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키워드 리포트
2025 Recap, 2026 Preview

기혜경·오세원·임근준·이지회

1월 특집기사 ①

월간미술 편집부는 동시대 미술 현장의 흐름을 점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키워드’라는 형식을 호출해왔다. 특정 시기의 논쟁과 관심사가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를 가늠하는 데 이보다 직접적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번 특집은 2025년을 통과해 2026년으로 진입하는 시점에서, 동시대 미술이 무엇을 더 이상 말하지 않게 되었고, 무엇을 새로운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특집의 응답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2025년을 진단하고 2026년을 전망하며, 창작·전시·시장·글로벌 맥락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변화의 징후를 포착했다.

동시대 미술은 새로운 주제를 발명하기보다, 이미 일상화된 조건 속에서 중심을 해체하고, 공존과 공공성을 다시 설계하며, 제도 이후에도 실천을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을 탐색하고 있다. 이번 특집은 그러한 움직임을 하나의 지도처럼 펼쳐 보이며, 변화하는 미술의 방향을 가늠해보는 출발점이 되고자 한다.

기획·진행 노재민


기혜경 홍익대 교수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북서울미술관 총괄, 부산시립미술관 관장 역임.
저서『이미지 시대의 매체 vs. 미디어』(2018),
공저『한국 미술 다시 보기 3: 1990~2008』(2022) 등 집필

