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상하이비엔날레
《꽃이 벌의 날갯짓을 듣나요?》

꽃과 벌의 울림, 웨스트번드와 세계를 잇다

주예린 팩션 공동 운영자

World Report | Shanghai

제니퍼 알로라, 기예르모 칼사디야 〈Penumbra and Phantom Forest〉재활용
폴리염화비닐(PVC)로 제작한 꽃송이 가변 크기 2025
제15회 상하이비엔날레《꽃이 벌의 날갯짓을 듣나요?》전시 전경 2025
작품 제공: 작가, 리손갤러리, 갤러리 샹탈크루셀, 쿠리만수토 사진 제공: Power Station of Art

문학적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상하이비엔날레 본전시의 제목은 비인간 존재의 소통방식을 상상하며 인간사회가 생존을 위해 주목해야 할 다음 장(章)을 암시하며, 세계적으로 체감되는 임박한 위기에 대한 대응에 상하이 역시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자는 비엔날레 전시에 대한 비평과 함께 미술 특화 지구로 발전을 거듭하는 상하이 웨스트번드의 중요 전시를 소개한다. 특히 퐁피두센터와 파트너십을 맺고 그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는 웨스트번드미술관의 행보는, 퐁피두센터 한국 분관의 6월 개관과 맞물리며 한국에서의 주목을 이끌어낸다. 전시는 3월 31일 까지 이어진다.

미술계의 하반기, 9월의 서울과 10월의 런던을 거쳐 글로벌 아트위크 레이스의 배턴을 이어받은 주자는 상하이다. 지난해 11월 상하이에서는 제15회 상하이비엔날레(2025.11.8~3.31)와 세 개의 아트페어 -아트021, 제7회 웨스트번드 아트앤디자인, 호라이즌 국제아트페어-가 동시 개최되었고, 그중에서도 미술지구 웨스트번드에서는 다수의 연계 행사와 굵직한 기관 전시가 열렸다. 캐나다 포고아일랜드아트의 디렉터인 키티 스콧(Kitty Scott)이 이끈 이번 비엔날레는 ‘꽃이 벌의 날갯짓을 듣나요?(Does the Flower Hear the Bee?)’라는 질문을 던지며 개별 생명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인간중심주의에서 탈피해 자연과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를 촉구한다.

대륙의 끝자락, 황해와 인접한 경제와 문화의 보고 상하이는 중국 현대미술의 첨단을 이끌며 베이징, 홍콩과 함께 21세기 아시아 문화 허브의 자리를 지켜왔다. 중국 정부는 파리 좌안(Rive gauche, 센강 남쪽 지역), 런던 사우스뱅크 같은 예술지구 조성을 목표로 ‘상하이 2035’라는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 개최 이후, 황푸강 일대의 웨스트번드는 ‘AA(Art & AI)’를 키워드 삼은 혁신 지구로 빠르게 성장했다. 웨스트번드미술관과 아트센터를 비롯해 롱뮤지엄, 유즈뮤지엄, 탱크상하이 등 여러 기관이 들어섰고, 글로벌 대기업 사옥이 줄을 지었다. 아트위크에 열린 세 개의 페어 중 웨스트번드 아트앤디자인과 웨스트번드호텔에서 진행된 호라이즌 국제아트페어도 이 지역을 터전 삼았다.

웨스트번드미술관 외관 조감도. ‘퐁피두센터×웨스트번드 미술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9년부터 교류전을 개최해왔다
제공: 웨스트번드미술관

페어는 아트위크의 꽃이지만, 미술시장 불황에도 아트신의 열기를 잡아주는 기반은 탄탄한 기획의 미술관 전시와 다양한 프로그램이다. 그중 단연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라면 웨스트번드미술관과 퐁피두센터의 교류전. 두 기관은 2019년부터 파트너십을 맺고 현재까지 12건의 교류 기획을 진행, 2029년까지 계약을 연장하며 중장기 동행에 들어갔다. 퐁피두센터는 2015년 스페인 말라가를 시작으로 인터내셔널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고, 상하이는 스페인의 뒤를 이은 두 번째 파트너 도시였다. 이 글로벌 파트너십 프로젝트는 6월 개관을 앞둔 서울의 한화문화재단을 비롯해 전 세계 13개 도시로 확장되었다. 기관의 후속 노선을 돌이켜볼 때, 웨스트번드는 단순히 서구에서 ‘반짝’ 흥행을 기대하며 노리는 아트마켓의 허브가 아니라, 본격적인 아시아와 중국 진출의 교두보였다. 줄리 나르베(Julie Narbey) 제너럴 매니저는 “1980년대 이후로 《중국 만화》(1982), 《대지의 마술사들》(1989), 《그렇다면, 중국은?》(2002) 등 중국미술 기획전을 개최한 역사가 이 협업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퐁피두센터는 이 파트너십을 진행하며 중국 미술품을 300점 가량 소장하게 되었고, 그중 약 170점이 1976년 이후 제작된 중국의 현대와 동시대 작품이었다. 긴 협업의 결실로 성사된 두 기획전은 퐁피두센터의 중국 현대미술 소장품을 선보이며 20세기 격동기의 유럽과 중국, 각지에서 태동한 예술사조와 움직임을 겹쳐본다.

