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페스티벌 2025
《뉴로버스 깨어있는 우주를 항해하며》

ACC 예술극장1, 복합전시 5관 등
9.5~14

강재영 기자

Sight&Issue

 다이토 마나베 〈SSNN〉 사운드 신시시스 뉴럴 네트워크(SSNN)을 활용한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 20분 2025 《뉴로버스: 깨어있는 우주를 항해하며》 퍼포먼스 전경 2025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뉴로버스, 기술-인간 공존의 가이던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10주년, 예술과 과학기술의 만남을 통해 예술과 과학,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온 ACT(Arts & Creative Technology) 페스티벌도 10회째를 맞았다. 아시아 대표 아트-테크놀로지 축제로 위상을 정립한 ACT 페스티벌의 열 번째 주제는 ‘뉴로버스: 깨어있는 우주를 항해하며’이다. 챗GPT나 퍼플렉시티와 같은 인공지능 서비스가 이미 일상을 변화시킨 지금, ACT 페스티벌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등 도래할 다른 차원의 기술을 먼저 감각하고 나아갈 미래를 향한 공존의 가이던스를 제시했다.

‘뉴로버스(Neuroverse)’는 신경망(neural network)과 우주(universe)를 결합한, ACT 페스티벌이 제시한 신조어로, 인간과 기계가 마치 살아있는 신경세포처럼 유기적인 연결망으로 작동하는 동시대 감각을 상징한다. 전시와 퍼포먼스, 다이얼로그(대담) 등으로 구성된 이번 ACT 페스티벌은 9개국 11팀의 13개 작품을 선보여 인간과 기술 사이에 어떠한 상호 얽힘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융합의 양상을 다층적으로 가시화했다.

투엔터 〈데이터-버스 광주〉 인터넷 기반 실시간 인터렉티브 영상 가변 시간
27×6.4m 2025 《뉴로버스: 깨어있는 우주를 항해하며》 전시 전경 2025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 뉴로버스의 미래를 체험하다
전시 프로그램은 ‘뉴로버스’라는 추상적 개념을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고 사유할 수 있는 감각적 경험의 장으로 구현했다. 확장현실(XR), 인공지능(AI), 인터랙티브 설치 등의 형식은 관객을 능동적 참여자로 초대하고, 전시장을 다가올 세계를 미리 맛보게 하는 놀이터로 만들었다.

예술과 과학기술의 전위적 융합을 통해 인류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일본 미디어 아티스트 다이토 마나베는 2015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 이후 10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의〈브레인 프로세싱 유닛〉(2025)은 이번 전시 주제를 관통하는 작품이었다. 뇌 조직을 떼어 배양한 뇌 오가노이드(brain organoid)에 음악과 리듬을 학습시키고, 이후 새로운 리듬을 생성해내는 과정을 담은 작업으로, 세포가 학습을 통해 자율적으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탐구했다.

