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 아트워싱, 그리고 베니스비엔날레

장한길 미술비평

Column

61회 베니스비엔날레는 준비 단계부터 난항이다. 아프리카 출신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총감독직을 맡게 된 코요 쿠오(Koyo Kouoh)가 작년 5월 10일 암으로 갑자기 사망했고, 올해 2월 14일에는 독일관 대표 작가 헨리케 나우만(Henrike Naumann)이 마찬가지로 암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2월 20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회 베니스비엔날레 역시 순조롭지 못했다. 가장 큰 요인은 가자 학살을 둘러싼 예술계 내 갈등이었고, 이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불참 또한 이와 관련되어 있다. 2022년『아트 리뷰』에 게재된 기사 「왜 예술계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해야 하는가?」에서 터너상 수상 작가 타이 샤니(Tai Shani )는 이스라엘의 만행에 맞서 예술인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의미있는 행동은 “거부권 행사”라고 주장했다. 개막을 목전에 둔 2024년 2월에는 예술계 인사 2만4000여 명이 이스라엘의 참여 배제를 촉구하는 서명 운동인 ‘학살금지예술연합(Art Not Genocide Alliance, 이하 ANGA)’에 동참하여 비엔날레 측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당시 이스라엘관 작가였던 루스 파티르(Ruth Patir)는 “파괴적인 전쟁과 인질 사태” 속에서 전시를 계속할 수 없다는 안내문을 붙여놓고 전시장을 닫았다. 하지만 전시 자체를 철거하지는 않아서 유리창문을 통해 작품을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는 이미 이스라엘 문화부로부터 약 61만 달러의 전시예산과 4만 달러의 작가비를 수령한 상태였고,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 학살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입으로는 거부권 행사를 말하지만 학살 주체인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받은 실질적인 이익은 하나도 포기하지 않은 파티르의 기만적인 행위는 ‘아트워싱(artwashing)’의 전형이다.

지금도 인종청소를 자행 중인 이스라엘의 참여가 보장된 상황에서, 2023년 12월에 이스라엘을 유엔 제노사이드 협약 위반으로 국제재판소에 기소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베니스비엔날레 불참 통보는 파티르가 흉내만 냈던 진정한 거부권 행사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사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내 검열로 인해 발생했다. 2025년 12월, 베니스비엔날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표 작가 선정을 위해 조직된 5인의 선발위원회는 작가 가브리엘 골리아스(Gabrielle Goliath)와 큐레이터 잉그리드 마손도(Ingrid Masondo)의 제안서를 채택했다. 골리아스가 2015년에 처음 선보인 퍼포먼스 영상 연작 ‘비가(Elegy)’의 새로운 버전을 제작하겠다는 내용이다. 젠더 폭력으로 희생된 여성,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를 기리는 것에서 시작한 〈비가〉는 서남아프리카의 독일 식민정권이 자행한 헤레로 나마족 학살에 관한 주제로 확장된 바 있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2023년 10월 20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아들과 함께 가자지구 칸유니스에서 사망한 팔레스타인 시인 히바 아부 나다(Hiba Abu Nada)를 기리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얼마 후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포츠예술문화부 장관 게이튼 매켄지(Gayton Mckenzie)가 개입하며 팔레스타인과 관련된 내용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고, 골리아스 측이 이를 거부하자 2026년 1월 9일, 일방적으로 골리아스의 선정을 취소하고 전시 철회를 결정했다. 같은 달 22일에 골리아스와 마손도는 매켄지를 고소했지만 익월 19일 법원은 매켄지의 손을 들어줬다.

불과 2년전에 이스라엘 기소를 주도했던 아프리카민족회의 (African National Congress, 이하 ANC) 출신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Cyril Ramaphosa) 정권 아래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그 사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 지형이 변했기 때문이다. 지지율이 낮았던 라마포사의 ANC는 2024년 6월 선거에서 다수당 지위를 잃고 연립정권을 수립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우파 계열인 애국동맹(Patriotic Alliance)의 대표 게이튼 매켄지를 스포츠예술문화부 장관에 임명한 것이다. 정치 커리어 내내 외국인 혐오와 국수주의적인 발언을 거듭해 온 매켄지는 노골적으로 친이스라엘 성향을 드러내 왔고, 최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은 “절대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지 않는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매켄지가 라마포사 정권의 기조와 상충하는 발언과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남아프리카공화국 진보의 입지가 협소해졌다는 뜻일 것이다.

라마포사와 ANC가 이스라엘에 비판적이고 친팔레스타인 성향인 이유는 여러가지다.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악명 높은 인종분리정책(apartheid)에 종지부를 찍는 데 큰 역할을 한 단체 중 하나가 바로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를 배출한 ANC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악랄한 인종분리정책을 시행 중인 이스라엘이 곱게 보일 리 없다.

또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유대인 이민자들이 1880년대부터 꾸준하게 유입되어, 1930년대에는 나치 탄압을 피해 독일과 동유럽 출신 유대인이 대거 망명하면서 그 규모가 약 10만 명으로 불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 중 조 슬로보(Joe Slovo )와 같은 소수의 반분리주의 투쟁가들을 제외한 대다수는 흑인을 겨냥한 인종분리정책에 부역하거나 방관해 왔다. 인종차별의 피해자들이 또 다른 인종차별에 가담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2023년 11월과 2025년 1월에 체결된 정전협정을 모두 깨고 가자 폭격을 이어나갔으며, 2025년 10월에 새로운 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학살을 멈추지 않고 있다. 아무리 외면하고 무시하려고 한들 당분간 베니스비엔날레는 물론이고 예술계 전체가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매켄지의 검열은 거기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2026년 4월호 (VOL.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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