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12월-2

아프리카 나우

서울시립미술관 12.16~2015.2.15

아프리카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유럽 및 미국의 식민제국주의와 노예제도에서 비롯된 흑인 디아스포라 예술의 의의를 고찰하고 탈식민주의의 근간을 탐구하여 서구중심 사상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펼치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존 아캄프라, 잉카 쇼니바레, 크리스 오필리 등의 영국을 대표하는 아프리카계 작가뿐만 아니라 티에스터 게이츠, 케힌데 와일리 등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 및 곤살로 마분다 등 아프리카에 거주하며 후기식민시대 아프리카 대륙에 뿌리내린 민족주의나 종교분쟁에 관한 서사를 다루는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소개된다. 또한 전시 중에 개최되는 학술행사를 통해서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인종문제 및 다민족 문화에 대한 고민을 점검하며 한국 사회에서 점차 본격화 되고있는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의식과 태도를 성찰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잉카 쇼나바레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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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스퍼 바하트마이스터

즐거운 나의 집

아르코미술관 12.12~2015.2.15

작가 10인과 건축가, 디자이너, 영화감독 등이 참여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집에 대한 기억을 펼쳐보인다. 삶의 터전으로서의 집보다 ‘자산’으로서의 집만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내 집은 어떠한지, 나의 삶은 어떠한지’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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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모란디

모란디와의 대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11.20~2015.2.25

조르조 모란디 작업의 중심에 있는 정물에 초점을 두어 모란디와 같은 시대를 산 한국작가들의 정물화와 비교 감상할 수 있는 전시. 또한 모란디와 유사한 태도로 사물에 접근한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소개해 동서양 작가들의 시선과 태도에 대해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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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권오상

PILLARS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12.3~28

회화, 조각, 사진, 영상 그리고 설치 장르에서 뚜렷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공성훈 권오상 노재운 오용석 이동욱의 단체전.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의 각 분야를 진지하게 탐구해온 중견작가 5명이 미학을 풀어나가는 다양한 접근 방식을 알아본다. 권오상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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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Sigalit Landau, Three Men Hula, 1999그만의방

그만의 방

아트선재센터 12.18~2015.1.25

남성중심사회인 한국과 중동의 인권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23명의 작가의 작품을 통해 살펴본다. 이번 전시는 가부장적인 사회의 전형으로 인식되는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상에서 출발해 중동지역 작가들이 남성을 표상하는 방식과 한국사회의 남성 담론에 내재된 문화, 정치, 사회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기획되었다. 남성, 여성, 게이, 레즈비언 등 각자의 정체성에 상관없이 성적인 존재로서의 남성보다는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남성과 정치적인 장으로서의 남성성에 주목하면서 남성에 대한 논의가 여성의 인권에 대한 논의와 어떠한 방식으로 맞물릴 수 있는 지도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전시는 두 지역의 학문과 예술의 변방에 머물고 있는 남성성에 대한 논의를 자극함으로써 경제적인 교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미한 한-중동의 문화예술적인 교류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시갈리트 린다우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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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이광호

국제갤러리 12.16~2015.1.25

국내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 이광호의 개인전. 인터뷰 시리즈 및 선인장 시리즈에 이어 강렬한 풍경에 대한 연작을 경험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국내의 제주도의 실경으로부터 시작되어 해외의 뉴질랜드의 스펙터클한 풍경에 이르는 풍경회화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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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송현숙(학고재)

송현숙

학고재 11.14~12.31

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가 송현숙의 개인전. 작가는 장독, 전통 가옥의 귀퉁이, 명주 등을 소재로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1960~1970년대 한국적 정서를 화면에 풀어내 급격한 현대화 속에서 한국인이 잃어버린 고향의 정서를 되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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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아

두산연강예술상 제3회 수상작가 그룹전

두산갤러리 11.19~12.31

2012년 제3회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인 김상돈 김지은 장지아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세작가의 신작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두산연강예술상 부상으로 지원된 두산뉴욕레지던시 입주기간 동안의 작품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장지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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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현씨

Super Romantics

대구예술발전소 12.9~2015.1.25

서구 ‘로맨티시즘’의 특성들이 동시대 문화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살펴보며 21세기의 창작경향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살핀다. 국내·외 미디어 아티스트 23팀이 참여해 영상, 회화, 조각, 설치 등 실험적인 30여점으로 구성된다. 김과현씨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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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용석

