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저작권 시장,
관문을 제대로 통과하기
미술 저작권 국제 컨퍼런스 6.26
김소정 기자
Sight&Issue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는 미술 저작권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앞서 문체부는 지난해 제정된『미술진흥법』의 현장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창작자뿐 아니라 미술시장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지난 5월 말부터 저작권 교육을 시작해 올해 말까지 전국 9개 지역에서 실시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본 컨퍼런스는 같은 맥락에서 저작권 인식 제고와 창작자의 권리 기반 강화를 목표로 한 프로그램으로, 특히 2027년 7월 26일부터 본격화되는 미술품재판매보상청구권 시행을 앞둔 시점에 국내외 저작권 전문가 및 관련 기관 담당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견을 개진하고 사례를 공유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경신 교수
버지니아 모리슨 선임 변호사
제공: 예술경영지원센터
미술 저작권 활용 현황과 수요 분석
박경신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국내 미술 저작권 시장이 전체 저작물의 36.6%(2023년 기준)로 큰 비중을 차지하며, 관련 단체가 관리하는 저작물 수도 지난 5년간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증가하는 수요에 비해 저작권 활용 수익은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저작자와 이용자 모두 저작권 계약 체결 경험이 있다는 답변이 과반임에도(저작자 73.7%, 이용자 56.4%) 저작권 사용료 수령 경험이 없다는 답변이 높게 나온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사용료 책정 기준의 부재나 저작물 무상 이용 관행 등의 실태를 지적했다. 미술 저작권 시장 활성화를 위해 미술 저작물, 전시권 정의 규정 신설이나 대여권 범위 조정 등 관련법 개정에 이어 가치평가 시스템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벤자민 응 CISAC1 아시아태평양 지역 디렉터는 전통적으로 시각예술 분야의 저작권 보호에 앞장선 유럽에서 저작물 활용도가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조사 결과(93%,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북미 지역은 각각 3.2%)를 보여줬다. 미술품 재판매보상금 징수액 상위 10개 국가도 모두 유럽에서 나왔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작가의 저작권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점이 지적됐는데, 이는 저작권이나 추급권이 작가의 수익원이 되지 못하는 현실로도 드러난다.
볼프강 마티아슈 빌트레히트 최고운영책임자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CMO2인 빌트레히트의 활동을 소개했다. 1977년 설립된 빌트레히트는 1만 명에 가까운 저작권자를 대리하며 작년 기준 약 688만 유로(약 111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 중 미술품재판매로 거둬들인 수익은 138만 유로(약 22억 원), 이 분야 전 세계 시장의 9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인구 900만 명, GDP기준 세계 30위권에 해당하는 오스트리아의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저작권 시장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국과 호주의 재판매보상청구권
리마 셀히 DACS(Design and Artists Copyright Society) 정책 및 국제협력책임은 재판매보상권 분야 전 세계 1위의 시장규모(약 258억원)를 보유한 영국의 사례를 설명했다. 영국은 2006년에 미술품재판매권 (Artists Resale Rights, 이하 ARR) 관련 법률을 제정했다. 초기에는 생존 작가에게만 한정되었고 현재는 작가 사후 70년까지 유효하며 유족 등 상속인이 권리를 가진다. ARR 보장을 위해서는 해당 작품이 법률상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는 저작물이어야 하는데, 이는 박경신 교수가 앞서 발표를 통해 미술 저작물의 정의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이외에도 최소 1000파운드(약 180만 원) 이상의 금액으로, 반드시 미술시장 전문가 즉 갤러리 딜러경매사에 의해 재판매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작품이 대량 생산되거나 작가가 ARR 관련 법률이 없는 국가 출신인 경우, 개인 간 거래, 개인이 미술관에 판매하는 경우 등에는 보상금이 발생하지 않는다. 