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Ⅰ,Ⅱ》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소장품으로 써 내려간 한국미술 100년의 역사

Exhibition

《한국근현대미술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시 전경 2025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써 내려간 한국미술 100년의 역사
조수진
미술사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이 개관 56년 만에 비로소 자체 소장품만으로 구성한 상설전을 열고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기술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대한제국 시기부터 1990년대 말까지의 작품 총 270여 점을 소개하는 MMCA 과천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Ⅰ》과《한국근현대미술Ⅱ》, 그리고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한국 현대미술 대표작 90여 점을 선보이는 MMCA 서울 상설전《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가 그것이다. 1969년 개관 당시 보유 소장품이 전혀 없었던 국현은, 1900~1960년대의 주요 작품 총 145점을 발굴해 전시한 《한국근대미술 60년전》(1972) 개최를 전후해 처음으로 소장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해당 전시는 한국 근대미술 역사 정립과 관련 작품의 수집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대 유명 미술인들이 결집했던 의욕적인 기획이었다.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현은 주제별·장르별·시기별로 분류한 소장품을 다수의 전시에서 정기적으로 소개해 왔다. 국내 소장품 기획전, 동양화, 조각, 사진, 뉴미디어 같은 장르별 작품 소장전, 국제 소장품 기획전, 신소장품 소개전, 기증작가 특별전 등 다양한 소장품 관련 전시들이 대체로 6개월에서 1년 기간 동안 개최되었다. 지난 2013년 개관한 서울관에서도 《코리안 뷰티: 두 개의 자연》(2014)을 시작으로 소장품 특별전이 종종 열렸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소장품을 통해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연대기적으로 살핀 전시들이 등장했는데, 1, 2부로 나뉘어 2년 동안 지속된 《한국현대미술_거대서사Ⅰ,Ⅱ》(2012~2013, 2013~2014), 단일 전시로 2년 동안 열렸던 《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2020~2022)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처럼 과천관과 서울관 모두에서, 외부에서 대여한 작품 없이 종료 시점을 상정하지 않고 대규모로 상설전을 연 사례는 없었다.

《한국근현대미술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시 전경 2025

이는 앞으로 국현이 한국 근현대미술사 정립 절차의 전면에 나서겠다는 매우 의미심장한 선언이다. 이런 자신감의 근저에는 높아진 대한민국의 문화적 위상과 함께 미술관이 국민에게 선보일 명작 및 관련 아카이브를 충분히 확보했다는 사실이 자리할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작품과 자료의 이용 및 공개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국현에 있고, 덕분에 미술관이 현재의 미술계에서 비평적 쟁점을 형성하고 역사적 관점을 수립하는 데 매우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 현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국현의 이번 전시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주로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연대적 성격에 맞춰 작품들을 나열했던 과거의 소장품 상설전 구성에 더해, 이번 전시에는 특정한 역사적 시각에 근거한 다양한 주제가 여럿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향후 주제별 전시작의 일부는 간간이 교체되겠지만, 동일한 전시 구성이 2년 이상의 기간 동안 꾸준히 계속되며 미술관의 역사적 인식이 관람자들에게 확고하게 각인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향후 미술계에 미칠 이번 전시의 여파는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소장품 상설전의 구성과 내용은 그간 국현이 진행해 온 한국근현대미술사 연구 사업들, 즉 개론서 『한국미술 1900-2020』(2021)의 출판이나 온라인 플랫폼 ‘MMCA 리서치랩’ 구축 과정에서의 경험 및 소산과 긴밀히 연동되어 있다. 그런데 이 사업들은 미술관 외부 인력과의 협업을 통해 최근의 미술사학 연구 성과와 비평계 이슈 역시 반영했기에, 이번 소장품 상설전은 한국 근현대미술사 관련 미술관 내·외부 주체 간의 긴밀한 공조로 탄생한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 전시에 담긴 역사 정보와 인식이 관람자들에게 전달되어 특정한 반응을 이끌어 내게 되면, 이는 다시 앞으로의 소장품전 구성과 내용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술사 전시는 이처럼 미술관, 학계와 비평계, 그리고 대중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때론 서로 다른 견해가 부딪쳐 파열음이 발생하더라도, 소장품 상설전의 개최와 관련한 미술관 내·외부의 상호 협력은 그침이 없어야 한다.