생각엮기 그림섞기

경기도미술관 11.29~2015.1.25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섞어 모으거나 붙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내는 예술작품들을 한 곳에서 만난다. 재료와 장르를 넘나드는 유연한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작품을 보며 생각을 작품으로 형상화 해내는 과정을 추적해 본다. 오용석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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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노상준(토탈)

The Third Print

토탈미술관 11.17~12.10

전통적인 판화 제작 방식에 독특한 방식을 더한 모노프린트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전시. 작가 18명이 참여해 모노프린트의 다양한 기법을 통해 단순히 ‘찍어내는’ 판화를 넘어 판화의 정체성을 내포한 더 넓은 영역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다. 노상준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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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상현

이상현

트렁크갤러리 11.27~12.30

<조선역사명상열전> 시리즈의 최근작 “낙화의 눈물 그리고 조선로켓강짜”. 가수 싸이 가면을 쓴 구한말의 선비가 대한제국이 만든 로켓을 들고 유랑하는 이야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 한반도 주변 정세를 돌아보고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에 대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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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고은-이상일

다큐멘터리 스타일

고은사진미술관 12.9~2015.2.25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을 즉 형식이라는 특정한 관점에서 조망한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형식과 문제의식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보여주는 사진가 8인의 작업을 통해 사진의 형식적인 요소와 내용적인 차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의 전망을 제시한다.이상일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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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홍경택

홍경택

페리지갤러리 12.5~2015.1.31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주변의 사물과 개인을 화려한 색채와 특유의 구성으로 다뤄온 홍경택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는 풍경과 인간을 담은 시리즈 를 선보이며 세계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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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정아람

정아람

사루비아 다방 12.3~30

최근 한국사회에 열풍처럼 불어닥친 ‘행복전도사’, ‘힐링 코칭’ 등의 현상에 주목해 이 현상에서 규범화된 집단적 이상과 실재하는 개인의 이상의 괴리에 대해 질문한다. 집단과 개인의 차이를 통해 우리가 공유하는 사회적 기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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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이동기

이동기

갤러리 현대 11.20~12.28

파편화된 이미지와 그에 관한 실험을 지속해온 이동기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아토마우스>뿐 아니라 작가가 꾸준히 지속해온 ‘이미지 조합 실험’의 증거물인 <절충주의>, <드라마>, <추상>, 그리고 새롭게 시도한 <초상> 작품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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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남

이이남

가나아트센터 12.16~ 2015.2.8

디지털 애니메이션 기술을 이용해 동서양 명화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등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온 이이남의 개인전. <다시 태어나는 빛>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서 인간과 미디어 아트의 공통성을 작품으로 해석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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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임민욱(ddp)

생각하는 손

DDP 갤러리문 12.4~21

1970,80년대 정치인 고(故) 김근태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김근태 3주기를 맞이하여 노동이슈를 주제로 전시를 기획했다. 이번 전시에는 11명의 작가가 참여해 생전 김근태가 펼친 ‘따뜻한 시장경제론’을 회화, 판화, 영상, 설치작품으로 형상화해 소개한다. 임민욱 작

[Hot Art Space]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관장 직무대리 윤남순) 개관 1주년 기념전 <정원>이 10월 21일 개막해 내년 4월 26일까지 계속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2013년 11월 13일 개관했다. 이번 전시는 회화, 사진, 공예, 조소,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남, 쉼, 문답(問答), 소요유(逍遙遊) 이렇게 네 개 주제로 나누어 구성됐다.
사진은 서울관 로비에 걸린 김보희 이화여대 교수의 대형 회화 작품 <그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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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현대_이승택 (1)

한국을 대표하는 전위미술 1세대 작가 이승택의 개인전 <거꾸로>가 10월 7일부터 11월 9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다. 전시장 1층에는 자각상(自刻像)이 거꾸로 매달려 있고 그 아래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거꾸로 생각했다, 거꾸로 살았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이밖에 이번 전시에는 주류 화단에 저항해온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설치 작품과 더불어 행위 예술을 담은 기록 영상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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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지기 (8)

