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미술관”
8인의 Interviews
황수진 노재민 기자
Interviews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라는 말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질까. 많은 기관이 ‘누구나 환대하는 공간’을 지향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현장에는 여전히 수많은 제약과 관성이 작용한다. ‘접근성’과 ‘포용성’이라는 텅 빈 언어에 주석을 달 듯, 그 말들이 실체화된 경험과 실천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월간미술은 문화예술정책관계자, 예술가, 기획자와 실무자 등 서로 다른 위치에서 이 문제를 마주한 8인을 만났다. 실천의 언어로 말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모두의 감각과 관계를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접근성의 필요성이 드러난다. 미술관 안팎의 충돌, 균열, 실천의 사례가 교차하는 이 대화가 ‘모두를 위한’이라는 문구가 공허한 수사가 아닌 실천 가능한 구조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을 찾는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김은설
작가
개인전 《중간언어 Intermediate language》(탈영역우정국, 2023) 등 개최 및 단체전《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국립현대미술관, 2025), 《말하는 머리들》(서울시립미술관, 2025), 《여기 닿은 노래》(아르코미술관, 2024) 등 참여. 2025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21기 및 2024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8기 입주작가. 워크숍 ‘미술관 밖 프로젝트 #1-6_열 개의 눈–만나는 손과 손: 수평적 감각’(부산현대미술관, 2024) 등 개최. 국립현대미술관, KT&G상상마당에 작품 소장 사진: 박홍순
개인적인 경험이 어떻게 창작 활동에 영향을 주었는가?
나는 잘 들리지는 않지만 보청기를 끼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어떤 중간적인 세계에 나의 언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본능적으로 작업에 표현하게 된 것 같다. 내 작업이 처음부터 접근성 기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나한테 필요해서 그런 작업을 했는데 사람들이 이를 ‘접근성에 기반한 작업’이라고 불러줬다. 그 말이 참 좋게 느껴졌다.
〈청각장애 인공지능 학습〉 연작에 대해 말해달라.
인공지능은 완전하지 않은 감각으로 언어 데이터를 분석하고, 학습한 결과를 도출하고, 또 실패하기도 한다. 그 과정을 보면서 내가 농인으로서 학습하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말을 흉내 내고 있다. 어릴 적 말소리를 배울 때, 몸의 울림을 통해 ‘이런 진동이면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하는 감각을 익히고 입 모양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는 차이는 학습했지만, 혀의 미세한 움직임 같은 건 파악하기 어려웠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익혔기에 이렇게 말을 구사할 수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데이터와 눈앞에 있는 정보랑 맥락을 조합해가며 분석하고 학습하고 실패하고 이를 반복한다. 그 과정이 인공지능과 몹시 흡사해서 인공지능 관련 작업을 하게 됐다.
〈소리 없는 소리〉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5분(총 15분) 2022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촬영: 이규환 제공: 작가
소개하고 싶은 다른 작업이 있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소리나 언어를 통해서만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귀로 듣지 않아도, 그림자의 움직임만 봐도 어떤 소리인지 떠올릴 수 있다. 이런 감각을 보여주고자 한 작업이 〈소리 없는 소리〉(2022)다. 또 〈진동하는 몸의 대화〉(2023)를 소개하고 싶다. 나는 소리가 무엇인지 모를 때, 부모님의 몸에 내 몸을 맞대면서 몸통의 울림, 입에서 나오는 바람, 목의 떨림 등을 통해 촉각적으로 소리를 배웠다. 이 작업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 퍼포먼스다. 참여자 두 명이 서로의 목소리를 피부로 ‘듣는’ 시간을 가졌다. 진동을 통해 존재를 드러내 보고, 몸과 몸, 피부와 피부, 공기를 매개로 한 소리의 전달을 체험해 보는 거다. 의자에는 진동 스피커가 설치돼 있어, 두 사람의 말소리가 명확하게 들리지는 않아도 웅얼거림이 진동으로 전달되면서 촉각적인 언어로 소통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미술관의 접근성과 포용성은 지금 어디까지 왔다고 보는가?
