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운 Jae Oon Rho

인터넷 환경에서 펼쳐지는 영화적 무의식의 향연
: 노재운의 디지털 보편 영화에 대하여

문혜진 미술비평

Artist

노재운/ 1971년생.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2011), 갤러리 플랜트(2010, 2009), 아트스페이스 풀(2006), 인사미술공간(2004)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단체전 《시간밖의 기록자들》(부산현대미술관, 2019), 《달의 이면》(국립아시아문화센터, 2017),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2014), 《크리스 마커와 꼬레안들》(아뜰리에 에르메스, 2013), 《부산비엔날레》(2012), 《스페이스 스터디》(2011), 《여론의 공론장》(대안공간 루프, 2010),《감각의 몽타주》(서울시립미술관, 2009), 《기억을 위한 보행, 상상을 위한 보행》(인사미술공간/뉴뮤지엄, 2008),《광주비엔날레》(2006) 등에 참여했다. 자신의 작품을 기획, 제작, 전시, 상영, 배포하는 C12픽쳐스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박홍순 이미지 제공:작가


인터넷 환경에서 펼쳐지는 영화적 무의식의 향연
: 노재운의 디지털 보편 영화에 대하여

문혜진 미술비평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1
0. 노재운은 여러모로 독특한 작가다. 그는 2000년을 전후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작스럽게 전환된 한국 미디어 생태계의 적자이면서도, 당대 디지털 열풍의 주류 경향과 전혀 상반된 지향을 추구한 까닭에 이름이 많이 알려졌음에도 언제나 오해에서 벗어나지 못한 작가기도 하다. 2009년 쓰인 한 글은 노재운에 대한 여러 갈래의 오해를 잘 보여준다. 필자는 노재운에 대한 기존 글을 메타비평하며 노재운에 대한 오역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작업방식에 지나친 의미를 두는 필터로, 노재운 작업의 형식에 초점을 두어 그를 웹아트 작가로 의미부여하는 것이다. 둘째는 노재운 작업의 도상이 대변하는 작가적 태도 및 도상의 서술에 과도한 의미를 두는 것으로, 그의 작업을 시대의 징후를 잽싸게 스캐닝하는 트렌드세터 류나 한국의 사회정치적 현실에 개입하는 정치적 미술로 읽는 것이다.2 이런 오해가 생긴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듯하다. 우선 노재운의 초기 작업이 2000년 문을 연 비말라키넷(vimalaki.net)3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오프라인 전시가 뒤늦게 구현되었으며4 이후에도 〈애기봉 프로젝트〉(2006~2007), 〈총알을 물어라〉(2008~2009),〈버려진〉(2009) 같은 대작 역시 웹 기반으로 제작된 까닭에, 구체적 맥락과 별개로 물리적으로 노재운은 몇 안 되는 한국 웹아트의 대표 작가로 인식된다. 다음으로 노재운의 초기 웹 작업이 2002 아시안 게임에 방문한 북한응원단, 2003년 경기도 화성에 추락한 미군의 U-2 폭격기, 비무장지대(DMZ)를 위시한 남북한의 긴장 관계 등 당시 한국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소재로 했기에, 내용 중심적이던 한국미술계가 그를 “비현실화된 한국의 사회정치현실에 개입적 자세를 지닌” 사회비판적 작가로 파악한 것이다.5 이런 해석들은 노재운 작업의 특징을 부분적으로 반영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오역이다. 이들은 노재운의 작업을 소재나 형식 같은 표면으로만 이해했고, 노재운이 인터넷을 택한 근본적인 태도나 맥락을 읽지 않았다. 노재운이 웹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물질적 외형이나 조건이 아니라, 그 작동원리나 사유방식, 유통 방식에 있다.6 이 글은 노재운의 초기 작업을 그의 원래 의도대로 다시 읽는 시도다.

