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2025.11.26~3.01
사진이 한국 현대미술을 가로지른 방식들

신혜영 미술비평

Exhibition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사진: 정영돈

오늘날의 미술은 하나로 모아진 정답이 아니라 여러 개의 다른 질문을 던지며 시작되었다. 1960년대 다양한 실험적 예술 경향의 등장으로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절대적 지위가 무너지고, 기존 제도와 관습에 저항하거나 삶과 예술의 일치를 지향하는 동시대 미술의 방향성이 설정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진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상의 대중적 쓰임에서부터 상업이나 보도를 위한 목적은 물론 매체 특수성을 가진 예술에서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사진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 사진은 개념미술, 퍼포먼스, 대지미술 등 미술관을 벗어난 과정 중심의 비물질적 예술의 시도를 기록하여 미술관 안에 수집과 전시로 다시 들였으며, 팝아트 작가들이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반복하여 출력함으로써 원본과 복제의 위계를 흐리는 데 기여했다.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이러한 현대미술의 발전 과정이 정확히 우리에게도 있었다.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바로 그러한 1960~1980년대 한국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다양한 시도를 사진 매체를 중심으로 구성한 전시다. 하지만 단순히 해당 시기에 활동한 작가들의 사진 작업을 모아놓는 데 그치지 않고, 사진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미술이 형성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추적한다. 1950년대 후반 등장한 앵포르멜을 위시한 추상회화가 한국 미술계의 주류로 자리 잡으며 획일화된 흐름을 가져가자 이에 맞서 1960년대 후반 일련의 실험적 미술 경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주로 추상에 반하거나 회화가 아닌 것들이었고 미술관을 벗어나고자 한 반(反)미학의 아방가르드 예술이었으며, 그러한 예술 실천이 지닌 시공간의 제약을 기록으로 보완하거나 다양한 매체 실험에서 기술 복제를 대표하는 위치에 서서 사진이 중요한 역할을 해낸 것이다.

4개의 공간으로 구성된 전시는 명확한 시대나 경향의 구분 없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대략 1960~1970년대 실험미술을 다루는 1, 2전시실과 1980년대 다른 두 경향의 미술을 보여주는 3, 4전시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전시의 중요한 한 축으로 김구림 이승택 이건용 성능경 등 실험미술 작가들의 사진이 있다. 《청년작가연립전》(1967)의 해프닝을 필두로 출발한 퍼포먼스 위주의 실험미술은 1969년 결성된 한국아방가르드협회(이하 AG)와 스페이스 앤 타임 조형미술학회(이하 ST)를 주축으로 1970년대 활발히 이루어졌다1. 화판에 불을 붙여 강물에 띄워 보내거나(이승택) 한강변 언덕의 잔디를 태워 그 재를 삼각형 모양으로 만들고(김구림)2 자신의 신체 가동 범위 안에서 합판에 드로잉을 시도하거나(이건용) 신문을 읽고 다 읽은 부분은 오려내는(성능경) 등 수행적 과정을 포함한 이들의 작업은 작가의 예술적 개입을 제약하고 우연성을 지향함으로써 작가주의를 지향하는 기존 미술제도와 그 관습을 비판하고자 하였다. 사진으로 기록된 이들의 퍼포먼스는 주로 미술관을 벗어나 이루어진 장소특정적 대지미술이거나 물질성에 천착하는 모더니즘에 반해 비물질성과 과정을 전면에 내세우는 개념미술이었고 당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시대상에 저항하는 정치적 아방가르드에 해당했다.