국공립 기관은 수어 해설을 제공하고,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을 맞이할 준비가 어느 정도 갖춰진 듯하다. 하지만 막상 전시를 관람하러 들어가면, 영상이나 사운드 작품에 사운드 해설이 없거나 영어 자막만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농인은 수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수어를 모르는 농인도 많다. 장애 유형은 매우
다양한데, 이를 큰 틀로만 맞추려 하면 접근이 어려워질 수 있다.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한글 문장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왜냐하면 수어와 한글은 문장 구조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어 해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자막도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수어해설의 질도 중요한 것이, 제공된 수어해설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농인이 많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어해설이 필요하고, 이때 농인 검수 과정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청각장애 AI 학습 #2〉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스테레오 10분 35초 2024
제공: 작가
접근성 향상에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예술계의 정책이 여전히 다수를 중심으로 설계되다 보니, 장애를 보여주기 식으로 끌어다 쓰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장애’ 그 자체보다 그 안에 존재하는 감각이나 고유의 언어에 집중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그런 시선은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 무엇보다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나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장애예술은 장애인이 제일 잘 아는데, 장애인을 두고 비장애인을 섭외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움이 크다. 접근성을 향상시키려면 당사자가 발언하고 이끌어가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보여질 수 있는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함께 고민하면서 지속적으로 당사자 참여와 자문이 이뤄졌으면 한다.
“접근성을 향상시키려면 당사자가 발언하고 이끌어가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노재민 기자
다이애나랩
아티스트 콜렉티브
* 월간미술은 콜렉티브의 유선, 백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하는 표현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그룹. 미디어아트, 사운드아트, 텍스타일,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개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콜렉티브로 물리적인 공간부터 보이지 않는 공기까지 전체를 섬세하게 고려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공공예술 프로젝트 〈차별없는 가게〉(2018~), 〈퍼레이드 진진진〉(2019),〈환대의 조각들〉(2020~2021), 〈배리어컨셔스를 위한 조각들〉(2022~) 등 기획. 『차별 없는 디자인하기』(6699프레스, 2023) 공저
아르코미술관의 전시 《일시적 개입》(2022)에서 공개한 작품 〈지도에없는이름〉은 다이애나랩과 blblbg가 협업해서 여러 소수자 당사자들의 말과 문장을 점자로 읽을 수 있도록 설치한 작품이다. 점자 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목탄으로 묵자를 썼다. 같은 내용은 음성으로도 들을 수 있도록 사운드 설치를 했고, 연계 퍼포먼스를 할 때는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방식으로 읽는 것과 그것의 차이, 지연을 드러냈다. 전맹인 김보라가 작품을 감수했다. 제공: 작가
인포숍과 〈차별 없는 가게〉 프로젝트를 소개해달라.
유선 인포숍은 소수자 운동이나 소수자 문화, 그리고 서브컬처와 같은 다양한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자 카페로 운영해왔다. 이후 인포숍카페별꼴과 다이애나랩이 함께〈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백구〈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는 발달장애인이나 휠체어 이용자들이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가게가 매우 부족하다는 현실에서 출발했다. 처음부터 접근성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공간을 찾기보다는 점주들에게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하고, 차별 없는 공간을 만들어가기 위한 시설 접근성 향상과 소수자를 환대하는 태도에 대해 함께 논의하며 공간을 조성해가는 약속에 가까운 프로젝트다.