《풍경의 재창조(Reinventing Landscape: Highlights of the Centre Pompidou Collection, vol. lV)》(2025.4.28~2025.10.18)는 웨스트번드미술관과 퐁피두센터의의 네 번째 준상설전이다. 중국과 달리 서양 미술사에서는 꽤 늦은 시기까지 풍경화를 창작 자율성이 높지 않은 장르라 여겼으나, 인상주의 이후 풍경화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이러한 패러다임은 바뀐다. 전시는 20~21세기에 이르러 격동하는 사회를 반영해 다각화된 서양과 중국 현대 풍경화를 회화, 조각, 영상 등을 아우르며 ‘공간의 재구성’, ‘초현실적 시각’, ‘눈부신 응시’, ‘추상적 풍경’, ‘조감도’, ‘도시 풍경’, ‘파노라마’ 7개의 섹션으로 구성한다. 《플럭서스(Fluxus, by Chance)》(2025.9.25~2.22)는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 전환기에 플럭서스 운동을 주도한 조지 브레히트, 로베르 필리우, 라 몬테 영 등을 소환하고, 같은 시기 스스로를 다다이스트라 칭했던 황융핑(Huang Yong Ping)과 플럭서스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사료되는 겅젠이(Geng Jianyi) 중국미술학원 교수를 함께 조명한다.

양혜규 〈Accommodating the Epic Dispersion – On Non Cathartic Volume of Dispersion〉
(사진 오른쪽) 알루미늄 베네치안 블라인드, 분체도장된 알루미늄 행잉 구조물, 강철 와이어 로프 가변 크기 2012
제15회 상하이비엔날레 《꽃이 벌의 
날갯짓을 듣나요?》 전시 전경 2025
작품 제공: 작가, 퀴리인스티튜트, 갤러리 샹탈크루셀
사진 제공: Power Station of Art

아트위크의 중추인 비엔날레가 지금의 형태를 갖춘 계기는 2010년 상하이 엑스포의 폐막이다. 중국 정부는 엑스포가 막을 내린 자리에 새로운 미술 공간을 만드는데, 이때 엑스포 중국관은 중국 미술궁으로, 미래관은 상하이 당대예술박물관으로 재탄생한다. 이 박물관이 바로 상하이 시가 운영하는 첫 번째 동시대 미술관이자 상하이비엔날레의 주 전시장인 PSA(Power Station of Art)다. 1996년 시작한 상하이비엔날레는 중국 대륙의 최고 비엔날레로 2012년부터 PSA가 주최하고 있다. 15회 비엔날레는 생태와 자연을 대주제로 인간과 비인간, 공예, 원주민과 제3세계 문화, 공동체, 치유, 역사, 장애, 대안적 언어 등 무수한 키워드를 아우르는 작가 67명(팀)의 250점을 초대하고, 로비에 설치된 노란 꽃나무를 중심으로 ‘씨가 흩날리듯’ 퍼져 나가는 연출을 통해 자연과 문명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얽힌 생태계를 은유했다. 제목 ‘꽃이 벌의 날갯짓을 듣나요?’에서 ‘소리’와 ‘진동’은 벌과 꽃의 교신에서 착안한 메타포다. 전시는 의도적으로 사운드를 증폭하거나 소거해 본래 존재하던 자연의 ‘소리’를 역설적으로 일깨운다.

PSA 로비 공중에 매달린 제니퍼 알로라와 기예르모 칼사디야의〈팬텀 포레스트〉(2025)는 수천 송이의 노란색 재활용 플라스틱 꽃나무로 관객을 맞는다. 작품의 소재인 활엽수 한드로안투스 크리산투스는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 자생하는 종으로, 비교적 생명력이 강한 편임에도 오늘날의 기후위기에 위협받고 있는 사실에 주목해 ‘뿌리 없는 나무’라는 모순된 형태로 구현했다. 원래 숲은 ‘윙윙’거리는 동식물로 가득한 곳이지만, 소리 없는 나무들은 ‘유령’처럼 미술관에 스며들어 인간이 규정한 인공과 자연의 경계를 흐린다. 키티 스콧 수석 큐레이터는 스크린과 연결되어 무감각해지고 둔화된 이 시대에 예술 앞에 ‘존재한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고민했다. 그는 “건조한 정보의 세계에서 예술의 물질성은 또 다른 차원의 감각을 제공할 계단에는 마사오미 야수나가의 거대한 ‘도기’들이 줄을 이룬다. 작가는 가마에서 작품을 소성하는 행위를 예술가의 손을 떠나는 출발이자 자연의 힘에 작품을 맡기는 ‘인계의 순간’이라 여긴다. 도자 표면에 축적되는 미세한 외부의 흔적이 시간의 표현이라면, 작품은 소성을 거치며 외부의 힘이라는 방대한 지표를 축적하는 그릇으로 변모한다.