이건용〈신체드로잉 76-1〉(사진 왼쪽) 퍼포먼스, C 프린트 25×25cm(×7) 1976(프린트 2019)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전시 전경 2025

그들이 맞서고자 한 것은 미술제도만이 아니었다. 실험적 예술 실천이 활발히 이루어진 1960~1980년대는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거쳐 장기간 독재를 하고 이후 전두환 신군부의 정권 찬탈로 1987년 민주화 항쟁 이전까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해당한다. 당시 신문은 검열과 통제의 대상으로서 정치적·예술적 저항의 수단으로 중요하게 활용되었다. 1974년 동아일보의 ‘자유언론실천선언’과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광고주를 압박해 벌어진 백지광고 사태는 이후 개념미술 작가들이 신문을 중요한 소재로 활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문 기사를 오려낸〈신문읽기〉(1976)뿐 아니라 특정한 기호가 들어간 보도사진을 접사해 그 위에 드로잉을 가하고 확대 인화함으로써 신문 편집자의 권력을 암시하거나(성능경) 고층아파트 옥상에서 신문을 읽고 구겨 날려버리는 일련의 퍼포먼스를 12장의 사진으로 남기고(김용철) 아예 신문지를 종이와 볼펜으로 반복해 칠함으로써 검은 화면으로 만들어 버리는(최병소)3 등 신문과 관련된 여러 비판적 작업이 1970년대 발표되었다.

정동석〈서울에서〉젤라틴 실버 프린트 22.2×32cm(×6) 1982 작가 소장

또한 신문은 저항의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대표적인 대중 매체로 활용되었다. 이 시기 실험적 작품의 한 축은 기존의 예술사진과 달리 일상의 시각자료로서 사진을 차용(appropriation)하는 것이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같이 잡지, 신문, 사진집 등 기성의 이미지를 재가공하는 작업의 본격적 등장이다. 이는 일상의 것을 예술로 들여오는 아방가르드의 핵심적 시도로서 동시대 미술에서 다방면으로 활용되는 ‘찍지 않은 사진(found photograph)’과 맥을 같이한다. 특히 디지털 포토샵 등장 이전에 동일 프로세스로서 프린트된 사진 위에 또 다른 출처의 사진 이미지를 오려 붙여 구성하고 이를 재촬영하는 포토몽타주 방식이 당시 빈번히 사용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사진을 둘러싼 다양한 방식의 매체 실험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인화한 사진 위에 채색이나 드로잉을 하고 텍스트를 기입하는 등의 직접적인 변형은 물론, 미술기법이 아닌 상업적 인쇄의 일종으로서 실크스크린 방식이 사진에 적용되었다. 즉 사진 인화와 문자 인쇄의 중간 위치를 점하는 사진의 판화적 전환으로서, 감광 방식으로 이미지를 전사해 판을 만들고 찍어내는 ‘사진제판(photo-serigraphy)’이 여러 작가에 의해 시도된 것이다. 미국 팝아트와 유사하게 상징적 인물을 두드러진 색상으로 간략화하거나(장화진의 비트겐슈타인, 김차섭의 전봉준) 특정 이미지를 반복 배열하고(송번수) 보도사진의 일부분을 여러 차례 겹쳐 찍어내 이미지 자체를 소거하는(곽덕준) 등 표현의 양상은 다양했다.