진(Zine) 수업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백구 진은 빠르고 손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다. 자본이나 권위적인 출판 과정 없이 누구나 저자이자 출판인이 될 수 있으며, 자기 목소리를 직접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이애나랩은 진을 통해 장애인들이 주체적인 창작자로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업을 노들 장애인 야학에서 진행 중이다. 진은 위계 없이 누구나 창작자로 참여할 수 있는 매체로서, 발달장애인이나 다른 소수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발화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추가로 소개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유선 남서울미술관에서 진행했던〈환대의 조각들–흘러가는 진퍼레이드〉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싶다. 노들 장애인 야학 참여자들이 수년간 진 수업에서 제작한 수백 장의 그림을 웹상에서 흘러가는 퍼레이드 형식의 미디어 작업으로 만들었다. 특히 시각장애인을 위해 모든 콘텐츠를 대체 텍스트와 사운드로 접근할 수 있게 구성했다.
백구 2019년 실제로 진을 피켓의 형태, 옷의 형태로 만들어 들고 입고 밖으로 나가 대학로 일대를 행진했던 〈퍼레이드 진진진〉이라는 작업에서 출발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오프라인으로 만날 수 없어 웹상으로 전환된 사례다. 이 작업은 진의 위계 없는 참여와 자유로운 표현이라는 태도를 중심으로 기획되었다.
〈퍼레이드 진진진〉은 2019년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했던 퍼레이드로
중증발달장애인 창작자들을 포함한 여러 진스터(zinester)들과 함께 만들었다.
제공: 작가
접근성을 고려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유선 사람들은 간혹 접근성을 기존 작품에 부가적으로 덧붙이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살짝 덧붙이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워서 아예 다시 시작하는 것이 빠를 수도 있다. 창작 과정에서부터 접근성을 고려하는 것이 훨씬 실효성이 크다.
백구 또한 수어 통역과 같은 2차 창작을 통해 접근성을 구현하는 작업은 인력과 비용이 필요한데, 예산을 너무 적게 잡는 경향도 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예산 계획에 포함하여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작업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장애예술에 대해 미술계가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유선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비장애인 중심의 기준에 맞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장애예술인은 드물다. 미술계가 비장애인이 설정한 기준만으로 장애예술을 평가하면, 장애예술인들이 오랜 시간 동안 즐거움을 느끼며 창작해온 근본적 맥락이 훼손될 수 있다. 이러한 기준을 다시 생각하고, 장애예술을 미성숙하거나 천진난만한 것으로 해석하지 않고 당사자의 예술로서 진지하게 접근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백구 다이애나랩 프로젝트를 통해 만날 수 없던 사람들 간의 접점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완벽한 접근성을 구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를 개선할 의지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차별없는가게 웹사이트 캡처 wewelcomeall.net
앞으로의 계획은?
백구 우리가 여전히 접근성을 비장애인 중심으로 생각하고 기획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고민한다. 결과물로서의 접근성보다 과정으로서의 접근성을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완벽한 접근성을 구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를 개선할 의지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노재민 기자
김미정
기획자
현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오늘, 아무도 없었다》(아트 스페이스 풀, 2018),《미쓰–플레이》(공동기획, 인사미술공간, 2014). 아르코미술관에서 《여기 닿은 노래》(2024),《투 유: 당신의 방향》(2022), 《홍이현숙 개인전: 휭, 추–푸》(2021) 및 인사미술공간에서《그런 공간》(2025), 『월간 인미공』(2021~2022) 등 기획 사진:박홍순
2022년 《투 유: 당신의 방향》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휠체어 워크숍을 기획하게 된 계기와, 이후 미술관 내부에서 변화된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투 유》 전시는 ‘이동’을 통해 삶의 틈을 들여다보는 전시로 기획되었지만, 당시 혜화역에서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매일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차이에 대한 사회의 이해 부족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시위를 미술관 바로 앞에서 마주하면서, 전시에서 ‘이동의 주체’를 충분히 확장하지 못했다는 점이 큰 고민으로 남았다. 이에 전시에서 직접적으로 관련 문제를 다루기보다, 전시 밖과 안을 실질적으로 연결할 방법을 찾던 중 휠체어 워크숍을 기획하게 되었다.
