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50년,
다시 보는 매체의 자리
심지언 편집장
Special Feature
잡지를 둘러싼 환경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의 확산, 더욱 빨라진 정보의 속도, 그리고 독서 습관의 변화는 인쇄 잡지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예술 현장의 기록이자 담론의 통로였던 미술잡지도 이제 ‘왜 잡지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스스로 답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월간미술』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미술의 흐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때로는 논쟁의 중심에서, 때로는 비평의 전선에서 시대의 목소리를 담아왔다. 이번 특집은 『월간미술』의 주요 기사와 논쟁, 그리고 발굴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잡지를 매개로 한 비평의 변화를 짚고 오늘날 비평의 자리를 묻는다. 또한 인쇄 잡지의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국내외 편집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시대 잡지가 어떻게 하나의 비평적 실천이자 사회적 기록으로 작동하는지를 탐구한다.
이제 우리는 반세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오늘날 미술잡지가 어떤 방식으로 비평을 확장하고, 예술과 사회를 잇는 담론의 장으로서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다시 읽는 50년, 다시 보는 매체의 자리
심지언 편집장
내년이면 월간미술 창간 50주년을 맞이한다. 50주년을 목전에 두고 편집부는 그동안의 발간 콘텐츠를 살피며 월간미술의 헤리티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간 30주년 기념 총목차집 제작과 통권 300호 기념 호별 주요 기사 정리 등의 목록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50주년을 앞두고선 기사 목록을 바탕으로 그 내용의 집중 분석을 진행한다. 이 글은 『월간미술』 통권 490호를 기념하여 49년의 역사를 주요 기사를 바탕으로 되짚어보며 매체로서 우리의 역할을 점검한 보고서이다. 이를 통해 신문 또는 단행본이 할 수 없는 연속적 추적 취재와 자료 발굴, 다양한 이슈를 전문적 시각으로 클로즈업해 온 월간미술의 지난 행적을 확인한다.

『계간미술』 창간호 표지
『계간미술』에서 『월간미술』로
『월간미술』의 역사는 1976년 중앙일보사와 삼성문화재단에 의해 창간된 『계간미술(季刊美術)』에서 출발했다. 1970년대 후반은 경제 성장과 맞물려 미술의 제도적 틀이 공공과 민간 영역에서 동시에 확장되며 초기적인 미술시장이 형성된 시기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 석조전에서 과천으로의 이전을 준비하고, 아르코미술관의 전신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이 1974년 개관했다. 뒤이어 민간 자본으로 설립된 호암미술관이 1982년 개관했으며 이 시기 지방자치단체들을 중심으로 지역 미술의 육성과 시민 문화 향유를 위한 시립미술관 설립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 위에 미술시장도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1970년대 초반부터 명동과 인사동 일대에 갤러리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고 1976년 한국화랑협회가 결성되어 대중과 컬렉터에게 미술품을 체계적으로 선보이는 통로를 마련했다. 이러한 제도의 설립과 미술시장의 형성은 국가가 설립하고 지원하며 주도했던 미술제도(국전, 한국미협)가 민간 자본에 의해 확장되면서 미술 생태계의 구조가 전환되는 토대를 형성했다.
『계간미술』은 신문사가 발행하던 유일한 미술 잡지로, 현대미술과 고미술을 함께 다루는 종합 미술교양지를 표방했다. 1년에 4번 발간되며 계간지의 특성인 심도 있는 기획과 전문성을 중심으로 한국미술의 기초를 다지며 1970~1980년대 미술 저널리즘의 모범이 되었다.1 1989년 1월 계간미술은 월간미술로 전환했다. 1988년 12월 14일자 중앙일보에는 ‘〈중앙일보사〉 월간미술을 창간합니다’ 제하의 기사가 게재되었다. 미술 대중화 시대를 이끌어가기 위해 계간미술 13년(통권 47호) 전통을 계승하여 오늘의 미술문화를 과감하게 반영하는 종합미술 월간지인 ‘월간미술’을 창간한다는 내용이다. 1980년대를 거치며 미술 향유층이 급격히 확대되었고 국내외 미술 정보에 대한 수요가 양적·질적으로 폭발하는 시대적 변화에 직면해 월간지 체제로의 전환을 단행한 것이다.
