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 회화과
졸업준비위원회
4인을 만나다
신유진·심혜원·임유빈·정유빈
강재영 기자
Interview
월간미술 2025년 10월호에선 특집기획 「On Becoming an Artist: 예비작가에게」를 통해 현대미술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콘텐츠를 마련한 바 있다. 이와 연계하여 인스타그램을 통해 예비작가로 발돋움하는 첫 관문중 하나인 미술대학 졸업전시를 취재하는 이벤트를 마련하였다. 이 이벤트에 선정된 동덕여대 회화과 졸업전시에 찾아가 졸업을 앞두고 있는 네 명의 예비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미술현장으로 나아가는 그 길에서 안고 있는 고민과 떨림을 인터뷰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Q. 오늘은 졸업전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학교에서의 시간과 졸업 이후의 현실까지 같이 짚어보고 싶다. 우선 이번 전시를 소개해달라.
A(신유진). 졸업작품은 말 그대로 “마지막 시험”처럼 느껴졌다. 심사도 있고 일정도 촘촘해서, 그냥 작품을 만든다기보다 끝까지 버티는 과정이었다. 그래도 전시장에 친구들 작업이 걸리는 순간은 좀 울컥했고, “아, 진짜 끝까지 왔구나” 싶었다.
A(정유빈). 동양화 쪽은 특히 공정이 오래 걸려서, 졸전은 3학년 때부터 이미 몸이 반응한다. 어떤 재료를 계속 밀고 갈지, 시간을 어떻게 쌓을지, 이미 그때부터 준비가 시작된다고 느꼈다.
A(심혜원). 나는 회화과지만 사진 작업을 했는데, 한 번 촬영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게 크게 와닿았다. 붓질은 고치거나 덧대는 게 가능한데, 사진은 한 번 찍으면 그 장면이 확정되는 느낌이 강해서 더 조심스러웠다.
Q. 회화과라는 공간을 처음 들어왔을 때의 기대와, 실제로 겪은 분위기는 어땠나.
A(심혜원).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드라마 속 미대’ 같은 로망이 있었다. 막 감정적인 사람들도 많이 있고, 천재도 있고, 그런 이미지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오히려 다들 조용히 자기 작업을 오래 붙들고 있더라. 그걸 보면서 “작업은 진중한 행위구나”라는 걸 더 깨닫게 됐다.
A(신유진). 중학교때부터 그림을 계속 그려왔다 보니 자연스레 오게 된 면이 있는데, 4학년쯤 되니까 동료들이 진짜 각자 과제에 몰입하는 게 멋져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가 왜 그리는지, 뭘 붙잡고 싶은지 다시 묻게 됐다.
A(정유빈). 경쟁으로 몰아붙이는 분위기라기보다, 각자 방식이 다르고 그걸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더 무섭기도 했다. 남과 비교하기보다는 내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계속 드러나니까, 책임이 내 쪽으로 온다.
Q. 동덕여대 회화과 수업 구조나 커리큘럼에서 인상 깊었던 지점이 있다면.
A(정유빈). 동양화/서양화가 완전히 벽처럼 갈라져 있지 않다는 점이 좋았다. 1~2학년 때는 서로 수업을 넘나드는 경험이 있고, 3학년부터 선택을 하더라도 움직임이 막혀 있는 느낌은 아니었다. 동양화 수업은 특히 한지, 캐스팅, 흙벽 같은 것부터 시작하면서 재료를 몸으로 익히게 한다. “동양적인 걸 억지로 그리려 하지 말라” 선생님의 말이 오래 남았다.
A(신유진). 교수님들이 정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기억난다. “왜 이 장면이어야 해?”, “이 재료를 고른 이유는 뭐야?” 같은 질문이 계속 돌아오는데, 그게 어렵기도 하지만 결국 작업을 스스로 설명하는 방법을 만든다.
A(심혜원). 나는 전공을 옮겨왔기 때문에 더 대비가 컸다. “결과물”보다 “과정”을 계속 말하게 한다. 과정이 두터우면 화면도 깊어진다는 걸, 말로 듣기보다 주변 동료들을 보며 체감했다.
