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석 Seo Hyun Suk

모순을 껴안고
무의미를 찾아 나선
한 아방가르디스트의 항해

문혜진 미술비평

Artist

제공: 작가

서현석/ 1965년생. 영상 연구자이자 제작자. 미국 시카고예술대에서 비디오아트 전공으로 석사 학위, 노스웨스턴대에서 영화 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방송 영화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며, 다원예술 비정기간행물『옵/신』의 공동 편집자로 활동 중이다. 전시 《틈》(아트선재센터, 1998), 《실종》(정미소, 2004), 《2019 타이틀매치: 김홍석 vs 서현석》(북서울미술관, 2019), 《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국립현대미술관, 2021), 연극 「FAT SHOW: 영혼의 삼겹살」(2008) 등에 참여했다. 책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2007, 공저) 등을 저술했으며, 「초기 비디오 아트에 나타나는 자기반영성, 마조히즘, 그리고 지루함에 관해」를 비롯하여 영화와 정신분석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모순을 껴안고 무의미를 찾아 나선 한 아방가르디스트의 항해
문혜진 미술비평

작가로서 서현석을 규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2010년대 초반 세운상가와 영등포 일대에서 인상적인 장소특정적 퍼포먼스를 선보인 퍼포먼스 작가로 그를 기억할 것이고, 젊은 세대는 비교적 최근 전시인 《2019 타이틀매치: 김홍석 vs 서현석》(북서울미술관, 2019)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의 《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2021)의 인상을 바탕으로 성찰적 VR 작업을 하는 작가로 서현석을 알고 있을 공산이 크다. 한편 광주비엔날레나 국립아시아 문화전당에서 우연히 〈잃어버린 항해〉(2011~2018)나〈Las Hurdes〉(2017)1 같은 장편 다큐멘터리를 본 관객은 서현석을 훌륭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여길 수 있다. 더욱이 2000년대 중반 이후 다큐멘터리, 영화, 비디오아트, 퍼포먼스와 관련한 여러 편의 논문과 다수의 비평을 기고한 이론가이자 대표적 다원예술 잡지 『옵/신』의 공동 편집자로서의 면모도 고려하면 작가 서현석의 초상은 갈수록 모호해진다. 이 글은 국내에 공개되지 않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서현석의 초기 영상 작업을 통해 작가 서현석의 기원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몇몇 특징을 도출하려는 시도다. 1998년 박사논문을 쓰던 중 일시 귀국해 홍성민, 박화영과 함께 《틈: 싱글채널 비디오》(아트선재센터, 1998)전에서 비선형적 서사 실험 영상을 선보인 후, 서현석은 2000년대 초반 교직에 임용되며 국내에서는 교육자이자 학자로서 먼저 알려진다.2 이 때문에 영상 작가로서 서현석의 초기 작업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서현석은 홍성민과 함께 서구에서 제대로 비디오아트를 공부한 첫 세대로3 1990년대 서구 비디오아트 신의 영향을 직접 받았고, 비디오뿐 아니라 영화로 석박사 학위를 받아 미술과 영화의 맥락을 각각 온전히 이해하고 향후 장르를 넘나드는 다원예술의 물꼬를 튼 중요한 역할을 한 작가다. 오늘날 서현석의 작품세계는 그가 1990년대에 받은 다매체적 교육 및 초기 작업과 무관하지 않기에, 그 출발이 어떤 풍경이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서현석은 1985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프레즈노 주립대에서 방송영상 전공으로 학사학위를 받고 1989년 영화전공으로 노스웨스턴대 석사과정에 입학한다. 그가 이 학교를 선택한 것은 이론과 실기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드문 학교였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서현석은 1970년대의 기호학, 정신분석학, 페미니즘 등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을 배우고, 필름 프로덕션과 비디오 프로덕션에서 기본적인 영상 제작 방법을 습득한다.4 노스웨스턴대 재학 시절의 대표적 작업인〈Tabasco Sauce on the Beach〉(1990)는 이미지와 이미지, 이미지와 소리, 소리와 소리가 충돌하는 몽타주 기법에 대한 실험이다. 고추 달린 금줄을 비추는 바다(동양의 금기)와 화려한 바로크 성당(서양의 신성함)이 중첩되고, 황병기의 가야금 소리(동양)와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의 법열〉(1647~1652)(서양)이 부딪치며, 바흐의 미사곡(성)과 타바스코 소스(속)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이 작업은 몽타주라는 영화적 기법을 비디오에 적용한 것이다. 서사 없이 동양적 기호와 서양적 기호가 여러 차원에서 날것으로 부딪치는 작업은 그 자체로 비디오적이지만, 제작 방식과 구성에는 영화의 흔적이 깊게 스며들어 있다. 우선 작업의 시작과 끝이 명료하고 의미가 강조된다. 한국 전통에서 아들을 낳으면 금줄을 친다는 텍스트가 올라가며 드러나는 것은 실제 금줄이 설치된 바닷가다. 영상이 전개되며 금줄에 불이 붙어 매달린 고추는 불타 떨어진다. 영상의 마지막 장면은 모래장난을 하고 있는 동양 여자아이와 빙글빙글 도는 타바스코 소스다. 떨어진 고추를 상징하는 여자아이와 범속한 자본주의의 아이콘(소스)이 된 고추는 아이러니로 가부장제의 해체를 알린다. 실제로 작가는 영화 촬영하듯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촬영을 진행했고, 구조적인 태도로 영상을 조직했다. 마지막 장면은 형식적인 모순 혹은 코미디로 반전을 준 것인데 이는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의 극적 반전을 고려한 것이다.5 한편 전체 작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타바스코 소스가 미국의 일상 풍경을 배경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장면 또한 사람이나 사물이 여러 공간을 관통하며 이동하는 마야 데런의 〈오후의 올가미〉(1943)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6 하지만 이 같은 영화적 구성이 비디오로 옮겨지며 작업의 의미는 또 한 번 전환된다. 영화였다면 진지한 효과를 냈을 방법론이 비디오로 오면 적나라한 즉물성과 가벼움 때문에 냉소와 자기조소, 패러디로 치환된다. 서현석은 노스웨스턴 재학 시절 16mm 필름 제작을 경험한 후 비디오로 습작을 만들어보고, 두 매체 간의 차이에 크게 당황했다고 회고한다. 처음에는 비디오의 비릿한 이미지가 혐오스러웠으나, 역겨움과 차가운 매력 사이의 모순적 양가성이 차츰 매력으로 다가왔다.7 노스웨스턴대에서 영화로 석사를 딴 후에 다시 시카고예술대 (이하 SAIC)의 비디오과 석사과정에 지원하게 된 것은 이런 연유다.