월간지로 전환은 단순히 발행 주기 변경을 넘어, 한국미술 저널리즘의 지형을 바꾼 분기점이다. 이는 신속한 현장 기록과 정보 제공을 통한 미술계 쟁점의 즉각적인 공론화, 해외 미술 소식의 적극적 소개를 통한 국제화 시대에 대한 능동적 대처, 전문인과 일반 애호가 모두를 아우르는 독자층의 확장을 목표로 한 미술잡지의 새로운 사명이었다. “좁은 의미의 미술에서 벗어나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미술의 모든 것을 넓게 깊게 조명하겠다”는 선언을 통해 월간미술은 기록의 속도와 담론의 폭을 확장하며 명실상부한 미술 전문 매체로서의 역할을 예고했다.
역사적 기록과 복원: 잃어버린 미술사의 공백 메우기
『월간미술』의 창간 초기 역할 중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자료의 발굴과 조명으로 해방과 전쟁, 그리고 이데올로기로 인해 단절, 왜곡되었던 한국 근대미술사의 공백을 메우고 역사를 복원하는 등 시대를 기록하고 축적하여 미술사 연구의 1차 자료를 마련한 것이다.
『계간미술』은 1980년 봄호(2호)부터 1983년 겨울호(28호)까지 근대미술 특집 연재 「잊혀진 근대미술의 발굴」을 통해 미공개 작품 45점을 발굴하며 묻혀있던 근대 작품들이 우리 미술사의 중요한 자료로 기능하게 함으로써 근대미술 연구를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김중현, 고희동, 구본웅 등 근대 거장들의 알려지지 않은 행적과 잊혀진 작품을 조명하여, 근대미술 연구의 기초 자료를 생산하는 ‘자료 발굴 및 생산자로서의 잡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본지는 월북 미술인 문제에 가장 먼저 접근한 매체이다. 1985년 가을호 「산 증언: 6 25 전후의 미술인들」을 통해 우리 미술사에서 월북 미술가들의 이름이 최초로 기록되었다. 때는 월북 예술가 해금 조치 3년 전으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감행한 꽤 과감한 도전이었다. 이후 1988년 월북 작가 해금 조치 이후에는 정종녀, 이쾌대, 정현웅 등 월북 작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심층 취재하여 단절된 남북한 미술사를 연결했다. 월간미술은 1985년 특집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이는 “끊겨버린 한국미술사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월북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지워진 월북 작가들의 미술사적 의의를 되살려야만 역사의 공백을 메울 수 있기 때문”2이라는 사명감에 가까운 의지를 바탕으로 진행된 것이다.
월간미술은 ‘발굴’과 ‘탐방’ 시리즈로 근현대미술사의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역할을 이어갔다. 1981년 여름호에 여류화가 백남순의 뉴욕 화실을 취재해, 망각 속에 잊혀가던 노화가를 반세기 만에 재발굴하여 그의 뉴욕 생활 증언과 작품을 화단에 전했다. 1992년 10월부터 1993년 3월까지는 국내에 있는 중국 고서화 집중발굴을 진행했고, 1993년에는 31세로 요절한 차학경, 타슈켄트의 한인 작가 니콜라이 박 등을 독점발굴 기사로 전하며 기록과 아카이브로서 매체의 역할을 견고히 했다.
비평적 공론장: 격렬했던 일제 잔재 청산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쟁
월간미술은 수차례 미술계 논란과 논쟁의 중심에 섰다. 민감한 사안이나 오래 묵은 과제를 피하거나 넘기지 않고 과감한 기획으로 접근해 공론화하여 확장하는 매체의 역할을 다했다.