〈신세계〉 2006

1. 작가로서 노재운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1990년대 중후반에 번성한 두 가지 미디어 환경이다. 그중 하나는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인터넷이다. 영화는 작가로서 노재운의 무의식을 결정한 매체로, 그의 작업의 심리적 근간을 형성한다. 학부 시절 노재운은 학과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주로 영화를 보며 지냈다.7 당시는 아직 예술영화 전용관이 생기기 이전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민간 시네마테크가 소규모로 운영되던 때다. 그중 홍대 근처에 자리한 ‘영화공간 1895’는 시네키드들의 성지와도 같은 곳으로, 약 1,500편 정도의 비디오를 구비하고 영화이론 워크숍, 24시간 영화학교 등을 운영하며 새로운 영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주는 한편 언더그라운드 영화 문화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8 노재운은 이런 공간에서 고전영화를 마음껏 흡수하며 영화에 흠뻑 빠져든다. 영상문화의 영향은 노재운의 초창기 활동에 흔적을 남겼다. 그는 학부 졸업 전시에 회화 두 점과 함께 비디오 작업 한 점을 출품했고, 친구들과 함께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9 하지만 본격적으로 비디오아트나 영화로 나아가지 않은 것이 노재운의 특기할 만한 점이다. 그는 필름을 신화화하는 영화계의 관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만들고 찍는 과정이 지나치게 번거로운 것도 매력이 없다고 느꼈다.10 추측건대 화려한 시각효과와 도회적 감각, 신세대 감성이 지배적이었던 비디오아트도 노재운의 지향과는 맞지 않았던 듯싶다.

이런 시점에 그에게 다가온 것이 인터넷이었다. 그는 1998년 ‘클라우디 웹 스튜디오’라는 개인 홈페이지를 열어 자신이 그린 디지털 회화를 업로드했다. 컬트문화가 활발하던 당시 그의 홈페이지는 곧 유명세를 얻어 팬덤이 형성되었고, 그들은 노재운의 오프라인 전시를 보러올 정도로 교류가 활발했다.11 그저 재미난 것을 공유하며 함께 놀던 놀이 문화가 작업으로 본격화된 것은 2000년부터다. 그는 2000년에 접어들어 웹에 떠도는 이미지를 수집해 보관하는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인 ‘클라우디12픽쳐스(cloudy12pictures)’, 현실의 이미지를 찍어서 블로그 형식으로 올리는 ‘타임이미지(time image.co.kr)’, 자신이 만든 웹 영화를 공유하는 극장인 ‘비말라키넷’을 발족하며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특히 비말라키넷은 성황을 이루던 디지털 열풍과 함께 즉각적인 반응을 얻었고, 당대 주요 온라인 전시에 초대되며 이름을 알리게 된다. 당시 네티즌 감성을 상징하던 신촌 TTL 존에서 열린 《스펙트럼 TTL》(2000), 국내 대표적 넷아트 전문 플랫폼인 블라인드사운드의 온라인 프로젝트《블라인드 러브(www.blindlove.org)》(2000) 등이 일례다. 《스펙트럼 TTL》은 물리적 공간에서 열렸지만, 실질적으로는 해당 장소의 컴퓨터 모니터에 접속하여 작품을 관람하는 포맷이었다. 여기서 노재운은 임은경이 등장하는 TTL 광고와 에이젠슈타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1925) 중 유명한 오뎃사의 계단 시퀀스가 관객의 선택에 따라 뒤섞여 재조합(re-assemblage)되는 〈Sequence on the Net〉(2000)을 선보였다. 한편 《블라인드 러브》는 완전한 온라인 전시로, 노재운은 2000년 오키나와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의 해적판 버전인〈G8/The High Class of the World〉(2000)를 출품했다. 세계 각국의 G8 관련 사이트는 하이퍼링크를 통해 연결되어 원본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맥락을 형성한다.