(재)아름지기가 통의동 아름지기 사옥에서 10월 8일부터 11월 12일까지 <소통하는 경계, 문전>을 계속한다. 건축에서 공간 사이를 넘나드는 장치인 문을 주제로 전시장을 새롭게 해석했다. 장르 간 소통의 경계를 넘나들기 위해 한국의 유명 건축가들과 산업디자이너가 함께 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전통건축을 보여주는 ‘제3의 문’ 섹션은 <동궐도>를 바탕으로 이문과 판장을 재현하고 취병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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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찬 (2)

폐기된 비닐봉지를 소재로 작업하는 이병찬의 개인전 <자연사박물관>이 10월 3일부터 24일까지 문래동 구(舊) 진양테크에서 열렸다. 다섯 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예의 팬으로 부풀린 비닐봉지 괴물을 생성해냈다. 이는 바로 극단의 소비시대를 살고 있는 도시인 스스로 소비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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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 (2)

갤러리 나우에서 임택의 <倣 옮겨진 산수유람기전> (10.8~21)이 열렸다. 작가는 이전 사진을 매개로 한 작업과는 달리 캔버스에 유채로 표현된 산수화를 선보였다. 이는 작가가 추구하던 동양화의 다양한 변주의 일환이다. 그러나 임택의 캔버스는 이미 작가가 계산한 대로 펼쳐졌으니, 즉흥적인 운동감보다는 정적인 사유의 결과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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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 (2)

우리 근현대 동양화에 큰 발자국을 남긴 청전 이상범(1897~1972), 소정 변관식(1899~1976), 월전 장우성(1912~2005), 운보 김기창(1914~2001), 4명의 작고 작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노화랑에서 10월 15일부터 31일까지 열린 <근대의 화선 4인전>이 바로 그것. 이번 전시는 우리 전통 산수화의 맥을 이은 대가들의 묵향을 맡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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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박 (1)

올해부터 다시 공휴일로 지정된 한글날.
이에 맞춰 개관한 국립한글박물관(위 사진)은 한글의 창제 과정과 역사적 가치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집대성했다. 개관을 기념해 특별전 <세종대왕_한글문화 시대를 열다>가 10월 9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김미진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가 협업큐레이터로 참여한 이번 전시에는 과거의 한글과 그것을 주제로 한 현대미술작품이 조우해 시대를 뛰어넘는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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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돈_트렁크 (2)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 엄청난 상실을 안겨다 주었다. 희생된 청소년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 김상돈은 이 사건을 미래에 난 구멍으로 인식했다. 10월 2일부터 28일까지 트렁크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모뉴먼트 제로>에서 작가는 종이, 유토 등의 재료로 시간, 공간, 서사, 형상이 부재한 조형물을 제작하고 이를 사진으로 촬영한 부재의 기념비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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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1)

2013년 제4회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한 차재민의 첫 번째 개인전 <히스테릭스(hysterics)>가 두산갤러리 서울에서 10월 15일부터 11월 8일까지 열린다. 정신적 신경증으로 인한 일시적 흥분상태를 일컫는 ‘히스테릭스’는 사소한 단서에 의문을 갖고 질문을 던지는 이에게서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말의 의미가 해석되지 않고 소비되는 지금 시대에 그것이 무의미화하지 않도록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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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이만나의 8번째 개인전
<Snowy Night>(이유진갤러리, 10.10~11.7)는 4m가 넘는 대형 작품 등 신작으로 구성되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은 작가가 영은미술관
레지던시에 입주해 작업하던 시절, 폭설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익숙했던 주변이 낯설게 다가오는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어둠이 삼켜버린 컬러는 섬세한 묘사가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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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탄

강원도 정선에 소재한 삼탄아트마인은 삼척탄좌의 폐광 터에 건립된 공간이다. 이곳에서 열린 ‘2014정선국제불조각축제’ 는 전시와 퍼포먼스를 아우른 미술이벤트였다. 전시는 <고원(高原)의 기억과 힐링>을 주제로 15명의 작가가 참여, 10월 1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열린다. 또한 10월 1일부터 4일까지 ‘불조각 태우기’(사진) 퍼포먼스가 벌어졌는데 이는 자연에서 취한 재료로 만든 작품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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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중 (1)