『계간미술』 1979년 가을호 「민족기록화 10년의 채점표」는 당시 정부 정책에 침묵과 긍정적인 평가로 일괄하는 등 비판이 어려웠던 미술계의 분위기에 도전한 기사이다. 1967년부터 1978년까지 진행된 《민족기록화전》을 비평적으로 검토한 이 기사는 국가 주도의 민족기록화 사업에 대한 최초의 중요한 비판이자 1990년대 후반 민족기록화사업의 미술사적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1983년 봄호 「한국미술의 일제 식민잔재를 청산하는 길」 특집은 해방 이후 미술계 최대의 파문을 일으킨, 가장 격렬한 논쟁을 촉발한 기사였다. 김윤수 이경성 이구열 최순우 등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의 필자들이 참여해 화단이 청산해야 할 식민잔재에 대해 지적하며 총 43명의 작가를 친일 작가로 거명하는 등의 파격적인 문제 제기였다. 이 기사에 대해 36개의 미술 단체가 공동 성명을 발표했고, 미술평론가협회를 비롯한 각계에서는 일제 청산의 필요성에 동감하며 본지의 비평적 접근에 대한 지지의 반응을 보이는 등 미술계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계간미술은 ‘미술계를 뒤흔든 해방 이후 최대 사건’4으로 기록되는 이 기사를 통해 친일 잔재라는 금기시되었던 미술사적 사실을 처음으로 공론화하는 역할을 했다.
1980년대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한국 미술계에 도입될 때, 본지는 그 논쟁의 물꼬를 트고 담론을 중층적으로 이끈 선구적인 매체였다. 문혜진이 지적했듯이,『계간미술』 1987년 봄호 「후기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들」 특집을 통해 서구의 새로운 흐름에 가장 먼저 반응하며 논의를 촉발했다. 이는 단순히 서구 이론을 수용하는 것을 넘어, 한국적 맥락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논의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본지는 모더니즘, 민중미술 진영이 각자의 논리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수용하며 입장을 전개하던 국면에서 각 진영에 지면을 고루 제공하여 지상 논쟁의 장을 열었다. 이는 월간미술이 특정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첨예한 논리적 대결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공론의 장이자 담론 형성의 장을 지향했음을 의미한다. 한편 번역서가 부족했던 시기, 프레드릭 제임슨, 할 포스터 등 해외 주요 비평가들의 논문을 번역 게재하며 국내 미술이론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를 다층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 외에도 월간미술은 정치와 제도 안팎에서 일어나는 예술에 대한 검열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주시하며 지면을 통해 공론화의 기회를 만들고, 역사를 기록하는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2017년 대구 청년미술프로젝트의 검열문제, 2019년 일본 아이치트리엔날레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지 사태에 대한 탐사보도, 2021년 국가 검열에 맞서 예술로 저항하는 미얀마 작가 소개, 2025년 서울시립미술관의 검열사태를 취재해 논란의 경과와 당사자들의 입장을 보도하며 논의를 공동의 장으로 확장하고 있다.

『월간미술』 1989년 1월호
미술시장 진단: 시장 불투명성 비판과 지속적 가격 논의
월간미술은 ‘미술 붐’이 이는 1970년 후반부터 치솟고 있는 작품가격의 문제를 199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추적하며 분석 기사를 제시해 왔다. 본지 최초의 그림값에 대한 집중분석은 1989년 3월호 「미술품 값, 너무 비싸다」로 작품가격 상승의 실태 파악에서 비롯되었다. 1990년 10월호 「미술작품의 예술성과 가격」은 작품값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초래했다. 당시는 옥션도 없던 시기로 그림값의 가파른 상승과 부르는 것이 값인 상황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 편집부는 비평가가 선정한 예술성을 바탕으로 한 작품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미술평론가 20인의 앙케트를 통해 장르별, 세대별 작가를 구분하여 작품의 예술성을 점수화해 가격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시도는 현장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편집부는 다음 호에 「편집자로부터」라는 제하의 기사로 해당 기사가 불러일으킨 논란에 대해 기획 의도부터, 예술성과 미술품 가격의 상관관계, 작가와 평론가 선정의 기준과 방법들을 상세히 설명하며 비평적 정당성을 관철했다. 문제의식은 좋았으나 그림값과 예술성의 관계를 점수제로 매겨 실명을 거론한 접근은 자극적인 논의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림값에 대한 월간미술의 문제의식은 1991년 10월호「그림값, 어제와 오늘」로 이어졌다. 1990년대에 이르러 금융실명제와 부동산 투기억제책 등으로 그림 사재기 현상과 천정부지로 오르는 그림값의 실태에 문제를 제기하며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작품값의 변화상을 살폈다. 편집위원 이규일은 당시 국내에 그림값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유통기구가 없어 작가가 스스로 가격을 책정하는 현상을 꼬집으며 화랑의 강력한 역할 기대와 경매제도 정착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당시 본지가 조사한 시기별 화랑의 작품가격 리스트를 바탕으로 살펴보니 박수근의 작품값은 1959년에 1만 환에서 1991년 당시 1억5000만 원으로 1만5000배 상승했고, 장욱진도 한 달에 천만 원씩 그림값이 오르는 상황이었다. 기사는 “증권 투기하듯 작품을 표딱지처럼 마구 구입하는 어리석음을 버리라”고 경고하는 동시에 “작가의 이름이 아니라 작품의 내용을 보라”고 충고한다.