대만의 미디어아티스트 팅-통 창과 백남준아트센터상을 수상한 영국 그룹 블라스트 시오리는 인터랙티브 필름 〈증명이 필요한 듯이〉(2025)를 선보였다. 관람객은 일곱 명이 한 팀이 되어 바닥에 그려진 전형적인 대만 가정집의 주방·거실·침실·화장실을 구획한 공간 위를 거닌다. 관람객이 서 있는 구획에 따라 해당 장면이 프로젝션되고, 한 쌍의 부부가 자신들이 살던 집에서 서로 숨겨온 비밀을 정리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관객은 어느 화면을 볼지, 어떤 장면에 집중할지를 무언의 눈치 게임으로 결정하며, 집이라는 장소가 집단 기억과 무의식을 드러내는 구조물이자 ‘인터페이스’로 작동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인공지능이 보편지능으로 진화한 세대를 배경으로, 인공지능 모델과 하드웨어의 노동을 다룬 염인화의 〈찬드라 연대기: 인 뉴로버스〉(2025) 역시 눈에 띄었다. 뉴로버스 세계관 속 가상 존재 ‘찬드라’를 중심으로, 신경망 환경을 관리하는 캐릭터의 시공간적 연대기를 VR·AR·영상 등으로 풀어낸 커미션 작업이다. 이외에도 엘리자 맥닛의 몰입형 인터랙티브 작품 〈아스트라〉(2024), 사랑스러운 그래픽으로 오토와 반려견 스키피의 일상을 방해하는 우주비행사 엑소와의 긴장을 담은 그웨나엘 프랑수와의 〈오토의 행성〉(2024), 케이스케 이토의 심박동 기반 VR 애니메이션 〈센〉(2023), 보리스 라베의 몰입형 VR 설치〈이토 메이큐〉(2024), 네덜란드 그룹 스맥의 디지털 애니메이션〈스페큘럼〉(2016~2019), 그리고 ACC 사운드랩의 〈몸의 외연: 근(近)〉 (2025)등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고, 현실과 가상, 자아와 세계의 경계를 탐색하는 다채로운 실험을 펼쳐 보였다.

ACC 국제회의실에서 진행된 다이얼로그 프로그램에서
류타 아오키, 다이토 
마나베, 차지욱이 대담을 나누는 모습 (2025.9.6)
사진: 강재영

퍼포먼스: 예술-기술 융합의 레이어와 진폭
전시가 ‘뉴로버스’의 개념적 지도를 펼쳐 보였다면, 퍼포먼스 프로그램은 그 지도를 따라 항해하는 역동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티스트와 관객, 그리고 기술이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며 빚어내는 예측 불가능한 순간들은, 살아있는 연결망처럼 작동하는 뉴로버스를 상상하게 했다.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린 ACC 사운드 랩의 〈몸의 외연: 원(遠)〉(2025)은 기술이 보편화된 미래를 다소 어둡고 디스토피아적으로 조망했다. 이 공연은 감각의 주체인 ‘몸’과 객체인 ‘환경’의 경계가 흐려지고 전복되는 현상에 주목하며, 기술이 우리의 감각을 물리적 한계 너머로 확장시키는 동시에 역설적인 위계를 만들어내는 상황을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로 풀어냈다.

오민의 〈동시, 렉처, 퍼포먼스〉(2025)는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동시성’을 대규모 극장 무대에서 최초로 구현한 작품이었다. 영상 프리뷰, 유튜브, 창작노트, 참조문헌 등을 순차적으로 위계 없이 중첩·나열하는 과정을 통해 다소 설명적일 수 있는 동시성의 정의를 구조적이고 실천적으로 가시화했다.

마지막 무대는 다이토 마나베의 오디오비주얼 콘서트〈SSNN(Sound Synthesis Neural Network)〉(2025)이었다. 앞선 〈브레인 프로세싱 유닛〉의 퍼포먼스 버전으로, 실험 중인 뇌 오가노이드에 입력 리듬과 강도, 파형을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그 반작용으로 생성되는 시냅스 발화 패턴으로 사운드를 만드는 공연이다. 사실상 세포 조직체가 학습하고 이를 기반으로 ‘생성’한 음악을 듣는 디제잉 퍼포먼스였다. 리듬은 생성되었지만 여전히 인간의 하이퍼 튜닝에 의해 조율되고, 음량의 고저차, 악기의 숫자 등의 배열에 인간의 손을 거쳐 비로소 음악이 됐다. 엉덩이가 들썩이는 트랜스 사운드에 빠지면서도 “내가 지금 듣는 건 뇌 오가노이드가 만들어낸 환각이 아닐까?”라는 경계심이 들었다. 앞으로 등장할 인공 일반 지능(AGI)에게 우리는 무엇을 학습시킬 것인가, 어떤 의도로 출력할 것인가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임을 예견하는 듯했다.