하지만 노재운은 당시 유행하던 주류 웹아트에도 합류하지 않는다. 그가 비말라키넷을 연 2000년은 닷컴 열풍과 함께 웹아트가 융성하던 시기였다. 제1회 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IDAF)이 1999년 말 열렸고, 국내 웹아트의 대부 이상윤이 2000년 블라인드사운드닷컴(ww w.blindsound.com)(2000~2009)을 개설해 본격적으로 웹아트를 선보이고 육성했으며, 같은 해 국내 최초로 웹아트 및 미디어아트 전문미술관을 표방한 아트센터 나비가 개관했다. 장영혜중공업이 저명한 웹아트상인 웨비상을 수상한 것도 2001년이었다. 노재운은 블라인드사운드가 주최한 워크숍에 몇 번 참여하기는 했지만 웹아트에 큰 흥미가 없었다고 밝혔다.12 이는 노재운에게 웹은 단순히 새로운 매체가 아니라 이미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현실세계와 웹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웹은 곧 현실이다”13라는 노재운의 말은 그에게 웹아트란 단지 새로운 예술 언어가 아니라 새롭게 변화한 패러다임이자 현실임을 드러낸다. 마치 사진과 영화의 도래가 발터 벤야민에게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의 변화를 의미했듯, 웹은 노재운에게 세상을 인지하고 표현하는 새로운 매개체이자 사유의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인터랙티브 중심이던 좁은 의미의 웹아트는 그에게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14 “선택된 이미지들을 재배치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뇌를 구성하는 이미지의 체계들에 구멍을 내고 싶다. […] 원래와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이 되게 하는 것, 그런 것을 하고 싶다”15는 노재운의 언설은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꿈을 상기시킨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패러다임이 변천하는 바로 그 현장이라는 흥분과 기대가 한 청년 작가의 도전적인 선언에서 반복된다. 그 근간은 닷컴 열풍으로 인터넷이 상업화되기 이전 1990년대 중후반의 자유롭고 창조적이던 초기 인터넷 환경의 실험적 풍토였다.

비말라키넷(vimalaki.net) 웹커버 2000~

0. 영화광이라는 노재운의 취향과 도구를 넘어 환경이 된 웹의 현실은 웹 영화관이라는 비말라키넷의 출범으로 귀결된다. 그가 보기에 20세기를 지배한 예술 형식이 영화라면, 21세기의 예술 형식은 디지털이다. 20세기가 카메라를 통해 필름의 입자로 표현되었다면, 21세기는 전자 신호와 그리드, 픽셀의 세계다. 그는 세상을 드러내는 본질이 바뀌었기에 과거 광학 매체가 지니던 아우라나 푼크툼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보았다.16 그는 카메라가 없는 포지션을 취하기로 한다.17 20세기 작가들이 취하던 창작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데이터베이스에서 자료를 취해 재배치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노재운에게는 광대한 데이터베이스가 펼쳐져 있었다. 20세기 영화의 거장들이 축적해 놓은 광학의 데이터베이스에, 인터넷 이후 유저들이 올려놓은 무수한 일상의 이미지가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데이터베이스로 존재했던 것이다. 그는 인터넷 시대에 맞는 영화를 제작하기로 마음먹고 영화와 디지털이 결합된 웹 영화관 비말라키넷을 연다.

인터넷 시대에 부합하는 영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웹의 존재방식에 상응하는 영화일 것이다. 비선형적이고, 끝없이 순환하며, 끊임없는 수정이 이루어지는 다원적이고 열린 웹의 구조는 노재운이 만든 웹 영화의 형식을 결정했다. 우선 비말라키넷에 업로드된 노재운의 작업은 모두 기존 이미지를 재구성해 만든 것들이다. 2002년 한국을 방문한 장 보드리야르의 방송 프로그램 출연 장면을 내려받아 미디어의 선정성과 유명세의 허망함을 풍자한 〈보드리야르 인 서울〉(2002), 2002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방남(訪南)한 북한응원단의 미모를 찬양한 무수한 언론 사진을 활용해 광기 어린 격렬한 정동의 흐름을 포착한 〈치명적 아름다움〉(2002) 등이 대표적인 예다. 재구성이라는 방법론은 새롭진 않지만, 특정한 원본을 해체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유와는 다르다. 그보다는 기호와 의미화의 광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사용 가능한 형식을 자유롭게 리믹스하는 부리오식 포스트프로덕션의 정서에 더 가까울 것이다.18 하지만 오프라인의 작품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부리오의 방법론에 비해 노재운의 재배치는 훨씬 비논리적이고 무목적적이며 느슨하다. 이 태도는 “행자는 행자일 뿐”이라는 네티즌의 정서에 가깝다.19 그런 점에서 노재운을 “이미지의 바다에서 유유자적거리는 낚시꾼”이라고 표현한 한 필자의 해석은 무한한 자료의 바다에서 마음껏 유영하는 유저로서 노재운의 태도를 잘 포착한 것이다.20 〈치명적 아름다움〉에 삽입된 김홍철의 〈아름다운 스위스 아가씨〉(1974) 요들송이나 〈보드리야르 인 서울〉에서 기묘한 코믹함을 야기한 드뷔시의 〈달빛〉(1890) 역시 처음부터 의도했다기보다 키워드 검색에서 찾은 어울리는 곡을 재배치한 것으로, 작가가 생각한 것을 표현한 이미지가 이미 존재하고 작가는 그것을 파내기만 하면 된다는 재활용의 태도와 연결된다.21