#올드 미디어의 재매개화 (2025’s Keyword)
2025년 국내에서 개최된 전시 경향을 분류해 보면 매체 고유의 특성을 다시 살피는 전시가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는 올드 미디어로 칭해지는 회화 및 조각 장르의 매체 특정성이 포스트 디지털 시대의 뉴 미디어들과 연동되며 보이는 혼종적 특성을 탐구한 것으로, 2022년 조각의 매체적 특성을 살핀 전시들이 미술계를 강타한 흐름을 이어, 올해는 회화매체의 재매개 현상을 살피는 전시가 강세였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떨어지는 눈》을 시작으로 국제갤러리의 《Next Painting: As We Are》, 하이트 콜렉션의 《형상은 예외가 아닌 규칙》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특히, 이들 전시는 형상 이후의 형상이라는 흐름을 포스트 미디엄의 조건과 연동하여 풀어내었는데, 형상 이미지 자체에 천착하기보다는 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규칙, 체계, 감각 구조에 초점을 맞추어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패러다임에 주목하였다. 이는 포스트 디지털 시대에 회화라는 전통적인 장르 안에서 이미지를 제작하는 구조, 감각, 작동 시스템의 변화를 고찰함으로써, 그러한 변화가 초래한 매체 조건의 확장에 주목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 매체가 그 고유의 매체 특성을 넘어 혼성되는 과정은 매체사적 관점에서 살필 때, 새로운 매체가 출범하면 예외 없이 견인되었던 올드 미디어들의 재매개화(Remediation) 경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형상 이후의 형상’으로 대변되는 올드 미디어의 재매개 경향 및 그것을 다루는 전시들은 2025년에 한정되지 않고 2026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떨어지는 눈》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사진: 서스테인웍스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를 통해 말하는 주체의 변화와 감각의 재배치 (2026’s Keyword)
전시가 담론을 생산하는 주체로 등장한 이래 그 목소리가 누구를 대변하는가는 미술계 논의의 중심을 형성해 왔다. 이는 토니 베넷이 ‘전시 복합체(Exhibitionary Complex)’라는 개념을 통해 근대의 박물관, 엑스포, 공공전시 등이 시민을 교육, 조련, 동원하는 권력 장치로 작동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관찰하고 비교하며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도록 작동하였다고 주장한 이래, 전시가 누구를 대변하며 그 목소리를 담아내는지는 미술계 담론의 중요한 쟁점이자 흐름을 형성해 왔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백인, 중산층, 남성의 목소리를 벗어난 전시의 발화 주체는 여성에서 유색인, 소수자 등으로 다변화 되었고, 최근 들어 그 대상은 자연, 환경 및 사물과 같은 비인간 주체로 이어지며, 중심에서 소외되거나 자기 몫이 없어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존재들, 혹은 객체로 치부되던 것들에 초점을 맞추며 그 범위를 넓혀왔다. 2025년의 미술계 전시는 이러한 발화 주체들 중 장애인, 소수자, 환경, 자연, 기술 기반 매체들이 주체가 되는 국면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경향의 전시로는 ACC의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리움의 피에르 위그 개인전 《Liminal》,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25 《강령: 영혼의 기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전시가 드러내는 바, 발화 주체에 대한 다변화는 우리들의 사고체계를 형성해 왔던 주류에 대한 다시 보기를 의미하는 것이자, 인간 중심적 사고를 재고하려는 흐름을 반영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간 본위, 정상성 본위로 구조화된 체계를 재고하는 것으로, 이러한 경향은 2026년 전시에서 좀 더 강화될 전망이다.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 전경 2025
사진: 김선우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자본 주도의 미술계에 대항한 과정 위주의 전시  (2026’s Keyword)
4년 차에 접어든 키아프·프리즈의 연계 개최로 2025년 미술계는 자본주도 양상이 더욱 심화되었다. 한국 미술시장의 구도를 재편한 두 아트페어를 위해 우리 미술계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전력질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시장 본위 시스템, 대중성, 관람객 수 등이 미술계를 평가하는 중요 지표로 작동하는 가운데 주요 미술관의 전시는 기획전이 사라지고 유명 작가의 개인전이 줄을 짓는 기현상을 보였다. 이러한 가운데, 자본이 중심을 점한 흐름과는 다른 방식의 전시가 모색되기도 하였다. 이전에는 전시의 아이디어 단계로 분류되어 최종 전시 결과물에서는 작품에 가려 드러나지 않던 작가의 생각의 흐름이나 작업을 구현해 나가는 과정 자체를 전시로 공유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말하는 머리들》을 필두로 로쿠스 솔루스의 작업 및 공유방식이나, 2024년 이래 연 1회씩 운영하고 있는 비평가의 작업을 글 이외의 방식으로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는 스페이스 애프터의 모색들, 여성과 젠더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지역의 공간들을 연대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 공간 일리의 일련의 활동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전시 혹은 프로젝트들은 그 속성상 아카이브나 다큐멘테이션을 활용하거나, 관객이 직접 작업에 개입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통상적인 전시가 오브제 성격이 강한 작품이나 정적인 형태의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것과는 달리, 이들 전시는 전시장에 제시된 지시문, 아카이브, 작품, 자료 등을 읽히는 대상을 넘어 관객 참여, 행위, 이벤트를 촉발하는 실행형 아카이브로 작동시킨다. 이러한 흐름은 자본주도의 시장 흐름에 대응했던 1960~1970년대 대지미술이나 개념미술, 퍼포먼스의 맥을 잇는 것이자, 자본과 시장이 주도하는 미술계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한편 동시대 미술이 무엇에 집중하고,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그리고 사회 속에서 그 언어들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미술계의 자본주도 경향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안티테제로서 이들 경향 역시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이스 애프터는 비평 생산 중심의 공간으로 비평가의 사유와 텍스트가 공간화되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으며, 비평가 안소연, 정현 등의 비평적 궤적을 전시로 선보인 바 있다.
정현 비평가의 전시인 《비평과 감각》 스페이스 애프터 전시 전경 2025 사진: 박홍순


오세원 씨알콜렉티브 디렉터, 일심재단 이사장
시카고예술대에서 예술행정 석사, 홍익대 미학과 박사과정 수료.
아르코미술관 학예실장, 문화역서울284 본부장직무대리 역임

들어가며
2025년 한국 미술계는 자본의 상위 집중과 자원 격차의 심화 속에서 제도권 운영 구조가 변화하는 시기를 맞았다. 대형 자본을 기반으로 한국 작가의 글로벌 진출이라는 외연적 확장이 진행되는 한편, 국내 생태계의 자생성을 반문하는 움직임은 사회적 이슈, 정체성, 기술, 환경 등 동시대 핵심 쟁점들이 전시의 중심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축소되는 예산과 불안정한 제작 조건 속에서 생존을 위한 현실적 대응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가시적 연대 (2025’s Keyword)
동시대 전시 현장은 AI와 함께 기술, 감시, 데이터, 생태 시스템 등 다양한 비가시적 감각 및 비인간적 존재를 적극적으로 호출했지만, 공고한 이해관계로 구축된 기존의 네트워크를 제외한 ‘연대’ 담론은 종종 자원 불균형과 불안정 노동을 가리는 윤리적 이상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느슨한 연대는 작가 간의 협력을 넘어 인간-기술-비인간의 감각적 얽힘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공동 생산 및 협업이 선택이 아니라 ‘강제된 조건’이라는 현실을 드러낸 것이다. 사변적 사유와 포스트 휴먼 논의도 인간중심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열었으나, 기술적 인프라가 누구에게 소유되고 어떤 자본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질문되지 않았다.