김용태 〈DMZ〉 종이에 사진 콜라주 사진 인화 98×228cm 연도미상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한편 1960~1970년대 실험미술을 중심으로 한 전반부에 이어 전시의 후반부는 1980년대 사진과 관련된 전위적 작업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보여준다. 하나는 카메라를 통한 지각 행위로서 사진을 탐구한 시도들이고 다른 하나는 소비문화의 비판이나 민주화에 대한 발언으로서 사진 이미지를 활용한 작업들이다. 먼저 사진적 행위 전반을 탐구하는 매체 실험이 다각도로 발표되었다. 그것은 정신성과 작가의 주관적 태도를 중시하는 추상회화에 반해 몸을 기반으로 한 지각적 체험을 강조하여 ‘보는’ 행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시하는 시도들이었다. 예를 들어 전시에서 따로 공간을 분리해 선보인 ‘서울80’(1980~1982)의 슬라이드 작업은 본래 교육용 시청각 매체인 슬라이드와 프로젝터를 이용해 필름을 중첩하거나(서용선) 셀로판지로 붉은 배경을 삽입하거나(이인현) 촬영한 이미지를 실제 사물에 프로젝터로 투사하고 이것을 다시 촬영하는(김춘수) 등 다양했다. 이들의 작업은 사진을 대상의 투명한 재현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과 달리, 현상학적 사유에 영향을 받아 카메라를 신체의 연장으로 개입시켜 몸의 움직임에 따른 대상과의 관계를 포착하는 과정으로 사진에 접근했다. 그러나 단색화의 관념적인 미학에 반발하여 지각적 체험을 강조한 ‘서울80’ 작가들의 사진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 초 한시적으로 그치고 이후 이들 중 다수 – 문범, 이인현, 김춘수 등 – 가 1990년대 포스트단색화로 분류되는 미니멀한 회화작업으로 화단에 자리 잡게 된 것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한편 사진이 실제 세계와 다른 카메라의 단안(單眼)으로 바라본 이미지 세계임에 주목한 작가들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 단일 작가로는 비교적 넓은 면적을 할애받은 이규철과 이교준이 대표적이다. 1979년 《대구현대미술》4에 참여하며 퍼포먼스 중심의 사진 작업을 초기에 집중적으로 보여준 이교준은 모래사장에 통나무가 쓰러지는 모습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세 장의 사진을 통해 원근법이 극단적으로 강조된 화면과 통나무가 프레임 끝에 걸리게 함으로써 사진 프레임 밖의 공간을 자각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개념적 작업을 선보였다. 한편 이규철은 보는 사람의 시점을 기준으로 우리를 둘러싼 공간이 구형(球形)으로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직접 설계한 장치를 도입해 카메라의 촬영 각도와 렌즈의 화각을 계산하여 2차원의 풍경사진이 구 형상의 3차원 입체로 전환되도록 한 ‘사진조각’을 진지하게 시도했다.

김춘수 서용선 이인현의 슬라이드 사진을 재 구성했다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이와 같이 어떻게 대상을 ‘볼’ 것인가에 대한 사유에서 비롯된 작업들은 ‘본’ 것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 하는 재현의 방식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이는 추상 위주의 미술 경향에서 형상성을 부각시키려는 시도로서 이러한 흐름에 앞장선 극사실주의 경향 작가들은 사진을 필수적 매체로 사용했다. 회화의 과정에서 사진을 따라 그리는 것은 물론, 사진과 실크스크린을 결합하거나(지석철) 사진과 회화를 병치시키고 일상의 사물을 함께 배치하는 혼성적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한만영). 이 밖에도 사진 매체와 관련된 다양한 형식적 실험으로서 신체의 일부를 노광하여 얻어낸 포토그램(김명희), 사진 위에 드로잉이나 스크래치를 가한 실험으로서 포토에세이(박현기)5,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 위에 또 다른 회화적 행위를 더한 포토픽처(이승택) 등이 전시에 소개되었다. 이는 1970년대 실험미술에서 보여준 매체 실험의 연장으로서 회화의 매체 특수성을 벗어나고자 한 포스트모더니즘적 시도로 해석된다.

그런 한편 현실에 대한 관심과 구체적 형상에 대한 요구는 ‘현실과발언’(1979) 창립 이후 집단적 움직임으로 촉발된 1980년대 민중미술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일제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이후 군부 독재 정권의 억압 아래 누적된 지배 권력에 대한 울분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에둘러 혹은 직접적으로 표출한 것이 1980년대 민중미술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민중미술에서 사진이 사용된 방식인데, 그것은 주로 현실을 재현하기보다 오히려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나 미디어의 왜곡된 상을 현실과 대비시키기 위해 쓰이는 편에 가까웠다. 잡지, 신문, 자료집, 사진집 등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참고해 그리거나 포토몽타주로 회화에 일부분 차용하는 방식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강조한 것이다. 예를 들어 박불똥 신학철 여운 안창홍 등 대표적 민중미술 작가들은 흔히 자본주의의 욕망과 산업사회의 소비문화를 비판하고자 패션화보 속 여성 모델이나 상품광고의 대표적 제품 이미지를 가져와 사용했다. 그러나 1930년대 서구의 포토몽타주가 그러했듯 이러한 작품들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상징적 기호로 사용되는 만큼 반복되는 기호로서의 식상함과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반영하는 의미구조의 한계를 지닌 것도 사실이었다.