〈X (무심한연극)〉 특정 장소 기반 참여 퍼포먼스 《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 전경 2021

〈잃어버린 항해〉(스틸) 비디오 2011~2018

〈Tabasco Sauce on the Beach〉(스틸) 싱글 채널 비디오, U-matic 1990

SAIC의 교육 과정은 서현석에게 직간접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SAIC은 노스웨스턴대와 여러모로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극영화 중심이었던 노스웨스턴대 영화과는 준방송급 수준의 편집장비를 지니고 있었고 업계 중심이었다면, SAIC의 영화과는 스탠 브래키지 등 필름을 직접 조작하는 실험영화 전통이 강한 곳이었다.8 한편 SAIC의 비디오과는 이와는 정반대로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 등 정치적 올바름이 절대적 기준으로, 다문화주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같은 주제로 수업이 개설되었고 작품의 형식적 기교보다 정치적 메시지 중심으로 크리틱과 토론이 이루어졌다. 당시의 분위기를 서현석은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필름의 관점에서 비디오는 ‘유행이나 따라가는 계보 없는 장난감’이었고, 비디오의 관점에서 필름은 ‘낡은 모더니스트 유희’로 폄훼되곤 했다.”9

하지만 서현석에게 SAIC의 다양한 커리큘럼은 결과적으로 모두 자산으로 남았다. 당시 SAIC은 전공 간 교류를 권장했기에 서현석은 비디오 수업뿐 아니라 영화과 수업도 수강했고, 사운드아트나 퍼포먼스 등 시간예술과의 수업도 들었다. 또한 당시 시카고 기반의 유명한 아카이브인 비디오데이터뱅크(VDB)에서 로버트 윌슨, 백남준, 크리스 마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손 닿는 대로 폭넓게 자료를 흡수했고10, 이는 추후 영화, 비디오, 퍼포먼스를 망라하는 다원적 접근을 가능케 하는 토대가 된다. 그중에서도 비디오과의 지향은 모순적인 방식으로 서현석의 작업관을 형성한다. 전술했듯 비디오과의 전반적 성향은 정치적이었지만 ‘비디오란 무엇인가’에 대한 매체적 성찰을 중시하는 경향은 잔존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특정 개념/사상 자체보다 그것이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중시하는 교육 지침은 서현석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다.11 구축의 방식에 대한 질문은 사회정치적 이데올로기와도 관계가 있지만, 매체에 있어 형식이 내용에 어떻게 관여하는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특정 이데올로기의 고발보다 자신의 정체성과 부여된 이데올로기 사이의 모순을 토로하는 2세대 페미니스트의 방법론은 스스로에 대한 질문(주제)을 매체의 형식 탐구와 조응시키는 서현석의 작업관에 짙게 배게 된다.12