 〈3 Open Up〉(스틸) 2001

〈버려진〉49장 스틸컷 이미지 2009 〈총알을 물어라!〉 200

재배치와 더불어 노재운이 선택한 방법론은 저해상도의 이미지다. 이것 역시 고해상도와 선명성을 추구하는 주류 미디어 기술의 방향과 반대되는 것이다. 그는 기술을 맹목적으로 좇는 것이 아니라 웹과 디지털이 지닌 시대적 의미를 탐구하는 것을 자신의 할 일로 택했다.22 혹자는 화질이 안 좋고 입자가 거친 이 저해상도 이미지에서 히토 슈타이얼의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23 이미지의 대안적 공동체를 창출하는 시각적 유대라는 점에서는 일면 겹치는 지점이 있을 수도 있다. 노재운의 초기 작업 중 〈패트릭 움보마, 카메룬의 영웅〉(2002)이나 〈아가타 브로벨, 폴란드의 여제〉(2005)를 보면 국제적 연대의 초기 웹아트의 이상주의의 자취를 살짝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슈타이얼이 빈곤한 이미지에 기존 이미지 경제에 대한 정치적 대항의 프롤레타리아 이미지를 부여했다면, 노재운의 저해상도 이미지는 삶으로서의 인터넷에 대한 노재운의 신념을 드러내는 선택 혹은 매체 탐구의 대상으로 기능한다. 싸고 단순하며 활용이 쉬운 저해상도 이미지는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재료로, 모두가 웹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상 모든 이가 웹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는 노재운의 생각에 부합하는 매체다.24 더욱이 확대를 거듭하다 보면 드러나는 픽셀은 연산으로 구성된 디지털 이미지의 본성을 드러낸다. 확대를 거듭해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추상으로 화하는 보드리야르의 모습이나 확대되다가 픽셀로 부서지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이미지(〈여성의 정체〉(2006))는 일반적인 영화의 클로즈업과 다른 역할을 한다. 필름 영화의 클로즈업이 몰입을 유발한다면, 노재운의 웹 영화에서 클로즈업은 되레 몰입을 방해하며 그 이면의 매체의 물성을 드러낸다. 한 비평가는 이를 클로즈업을 넘어서 화소로 향하는 클로지스트 업(closest up)이라 규정하기도 했다.25 이 가상성은 웹에 떠도는 모든 이미지의 실체에 대한 폭로기도 하다.

1. 프레임 내부에서도 웹 영화는 기존 영화와 다른 문법을 지닌다. 노재운이 즐겨 활용하는 방법론은 몽타주와 점프컷, 크로핑이다. 한 예로, 〈세 개의 대역〉(2005)에서 작가가 수집한 불특정 다수의 문구는 북한의 선전마을, 남한의 산업용 가건물, 미국의 집단주택과 병치되면서 이미지와 이미지, 이미지와 사운드(내레이션)의 충돌을 유발한다. 이런 방식은 〈여성의 정체〉(2006), 〈얼음여왕(Casta Diva)〉(2006) 등 그의 다른 작업에서도 즐겨 사용되어, 대비나 유사함으로 새로운 의미의 창출에 기여한다.26 하지만 내러티브 없이 과감하게 활용되는 점프컷은 영화적 종합을 이루기보다 링크와 링크를 따라가면서 상이한 맥락을 느닷없이 마주치게 되는 웹서핑의 열린 구조에 가깝다. 남한 3부작 중 하나로 노재운에게 처음 명성을 안겨줬던 〈3 Open Up〉(2001)은 공장, 산불, AWACS(미군의 최첨단 조기경보기)로 이루어진 세 개의 챕터를 지니고 있지만, 각 챕터 간의 연결은 남북한과 미국이라는 약한 연결고리 외에 전혀 없다. 〈치명적 아름다움〉은 열광의 현장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이미지를 표정 중심으로 크로핑하고, 격렬한 감정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편집 속도를 조절했다.27 프레임 단위로 쪼개는 크로핑 기법은 누아르 영화의 한 장면을 따온 〈버려진〉이나 전쟁 영화의 클립을 수집한〈총알을 물어라〉에서 극대화된다. 조각조각 나뉜 영화의 파편들은 유튜브나 틱톡의 숏츠 감각으로28 장면들이 원맥락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흘러 다니는 인터넷 서핑의 보기 방식을 닮았다.