리서치를 통해 협동조합 ‘무의’에서 제작한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를 알게 되었고, 무의 팀에 아르코미술관 이용자를 위한 안내 지도를 만들어줄 수 있을지 요청드렸다. 이후 무의 팀이 미술관을 방문해 교통약자의 입장에서 공간을 확인하고 지도를 제작했다. 해당 지도는 아르코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열람 가능하다.
또한 미술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휠체어 워크숍을 진행했다. 직원들이 직접 휠체어를 타고 혜화역에서부터 미술관까지 이동한 뒤 전시장을 둘러보는 방식이었다. 워크숍을 통해 조도, 작품과 캡션의 높이, 작품 간 간격 등 여러 요소에서 문제점이 명확히 드러났고, 이후 미술관 입구 경사로를 포함한 일부 공간의 물리적 개선도 이루어졌다. 담당자들이 이용자의 입장에서 운영상의 미진함을 확인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구축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2024년 《여기 닿은 노래》 전시에서 가장 많이 고민한 점은 무엇이었고, 이를 통해 포용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한 부분이 있다면?
《여기 닿은 노래》(이하 《여닿노》)를 준비하면서 참고한 일부 유관기관 전시들에서 ‘다름’, ‘차이’라는 키워드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르다. 그러니 포용해야 한다”는 말이 다소 이상에 치우친 것으로 들렸다. 이에 《여닿노》에서는 ‘차이를 감각한 이후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나 자신과 관람객 모두에게 던지고 싶었다. 다름의 포용이 단지 장애인 작가를 전시에 포함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느꼈고, 미술관이라는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포용의 태도를 실천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 것이다.
《여닿노》는 그런 고민이 전시장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고, 장애예술과 관련된 분들의 경험에서 배우고 조언을 들으며 기획된 전시였다. 아울러 장애인 창작자들이 기획한 프로그램들을 초청해 그들이 미술관의 적극적인 사용자가 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장애를 하나의 정의로 묶을 수 없듯 여러 매체를 활용하는 창작자들의 작업을 통해 관객이 장애예술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넘어서고, ‘복잡한 고민’을 안고 돌아가게 되기를 바랐다.
아르코미술관 전시 《여기 닿은 노래》(2024) 연계 프로그램 ‘등장 연습 워크숍 “짜잔”’
제공: 아르코미술관
미술관 내 접근성 실천이 기관의 구조와 운영 전반에 반영되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가?
《여닿노》의 접근성 측면을 말한다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환경을 구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시 이후 아르코미술관도 접근성 개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고 여러 미술관들에서도 빠르게 이 부분을 보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 예술 현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가 필요하다. 매뉴얼로는 해결되지 않는 지점들, 이를테면 장애예술인의 교육 방법 및 협업의 다양성 구축 등 외적인 요소까지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미술관들은 점점 의지를 갖고 관련 전시와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겠지만 그 목표를 깊이 공유하고 고민할 장애인 창작자들은 앞서 언급한 지점들의 해결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 미술관이 ‘접근성’과 ‘포용성’을 실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전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022년 『월간 인미공』 8월호 ‘공백: 미술관은 무엇을 하지 않는가’ 서문에도 밝혔지만 최근 전시나 프로그램에서 전면에 내세우는 거대하고 선한 언어들이 텅 비어 있거나 평면적이라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투명한 시대에 단어의 의미에만 매몰되기보다 그 언어를 선택한 미술관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 깊이 연구하고 고민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에서 일하며 요즘 자주 떠올리는 문장은 ‘무엇을 어떻게 매개할 것인가’이다. 개인적으로 늘 이 부분을 상기하고 있다. 앞으로 미술관에는 더 다양한 주제와 역할이 요구될 테고, 그런 문제의식을 함께 고민할 이들을 찾으며 여러 목소리가 울리는 자리를 만드는 일, 그것이 공공 미술관의 기획자가 할 수 있는 몫이 아닐까 한다.