이렇게, 인간-기술-사물 연대는 동시대 전시 감각을 대변하는 요소로 자리매김했으나, 동시에 기술 기반 전시가 더 큰 비용을 요구하고 불평등한 접근 조건을 강화하는 구조적 문제 역시 병존한다는 점에서 ‘연대’는 현실적 구조를 직면하게 한 측면과 함께 재검토되어야 한다. 따라서 2025년 전시에서 보인 비가시적 연대는 제한된 자원과 불안정한 경제 조건 속에서 ‘불가피하게 선택된 협력 방식’이라고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협업을 통해 윤리적 문제나 대안적 공동체의 언어로 낭만화했던 기존 담론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공공성의 재정의 (2026’s Keyword)
2026년 국내 생태계의 자생성과 함께 한국 미술계가 던져야 할 핵심 질문은, 공공성을 누구에 의해 보장받는가이다. 지금까지의 공공성이 모든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는 선언이나 교육적 프로그램 정도로 받아들여졌다면, 앞으로의 공공성은 전시 제작 과정, 노동 체계, 자원 배분, 접근 조건이 어떤 권력 구조 속에서 결정되는지를 다루는 보다 구조적 차원의 설계 문제로 이동하여 논의할 필요가 있다.

전시 현장에서는 감각적 참여와 비언어적 상호작용, 비인간 존재와의 상호 얽힘을 강조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종종 통치 장치로서 누가 발언권을 갖고 참여가 가능하며 어떤 자원이 허락되느냐는 정치적 질문을 은폐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창작을 위한 지원은 작가의 실천이나 생산 확보를 뒷받침하기보다 자원통제 기능이나, 공간 및 기자재 렌트 비용, 과도한 설치·철거 비용을 충당하는 구조로 전용되고 있다. 공공성이 결과물의 문제를 넘어 운영 전체의 문제라면, 공공성은 더 이상 선언적 윤리가 아니라 권리·예산·노동의 조건을 재배분하는 정치적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공공성을 재정의한다는 과제는 단순히 참여 주체의 확장이나 감각적 접근성을 논하는 수준을 넘어서, 수도권 중심에 집중되어 온 자원 배분 구조, 2026년에 진행될 지역·지방으로의 실질적 자원 재분배와 생산 기반의 분산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이는 비가시적 연대가 제도권 내부의 윤리적 담론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의 예술 생태가 구축되는 구체적 조건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제도 재편의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됨을 시사한다.

#생태기술 운영 모델 (2026’s Keyword)
2026년 전시 현장은 AI와의 협력을 필두로 생태적 운영과 생태기술적 확장이 결합하는 방향을 그릴 가능성이 높지만, 이는 생태 친화적 기술이 실제로는 고비용·고자원 기반의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탄소 배출과 환경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요구는 분명하지만, 기술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자원 집중과 비용 상승이 발생하는 역설이 존재한다. 생태적 운영은 윤리적 선택이라기보다, 기술-자본 구조를 새롭게 구성해야 하는 문제이며, 이는 공공성·접근성·노동 조건과 직결된다.

실재의 공간과 디지털 공간이 결합된 전시 생태계는 감각적 경험을 확장시키지만, 동시에 기술 장비 집중과 제작비의 증가를 낳아 오히려 전시 접근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생태기술은 단지 기술 확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접근 조건을 재조정하고 자원을 다시 분배하는 구조적 개혁을 포함해야 한다. 또한,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방식이 수도권 중심의 자원 집중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생태적 운영이 진정한 의미가 있으려면 지역과 지방의 전시 기반을 포함한 자원 배분 구조까지 함께 재검토해야 한다. 앞으로의 전시 운영은 친환경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기술 기반 운영이 노동, 예산, 그리고 권력 구조 속에서 유지 되는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운영 모델 설정은 쉬운 문제가 아니므로 포스트 인터넷 또는 포스트 디지털 담론으로만 흡수되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노혜지, 최은빈, 봄로야는 완전한 연결이 아니라 각자의 속도와 차이를 유지한 채 서로 곁에 머무르는 공존의 방식을 실험하며
관계가 생성되고 교차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O Collective》 씨알콜렉티브 전시 전경 2025 사진: 이의록 제공: 씨알콜렉티브