제15회 상하이비엔날레《꽃이 벌의 날갯짓을 듣나요?》전시 전경 2025

‘감각’과 ‘시간의 중첩’은 ‘공동체의 기억’과 ‘동시대 시스템’의 재고로 확장된다. 브렛 그레이엄의 〈카 휘에케〉(2024)는 나무와 철에 검게 옻칠한 대형 원통 조각으로, 뉴질랜드 원주민이 겪은 군사화, 저항, 감금의 역사와 19세기 마오리 왕이 남긴 ‘심판의 시간이 도래할 것’이라는 예언적 연설을 소리로 담아낸다. 건물의 높은 천장에 내건 에이브러함 곤잘레스 파체코의 기념비적 드로잉 연작 〈바람에 실린 메시지〉(2024)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 전반에 나타나는 서구적 진보, 더 나은 기회와 사회적 이동성에 관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고발한다. 양혜규의 대형 배네치안 블라인드 조각 〈서사적 분산(分散)을 수용하며–비(非)카타르시스 산재(散在)의 응적에 관하여〉(2012)는 이주, 이산, 가시성의 정치학을 몰입적인 경험으로 확장한다. 알루미늄 블라인드로 만든 기념비는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불투명성과 투명성이 바뀐다. 색상과 빛의 층을 통해 산업 재료는 공존과 파편화에 관한 사유의 매개로 전환된다. 함께 선보이는 벽지 연작 중 〈생경한 구어체〉(2022)는 브라질의 토템 도상을 차용한 추상 콜라주로, 브라질 문화의 토양을 이루는 6개 키워드 ‘예술과 건축’, ‘자연’, ‘이주’, ‘범죄’, ‘음악’, ‘춤’을 도출해 주제와 그림을 맞춰보며 거대 담론을 곱씹어보게 한다. 3층의 수 있다”며 감각과 물질성을 통한 ‘다르게 보기’를 제안한다. 로비 옆 라벤더 룸은 전시의 마무리로 밝고 새로운 미래를 그린다. 크리스티나 플로레스 페스코란, 김 크리스틴 선, 아키 이노마타, 후샤오위안의 작품이 한 공간에 어우러져 치유, 역사,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공동 창작, 대안적 언어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크리스티나 플로레스 페스코란〈Abrazar el sol (Embrace the Sun)〉
페루 면화, 자색으로 염색된 옥수수 실, 구리 막대 2023~2024
시드니비엔날레 
및 카르티에현대미술재단 커미션
제15회 상하이비엔날레 《꽃이 벌의 날갯짓을 듣나요?》 전시 전경 2025
사진 제공: Power Station of Art

비엔날레는 매회 ‘도시 프로젝트’를 통해 상하이 여러 장소로 영역을 넓혀왔다. 이번 무대는 PSA에서 한 시간 이상 떨어진 자위안하이미술관, 레지던시 공간인 빌라티비에이치(Villa tbh), 상하이 보태니컬 가든인 펜징 정원, 클리클리앤프렌즈까지 총 5곳이다. 자위안하이미술관은 빛과 바람, 사람과 자연의 조응을 중시하는 안도 타다오가 건축했으며, 매년 봄과 가을 미술관에서 직접 벼농사를 지어 지역 생태계와 공존을 꾀한다. 일본 민예 철학과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미학을 결합한 도자, 공예를 선보인 테아스터 게이츠, 불개미와 모기의 활동 반경과 생로병사를 관찰한 리쉬아이의 프로젝트도 이곳에 전시했다. 펜징 정원과 클리클리앤프렌즈에서 아미 야마사키의 퍼포먼스는 음향 공간과 공명의 관계를 실험하고, 생태계의 순환을 탐구했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공감각적 연출이 돋보인 커미션 작업과 주제와 어울리는 외부 장소 선정이다. 특히 〈팬텀 포레스트〉와 양혜규의 설치작품은 대중의 호응을 얻으며 비엔날레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는 것이 현지의 긍정적 평가다. 큐레토리얼 팀은 획일화된 기획적 틀을 밀어붙이는 전시 양태에 반문을 제기하며, 개인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기획을 강조한 바 있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가 제기하는 가장 큰 도전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기존의 개념과 연구의 틀을 넘어 새로운 삶의 형태와 예술적 창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였다. 어쩌면 삶과 예술은 각자 완결된 상태로 존재하며,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비엔날레 공간 구성은 그 둘 사이의 ‘비움과 멈춤’에 집중됐다. “전통 정원에서 경험되는 ‘조용한 사유’를 위해 머물고 흡수하고 성찰하는 ‘휴식 공간’은 전시의 필수 요소다. 전시도 정원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있으며, 형식과 지각, 휴식과 움직임, 보는 것과 감각하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이룬다.” 건축을 해체하는 고든 마타-클락과 농촌의 지역적 맥락을 살려 건축하는 쉬톈톈을 초청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다만 이 ‘첨예한 연출’이 관객에게 충분히 닿았는지는 의문이다. 상하이 지역성이 관련된 작품은 일부에 그쳤으며, 획일화된 프레임을 씌우지 않더라도 작품과 대주제, 사회적 담론을 연결 지어 사고를 심화할 수 있는 단서가 많이 부족했다. ‘올바른 주제 의식’에 기댄 안일한 기획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2026년 2월호 (VOL.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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