《한국근현대미술Ⅱ》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시 전경 2025

과천관의 《한국근현대미술Ⅰ》과 《한국근현대미술Ⅱ》, 그리고 서울관의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는 대상 시기와 중점을 둔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연대기적 전시, 주제 기반 전시, 특정 작가 소개 전시의 유연한 혼합 형식을 취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전시 구성은 현재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이 일반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방식으로, 뉴욕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 테이트모던 등은 2000년대 이후부터 전통적 시기 구분의 바탕 위에서 각 전시실의 작품을 주제, 매체, 지역, 특정 작가 중심 등으로 재분류하는 소장품전을 적극 선보이고 있다. 이는 기존 현대미술사 서사의 위계와 고정관념을 탈피하려는 노력의 결과로, 덕분에 이들 미술관에서는 장르, 국경, 젠더의 경계를 넘어서는 다채로운 미술사 해석이 풍부하게 제시되고 있다. 현재 일본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所蔵作品展 MOMATコレクション(소장 작품전 MOMAT 컬렉션)》 역시 19세기 말 이후의 일본 미술사를 연대기로 정리하면서도 여성 작가의 재평가와 지역적 다양성의 배려라는 미술관 방침에 따라 주제별로 각 시대의 작품을 설명한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기존의 소장품 전시 구성을 보완하려는 시도는 최근 세계 미술계의 전반적인 추세다. 관건은 이런 노력이 각 미술관의 작품 수집 및 연구 방침과 얼마나 부합하느냐, 나아가 20세기 내내 서구화를 현대화와 동일시한 한국과 같은 비서구 국가 미술관의 경우 근현대미술에 대한 역사적 관점 자체를 서구와 어떻게 차별화하느냐에 있을 것이다. 서구 유명 미술관의 소장품전에서 기존의 연대기적 구성의 탈피는 보편이자 중심으로 상정된 서구 미술사를 보완할 특수와 주변, 즉 비서구와 여성의 미술 등을 포용함으로써 달성된다. 그러나 비서구 국가들의 소장품전은 국제적 유행을 따를 때 더 근본적인 사안부터 먼저 고민해야 한다. 가령 비서구 국가의 근현대미술에서 당대 혹은 과거의 서구 미술과 관계 맺은 결과물이 보편이라면, 전통미술을 계승한 동시대 작품들은 보편 쪽에 속하는가 아니면 특수 쪽에 속하는가? 누가, 어느 위치에 서서 미술사적 현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중심과 주변의 내용이 달라진다. 서구 미술을 지향했던 자국 미술을 주축으로 삼은 것이 이제까지의 소장품전 구성이었다면, 비서구권 미술관이 향후 제시해야 할 대안적 해석은 서구 미술관의 그것과는 분명 성격이 달라야 할 것이다.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5

이런 쉽지 않은 과제를 수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현은 타 국가의 전시와 차별화되는 독자적 역사 해석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작품 수집의 원천인 미술관 자체 전시 역사부터 검토해 보기로 한 듯하다. 실제로 국현은 이번 소장품 상설전이 지금까지 개최했던 여러 한국 근현대미술전의 토대 위에서 탄생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과천관 전시의 주제와 구성에서 김환기, 이중섭, 박래현, 박수근, 장욱진, 윤형근, 최욱경, 이신자 등의 개인전,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2019),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2021),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2023~2024), 《MMCA 기증작품전: 1960-70년대 구상회화》(2024) 등의 기획전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 과거 전시의 기획 의도와 핵심 정보가 녹아든 과천관의 《한국근현대미술Ⅰ》과《한국근현대미술Ⅱ》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한국 근현대사 속 미술’에서 ‘한국의 근현대미술사’로 나아간 과정이 소장품들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즉 3층의 전시 《한국근현대미술Ⅰ》은 한국 근현대사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가운데 과거와는 역할과 위상이 달라진 미술의 면모를, 2층의 전시 《한국근현대미술Ⅱ》는 한국 근현대미술사가 미술계 내·외부 요인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어떤 쟁점을 통해 정립되었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한국근현대미술Ⅰ》은 국현 소장품 중 20세기 전반에 제작된 작품 145점을 소개하는 전시다. 구한말에서 1950년대 전반까지, 대한제국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에 이르는 격변의 시기에 탄생한 미술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과거의 미술사적 사건을 물질, 즉 소장품과 자료만으로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전시에는 그간 국현이 선보여 온 서사적 성격의 근대미술 전시 경험이 긴요하게 요구되었다. 개화기를 맞이한 전통미술의 변모로 시작된 전시 내용은 서양 회화와 조각, 사진의 한반도 유입과 정착 과정을 6·25전쟁과 분단, 이산 같은 근대사의 주요 사건과 연결 지어 설명해 나간다. 또 단독 코너인 ‘작가의 방’ 대상자로 오지호, 박래현, 김기창, 이중섭을 선정해 동양화와 서양화, 남성과 여성 미술가 간 균형을 맞추는 동시에 서양화(서구 근대미술)의 국내 정착과 동양화의 현대화(서구화) 과정을 강조한다. 과거와의 분리라는 공통 주제로 반(半)추상, 앵포르멜 같은 전위의 조형 양식을 6·25전쟁이라는 단절적 역사와 엮어 해석하고, 국토 분단과 한민족의 이산 문제를 가족이라는 인류 보편의 주제와 디아스포라 예술가 변월룡의 작품으로 논의하기도 한다. 각 주제의 스토리텔링은 전 장르를 망라하는 소장품들이 다양하게 동원되어 이뤄진다.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5