이후 1992년 5월호 「92 상반기 그림값, 얼마나 바뀌었나」를 통해 인기 작가들의 그림값 변동을 추적하고, 1993년 1월호「해외미술특집: 1992년 서구미술 대표작가 100명 미술가들의 평가 순위와 가격표」를 통해 독일 『키피탈』지가 제시한 작가들의 작품가격과 그 적정성 등을 평가한 내용을 제시했다. 1993년 6월호부터는 ‘그림값 정보’라는 꼭지를 신설하여 호당 가격제 시정 노력, 금융실명제가 미술시장에 미치는 영향, 작가가 제시하는 작품가격 산출법 등을 살폈다. 1998년 서울경매(현 서울옥션)가 설립된 이후 그림값에 대한 논의는 미술시장 전반의 진단과 분석 리포트의 형식으로 변경되어 현재까지 미술시장 리포트를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월간미술』 1997년 9월호「대통령과 미술」
세계화의 열망과 글로벌 미술의 메신저
1980년대 후반부터 가속화된 미술계의 국제화 흐름 속에서 본지는「월드 뉴스(World News)」 및 「월드 리포트(World Report)」 등 해외 미술 현장 정보의 비중을 높이며 한국 미술계의 국제적 시야를 확장하는 역할에 집중했다. 당시 국내 미술계가 해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극히 제한적이었음을 고려할 때, 월간미술의 해외 미술계 정보는 곧 글로벌 미술의 최신 동향을 접하는 통로이자 학습의 장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잡지의 형식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미쳐 1999년 6월호부터 책등과 표지의 특집기사 제목이 영문으로 표기되기 시작해 2014년까지 지속되었다.
1997년 1월호 「World Artist 1997」, 2009년 1월호「세계미술의 최신 동향과 전망」, 2011년 1월호 「World Art Now」, 2011년 1월호 「지금, 세계 미술의 현장」과 같은 특집기사는 글로벌 미술의 거점 도시인 뉴욕 런던 파리 도쿄를 중심으로 각 권역에 새롭게 등장한 공간 이슈 이벤트와 시상제도와 주요 기관 관계자 인터뷰 등을 소상히 소개하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했다. 이 시기 테이트 모마 퐁피두 등에서 개최되는 전시와 활동은 우리가 주시해야 하는 대상이었으며 베니스와 휘트니비엔날레 등의 국제 이벤트는 주요 취재의 대상이 되었다.
본지는 또한 미술 잡지 최초로 해외 통신원을 두고 각국의 최신 정보를 우리 미술계에 제공했다. 해외 통신원은 단순한 정보 제공자를 넘어, 한국미술과 세계 미술을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을 수행했는데, 이들 중에는 김승덕 이숙경 정연심 안규철 등 현재 유수의 전시기획자, 이론가, 작가로 성장한 인물이 다수이다. 이들은 현지에서 체득한 첨예한 비평적 시각과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국미술의 글로벌 위상을 고민하고, 서구 미술의 주요 담론과 변화를 국내에 신속하고 비판적으로 소개했다.
미술의 지평을 넓힌 저널리즘
그 외에도 다수의 의미있는 기획이 많았으나, 아래의 몇몇 사례를 통해 월간미술의 전문지로서의 역할을 살펴보겠다. 월간미술은 근현대미술사 연구가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 전문가들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깊이 있는 작가 연구를 시도했다. 1994년 수화 김환기 작고 20주년 기념 대규모 회고전을 계기로 기획된 「이것이 수화예술이다」(1994년 5월호)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은 공동연구 방식으로 김환기 작품세계에 대한 비평적· 학술적 평가 시도였다. 김환기의 미술사적 비중과 위치, 작품의 조형적 위상 등을 점검하여 수화 예술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했다.