Q. 졸업작품 준비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나.
A(정유빈). 동양화는 큰 작품 하나를 잡고 오래 끌고 가는 경우가 많다. 덧대기, 갈기, 붙이기 같은 공정이 누적되니까 시간이 곧 화면이 된다. 그래서 학기 초에 방향을 잡고, 그 뒤로는 “계속 쌓는” 쪽에 가깝다.
A(신유진). 서양화는 같은 주제라도 캔버스를 여러 장 만들고 그중에서 베스트를 고르거나, 중간에 확 바꾸는 경우도 있다.
A(임유빈). 나는 2차 심사 이후에 한 번 작업을 거의 엎었다. 원래는 평면 작업을 하다 한지 캐스팅 작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때는 진짜 막막했는데, 그래도 엎고 나니 그 전이 연습이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A(심혜원). 사진은 연구-촬영-출력-설치까지 단계가 길다. 촬영을 한 번 잘못하면 다시 세팅해야 하고, 조명이나 반사 때문에 결과가 달라진다. “그림처럼 고치면 되지”가 안 되니까, 준비 과정에서 긴장이 계속 유지됐다.
Q. 비용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실제로 어떤 부분이 가장 부담이었나.
A(심혜원). 출력비가 제일 컸다. 게다가 전시장 조명에서 반사가 생기면 종이 선택을 다시 해야 하고, 그러면 또 돈이 들어간다. 작업이라는 게 결국 물성인데, 물성이 돈으로 바로 연결되는 순간이 너무 현실적이었다. 솔직히 “돈이 더 있었으면 더 크게, 더 만족스럽게 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A(정유빈). 동양화는 재료도 그렇고, 시간 자체가 비용이다. 작업실을 오래 쓰면 그만큼 생활비가 걸린다. 재료비만 계산하면 안 되는 게, 결국 ‘시간을 살 돈’이 필요해진다.
A(신유진). 나는 생업과 병행하면서 준비했는데, 체력과 시간이 가장 큰 비용이었다. 돈도 물론 들지만, 시간이 없으니 선택지가 줄어든다. 그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Q. 졸업 이후 계획은 각자 어떻게 그려보고 있나.
A(신유진). 나는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도망이라기보다 “못 했던 시간을 다시 밀어붙이기”에 가깝다. 더 공부하고, 더 많이 보고, 내가 뭘 붙잡고 싶은지 더 정확히 만들고 싶다.
A(심혜원). 나는 당장 전업 작가로만 가기보다, 일하면서 오래 가는 쪽을 생각한다. 몇 년은 작업을 못 할 수도 있다고 인정하되, 그래도 취미로라도 이어가고 싶다. 이미지 만들기, 디자인 회사 같은 일을 하면서 ‘작은 개인전’을 꾸준히 하는 방식 말이다. 나중엔 후배 밥 사주고 조언해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
A(정유빈). 나는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다음 단계”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학교는 작가를 ‘양성’하는데, 졸업하고 나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델이 너무 희미하다고 느낀다.
Q. 요즘은 DM으로 “전시할 수 있다, 대신 비용이 든다” 같은 제안도 많다고 들었다. 실제 체감이 있나.
A(정유빈). 있다. 그런 제안을 받기도 한다. 문제는, 졸업한 학사들이 들어갈 수 있는 합리적인 진입 모델이 부족하다는 거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돈을 내서라도 전시해야 하나?”로 기울게 된다. 그게 개인의 욕심만으로 설명되는 일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A(신유진). 수업 시간에도 그런 질문이 교수님께 올라온다고 들었다. “돈 내면 전시 가능하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 같은 것. 그 자체가 지금의 불안함을 보여준다.
A(심혜원). 나도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전시를 ‘기회’로 생각하면 조급해지고, 조급하면 판단이 흐려진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Q. 지원사업이나 제도는 도움이 되나, 아니면 더 복잡한가.
A(신유진). 지원사업은 많아졌다고는 하는데, 막상 들어가면 절차가 복잡하고 언어가 어렵다. 준비하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든다.
A(정유빈). 정보가 흩어져 있고, 누가 어디까지 해봤는지 공유도 잘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사람 통해서” 배우게 된다.
A(심혜원). 결국 주변 선배나 강사에게 직접 묻는 게 제일 빠르다. SNS로 떠도는 정보는 이상하게 잘 안 와닿고, 한 번 밥 먹으면서 들은 말이 오래 남는다.