매체성찰성과 자의식에 대한 사회학적 탐구가 결합된 SAIC 시절의 대표작이 〈Tao TV〉(1991)다.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이 만연한 시대에 20대를 보내며 어떤 믿을만한 연속적인 의미체계의 부재를 강하게 느끼던 서현석은 개인적 허무주의에 대한 돌파구로 도교(Tao) 사상에 관심을 지녔다. 이를 주제로 비디오라는 매체를 도입할 때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은 “도교 사상 같은 자연 친화적이고 인간적인 믿음을 [비인간적이고 비물질적이고 표면적인] 비디오로 표현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것이다.13 서현석은 이 모순성 자체를 작업의 주제로 삼는다. 결과적으로 작업은 세서미스트리트, 요리강좌, 퀴즈쇼 같은 TV 쇼를 차용하지만, 동양성과 관련된 스테레오타입을 풍자함으로써 TV 쇼의 전형성을 해체하고, 마지막에 빠른 편집의 연출 이미지와 다른 롱테이크 줌아웃의 실사 촬영으로 영상을 마무리해 패러디 비디오라는 포맷도 다시 한번 반전시키는 “부정의 부정을 거듭하는 구조”로14 모순을 가시화한다. 형식적으로 〈Tao TV〉는 이미지의 도상적 의미에 대한 기호학적 실험이다. 만둣국을 먹는 TV 쇼의 장면은 캐스터네츠 소리와 함께 물과 연관된 여러 이미지(분수, 변기, 다이빙, 바다, 소화전, 세탁기 등)의 빠른 편집으로 이어진다. 도교의 건곤감리 중 물을 상징하는 감의 다이어그램( )이 중간에 삽입되면서 만둣국-물-도교-동양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희극적으로 동양성을 드러낸다. 이후 만월을 닮은 만두피를 접어 반달 모양으로 빚는 장면이 밀물과 썰물을 암시하는 파도 장면과 중첩되는데, 만두-동양-달-조석간만으로 이어지는 연상 작용은 곧이어 삽입되는 온갖 종류의 한중일의 만두15와 함께 동양에 대한 서구의 상투적 이미지를 자연스레 풍자한다.〈Tao TV〉는 여러 차원에서 모순성을 내용과 형식으로 전유한다. 감(坎)을 상징하는 다이어그램이 나오는 장면에서 여자아이의 목소리로 내레이션되는 것은 도덕경 중 가장 유명한 구절인 상선약수(上善若水)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으며,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가장 낮은 곳에 임한다는 도덕경의 구절을 작가는 TV에 대입한다.16 이는 영상 시대에 있어 TV야말로 민주적으로 편재하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냐는 반문이기도 하지만, 색상변조, 노이즈를 비롯해 몰입을 방해하는 TV의 물리적 속성을 강조한 화면은 편향된 정보와 온갖 가십으로 성찰을 방해하는 TV의 반작용을 암시한다. 이렇듯 현상의 양가적 속성을 강조하여, 차용하면서도 해체하고, 수용하면서도 반박하는 작가의 태도는 “매혹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환영성을 깨뜨리는 양면성”에 대한 관심의 소산이다.17 줌아웃을 통해 화면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자동차 시퀀스에 화면 속 화면으로 삽입되어 반복되는 앞서의 물 이미지는 내부에서 보던 것을 다르게 보기 위한 장치로, 화면 질감의 대조로 의미의 양가성과 모순을 다시 한번 구조화한다.