김형종의 개인전 <SILHOUETTE-(WALK)>가 10월 15일부터 21일까지 갤러리 그림손에서 열렸다. 유리로 제작된 그의 인간상은 존재를 잃어 허상으로 보이는 도시인의 삶을 상징한다. 평면으로 드리운 그림자는 이러한 존재의 가벼움을 극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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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3)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조각가이자 남성 중심적 시각을 전복시키는 페미니스트 아트스트로 유명한 미국 작가 키키 스미스의 개인전이 10월 3일부터 11월 12일까지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계속된다. 인체에 대한 해석이 돋보이는 조각 〈Pyre Woman Kneeling Ⅱ〉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을 띠는 별모양 스테인드글라스인 〈Behold Ⅰ〉 등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의 작품 12점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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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1)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는 전유정의 개인전이 8월 11일부터 10월 19일까지 신세계갤러리 본점 아트 월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에는 빛과 생명을 주제로 오묘하면서 독창적인 색의 조화를 이뤄낸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위에 수채화나 데생을 더하고 다시 촬영하는 방식을 취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감성을 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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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웅필 (2)

10월 16일부터 11월 7일까지 UNC갤러리에서 열리는 변웅필의 개인전은 <옥림리 23-1>로 명명됐다. 이는 현재 작가가 머물며 작업하는 지명을 의미한다. 다소 한적한 곳에서 작가가 발견한 것은 일상성이다. 주변의 것들에 대한 작가의 담담한 소회와 진술이 한결 담백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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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랑_갤러리 세줄 (3)

성형 퍼포먼스를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프랑스 출신 행위예술가 생트 오를랑의 개인전이 10월 10일부터 11월 18일까지 갤러리 세줄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컴퓨터 합성으로 얼굴 사진에 경극 가면 이미지를 덧씌우는 작업 <마스크> 시리즈를 선보인다. 일종의 디지털 성형을 시도한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을 통해 사진 속 증강현실도 체험할 수 있다.
한편 전시개막에 맞춰 오를랑이 내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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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MG_1739

2009년 시작한 아트페어 ‘코리아 투모로우’가 간송미술문화재단과 서울디자인재단의 공동 주최로 새롭게 확대된 형태의 전시 <코리아 투모로우 2014>로 탈바꿈하였다. 동대문디자인 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국내의 젊은 작가를 양성하는 의미로 ‘발아’라는 제목의 1부(10.9~11.2)와 ‘문화지형도’라는 제목의 2부(11.8~30)로 나눠 진행된다. 1부에는 강석호 유승호 이세현 홍경택 등 총 24명이, 2부에는 김홍석 원성원 정직성 등 23명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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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규

서양화가 정송규의 개인전 <다 괜찮을 거야>가 9월 3일부터 11월 20일까지 그가 세운 전남 광주 소재 무등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2006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광주시립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된 정송규는 그간 광주지역 미술 발전을 위해 투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개인전에는 회화, 설치 등이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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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파크

심문필의 개인전 <공간유희>가 10월 10일부터 23일까지 갤러리 아트파크에서 열렸다. 플렉시글라스 뒷면을 채색하여 이면의 잔잔한 색채감을 선사하는 그의 작업은 평면에서 공간을 인식하게끔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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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작파 (2)

올해 창립 15주년을 맞은 중작파의 제17회 전시가 9월 26일부터 11월 5일까지 울산현대예술관 미술관에서 열린다.
전국 규모의 단체인 중작파의 이번 전시에는 다양한 장르의 회원 작가 작품 80여 점이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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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애 (1)

화가 장승애의 개인전 <소리보기>가 가나아트 스페이스(10.8~14)(사진)와 카페 에이알트레인 (10.15~11.15)에서 연이어 열린다.
지난 2002년부터 제주에 거주하는 작가는 제주의 자연이 주는 기쁨을 선명한 색채와 진한 여운이 감도는 구성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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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규

앵포르멜 계열의 작가로 평가받는 故 당림 이종무(1916~2003) 화백을 추모하는 25인이 모여 전시를 개최했다. <제2회 당림문화예술제-故 당림 이종무 화백 추모 25인전>(당림미술관, 9.27~11.28)이 바로 그것. 당림미술관(관장 이경렬)은 고인이 고향인 온양으로 돌아가 설립(1997)한 충남1호 미술관이다. 탄신 100주년을 앞둔 전시로 그 의의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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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림

추상미술 작가 정문규(1934~) 화백이 세운 정문규미술관. 이 미술관에서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한국미술의 거장전> 두 번째 전시로 <문신·하인두>가 9월 12일부터 11월 9일까지 열린다. 문신의 대칭적 형상의 조각품과 상형적 요소로 가득한 하인두의 평면작업은 적절한 디스플레이에 힘입어 묘한 조화를 낳는다.