“차이를 감각한 이후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황수진 기자
최선영
문화예술기획자
홍익대 회화과 졸업.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웹진 이음’ 기획위원(2022~2024), 경기도 도정자문위원(문화예술분야)(2022~2024) 등 역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모두예술주간 2023: 장애예술 매니페스토’ 〈무리무리 아무리〉 기획. 장애인 예술교육 강의노트 『같이 좀 모르자』(스튜디오네버다이, 2024) 집필 사진:박홍순
회화 전공 후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배경이 궁금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로 문화예술교육 단체에서 보조 활동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곳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거친 표현의 작업물에 큰 매력을 느꼈다. 예술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지 않았지만 자기 표현을 솔직하게 해내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후 강사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미술계에 장애인과 예술 활동을 연결해 고민하는 주체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 현장을 보며 ‘내가 다음에 전담하게 되면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포부로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예술교육에서 ‘개별성’을 강조하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예술교육에서 개별성을 존중하려면 우선 ‘계획 중심’의 수업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같은 시간에 같은 활동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가 다른 시간에 다른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공간 구성도 중요하다. 각자의 방식으로 머무를 수 있도록 자리를 다르게 세팅한다. 예술교육가는 그 현장을 ‘진행자’가 아닌 ‘관찰자’로 바라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개별 학생의 감각과 표현을 이해할 수 있고, 이후 활동에도 반영해서 기획할 수 있다.
2023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모두예술주간 2023: 장애예술 매니페스토’〈무리무리 아무리〉
최근 발간한 장애인 예술교육 관련 책『같이 좀 모르자』를 통해 가장 전하고 싶었던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제목 그대로, “우리는 계속 모른다”는 점을 인정하자는 것이 이 책에서 가장 긴하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오히려 편안함이 생긴다. 그 안에서 타인을 더 궁금해하게 되고,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할 여지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은 어떤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계속 질문하는 태도,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를 제안하고 싶었다. 실제로 책을 읽은 분들이 “이건 장애예술교육에 대한 책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관한 책 같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공공기관과 협업한 프로그램 중 인상 깊었던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특별히 한 가지 사례를 꼽기보다는, 기존에 정해진 주제나 형식을 설득해서 방향을 조금이라도 틀어보는 그 과정 자체가 가장 중요하고 기억에 남는다. 예를 들어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콘텐츠 개발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을 때, 나는 오히려 소규모라도 대면해야 한다는 점,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보다 질문을 공유하는 것이 먼저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다. 결국 완전히 다른 현장을 만날 예술교육가들이 그 질문을 바탕으로 현장에 맞는 표현 활동을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실효성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문화예술교육이 단순히 ‘치유’나 ‘복지’로만 읽히지 않기 위해, 제도나 인식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이 질문은 결국 ‘누구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느냐’는 문제와 연결된다. 나는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훨씬 더 견고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사회 안에서의 제도와 인식 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구조 자체가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이다. 그러니 먼저 필요한 건 더 자주, 더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환경이다. 요즘 ‘문화다양성’이나 ‘접근성’이 일종의 사회적 학습 주제처럼 다뤄지는 흐름은 조금 우려스럽기도 하다. 범주화될 수 없는 개별성이 분명히 있는데, 그 개별성은 결국 일상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4 중랑문화재단 장애·비장애 통합예술놀이 키트〈그리장, 비추장, 만들장〉
제공: 최선영
향후 예술과 교육이 ‘배려’가 아닌 ‘공존’의 방식으로 접근성과 포용성을 이야기하려면 무엇이 변화해야 하나?
공존을 이야기하려면 사회가 기본적으로 정확하게 작동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장애인이 예술가가 돼야 한다”는 말보다 먼저, “장애인도 예술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아주 당연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 당연함이 사회적으로 실현되고 있지 않다는 건, 결국 정당한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예술이라는 것도 제도적으로 어떻게 인정받느냐보다 당사자의 욕구와 삶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전시를 하든 하지 않든, 누군가의 경험과 작업이 그 사람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존을 이야기하려면 사회가 기본적으로 정확하게 작동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황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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