사진이 할 수 있는 것과 사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구분될 필요가 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김용태의 〈DMZ〉(연도미상)는 미군 부대 주변 사진관에 찾아가지 않고 방치된 한국 여성과 함께 찍은 미군의 기념사진들을 수집해 ‘DMZ’ 글자 모양으로 콜라주한 당시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한국 주둔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메시지로 삼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글자로 인해 개별 사진 속 인물의 모습에 주목하거나 그들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나가지는 못한다. 반면 전시에 소개되지 않은 유사한 주제의 사진연작 강용석의 〈동두천 기념사진〉(1984)은 별다른 작가의 개입이나 설명 없이도 전체적으로 초점이 맞아 세부를 모두 관찰할 수 있게 함으로써 동두천 미군 부대 주변 술집들의 실내 전경과 렌즈를 응시한 사람들의 화장과 복장, 자세와 표정 등에서 그들의 개인적 삶뿐 아니라 미군 주둔의 실상을 보다 적나라하게 대면하게 한다. 이것이 사진 매체의 고유함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1980년대 비어있는 국정홍보 게시판을 일정한 형식으로 촬영한 정동석의〈서울에서〉(1982)와 같은 사진 연작은 다큐멘터리 사진이 기록성뿐 아니라 형식성을 동시에 지닐 때 현실을 드러내는 예술 매체로서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이 전시는 한국미술이 동시대성을 획득하기 위해 반드시 돌아봐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사진이 한 일을 톺아보고 있다. 그것은 추상회화로만 점철된 것으로 오해되는 1960~1970년대와 오직 민중미술의 구상회화만이 전부인 것으로 여겨져 온 1980년대 화단을 제대로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현대사진의 출발점을 1980년대 후반 – 《새 시좌》를 위시한 – 사진 매체의 형식적 실험으로 여기는 일반적인 시각을 재고하기 위한 전초 작업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한 실험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혼합매체의 시도로써 사진이 얼마나 다각도의 시도를 해왔는지를 살펴보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사진 매체 고유의 형식과 주제가 균형을 이루어 사진만이 할 수 있는 동시대 예술 매체로서 활약을 면밀히 살펴보는 일이 될 것이다. 이는 사진미술관의 다음 행보를 암시하는 단서일 수 있다.


1 1969년 김구림의 주도로 곽훈 김구림 신학철 심문섭 이건용 이승택 등이 참여한 AG가 결성되었고 김복영 김용민 성능경 윤진섭 장석원 등이 참여한 ST 역시 같은 해인 1969년 창립됐다. AG는 1975년까지, ST는 1981년까지 활동하였다
2 이번 전시에 소개되지는 않은 이 퍼포먼스의 제목은 〈현상에서 흔적으로〉(1970)이며 이를 기록한 사진 작업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는 김구림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실험 영상 〈1/24초의 의미〉(1969)가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워 투사되었다
3 이번 전시에는 최병소의 초기 개념미술 작품 〈무제 9750000-2〉(1975)가 소개되었다. 이 작품은 조셉 코수스의 〈하나 그리고 세 개의 의자〉(1965)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바, 의자 위에 우산, 신문, 병, 가방을 각각 올려놓고 각 사물을 지칭하는 영어 단어를 적은 종이를 의자 등받이에 붙인 뒤 촬영한 네 장의 사진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실제 사물, 이미지, 텍스트를 통한 표상의 구조를 제시한다
4 현대미술 성립 과정에서 대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실험미술 경향에 있어서 1974년 《한국실험작가전》을 필두로 매해 다수의 작가가 참여한《대구현대미술제》(1974~1979)가 주축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 박현기 이강소 최병소 한만영 이교준 등의 사진작업이 선보였다
5 시도, 실험, 습작 등을 뜻하는 프랑스어 ‘essai’에서 비롯된 작가 자신의 명명으로, 흔히 내러티브를 강조한 사진들의 배열을 가리키는 포토에세이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2026년 2월호 (VOL.493)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