 

 

[Exhibition Topic] Busan Biennale 2014

세상 속에 거주하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4 부산비엔날레가 9월 20일 개막했다. 11월 22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는 올리비에 캐플랑(Olivier Kaeppelin) 감독이 기획한 본 전시 <세상 속에 거주하기>와 동시에 한국 비엔날레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아카이브 전시 <한국 현대미술 비엔날레 진출사 50년>, 4명의 젊은 큐레이터가 아시아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펼쳐내는 <간다, 파도를 만날 때까지 간다>라는 두 개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가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어 감독의 의도대로 ‘세상 속에 거주할 수’ 있을까. 감독선임을 둘러싼 논란에서부터 전시 준비 과정까지 그리고 이번 전시가 전달하는 내용과 개념을 정리해봤다.

Inhabiting the World

부산 (174)

필라 알바라신 <당나귀> 책더미, 박제 동물 가변크기 2010

한경우  나무, 와이어, 페인트 가변크기 2014

한경우 <그린 하우스> 나무, 와이어, 페인트 가변크기 2014

엘리아스 크레스팽  알루미늄, 나일론, 모터, 컴퓨터, 전자 인터페이스 200×960cm 2014

엘리아스 크레스팽 <플라노 플렉시오넌트 4>
알루미늄, 나일론, 모터, 컴퓨터, 전자 인터페이스 200×960cm 2014

 

Voyage to Biennale

<비엔날레 아카이브전> 한국 현대미술 비엔날레 진출사 50년

1958년 <제5회 국제현대색채석판화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작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비엔날레에 참여한 지 50여 년이 흘렀다. 이 특별전은 우리나라의 비엔날레 진출사를 정리한 아카이브 전시로 지금껏 비엔날레에 참여했던 작가 48명의 출품작을 포함한 그들의 작품 전반을 선보인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비엔날레 자체에 대한 성찰이자 그간의 현대미술 흐름을 살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다.

최정화  Fabric, Motors, Timers, Electrical accessories, Steel frame 7m 2014

최정화 <과일나무>
Fabric, Motors, Timers, Electrical accessories, Steel frame 7m 2014

강애란  미디어 인스톨레이션 150×300cm 2014

강애란 <디지털 북 프로젝트>
미디어 인스톨레이션 150×300cm 2014

한국현대미술의 비엔날레 진출사를 보여주는 아카이브 열람실

한국현대미술의 비엔날레 진출사를 보여주는 아카이브 열람실

 

Going going until I meet the tide

아시안 큐레토리얼전- 간다. 파도를 만날 때까지 간다

바다를 주제로 젊은 큐레이터 4인이 공동 기획한 특별전이다.
중국 일본 한국 싱가포르를 포함 9개국 36명(팀)이 참여해 한국 산업의 역사적 현장인 고려제강 수영공장에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화이트큐브를 벗어나 공간이 주는 역사적 메타포와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혹은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각 큐레이터가 ‘따로 또 같이’ 해석한 세상의 거울로서의 바다를 선보인다.

이 열리는 고려제강 수영공장

<아시안큐레토리얼전>이 열리는 고려제강 수영공장

전시를 공동 기획한 4인 큐레이터(왼쪽부터 리우춘펑, 하나다 신이치,서준호, 조린 로)

전시를 공동 기획한 4인 큐레이터(왼쪽부터 리우춘펑, 하나다 신이치,서준호, 조린 로)

데니스 탄  24-channel sound installation, white cables, loudspeakers,  generative computer software 905×512×390cm 2014

데니스 탄 <무지개>
24-channel sound installation, white cables, loudspeakers,
generative computer software 905×512×390c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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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아시안 큐레토리얼전> 큐레이터 서준호