다이얼로그: 예술-기술 융합의 담론적 접근
감각적 체험을 넘어, 창작자와 연구자, 기획자의 목소리를 통해 ‘뉴로버스’의 기술적, 철학적, 윤리적 함의를 심도 있게 논의하는 다이얼로그 프로그램은 페스티벌의 지적 깊이를 더하는 중요한 담론의 장이었다. 전시와 퍼포먼스가 던진 질문들을 이어받아, 각 세션은 예술-기술 융합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고민과 성찰을 공유하는 귀중한 시간을 제공했다.

첫 번째 세션은 다이토 마나베와의 대화로, 류타 아오키 큐레이터와 차지욱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교수가 함께했다. 대담의 쟁점중 하나로 뇌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작업의 윤리적 문제가 대두됐다. ‘생명체 창조에 대한 윤리적 고민’에 대한 플로어 질문에 ‘작업에 윤리적 고민이 앞서면 작업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므로, 지금 단계에선 과학적으로 엄밀히 분석해 뇌 오가노이드로부터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먼저’라는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실험 과정에서 뇌 오가노이드가 ‘피곤함’을 느끼고 반응이 나빠져 휴식 시간이 필요했다는 언급은 매우 흥미로웠다. 이는 염인화가 〈찬드라 연대기〉에서 탐구한 AI 신경망의 ‘노동과 노화’ 문제와도 겹쳐지며, 페스티벌 전체를 관통하는 ‘비인간 존재의 피로와 복지’라는 미래의 윤리적 화두를 암시한다.

두 번째 세션인 투엔터(2ENTER)와의 대화는 화즈 찬 타이베이 현대미술관 부관장의 진행으로 이루어졌다. 타이베이에서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해 가상 도시를 만들던 방식을 광주 버전으로 확장한 것이다. 열흘간 광주에 머물며 간판 이미지, 건물 외형을 3D 스캔하고, 뉴스·날씨 정보 등을 수집해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데이터 버스 광주’를 창조했다. 관객은 댓글과 좋아요를 통해 이 도시에 개입하며, 물리적 공간에서는 감각하기 어려운 층위를 가상 세계에서 체험하게 된다. 작가들은 광주의 집단 기억과 역사가 신경망처럼 펼쳐져 관객의 실시간 상호작용과 맞물렸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신체 동작이 역사적 기억의 심볼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들은 〈데이터-버스 광주〉(2025)를 통해 수집된 관객 반응을 공유하며 흥미로운 문화적 차이를 드러냈다. 작가들은 “대만에서는 기자들을 비판하는 댓글이 많았지만, 광주 관객들은 뉴스 헤드라인에 대해 더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를 보였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이는 동일한 기술 플랫폼이라도 그것이 놓이는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르게 수용됨을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였다.

나가며: 미래의 청사진 ‘뉴로버스’
3일간의 프로그램에 모두 참여하며 느낀 점은, ACC 사운드랩이 보여준 디스토피아적 감상만이 도래할 새로운 감각의 세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뒤이어 올 세대가 맞이할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미리 맛보는 기쁨을 누렸다. 무비판적으로 기술을 수용하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마나베의 말처럼 변화를 추동하는 과정에서 무게추를 잘 맞추어 균형을 유지하는 지혜가 인류에게 요구될 것이다.

로테크 미디어에 빠져 수동 승용차를 타고 카세트테이프와 LP를 모으는 세대도 결국, 이 변화 속에 서 있다. 흥미롭게도 엘리자 맥닛의 XR 작업 〈아스트라〉의 시작은 행성 연구자였던 엄마가 남긴 연구 기록 카세트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오민이 퍼포먼스에서 보여줬듯, 과거의 감각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중첩된 채 동시적으로 확장하고 연결될 것이다. 우리가 그릴 미래는 ‘뉴로버스’처럼 아날로그와 디지털, 인간과 기계가 얽히며 시공을 엮어 항해할 앞으로의 신경망 우주가 아닐까.

* 본 기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월간미술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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