아트위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아트페어의 범람 속 신선한 기획과 차별화된 부스 구성의 아트오앤오가 주목받았고, 디아프(Diaf)는 개최 시기를 11월에서 5월로 옮겼고, 더프리뷰 성수도 개최 시기, 메인 타깃, 부스 구성 등 전반적인 포지셔닝의 변화를 꾀하는 등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아트페어들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재정비를 거쳤다. 한편 미술품 위탁 렌털 계약을 통해 대여료와 투자수익, 원금 보장을 약속한 폰지 사기 의혹이 제기된 갤러리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되어 수사가 진행 중이다. 코로나 이후 급증한 미술품 투자 및 투기의 어두운 구석이 조금씩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현재 시장은 조정기로 2022년의 급속한 성장 이후 저속 성장으로, 크게 보았을 때 전반적 우상향의 방향성 내에 있는 것으로 본다. 키아프-프리즈와 같은 대형 국제 아트페어는 당장의 판매 실적보다 해외의 유력한 미술계 관계자들의 방문 및 협업 등 한국미술의 국제화에 긍정적 의미를 두고 있다. 2023년부터 침체가 지속되어 왔으나, 현재 한국미술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한국미술 시장의 국제화 등 기회의 요소가 시장의 긍정적 사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술관과 재단 : 어긋나는 인사, 교차하는 운영 축소와 건립 계획
공공미술관은 2024년 부적합한 인사와 지자체 미술관 신설 소식이 이어졌다. 작년부터 지역 공립미술관에 공무원 출신과 정치인의 지인이 관장직에 임명되며 ‘미술관장’이라는 전문직에 대한 정치권과 행정직의 인식에 대한 회의감과 불신이 쌓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년 넘게 공석이었던 학예실장직에 9월 김인혜 학예실장을 임명하며 조직 안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개관을 준비했던 서울사진미술관은 2025년으로 개관을 미루었고, 김해, 예천, 인천, 전주 등 10곳이 넘는 지자체에서 미술관 건립 계획을 발표하고 공청회 및 개관 준비가 진행 중이다. 또한 문체부의 이건희기증관(가칭 ) 건립 계획과 미술계의 국립근대미술관 건립 제안은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한편 주요 레지던시들이 예산과 인력을 대폭 축소하거나 운영 중단을 발표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레지던시를 종료하고 복합문화공간으로 변경 계획을 발표했고, 대전 테미창작센터는 문학관으로 변경되며, 한시적 이동 상태로 운영 방향이 불투명하다. 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도 이전이 결정되며 대체 부지를 찾고 있는 등 레지던시의 기능이 위축되거나 운영이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 온라인 서명운동 등 반대운동이 전개되었으나 운영 주체의 결정을 바꾸지는 못했다.

정책 : 제도적 기반 마련과 첫 과실
정책적으로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의 방향성은 K-컬처 산업화와 한국미술 본격 해외 진출, 그리고 미술진흥법 시행 등이었다. 올 초 문체부는 ‘국제문화홍보정책실’을 신설하여 국제문화교류 정책을 속도감 있게 통합 홍보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더불어 국가 차원의 미술계 지원을 법제화하며 다양한 미술진흥 정책 추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인 미술진흥법이 7월 26일부터 시행되었다. 시행 전까지 미술 서비스업 신고제도와 재판매보상청구권(추급권 ) 등 미술진흥법의 주요 내용과 범위, 시행령 등에 대한 다양한 쟁점이 이어졌으나 시행 이후에는 별다른 이슈가 없는 상태다. 시행 3년 후(2026년 7월 ) 미술서비스업 신고제 시행을 위한 세부 사항 논의 등 추후 유통업계와 긴밀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지난 10월 물납제 도입 이후,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내는 첫 사례가 나왔다. 한 수장가가 상속세 용도로 신청한 물납 미술품 10점 중 4점이 심의를 통과해 8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등록되었는데, 이만익, 전광영의 작품 각 1점과 중국 작가 쩡판즈의 초상화 2점이다. 간송미술관과 이건희 컬렉션이 쌓아 올린 미술품 물납제의 첫 열매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내실화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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