바다를 둘러싼 네 가지 이야기

금선희  싱글채널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 2014

금선희 <천국의 문, 화해> 싱글채널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 2014

4명의 큐레이터가 공동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큐레이팅 진행 방식이 궁금한데 전시에서 담당하고 진행했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부탁한다.
기획의도 등을 논의하며 위원회와 다른 큐레이터 사이에 조율이 필요했다. 영상장비 대여 업체, 전시장 조성 업체 등과 수차례 미팅하며 전시 공간 구성과 필요 물품을 체크했는데 심지어 해외 큐레이터들의 일정상 부산으로 먼저 가 국외 작품의 반입 상태를 확인하고 촬영하는 일까지 맡았다. 네 명의 공동 큐레이터에게 한 명의 코디네이터가 배정됐으나 역부족이어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 셈이다. 외국 작가의 통역, 월 텍스트 디자인, 작품 제목 번역뿐만 아니라 페인트 칠 작업부터 작가들이 요청한 작업 재료를 조달하고 추가로 요청한 가벽과 좌대를 한국 작가와 함께 제작하는 일까지, 설치 기간 내내 40여 명 작가들과 함께 쉴 새가 없었다. 결국 4명의 공동 큐레이터가 만드는 전시지만 누군가 전시 방법 등 여러 가지를 제안하고, 의견을 수렴한 후 위원회에 전하는 채널 역할을 해야 했는데 그 역할을 초청국 큐레이터가 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주제는 어떻게 선정했나. 주제에 대한 각 큐레이터의 이해가 달랐을 텐데 그 간극을 어떻게 조율했나.
4월 말 처음 4개국 큐레이터가 한데 모였을 때 사흘을 내리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섹션 없는 하나의 전시를 만들자는 데 4명 모두 동의했고 실제 우리의 삶과 닿아 있는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문제에 접근하고자 했다. 처음 만났을 때 네 명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키워드로 포괄적이지만 ‘바다’를 설정했고 이후 각자의 바다에 대한 개념들을 더해 한데 섞는 방법에 동의했다. 어떻게 보면 전시에서 네 가지 개념이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업이 바다를 둘러싼 우리의 삶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섞여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고 그 속에서 관객들 스스로가 작업 각각의 의미를 읽어내고 해석하고 또 다른 질문을 던지기를 바랐다. 원칙이 명확했기 때문에 간극이 있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더해서 일본의 하나다 신이치 큐레이터가 나이가 제일 많았고 중심을 잘 잡아 주었다.
부산=임승현 기자

 