1997년 9월호는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술문화 정책에 대한 미술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4당의 대통령 후보 진영에 제시해 쟁점화한 특집 「대통령과 미술」을 선보였다. 이회창 김대중 김종필 조순 4명의 후보와 정당 인터뷰를 통해 각 당의 문화정책과 대통령으로서의 문화적 자질을 점검했다. 이 인터뷰에서 김대중 총재가 밝힌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방향성은 이후 김대중 정부(1998~2003) 문화정책의 핵심 기조가 되었다. 이 기획은 국내 최초로 미술계가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낸 의의가 있다.
다음으로 잊혀가던 화랑 경영자 황현욱(2001년 작고)과 그가 설립한 인공갤러리를 수면으로 끌어올린 「황현욱,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오다」(2016년 2월호)는 한 사람의 생애를 기리는 추모의 기록이 아니라, 기록되지 못한 미술사를 복원한 저널리즘적 시도였다. 황현욱은 단색화 작가들의 가치를 선도적으로 발견했고, 도널드 저드와 리처드 롱 등 세계적인 미니멀 아트 거장들의 전시를 국내에 소개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지평을 확장한 인물이다. 이 기사는 그의 선지자적 기획과 활동을 재평가함으로써 주류 담론에서 소외되거나 상업적 성공에 가려졌던 비제도권 인사의 기여를 발굴하고 그 가치를 재조명하는 미술 전문 매체의 본질적인 역할을 보여준다.
월간미술은 백남준이라는 세계적 작가를 한국 미술계와 연결하는 역할도 했다. 백남준과 본지의 인연은 1981년에 시작되었는데, 당시 뉴욕 특파원인 김재혁이 해외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백남준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취재한 그의 소호 스튜디오 방문기인 「백남준–문화적 테러리즘」을 통해 수십 년 만에 그의 생애와 예술 활동을 고국에 전했다. 그 후 백남준은 한국미술의 국제화 시기 조언자 등의 역할로 본지에 여러 차례 등장했다. 2006년 1월호 백남준이 타계하자 월간미술은 그를 추모하는 특집 「Bye Bye 백남준」을 마련해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 발언 등을 다각도로 정리해 작품 화보와 함께 비중있게 다루었다. 전문가들에 의한 이론적 정리 외에도 빌 비올라, 크리스토 장 클로드 부부 등 작가와 인연이 깊었던 국내외 미술, 문화계 인사의 현지 인터뷰와 추모글(오노 요코 임영방 이용우 윤명로 안소연 강태희 류병학 김윤순 임영균 진영선 천호선)을 통해 그와의 추억을 회고했다. 더불어 당시 뉴욕 통신원이었던 정연심의 뉴욕 장례식 취재를 통해 전 세계 미술계가 시대의 천재 작가를 떠나보내는 장면을 생생히 전하며 백남준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한국 미술사에 남겼다.
비평가와 잡지는 담론의 생산자로 공존하는 관계로, 미술전문지의 지면은 비평가의 등용문이자 공식적인 발언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월간미술은 동시대 비평의 현실과 문제를 비평가들과 함께 분석하고 논의하는 특집을 이어왔다. 1997년 4월호「비평가 & 비평(Critic & Criticism)」, 2003년 2월호 「한국 현대미술 비평의 해부(Korean Art Criticism Now)」, 2006년 3월호 특별좌담 「한국 미술비평의 지금을 말한다」, 2012년 3월호「안녕하세요 비평가씨!」로 이어진 비평 특집은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비평의 위기와 이슈의 증발 등 비평계의 현주소를 진단해 온 과정이다.