결국 노재운의 비말라키웹은 그저 기존 영화를 웹에서 상영하는 온라인 영화관이 아니라, 작업의 생산방식, 구성방식, 관람방식까지 전혀 다른 언어와 사유 방식을 따르는 다중 공간이다. 한 예로 초기 작업인 〈자마이카여 안녕〉(2001)은 기존 영화와는 다른 관람방식을 제시한다. 프레임 보더를 이리저리 움직여 이미지를 변형하는 감상 방식은 그저 “멍 때리며 노는 것”으로, 하나의 영화를 집중해서 관람하는 진지한 영화 관람과 대비된다.29 이는 무언가를 많이, 짧게, 스치듯 보는 브라우징의 감각으로 웹 세대의 지각 방식이다. 한편, 〈호출〉(2004)은 생산방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작가는 서울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 나오는 이미지를 무차별적으로 내려받은 후, 프레임으로 자동 불러들이기 기능을 활용해 이미지가 자동 편집되도록 했다.30 한강 다리, 월드컵경기장, 유람선, 서울랜드, 아파트 숲, 주차장, 공사장 등 무작위로 등장하는 이미지는 선별도, 편집도 작가의 의도를 거치지 않은 것이다. 작가의 개입이 빠진 영화는 실시간 생성되는 이미지 베이터베이스를 원재료로 기계가 알아서 편집한 21세기의 영화로, 베르토프의 키노 아이(Kino-Eye)가 인터넷 버전으로 적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단상을 불러일으킨다.

〈호출〉 2004

텍스트, 사운드, 이미지, 영상 등 모든 종류의 매체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웹의 특성은 노재운의 대작 〈애기봉 프로젝트〉, 〈총알을 물어라〉, 〈버려진〉에 적용되었다.〈애기봉 프로젝트〉의 대문에는 애기봉의 유래에 대한 텍스트, 실사 촬영 사진과 파운드 푸티지 이미지가 섞인 온라인 사진관, 〈얼음여왕〉, 〈신세계〉(2006), 〈5시부터 7시까지의 안개〉(2006) 등의 영상 작업을 볼 수 있는 웹 영화관이 뒤섞여 나열되어 있다. 관객은 아무 항목이나 클릭하여 내키는 대로 원하는 만큼 작업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온갖 차원의 실제와 가상이 뒤섞이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공간이 다층적으로 얽힌다. 〈총알을 물어라〉, 〈버려진〉역시 유사한 방법론의 적용이다. 하지만 이 두 작업은 기존 영화의 시퀀스를 가공한 영화 다시쓰기에 더 가깝다. 〈총알을 물어라〉는 전쟁 영화를 소재로 할리우드 주류 영화에서 한국이 재현되는 방식을 수집한 것이고, 〈버려진〉은 누아르 영화를 소재로 대도시에서 고립된 사람의 망상과 강박, 분리불안을 다룬 장면을 추출한 것이다. 관객은 클릭을 통해 여러 시공간의 장르영화를 원하는 대로 편집하며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이미지도 마음대로 늘리고, 출처도 필요 없으며, 상영 시간에도 구애받지 않는 이런 영화는 산만한 인터넷 환경에 부합하는 ‘또 다른’ 영화다.31