《한국근현대미술Ⅱ》는 한국 현대미술사가 본격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광복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의 미술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전시는 ‘정부 수립과 미술’ 주제로 시작되는데,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라는 미술 제도를 다룬 이 섹션을 통해 시대적 맥락에서 미술 내적인 문제로 전시의 관점이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미술에서 1950~1970년대는 특히 새로운 양식, 매체, 개념 등의 도입으로 현대성을 선취하려는 전위들의 경합이 치열했던 시기다. 전시는 기본적으로 연대기적 구성을 따르면서 총 11개의 소주제를 구상과 추상, 전통과 현대, 기성과 전위 같은 이분법적 개념의 병치를 통해 설명해 나간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연대기적 역사 서술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를 통해 1950년대부터 한국 추상미술의 주된 양식이었던 반(半)추상 회화와 조각 작품을 독립해 소개하거나, 동·서양화와 공예, 조각 분야 여성 추상 작가들을 모은 ‘모더니스트 여성 미술가들’에서 남성 전위미술 단체에 치중했던 기존 추상미술 역사에 대안을 제시한 점은 새로운 시도다. 전시는 나아가 ‘형상의 회복과 현실의 반영’에서 1980년대의 한국 미술사를 순수 대(對) 참여보다는 추상의 형식 지향에 대응한 형상의 내용 회복으로 기술하며 기존의 이념적 갈등 구도에서 벗어난다. 현실 반영 혹은 비판 의지의 소산으로 설명된 당대의 극사실 회화와 민중미술이 이미지의 회복이라는 공통 범주에 포함되면서, 근대 이후의 사실주의, 구상, 형상미술의 현실 인식이 동일 선상에서 비교될 기회가 도래했다.

한편, 서울관의 소장품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는 “도시와 역사와 동시대 미술이 호흡하는 열린 미술관”을 지향하는 미술관의 모토에 걸맞게 해외미술과 본격적으로 조응하던 1990년대 이후의 동시대 미술에 초점을 맞춘다. 인접 거리에 있는 근대미술 전담 덕수궁관을 의식한 듯 전시는 1960년대에서 2010년대까지의 시기를 다루는 데 집중하고 있다. 1전시실은 현대성, 전위, 사물성, 행위, 삶 등을 키워드로 삼아 한국 추상미술, 실험미술, 극사실 회화, 민중미술을 한자리에서 소개한다. 관람자의 동선이 작품 배치 순서를 그대로 따른다면 미술사의 연대기적 이해가 가능하겠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1전시실에서 제공하는 것은 마치 작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탄생한 것 같은 압축적 시간 경험이다. 시대별 맥락 설명을 최소화한 전시 방식까지 더해져 수십 년 전의 작품들이 동일 양식이나 매체를 이용한 아래층의 동시대 작품들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전시가 더 역점을 둔 부분은 1990년대 이후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2전시실이다. 혼성, 개념, 다큐멘터리 같은 소주제에 따라 분류된 회화, 설치, 사진, 미디어 아트 작품들은 그 규모와 복합 매체적 조건을 고려한다 해도 전시장 환경과 맺은 관계가 1전시실과 다를 뿐 아니라, 감상에 실제 시간을 요구하는 뉴미디어 작품의 특성상 관람자에게 훨씬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전시의 모든 작품이 같은 시간대에 놓인 것 같은, 한마디로 ‘동시대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전시는 그렇게 1990년대 이후의, 아직 미술사에 기록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한 작품들을 이미 역사적 선별이 완수된 걸작들과 동일한 층위에 올려놓는다. 서울관 전시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지금 우리 시대의 작품들과 과거 작품들의 친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관 전시명의 ‘하이라이트’는 오늘의 한국 미술계가 세계인들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은 미술사적 순간들을 상징하는 용어다. 국현이 이번 전시를 통해 스스로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 주목해야 할 작품들을 제시했다면, 이제 미래에 남은 과제는 하이라이트의 이면에 자리한 수많은 작품에서 새로운 미술사적 가치를 찾아내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일이다. 1만1800점의 국현 소장품 가운데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개중에는 미술사적 가치는 충분하지만 전시 주제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있거나, 본성적으로 범주화와 유형화를 거부하는 작품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이번 소장품 상설전에 출품된 360여 점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수작 중의 수작임이 분명하겠으나, 전체 전시에서 과천관과 서울관 사이에, 또 과천관 자체 전시들 사이에 겹치는 작가가 적지 않다. 전시작의 높은 집적도가 관람 경험을 피상적으로 만들거나, 몰입적 감상으로의 유도가 관람자의 주체적 해석을 오히려 방해할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전 세계 미술계에서 오직 한국의 국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소장품 상설전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향후 다양한 전시 기획과 독창적 주제들이 끊임없이 등장해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지평을 쉼 없이 확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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