마무리하며
씨알콜렉티브는 어쩔 수 없이 공진화하는 생태계 문제를 수면으로 올려 환기함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속도와 위치를 존중하며 유연하게 지지하고 부담을 분산하는 연대구조의 실험을 지속해 왔다. 느슨한 연대 자체와 과정을 중시한 ‘콜렉티브 어프로치’ 프로그램과 전시 《O Collective》, 그리고 일시적으로 연합한 지원 공간들과의 스크리닝인, ‘텀블링 프로젝트: 디지털 제너레이션스’를 진행했다. 결국 ‘비가시적 연대–공공성–생태기술’이라는 연속성은 생태 친화적 기술과 공존하는 공동체 담론 논의와 함께 전시를 구성하는 노동·자원·권력의 조건을 가시화함으로써 동시대 전시가 어떻게 작동하느냐는 질문을 중심에 놓는다. 나아가 이러한 질문은 실제 지원 구조와 제작 조건, 기술 인프라와 제도 운영 방식의 개편이라는 정책적 과제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2026년 이후 전시 현장은 감각과 담론을 넘어 제도 설계와 운영 조건 자체를 재조정하는 국면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2025 텀블링프로젝트 스크리닝 사진: 이의록 제공: 씨알콜렉티브


임근준 메타-드라머터그, 미술·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
LGBTQ+ 미술가·디자이너 및 인권운동가. DT 네트워크 동인 및 각종 미술 전문지 편집장 역임.
『크레이지 아트, 메이드 인 코리아』(갤리온, 2006),
『이것이 현대적 미술』(갤리온, 2009) 등 집필

#중동태적 전환 (2025’s Keyword)
2025년 한국의 현대미술계는 작가를 ‘세계를 비평적으로 바라보고 발신하는’ 우월적 주체로 설정하던 구조가 해체되는 과정을 목격했다.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예술가를 죽은 자와 산 자, 데이터와 영혼을 연결하는 영매로 재배치했다. 리움미술관의 《피에르 위그: 리미널》은 수조 속 생물, AI, 센서들이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진화하는 체계를 구성했고, 작가는 생태계의 간섭자 역할에 머물렀다. 대구미술관의 이강소 개인전 《곡수지유: 실험은 계속된다》는 물질이 가진 고유한 성질이 드러나도록 작가의 자아를 덜어내는 과정을 보여줬다.

이는 언어학의 중동태 개념을 미학적으로 구현한 것처럼 보인다. 중동태는 미들 보이스(Middle Voice)로, 본디 언어학에서 능동과 수동의중간 영역을 가리키는 문법 용어다. 행위의 주체가 자신에게 그 행위를 행하거나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흐릿해지는 태격(態格)을 뜻한다. 오늘, 내일을 지향하는 작가들은 더 이상 작품을 통제적 관점에서 제작하지 않는다. 대신 물질이나 기술, 영적 힘이 발현되도록 매개하거나 그 과정에 중재자로서 참여한다.

《이민재: Doppel-Lumpen》 d/p 전시 전경 2025 제공: d/p

한편 d/p에서의 이민재 개인전 《Doppel-Lumpen》과 피코에서의 윤정의 개인전 《분열》은 운딩어(Undinge, 비사물 혹은 비물) 즉 실존성 소멸 시대의 인간 실존과 인간 육체의 의미를 묻고 또 답했다. 통합된 자아가 불가능해진 시대에 능동적 타자화와 파편화는 병리적 증상이 아니라 생존 전략으로 제시됐다.