0. “C12P는 […] 웹의 도래가 예술을 대하는 이 초라한 관점과 태도들을 드디어 끝장낼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32, “애초에 영화란 것은 더 풍요로운 가능성과 잠재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형식으로 굳어버린 것이죠. 뭔가 새로운 전환을 해야지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지 않겠어요?”33, “비말라키넷에서는[…] 웹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최적화된 말하기 방식을 연구한다(그리고 이 방식은 오프라인에서도 아무 장애 없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34 노재운의 발언들을 보고 있노라면 최소 10년은 앞선 예언처럼 보인다.35 인터넷이 온라인을 넘어 네트워크 문화 속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포스트인터넷 개념이 서구에서 2011년에야 확립된 것을 생각하면36, 웹이 우리의 환경이 되었기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별이 의미가 없다는 노재운의 생각은 참으로 선구적인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2009년 이후〈뇌사경〉(2009) 같은 평면 회화, 글씨를 변형한 메타그라피, 사다리나 지팡이 같은 오브제, 갖가지 프레임 사이즈로 구성된 아크릴 설치 등 물성을 갖춘 오프라인 작업이 주를 이루면서 노재운은 작업이 변했다는 오해를 종종 받았다. 하지만 영화의 디지털적 재가공은 언제나 여러 차원으로 가능했다. 그의 작업 항목에는 2차원 이미지(IMZ(Images), M_IMZ(Moving Images)), 입체물(Objectz), 다차원의 배치(Interfacez) 등 늘 실물 작업이 포함되어 있었고, 초창기 두 개인전 《스킨 오브 사우스 코리아》(2004),《스위스의 검은 황금》(2006)에도 다수의 출품작이 실물이었다. 웹과 현실의 구분이 의미 없어진 세상에서, 한 고전영화에 등장하는 이가 빠진 벤치를 제작해 테라스에 내놓고, 그것을 바라보는 창문 구석에 영화사에 등장하는 모든 프레임을 조합한 셀로판지 필터를 부착한 〈세상의 모든 영화〉(2009)를 보고 어느 누가 영화적이지 않다고 말할 것인가. 130년의 축적된 영화사가 우리의 무의식을 영화적으로 만들었고 인터넷이 우리의 새로운 자연이 되었다면, 웹에 걸맞은 생산과 감상, 유통의 방식을 개발해 누구나 자유롭게 접속하고 변형하며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보편 영화를 제작한 노재운은 단지 매체를 선구적으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웹이 지각과 인식에 끼치는 거대한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새로운 세계에 맞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제시한 작가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매클루언이 말하는 진정한 예술가였다. “예술가란 […] 자신이 속한 시대에서 자신의 행동과 새로운 기술이 갖는 함의를 파악해내는 사람을 말한다.”37 노재운은 영화가 현실의 반영물이 아니라 현실의 앞(이전)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의 작업이 현실의 뒤(이후)의 영화도 상상하게 한다고 말하고 싶다. 미래의 보편영화는 무엇일지 우리는 그의 작업을 보면서 꿈을 꾼다.