[Exhibition Topic] Busan Biennale 2014

 부산 비엔날레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생각한다

유진상  계원예술대 교수

부산비엔날레는 1981년에 지역 작가들이 주도적으로 기획한 ‘청년비엔날레’를 역사적 기점으로 삼는다. 이후 2000년의 부산국제미술제(PICAF: Pusan International Contemporary Art Festival)를 거쳐 2002년부터 ‘부산 비엔날레’로 정식 출범한 이 행사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치러지며 부산시장이 조직위원장이라는 점에서 부산시의 위상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부산의 문화적 역량과 국제적 수준을 반영하는 대표적 이벤트인 셈이다. 부산비엔날레는 광주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과 더불어 한국의 3대 국제미술전 가운데 하나이며, 대부분 짝수 해에 열리는 아시아 비엔날레들 가운데서도 이미 상당히 알려진 대규모 미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부산비엔날레가 과연 어떤 성격을 지닌 프로그램인지에 대해 다소 의문이 생기고 있다. 비엔날레는 대체로 기획자나 운영조직의 변화에 따라 기복을 보인다. 타이베이, 이스탄불, 리용 그리고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등과 같이 상임 디렉터가 장기적으로 프로그램 운영에 간여하는 체제에서도 초빙 큐레이터나 아트디렉터에 따라 전시행사의에 질적인 변화를 보이기 마련이다. 하물며 매번 새롭게 구성되는 운영위원회와 잠시 기획을 맡았다가 떠나는 아트디렉터에 전적으로 운영을 맡기는 상당수의 한국 비엔날레 체제에서 안정적이고 장기적 전략을 지닌 비엔날레를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부산비엔날레는 현재 별도의 운영위원회를 두고 있고 비상근 운영위원장이 비엔날레 프로그램 전반에 대해 대처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초대 허황 운영위원장 이후 2006년에 황종찬 씨가 4대 운영위원장을 1년간 맡았으며 2007년부터 이두식 화백이 맡아 2013년에 타계할 때까지 총 3회의 비엔날레를 준비, 운영했다. 이두식 위원장이 살아 계셨다면 2008년 김원방 감독  (〈  낭비〉), 2010년 아주마야 다카시 감독(〈  진화 속의 삶〉), 2012년 로저 뷔르게 감독(〈  배움의 정원〉)에 이어 2014년 행사까지 연임하면서 전시감독을 뽑고 운영했을 테지만, 부득이 신임 운영위원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이번 비엔날레를 둘러싼 논란이 터져 나왔다. 전시감독 선정위원회와 운영위원회는 사실 별도의 임무를 띠고 있다. 운영위원장이 먼저 선임되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하지 못한 상황에서, 선정위원회에서 이미 결정된 내용을 수정하면 절차상의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부산비엔날레 역시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후의 사정은 잘 알려져 있다.
올리비에 캐플랑(Olivier Kaeppelin) 감독이 어떤 경위로 본전시 전시감독선정위에 추천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인 후보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추천되어 있다는 점도 놀랍고, 추천된 후보들 가운데에서만 감독을 선정한다는 것도 비엔날레의 속성상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운영위원장 공석 상황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해도, 운영위원회의 임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전시감독 선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감독(차회부터는 ‘총감독’으로 명칭을 변경한다는 이야기가 있다)은 사실상 비엔날레의 내용을 결정짓는 핵심적 인사이기 때문에 비엔날레의 성공과 발전을 위해 전략적으로 선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시감독은 대체로 국내 및 지역 인사와 국제적 인사들을 두루 고려하면서 장기적으로 보아 비엔날레의 취지와 목적에 걸맞은 기획방향을 확보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 선정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부산비엔날레의 경우 2010년 전시감독을 맡은 고(故) 아주마야 다카시나 이번의 올리비에 캐플랑 감독 선임은 한국의 전문가들에게도 의외의 인사였을 뿐 아니라 선정의 맥락을 알 수 없어 모두를 놀라게 한 비-전문적, 비-전략적 비엔날레 운영의 대표적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마야 다카시는 이후 일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올리비에 캐플랑은 선임과정에서도 모두를 걱정시켰지만, 전시가 열린 지금은(비판 일색인 언론보도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패착’이었음이 여러 측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캐플랭 감독은 작년 10월경 전시감독 선임을 둘러싼 논란이 있던 시기에 어부지리로 주어진 전시감독 자리를 아무 의견 표명 없이 수락했다. 프랑스에 있었다고 해도 한국에서 일어난 논란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는 유일하게 함께 일할 큐레이터로 가까운 한국인을 선임했다. (이 큐레이터는 함께 도록에 글을 쓴 김수현 씨다.) 그와 가까운 한국 인사도 여럿으로 알려져 있다. 비엔날레가 국제적인 행사이고 정치, 사회, 역사적 이슈들이 빈번히 다루어지는 첨예한 예술행사란 점을 감안하면 해당 지역에서 벌어지는 논란에 대한 전시감독의 이 정도의 무관심은 의외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그가 선임 후 5개월여가 지난 올 3월 말에야 처음으로 부산을 방문해서 공개한 비엔날레의 주제는 ‘세상 속에 거주하기’였다. 이러한 주제를 접하는 전문가들이나 일반 시민들은 ‘세상 속에 거주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서 공동체와 시민들과의 교감이나 공감대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로 돌아간 뒤 전시 준비기간이 되어서야 작가 리스트를 들고 한국에 다시 나타났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번 부산 비엔날레의 개막 심포지엄에 참여했기 때문에 작가 리스트를 조금 일찍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8월말이었다.) 캐플랭 감독은 ‘세상 속에 거주하기’라는 주제를 던진 채 부산과는 거의 상관없이 프랑스에서 ‘세상 속에 거주하는 데 대한’ 전시기획을 작성했다.