중동태적 전환은 1997년 12월의 외환위기 이후 현대 한국미술을 지배해 온 우월적 참여의 주체 혹은 관계적 미학의 프로듀서적 주체가 완전히 붕괴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주체의 붕괴는 시장·제도·교육·저자라는 동시대 미술 체제의 네 축이 동시다발적으로 기능을 정지하는 구조적 붕괴와 맞물려 있다. 국제적 차원에서 볼 때, 2차 미술시장을 전제로 한 상업 화랑 모델은 신뢰를 상실했고, 중형·신생 화랑이 대규모로 폐점하고 있다. 전후 현대미술 거장과 컬렉터 세대가 동시에 퇴장하면서 사망·상속·컬렉션 청산·네트워크 소멸이 동시 발생했으나, 후계 컬렉터 세대는 구조적으로 부실하기만 하다. 신자유주의적 미술관 모델은 매력을 상실했고 이름값을 추구하는 미술학교들은 전복적 상상력과 전위적 실천의 함양을 계급 재생산 장치로 전락시켰다. AI 쇼크 이후 저자성과 창의성의 신화는 무력화됐고 생성 기술은 저작·독창성 개념을 붕괴시키고 있다.

《장파: Core Deco》 국제갤러리 전시 전경 2025 제공: 국제갤러리

#플렉시모더니즘 (2026’s Keyword)
플렉시모더니즘(pleximodernism)은 모더니즘의 정전적 구조를 부드럽게 해체하고 다원성을 다각적으로 포용하는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이제 추상미술의 역사만 해도, 다중 기원을 전제로 새롭게 재작성되고 있다. 플렉시모더니즘, 즉 다원적 모더니즘은, 탈식민 지역의 현대미술을 재평가하고, 신경다양성 주체의 미술을 현대미술로 인정하고, 선주민 아방가르드를 기념하는 새로운 방향을 총칭한다. 바야흐로 발달장애인 예술가 네나 칼루가 터너상을 거머쥐고, 호주 원주민 출신 예술가 에밀리 캄 킁와레이의 회고전이 화제를 모으는 시대다.

국제갤러리의 장파 개인전 《Gore Deco》는 유혈과 내장을 연상시키는 고어와 아르데코의 장식성을 결합하여, 모더니즘이 억압했던 장식성, 여성성, 괴물성을 복권시켰다. 딱딱한 캔버스의 구조는 끈적거리는 액체와 같은 질감으로 유연하게 흘러내렸다. 이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기획전 《괴물적 아름다움(Monstrous Beauty)》이 탐구한 동양·여성·장식의 괴물성과 조응하는 듯했다.

파이프갤러리의 차승언 개인전《Domestic Resurrection》은 직조라는 노동집약적이고 여성적인 공예 기법을 회화의 기술적 지지체로 사용하며 캔버스의 틀은 유지하되 물성을 실의 유연함으로 대체했다. 리움미술관의 이불 회고전 《이불: 1998년 이후》는 기계적 구조와 유기적 신체의 결합을 보여주는 원형으로, 유토피아의 붕괴를 화려한 장식성으로 표현했다.

#공명장과 체제 바깥의 지속 (2026’s Keyword)
2025년이 동시대 미술 체제의 붕괴를 목격한 해였다면, 2026년은 붕괴 시대의 예술이 새로운 방식으로 새출발하는 시작의 해가 될 것이다. ‘공명장](Resonance Field)’의 예술 말이다.

객체지향 트레이딩 존, 즉 공명장은, 피터 갤리슨이 제시했던 과학사적 ‘교역 지대(trading zone)’를 존재론적이고 미학적인 차원으로 확장한 개념이다. 갤리슨은 서로 다른 학문 분야의 집단들이 완전한 합의나 전면적인 소통 없이도 국지적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실용적 중간지대를 ‘트레이딩 존’이라 명명했다. OOTZ(Object-Oriented Trading Zone) 개념은 이를 바탕으로, 인간 주체뿐만 아니라 비인간 객체(물질, 기술, 환경, 인공사물) 간에도 완벽한 번역이나 합의 없이도 국지적이며 생산적인 상호 작용이 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리고, 더 나아가 그러한 상호 작용이 전개되는 존재론적 공간을 ‘공명장’이라는 개념어로 정의내린다.

즉, 공명장 예술이란, 예술이 특정한 작가나 제도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예술가·관객·기술·자연·장소 등 다양한 주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장 속에서 공진/공명하며 창조적 생성을 이끌어내는 예술을 말한다. 근미래의 예술가들은 모든 요소를 조율하는 중동태적 중재자로 활약할 새로운 운명에 처했다.