1  프리드리히 키틀러 지음 유현주, 김남시 옮김 『축음기, 영화, 타자기』 문학과 지성사, 2019 p.7
2 김희진 「스킨에서 유니버설 시네마로: 열린 미래를 위한 노재운의 수호」 『2009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 2009
3 비말라키는 산스크리트어로 유마(維摩)를 뜻하며, 번뇌가 들끓는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곳을 뜻한다. 이는 새 시대의 언어에 맞는 새로운 영화, 곧 영화의 영도(零度)를 뜻하는 것일 테다
4 2004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 《스킨 오브 사우스 코리아(Skins of South Korea)》전이 노재운의 첫 개인전으로, 이 전시 이전 노재운의 작업은 거의 웹 기반 작업이었다
5 김희진 위의 글. 여기에는 노재운의 두 번째 개인전(2006)이 대안공간 풀에서 열렸으며, 2006~2007년경 박찬경, 조습과 함께 ‘JNP Production’을 운영하며 대안공간 풀 계열 작가로 간주된 것도 한몫했다
6 노재운 「노재운-디지털이든 무엇이든지」(김장언과 노재운의 인터뷰)『컬처뉴스』 2006.2.22
7 노재운은 90학번으로 1990~1991년까지 학교를 다니다가 입대했고, 1994년 복학해서 1997년 졸업했다
8 영화공간 1895는 1988년 마포에서 시작해 1992년 명륜동에서 마무리되었다. 성하훈 「영장 없는 필름 강탈에 항의하자 연행 … 시네마테크의 수난」 『오마이뉴스』 2020.10.12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650054)
9,10 노재운 인터뷰 2025.10.18
11 당시 노재운의 팬 모임이던 ‘피를 빠는 변태들’이라는 동호회는 할리우드 B급 고어영화인 〈피를 빠는 변태들(Bloodsucking Freaks)〉(1976)에서 이름을 차용했는데, 그들이 보러온 전시는 영상이나 웹아트가 아니라 유화를 출품한 전시인 《그림 클럽》(대안공간루프, 1999)이었다고 한다. 노재운 인터뷰 2025.10.18
12 이런 상황은 서구 웹아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그는 리좀(Rhizome.org) 등 유명한 사이트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크게 관심은 없었다고 말했다. 노재운 인터뷰 2025.10.18
13 노재운 「가상공간의 지도제작자들」 『월간 디자인』 2001년 7월호
14 노재운은 비말라키넷에 대한 작가노트에서 자신의 작업이 인터랙티브 아트가 아니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노재운 작가노트 2003
15 노재운 「비말라키넷에 대한 단상」 2004
16 노재운 인터뷰 2025.10.18
17 노재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지언과 노재운의 인터뷰) 『To Better Lifestyle with internet』 라이크컴퍼니 2014
18 니콜라 부리오 지음 정연심, 손부경 옮김 『포스트프로덕션』그레파이트 온 핑크 2016 pp.17~29
19 행자는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유저를 칭하는 속어다. 김장언 「바로크적 시나리오」 『공간』 2004년 8월 pp.172~179
20 이요훈 「이미지를 건져 올리는 낚시꾼」 웹진 『넥스아트』 2006 현재 이 웹진은 폐쇄되었다
21 무대뽀(류병학) 「다이아몬드는 여자들의 절친」 『동양일보』 2011
22 노재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지언과 노재운의 인터뷰) 앞의 책 2014
23 Hito Steyerl “In Defense of the Poor Image” e-flux journal Issue #10 2009
24 노재운 「웹아트, 웹아티스트」(2008) 『코스믹 조크』 아트스페이스풀 2018 p.12
25 테오도르 휴즈 「역사와 시각성: 노재운의 작품과 겉면 보기」 『2009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 2009
26 일례로 〈얼음여왕〉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죽여야 하지만 차마 죽이지 못하는 여성 간첩의 모습(한형모 감독의 〈운명의 손〉(1954)의 한 장면)은 사랑하는 남자와 부족민 사이에서 갈등하는 노르마의 노래(〈카스타 디바〉(1831))와 연결된다
27 무대뽀(류병학) 「치명적인 아름다움」 『동양일보』 2011
28, 29 노재운 인터뷰 2025.10.18
30 노재운 인터뷰 2025.10.18
31 여기서의 ‘또 다른’이라는 표현은 최근 미술관 안으로 들어온 영화를 일컫는 다른 영화(other cinema, 레이몽 벨루의 용어), 달라진 영화(othered cinema, 에리카 발솜의 용어) 등의 영화와는 또 다른 맥락의 새로운 영화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32 노재운 「웹아트, 웹아티스트」 2008 p.12
33 무대뽀(류병학) 「웹 영화감독 노재운」 『동양일보』 2011
34 노재운 작가노트 2003
35 첫 개인전의 제목인 《스킨 오브 사우스 코리아》는 11년 후 열린 《뉴 스킨: 본뜨고 연결하기》(일민미술관, 2015)를 그대로 연상시키지 않는가. 새로운 세대가 관찰한 세상의 외피가 미술로 변용되는 지점을 살핀다는 일민미술관의 기획 취지 또한 “남한의 표면을 흐르는 보편적인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구동시킨다는 노재운의 의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https://ilmin.org/exhibition/2015_new-skin/; 이선영 「노재운전」 웹진 『미술과 담론』 2004
36 Marisa Olson “Postinternet: art after the internet” Foam Magazine 29 Winter 2011 pp. 59~63
37 마셜 매클루언 지음 김상호 옮김 『미디어의 이해』 커뮤니케이션북스 2011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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