Q. 그래서 월간미술 같은 매체에 바라는 점이 생길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더 다뤄줬으면 하나.
A(심혜원). “이미 잘 된 작가” 얘기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나는 오히려 “나 같은 사람”이 궁금하다. 지금 준비하는 사람, 불안정한 위치의 사람, 아직 모델이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더 깊게 다뤄주면 좋겠다. 그런 코너가 있으면 진짜 찾아볼 것 같다.
A(신유진). 이런 인터뷰 자체가 귀하다. 후배들도 “우리 학교가 이렇게 다뤄졌대” 하면서 찾아보게 된다. 인터뷰는 결국 한 사람의 메시지라서 힘이 있다.
A(정유빈). 가능하다면, 매체가 전시 기회를 열어주는 방식도 상상해볼 수 있지 않나 싶다. 학생들이 당장 필요한 건 결국 “작업을 걸 기회”인 경우가 많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그런 확장도 언젠가 논의되면 좋겠다.
신유진

신유진〈수태고지2〉캔버스에 유채 162.2×130.3cm 2025
작가노트: 태몽의 재구성
나는 죽음을 탐구하는 방법으로 탄생에 주목하여 평화와 생명의 안정성을 택했다. 그림을 통해 무의식의 전 단계를 구축하고 무한한 공간을 붓 터치로 쌓아 올려 서서히 단단해진다. 무의식은 맥락이 중요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이 단계는 해결책과 결론이 없는 세계로 과정만이 살아 숨 쉰다. 〈수태고지〉에서 노동하는 손들은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 중의 조연으로 역할을 해 낸다. 나의 작품은 탄생을 축복하기 위한 과정을 구성하고 가시화한 작품으로 내면적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쳐 낯선 재배치의 향연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심혜원

심혜원〈그리고 남겨진 것들〉잉크젯 프린트, 패널에 디지털 프린트, 혼합재료 118.9×84.1cm 2025
작가노트: 신체의 미시적 변화에 대한 확장적 해석, 관계성
신체는 숨이 붙어 있는 한 결코 떼어낼 수도, 잃어버릴 수도 없는 유일한 존채이며 무엇도 개입할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회적, 정신적 균열들이 나와 나의 신체를 멀어지게 하거나 일게 하는 순간이 있음을 포착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각질과 염증들이 제3의 일부가 되어 다른 형태로 재생한다. 누군가의 염증과 정신 또한 이미 나의 신체 속에서 타인 안에서 재탄생 하고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 소멸과 회복, 염증과 용서로 덧대어지는 순환에 집중한다. 다양한 촬영기법의 합성과 불규칙적으로 교차되는 반복된 수작업은 이러한 흐름을 포착하기 위함이다.
임유빈

임유빈〈열의 형태 – Form of energy〉한지 캐스팅, 가변 크기 2025
작가노트: Entropy : Negentropy = Disorder : Order
이 관계식은 물리학적 개념을 넘어, 인간의 삶과 존재 구조를 설명하는 하나의 은유로 확장될 수 있다. 달항아리는 비움과 채움, 균형과 불균형이 공존하는 구조로, 이러한 상반된 요소들이 조화롭게 긴장하며 유지되는 형태이다. 한지를 쌓아가는 과정은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구축하려는 에너지, 즉 ‘네겐트로피’의 상징적 작용으로 이해된다. 이 에너지를 통해 사람들이 많은 혼돈과 소모의 흐름 속에서도 스스로 중심을 세우고 질서를 세워 단단히 살아가길 바란다.
정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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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빈〈시간의 겹〉 은박 부식에 분채 162.2×390.9cm 2025
작가노트
고요하고 차분한 새벽의 풍경은 시간의 숨결을 담고 있다. 시간은 되돌아갈 수 있는 대 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온전히 채워 넣어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이다. 세월의 무게가 자연의 단단한 지층을 빚어내듯, 우리의 내면 또한 수많은 기쁨과 슬픔, 선택과 기회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한 사람의 고유한 삶의 지층을 이룬다. 은박을 부식시켜 만든 표면 위에 겹겹이 쌓은 안료의 층은 세월과 감정이 쌓인 내면의 깊이감을 연상시킨다. 겉으론 바람에도 흩어질 듯 연약해 보일지는 몰라도 그 안에 흐르는 끈질긴 자연의 생명력을 나의 일생에 비추어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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