단적인 예로, 2026년 베니스비엔날레 《단조로(In Minor Keys)》는, 거창한 대서사나 일방적 선언 대신 작고 낮은 목소리들의 교감을 강조한다. 참여 작가들은 하나하나 두드러지기보다는 서로의 작품이 음과 음 사이 화음을 이루듯 공동의 스코어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MoMA PS1은 2026~2028년 전면 무료화를 선언하며 접근성을 운영 정책으로 명문화하기도 했다. 홍콩 M+는 《류이치 사카모토 Seeing Sound, Hearing Time》전을 통해 사운드·시간 기반 전시를 대형 공공미술관 중심에 배치했고, 케이프타운 자이츠 모카(Zeitz MOCAA)는《봄은 반역적이다: 알비 삭스의 예술과 삶》을 장기 전시하며 정치·법·해방 기억을 핵심 의제로 설정했다. 이들은 현대미술 제도가 예술적 비전을 잃고 공룡화하는 상황에서, 제도 내부의 빈 틈새나 바깥에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모색하는 시도에 해당한다.

2026년 이후 예술은 하나의 중심이나 패권적 질서에 의존하지 않고, 다중의 작은 중심들, 사라진 경계 사이에서 움트는 생명들을 통해 이어질 전망이다. 체제의 논리 바깥에서 예술 고유의 논리를 회복하는 일이 이미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공명장으로서의 미술 제도는, 탈제도적 공간일 수도 있고, 미술관 내부의 빈 틈새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2차 시장이 무너져도, 미술관 예산이 반토막이 나도, 경쟁력을 잃은 학교/학과가 사라져도, 인간 저자가 AI와 섞여도, 여전히 예술의 이름으로 판단 유예의 시공은 창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미술은 더 이상 하나의 단선적 체제로 기능하거나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의 다른 부분과 등가의, 혹은 그것들 사이를 중재하는, 공명 현상으로 존재하게 될 운명에 처했다. 미래의 사람들이 공명장의 예술을 현대미술로 호명할까? 그건 사실 잘 모르겠다.


이지회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2025),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2024)와
베니스 순회전(2025),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워치 앤 칠’과 연계 국제 순회전(2021~2023) 등 기획.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큐레이터, 2014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 한국관 부큐레이터 역임.
월간미술대상 우수전시상 수상(2025)

#모두를 위한 미술관 (2025’s Keyword)
2025년 한국 미술계에서 접근성은 포용적 프로그램의 차원을 넘어 전시의 기틀을 설계하는 핵심 원리로 작동했다. 필자가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의《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를 비롯해 부산현대미술관의《열 개의 눈》,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의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가 마치 서로 약속한 듯 짧은 시차를 두고 연이어 개막했다. 접근 방식의 결은 다르지만, 모두가 다른 몸들이 서로를 감각하고 함께 존재하는 방법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모두예술극장에 이어 모두미술공간이 문을 열었고, 한국장애예술문화원의 레지던시 작가들이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인《감각의 서사》에서도 장애 당사자성을 지닌 신진 작가들의 가능성과 힘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리처드 도허티 〈농인 공간: 입을 맞추는 의자〉 2025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국립현대미술관 설치 전경 2025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물론 이러한 변화는 2025년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최근 몇 년간 여러 미술기관이 신체다양성의 조건을 전시 기획의 단계부터 고려하기 시작한 흐름 속에서 나온 성과다. 특히 감각 번역을 반영하려는 시도가 점차 증가하며, 접근성은 개별 프로그램을 넘어 전시 구조를 다시 설계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고 있다. 아르코미술관의 공공프로그램 ‘프리즘’ 은 시각장애인의 감각 경험을 바탕으로 시각예술을 향유하는 방식을 탐구했고, 리움미술관의 ‘감각 너머’ 워크숍은 몸의 고유한 감각 소통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모두를 위한 예술 프로그램’ 역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환경을 조성하며 신체와 감각 차이를 이해하는 문화적 토대를 공고하게 다졌다.