특기할 점으로는 반드시 CMO와 같은 단체가 징수해야 하고 보상금 기준이 법으로 지정되어 최고 한도가 있으며(약 2000만 원) 협상이 불가하다는 규정이 있다. 영국에서도 ARR 도입 당시 미술시장 측의 강력한 반대와 로비가 있었고 미술시장 거래를 약화하거나 미술품의 해외 유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영국이 여전히 유럽에서 가장 큰 미술시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술품재판매보상청구권 도입을 2년 앞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발표자는 마지막으로 2017년 세계지적재산권기구가 발표한 재판매보상청구권의 경제적 영향에 대한 연구를 언급하며 이 제도가 미술시장에 미치는 실질적 피해는 나타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영국이 유럽연합의 재판매권 지침(2001)에 따라 ARR을 의무화 했다면, 호주는 그보다 앞서 논의된 베른협약(1948)의 재판매보상청구권 조항을 바탕으로 수년간의 논의와 조사를 거쳐 2010년 작가의 미술품 재판매보상 청구권 제도를 도입했다. 발표자 버지니아 모리슨 카피라이트 에이전시 선임 변호사에 따르면 호주법은 영국의 법과 유사하다. 다만 해당 작가를 호주 시민권자 외에도 상호주의 국가 출신으로 확대했는데, 처음 법이 제정된 이후 몇 차례 개선된 결과다.3 발표자는 호주에서 애초에 미술시장의 반대가 거셌으나 법이 도입된 이래 지금까지 총 1600만 호주달러(약 543억5000만 원)의 보상금이 징수되었음을 밝히며 시장의 지속적인 확대를 전망했다.
라운드테이블 전경
제공: 예술경영지원센터
(왼쪽부터) 볼프강 마티아슈 최고운영책임자, 벤자민 응 디렉터
추급권의 실효성 확보와 미술시장의 동행
이어진 라운드테이블에서는 미술품재판매보상청구권 도입을 앞두고 불거지는 우려와 대처 방안논의에 이목이 집중됐다. 미술품 거래 정보의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법의 구속력과 실효성을 어떻게 챙겨야 하는가의 질문에 볼프강 마티아슈는 재판매보상금 지불의 책임 당사자인 작품 판매자(옥션, 갤러리, 딜러 등)와의 계약 하에 판매 장부를 감사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영국의 법에도 감사 권한과 처벌에 관한 조항이 없다. 리마 셀히는 한 갤러리 관계자를 대상으로 거액의 법률 소송을 진행한 사례를 소개하며 그와 같은 행동이 미술시장에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사실상 이와 같은 감사와 법적 대응은 드물게 일어나는 경우이지만, 해외의 갈등 사례를 통해 필요한 조치를 갖출 수 있어서 미술진흥법상 불이행에 대한 제재 조항이 없는 국내 현장에서 더욱 면밀히 검토될 필요가 있다. 특히 저작권 신탁과 재판매보상청구법이 각각 저작권법과 미술진흥법이라는 다른 법률에 제정된 상황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의 제도와 정책을 구축한 영국의 운영 성과는 일련의 가이드를 제시한다.
한편, 저작권 보호의 법적 강제에 따라 미술시장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측면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결국 로열티와 보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측은 CMO와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시장의 플레이어들이며, 이들이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길을 모색하는 것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작동 원리다. 컨퍼런스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여러 번 강조한 바, 미술 저작권 시장의 성장은 미술시장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한 공동의 과제다. 이 점을 알리는 공론의 장을 조성하고 미술 저작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캠페인과 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 본 기사는 예술경영지원센터와 월간미술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1 CISAC(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은 111개 국가의 228개 저작권신탁관리 단체를 회원으로 보유, 이들을 통해 약 500만 명의 저작자를 대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SACK(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과 KOLAA(한국문화예술저작권협회)가 가입되어 있다
2 Collective Management Organization의 약자로 저작권을 신탁관리하는 단체를 가리킨다
3 상호주의 국가 목록은 해당 법률이 규정하며 ARR이 법률상 유효한 국가가 대상이다. 한국도 미술품재판매보상청구권이 시행되는 2027년에 해당 목록에 포함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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