2001년부터 2002년에 걸쳐 『월간미술』이 진행한 세계 미술 전문지 편집장 인터뷰는 급변하던 21세기 초 미술의 글로벌화와 디지털화가 교차하던 시점에 매체가 미술 담론을 어떻게 만들어내는가를 근본적으로 되묻는 기획이었다. 당시 인터뷰 대상이었던 『프리즈(Frieze)』, 『아트 바이트(Art Byte)』,『옥토버(October)』는 각각 대중성·기술·비평이라는 서로 다른 축을 대표하며, 미술 잡지라는 매체가 지닌 사회적 기능과 시대적 감수성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갱신해가고 있었다. 이 연재 인터뷰는 현대미술 저널리즘의 근본적인 역할에 대한 질문이자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한 성찰로 각 잡지의 독자성과 편집 철학을 통해 현대미술과 저널리즘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심도있는 통찰을 제시했다. 세계 유수의 미술전문지 편집장 인터뷰는 2010년 300호 발간을 계기로 한 차례 더 시도되었다. 『아트인아메리카』, 『프리즈』,『플래시아트』, 『미술수첩』 등의 편집장에게 각국의 미술저널리즘 상황, 인쇄매체로서의 잡지의 운명,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견해, 앞으로의 방향성 등을 질문하며 미술 저널리즘의 위치와 역할, 방향성을 점검했다. 2000년대 초반 미주와 유럽으로 치우쳤던 매체 선정을 보완해 중국의 『비평가』, 일본의 『미술수첩』을 더해 아시아의 저널리즘을 함께 살폈다. 이러한 글로벌 매체와의 대화는 월간미술이 국내 미술계를 기록하는 저널을 넘어 세계 미술 담론과 대화의 장을 확장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월간미술』 2001년 7월호
「Special Interview: 깊이 있는 비평을 향한 고집 로잘란드 크라우스 옥토버 편집장」
월간미술의 도전: 리뉴얼, 주제호, 영문호
월간미술은 49년 동안 몇 차례의 리뉴얼을 통해 잡지의 겉과 속을 정비해 왔다. 가장 가까이는 2024년으로 4월에 새로운 편집과 디자인으로 변신한 리뉴얼호(號)를 선보였다. 판형과 제호를 바꾸고, 디자인은 물론 편집 방향 등 여러 가지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한 이번 리뉴얼은 편집부의 강한 변화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긴 시간 이어온 잡지이기에 깊은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새롭게 변화해야 할 지점도 많았던 것이다. 리뉴얼은 겉모습만 바꾸는 일이 아니기에 한 권의 잡지를 만드는 과정 속의 보이지 않는 원칙과 질서, 약속 등에도 수많은 변화를 감행했다. 종이 매체의 위기와 도전을 마주하는 편집부의 농도 깊은 고민이 반영된 결과가 현재의 월간미술이다.
잡지 발간 형태를 정비한 후 한 권의 잡지를 하나의 주제로 구성하는 ‘주제호’를 시도했다. 일 년에 한 번, 편집부가 선정한 주제로 한 권을 채우는 첫 주제호는 「Museums for All?」이라는 제목으로 미술관의 포용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다. 관계자들로부터 시의성과 깊이있는 구성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관련 기관에서 백서처럼 자주 참고하는 실무용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2022년 키아프-프리즈의 공동 개최와 더불어 한국 미술계는 급속히 글로벌화 되었다. 이러한 국면에 접어들며 월간미술은 한국을 방문하는 해외 전문가와 애호가들을 위해 영문 특별호를 제작하고 있다. 본지는 국문으로 발간되는 잡지이지만, 한국미술의 진면목을 소개하는 매체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매해 9월 영문 특별호를 제작해 무료로 배포한다. 2024년 한국의 대표 비엔날레인 광주와 부산비엔날레를 중심으로 비엔날레의 주요 콘텐츠와 도시를 연결해 소개했다. 올해에는 “오늘날 동시대 한국 작가는 어디에서 떠오르며, 어디서 그들을 만날 수 있는가?”라는 해외 인사들의 질문을 바탕으로 서울을 기반으로 2020년 이후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여덟 개의 이니셔티브 스페이스와 각 공간 디렉터가 주목하는 여덟 명의 작가를 소개하는 『Boiling Point: Emerging Artists and Spaces in Korea』를 발간했다. 영문으로 발간되는 대부분의 콘텐츠가 주요 기관과 인물에 집중되는 것에 반해 수요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찾아 한국미술 소개자료를 제작, 배포하는 것이 월간미술이 영문호를 제작하는 이유이다.
지금까지 월간미술 49년의 주요 특집 기사와 방향성을 돌아보았다. 통권 489권에 실린 기사들은 편집부 입장에서 하나같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으나 지면의 한계상 겉핥기에 그쳐 아쉬움이 크다. 편집부가 정리한 카테고리별 구체적인 사례는 이어지는 기자들의 기사 분석에서, 미술잡지와 미술비평의 관계는 김정현 비평가의 글에서 소상히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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