이러한 흐름은 미술의 맥락에서 ‘다른 몸’을 환대하기 위한 지속적 실천이며, 접근성이 더 이상 기존 전시에 무언가를 ‘추가하는 요소’가 아니라 미적 경험의 방식 자체를 재편하는 촉매임을 보여준다. 이제 한국에서도 접근성은 일시적 캠페인을 넘어 제도적 기반을 갖춰가는 단계에 진입했고, 2025년은 그 전환이 구체적 성과로 가시화된 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라지는 미술 (2026’s Keyword)
아직 새해 전시 라인업들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시점에서 키워드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미 공개된 관심 가는 전시들을 바탕으로 매우 주관적으로 가늠해 보자면, 2026년의 키워드로 ‘소멸의 미학’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이는 탈성장의 시대에 재고하게 된 ‘생산성’의 규범에 대한 비평적 대응이며, 영속성을 전제로 한 생산 대신 비물질적 행위와 과정 중심의 태도를 모색하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1월에 선보일 《소멸의 시학》은 사라짐과 변형이 미술의 조건이 되었을 때 어떠한 사고의 전환이 발생하는지 질문하는 전시로 보인다. 변화하는 물질의 흐름 자체를 전시의 조건으로 전제하고, 스스로의 “분해를 공연히 상연하는” 작품들을 통해 기존 제도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물리적 결과물의 안정성을 절대적 가치로 삼고 ‘영원히 보존 가능한’ 소장품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온 제도적 틀에 대한 도전이다. 리움미술관의 《티노 세갈》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그는 미술관 소장품을 재구성하면서 특정 순간에만 존재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세갈의 작업에는 기록이 없다. 주어진 환경을 다시 회집하는 방식으로, 퍼포머들의 몸과 언어와 일시적 관계를 통해서만 작품이 성립한다. 그 역시 ‘남는 것’을 추구하기보다, ‘사라지는 것’을 통해 작업을 지속한다. 두 전시 모두 시간을 타고 존재하는 수행(그것이 인간에 의해서든 다른 물질적 과정이든)을 기대하게 한다.

《이불: 1998년 이후》 리움미술관 블랙박스 전시 전경 2025
제공: 리움미술관

환경을 소진하며 오브제를 생산하는 미술에 대한 반성은, 유한한 물질계에서 순환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 그것이 한순간 존재했다 사라지는 사건으로서의 미술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일 테다.

#인터-아시아 (2026’s Keyword)
역시 개인적인 관심의 확장이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 미술의 위상이 빠르게 공고해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2026년에는 외부, 혹은 서구를 향한 시선에서 벗어나 아시아 지역 내부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인터-아시아’적 관점이 의미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순한 국가 간 교류를 넘어 서로의 역사와 지식 체계를 교차시키며, 지정학적 영향권 안에서 새로운 지역성을 모색해 볼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요코하마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로드 무비》는 1945년 이후 두 지역의 복합적 근대성, 제도 형성, 미학적 전환을 다시 읽어내려는 시도다. 2025년 12월 요코하마미술관에서 먼저 개막했으며, 2026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도 개최될 예정이다. 두 지역의 예술 생태가 어떻게 서로를 비추고 형성해 왔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면서, 서구 중심 미술사 서술을 넘어 아시아 내부의 복잡한 지형과 상호 관계를 되짚어 볼 수 있기를 기대하게 한다. 리움과 M+의 협업도 주목할 만하다. 2025년 서울에서 개막한 《이불: 1998년 이후》 전시는 2026년 홍콩을 순회할 예정이며, M+에서 개최된 《Dream Rooms》 전시 역시 2026년 리움으로 이어진다. 아시아 미술 기관 간 순환과 확장의 고무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싱가포르 작가 호추니엔이 예술감독을 맡은 제16회 광주비엔날레 역시 아시아 지역의 복합적인 연결망을 드러낼 기회가 될 것이다. 아시아 지역의 역사와 신화, 정치문화적 맥락을 다층적으로 탐구해 온 그의 기획은, 광주라는 장소성과 결합해 아시아 내부의 새로운 연대와 관계를 다시 상상하게 하지 않을까.

리움미술관 ‘감각 너머’ 워크숍으로 6월에 진행된 송예슬의 워크숍 ‘검은 상자의 속삭임’
사진: 김진호 제공: 리움미술관

2026년 1월호 (VOL.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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