1994년 SAIC을 졸업하고 서현석은 노스웨스턴대 영화과 박사과정에 진학한다. 이후 한국에서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서현석은 박사논문을 쓸 겸 일시적으로 귀국하게 된다. 이 시기 동료인 홍성민, 박화영과 함께 참여한 것이 《틈》전이다.18 비선형적 단채널 비디오 전시를 표방한 이 전시에서 서현석은 공동작업인 〈빠지다, 빠지다, 빠지다〉(1998) 중 〈나의 이야기〉(1998)와 개별작업인〈구름의 유혹〉(1998)을 제작했다. 이 작업들은 서현석의 오랜 고민인 의미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는지, 하나의 의미체계로서 삶을 규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창작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는지” 같은 질문들은 조기유학으로 타지에 떨어진 서현석에게 시종일관 떨칠 수 없는 질문이었다.19 학부 시절 만든 첫 작업인 〈Jame Smith〉(1988)부터 〈Tao TV〉, 훗날의 건축 다큐 연작〈잃어버린 항해〉(2011~2018), 〈환상도시〉(2018~2019), 최근의 VR 작업에 이르기까지, 창작이란 무엇이며 의미란 어디서 오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서현석 작업 전체를 관통한다. 이는 작가에게 적용되면 자기성찰성으로, 작품에 적용되면 매체 탐구로 발현된다. 프레즈노 주립대의 도예 강사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인 〈Jame Smith〉에서는 개인의 신념이 창작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탐구했고,〈Tao TV〉에서는 이미지의 도상적 의미가 발현되는 방식과 말할 수 없는 것[도(道)]을 표현하는 모순에 대해 고민했으며, 건축 다큐에서는 폐허가 된 유토피아를 통해 한바탕 꿈과도 같은 모더니즘의 역설을 파헤쳤다.

위 〈Tao TV〉(스틸) 싱글 채널 비디오, U-matic 1991
가운데 〈나의 이야기〉(스틸) 싱글 채널 비디오, Hi-8 1998
아래 〈구름의 유혹〉(스틸) 싱글 채널 비디오 1998

의미에 대한 고민은 IMF 외환위기 시기 한국에서 가일층 심화된다. 참을 수 없는 주체의 공허에 대한 사색적 독백인 〈나의 이야기〉는 결국 공백에 대한 것이다. 시작도 끝도 중심도 없는 연속[무]에 빠진 주인공의 무기력과 불안, 고독은 존재와 아무 연관성을 갖지 못하는 관념의 무의미에서 온다. 그렇기에 대상도 나도 허상을 피할 길이 없다. 서현석은 전부터 지니고 있던 의미체계의 부재에 대한 불안감이 IMF 시기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증폭되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 위기가 아니라 그로 인해 구체화된 정서적이고 정신적인 공황이었고, 정신의 총체적인 파국이었다.20 개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체계가 총체적으로 붕괴했다는 위기의식은〈나의 이야기〉에서 주체의 소멸로 체현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업이 스틸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고통을 느낄 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사진기 없이 마음 속으로 찍는다. 사진과 고통은 분명 연관을 갖는다. 죽음에 가까워진다고나 할까”라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은 찍는 순간 대상이 사라지는(그래서 죽음과 결부되는) 사진의 매체적 특성을 주체의 상실이라는 주제와 결부시킨다. 작업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지하철 장면이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내레이션과 병치되는 것도 움직임=영화=삶을 잇는 개념적 연쇄를 상기시킨다. 물론 연속에 대한 꿈은 착각이고, 간극은 언제나 우리를 삼킬 준비를 하고 있다. 한편, 〈구름의 유혹〉 역시 존재론적 위기가 주제다. 대낮에 카페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남자 주인공은 총체적 공황 상태에 빠진 남성 지식인을 대변한다.21 부조리극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는 온통 초현실주의적인 메타포로 가득 차 있다. 여자 주인공이 카페에 들어와 음료수를 마시고 화장을 고치다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남자 주인공의 쇼트는 약간씩 변주되며 계속 반복된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로퍼, 빈 그릇, 물고기, 거북이, 토끼 모양 쇼핑백은 이 이야기가 현실이 아니라 주인공의 환상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각각 ‘일상’과 ‘유희’라는 관념을 은유하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은 이미지와 언어의 의미 및 물성을 복잡하게 교직한다. 언어(관념)도 이미지도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무의미와 불가능이야말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라는 작가의 생각은 소모적으로 순환하는 이야기로 구현된다. “일상은 유희의 순간을 갈구합니다”와 “일상은 유희의 순간을 갈구하지 않습니다”가 각각 네댓 번씩 여섯 차례 반복되는 모순의 순환은 형식으로 낯섦을 구현하는 구조적 기획이다. 짜증과 짜장이 병치되고, 언어(물고기)가 언어(language)를 상징하며, 용기(courage)가 용기(vessel)와 교차되는 언어유희도 의미의 결정 불가능성을 가리킨다. 생선과 고깃덩어리가 가하는 날것의 충격은 조르주 바타유식 저속함과 폭력성의 반영으로, 남성 지식인의 추락을 상징한다.22 저 멀리 신의 영역에 속한 관념(구름)의 우아함은 텅 빈 공허 혹은 처절한 무의미로 전락한다.

〈헤테로토피아〉 특정 장소 기반 참여 퍼포먼스, 세운상가 일대 2010~2011
〈영혼매춘〉 특정 장소 기반 참여 퍼포먼스, 영등포 일대 2011

《틈》 이후 서현석은 허벅지 밴드와 합작한 뮤직비디오〈허벅지〉(2001), 신사동 옥외 전광판에서 상영한 〈Family/ Technology〉(2001) 등의 소품을 제작하나 본격적인 영상 작업은 2010년대가 될 때까지 손대지 않는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2000년 단국대에 임용된 후 연세대 영상대학원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2000년대 초반에는 교직과 얽혀 작업을 만들 물리적 시간이 없었다. 이 시기 서현석은 극영화, 다큐멘터리, 비디오아트를 망라하는 논문으로 작업의 공백을 대신한다.23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실험적 영상 신의 쇠퇴를 들 수 있다. 더 이상 영상으로 의미 있는 문화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지 못하게 되었다.24 2000년대 초반까지 활발했던 장르 간 교류와 실험적 영상에 대한 관심은 2005년 일주아트하우스의 폐관으로 상징적으로 종료되었다. 한편 이 시기 다원예술이 부상하며 그의 관심은 실험극과 퍼포먼스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25 《틈》전에 이어 홍성민, 박화영과 다시 한번 합작한 〈컬트로보틱스〉(2004), 홍성민이 기획하고 서현석이 연출을 맡은 〈팻쇼: 영혼의 삼겹살, 혹은 지옥에 모자라는 한 걸음〉(2008)이 이 시기 서현석이 제작한 대표적 실험극이다. 하지만 매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장르의 안팎을 넘나드는 태도는 여전히 견지된다. 일례로 〈팻쇼〉의 경우 미리 녹음된 대사를 스피커로 재생하고 배우들은 무언극을 하듯 몸짓만 하게 만들어 배우를 유령으로 만들었고, 관객을 천으로 가두어 관객과 배우 사이를 차단했으며, 앞뒤가 바뀌거나 음절에 변화를 둔 대사를 통해 서사를 고장나게 만든다.26 이후 무대 밖으로 나간 〈헤테로토피아〉(2010~2011)나 〈영혼 매춘〉(2011)에서도 퍼포먼스의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태도는 고수된다. 퍼포머를 일상 공간에 배치하고 관객이 세운상가와 을지로 일대를 돌아다니며 스스로 ‘삶의 영화’를 찍는 〈헤테로토피아〉나, 퍼포머와 관객을 일대일로 동행시켜 집단 관람을 개별 경험으로 전치시키는 〈영혼 매춘〉 역시 ‘퍼포먼스란 무엇인가’라는 매체성찰적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비디오가 지닌 브레히트적 거리감과 즉물적 물성의 모순이 서현석에게 매력으로 다가왔듯, 퍼포먼스도 육체의 강렬한 현존감이 극 종료 후 일시에 사라지는 모순이 그를 매혹시켰다. 그 무엇보다 생생하지만 다른 한편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는 VR 역시 몰입과 빠져나옴 사이에서 흔들리는 양가성이 관심을 끈 원인이다. 결국 온갖 매체를 망라하는 서현석의 다원적 궤적은 스스로와 매체, 의미의 본질에 의문을 던지는 자기성찰적 아방가르디스트의 고뇌로 귀결된다. 모더니즘의 매체 탐구와 다다의 해체가 결합된 서현석의 항해는 지나온 길보다 나아갈 길이 더 길다. 이제 무르익어 에세이 영화, 퍼포먼스, VR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서현석의 다원적 행보가 어디로 얼마나 발산할지 우리는 그저 기대할 뿐이다.

* 본 원고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25 한국미술 비평지원’으로 진행하는 특별 기고이다.


1 이 작업은 《달의 이면》(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17)전에서 처음 상영되었고, 이후 〈폐허의 성좌〉로 이름이 바뀌어 재편집 중이다
2 2000년에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임용되고 뒤이어 2002년 연세대 영상대학원에 임용된다
3 서현석은 홍성민과 한 학기 차이로 SAIC에 진학했지만, 홍성민이 시간예술과에 진학한 반면 서현석은 비디오과에 진학했으므로 서구에서 제대로 비디오를 전공한 작가로는 서현석이 첫 세대라 보아야 한다
4 서현석인터뷰(2025.8.16)
5 서현석 인터뷰 (2025.8.16)
6 위와 동일
7 서현석 이메일 인터뷰 (2025.3.3)
8 서현석 인터뷰 (2025.8.16)
9 서현석 이메일 인터뷰 (2025.3.3)
10 서현석 인터뷰 (2025.8.16)
11 서현석 인터뷰 (2025.8.16)
12 서현석의 SAIC 지도교수는 1980~1990년대에 활동한 2세대 페미니스트 배널린 그린(Vanalyne Green)으로, 이들은 가부장제 자체를 배척한 1세대 페미니스트와 달리 가부장제에 귀속된 여성의 성욕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드러내는 작업을 했다. 서현석 인터뷰 (2025.8.16)
13 서현석 이메일 인터뷰 (2025.3.3) [ ]는 필자의 첨언
14 서현석 인터뷰 (2025.8.16)
15 김치만두, 야채만두, 교자, 우동만두, 해선교자, 맛배기만두, 야채뭉치, 부추만두로 이어지는 연속편집은 자조적 폭소를 유발한다
16 서현석 이메일 인터뷰 (2025.8.17)
17 서현석 이메일 인터뷰 (2025.3.3)
18 이 전시의 성격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문혜진「혼성의 얼굴: 《틈》 vs 《The Cross》」 MMCA 리서치랩 ‘한국미술과 전시사’ 주제 연구 2024 https://www.mmcaresearch.kr/essays/view.do?fid=2377
19 서현석 인터뷰 (2025.8.16)
20 서현석 이메일 인터뷰 (2025.3.3)
21 서현석 이메일 인터뷰 (2025.3.3)
22 실제로 서현석은 지루함에 대한 박사논문을 쓰며, 바타유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바타유 작품에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존재론적 위기의식이나 전통적 가치관의 처절한 붕괴가 근대 이후의 징후로서 산업화된 한국에도 스며드는 것이 수순처럼 여겨졌고, 1990년대 후반의 모든 작업에 바타유식 가치관의 붕괴가 절박한 주제로 깔려 있다고 말한다. 서현석 이메일 인터뷰 (2025.3.3)
23 당시 주요 논문으로 다음을 꼽을 수 있다. 「혁명과 권력의 간극에서: 시선, 디지털, 텍스트」 『프로그램/텍스트』 9호 2003, 「Fort/Da/Dada: 내던지기 미학과 영화적 유희」 『제3의 텍스트』 1호 2003, 「히치콕, 히치콕, 히치콕: 정신적 외상의 반복과 영화적 기표」 『제3의 텍스트』 2호 2004, 「다큐멘터리의 유령: 인터뷰 쇼트의 기호학적 기능과 권력관계」 『프로그램/텍스트』 10호 2004,「지루함, 비디오의 기원」 『alt. Feature』 한국독립영화협회 Vol. 16 2003, 「초기 비디오아트에 나타나는 자기 반영성, 마조히즘, 그리고 지루함에 관해」 『Journal of Lacan & Contemporary Pscychoanalysis』 vol 5. no. 1 Winter 2003, 「자유와 부인의 불가능한 변증법」 『영화연구』 한국영화학회 no. 22 2003, 「분열의 미학」 『한국방송학보』 한국방송학회 vol. 18 no. 3 2004, 「진실의 끔찍한 무게: 마이클 무어와 다큐멘터리의 유동성」 『한국언론학보』 한국언론학회 vol. 48 no. 6 2004
24 서현석 인터뷰 (2025.8.16)
25 다원예술은 2002년부터 독립예술이란 용어에서 분리되어〈다원적예술지원〉 프로그램으로 재편되었으며 예산도 크게 증액되었다. 2006년 다원예술소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지원프로그램 명칭이 다원예술로 변경되었고 이후 타 장르와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된다. 양효석 「다원예술 지원정책의 현황」 『다원예술위원회 제1차 월례포럼』 2006 pp.1~2
26 서현석 인터뷰 (2025.8.16), 김미소 「고정관념의 바다에서 흩어지는 말말말」 『뉴스컬처』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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