 사운드,식물,각철 200×300×300cm 2014

<큐빅하우스> 사운드,식물,각철 200×300×300cm 2014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
또 다른 문제는 전시작가 구성에서 불거졌다. 참여 작가 77명 중 프랑스 작가가 23명인데다가 대부분이 50, 60대 작가들로 구성되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특정 세대에 한정되었다는 점이 문제라고 본다. (물론 비엔날레는 새로운 작가군이 등장하는 장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한국작가들 역시 10명 중 2명은 프랑스에서 유학했고, 1명은 프랑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나머지 3명은 재불 화가로 활동 중이다. 여타 외국 작가 역시 상당수가 프랑스에서 유학했거나 활동 중이며 프랑스 시민권 보유자로 알려져 있다. 개막 심포지엄에서 이 부분에 대한 청중의 질문에 대해 전시감독은 ‘정직함(honesty)’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큐레이터로서 가장 잘 아는 작가들을 전시하는 것이 정직한 일이라는 대답이다. 물론 이는 국제 비엔날레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로서 ‘잘 아는’ 작가들이 프랑스 관련 작가들로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고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감독이 자신의 잘 아는 주변 인물들과 함께 ‘비엔날레’를 만드는 데 부산시민의 세금과 국고 42억 원을 썼다는 얘기가 된다. 2000년대 초에 한국에서 4년간 프랑스대사관 문정관을 지낸 바 있고 2008년 부산비엔날레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지금은 후쿠오카 주재 프랑스문화원장을 맡고 있는 프랑신 메울(Francine Méoule)조차 이 전시 개막식에 참여한 뒤 이런 비엔날레 전시구성은 ‘전문적이지 않다’며 놀라워했다.
개막 심포지엄 발제자들에게 이번 부산비엔날레에 대한 토론 대신 가급적 ‘세상 속에 거주하기’라는 주제에 대해서 토론해 달라는 전시감독의 요청을 받은 것은 개막식 며칠 전이었다. 개막식에서 처음으로 이 주제에 대한 그의 글을 읽고 느낀 것은, 당연히, 당대 세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적 관점은 대체로 기술적 변화에 대한 반감 혹은 불편함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제기하는 문제는 전시장 입구에 게시된 다음과 같은 주제 설명문에 요약되어 있다.
“최근 들어 개인들의 비물질화, 대상들의 비물질화로서의 인간적인 활동의 비물질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비물질화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처음에는 이러한 관점이 사회의 기능에 이로운 것으로 간주되었었다. 왜냐하면 이 관점은 더욱더 신속한 교환과 더 나은 시간의 경제학,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공통 세계의 모델에의 참여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장점들의 리스트는 매일 매일 늘어갔지만, 하지만 비물질화 경향의 귀결 혹은 부작용은 인간에게 새로운 상황을 야기했다. 가장 두려운 공포를 야기하고,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점점 더 인식불가능하고 포착할 수 없게 만드는 새로운 재현들을 만들어내었다. (중략) 개별적인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실존적 혹은 형이상학적 정의들을 제시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태도들의 목록을 더 늘릴 수도 있다. 이러한 모든 반응들이나 투영들 중에서 예술과 예술가들의 반응은 종종 지나치게 간과되곤 한다. 우리의 현존의 위기와 ‘거기 있다’라는 말 그대로 물리적, 정신적으로 이 세계에 계속해서 살거나 혹은 살지 않으려 하는 우리의 의지의 위기에 대해 예술은 본질적인 반응을 제시한다. 예술은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는 이미 유령인가 아니면 우리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기 위한 살아있는 배우가 되길 욕망하는가?”
캐플랑이 ‘비물질화’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개막 심포지엄 사회를 본 임근준은 ‘포스트모던’이라고 요약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디지털이나 인터넷 등의 기술적이고 진보적인 변화들을 가리키는 좀 더 협소한 개념처럼 보인다. 그가 말하려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당면한 세계는 그보다는 좀 더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사유를 요구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비물질화’라는 개념만으로 우리에게 그 세계 안에서 살아있는 인간이 될지 혹은 유령이 될지의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 반대편에 ‘예술’이 자리 잡고 있다는 대칭적 구도도 그리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러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자칫 ‘국가적 근본주의’나    ‘종교적 근본주의’처럼 일종의 ‘예술적 혹은 형식주의적 근본주의(artistic or formalist fundamentalism)’로 읽힐 수 있다. 그가 자신의 전시를 구분해 놓은 구성을 보면 어떤 생각으로 ‘세계 속에 거주하기’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지가 더욱 분명해진다. 거기에는 ‘운동’ ‘우주와 하늘’ ‘건축과 오브제들의 운동성’ ‘정체성’ ‘역사, 전쟁’ ‘동물들과의 대화’ ‘증인으로서의 자연’ 등이 열거되어 있는데, 이 소주제들은 비엔날레보다는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이나 퐁피두센터의 상설전시 섹션들을 떠올린다. 각각의 소주제들에 대해 모두 언급할 지면은 없지만, 우리가 비엔날레를 통해서 프랑스 모더니즘을 다루지 않는다고 모두 유령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두 번째로, 더욱 심각한 것은 그가 심포지엄 토론에서 현재의 동시대미술을 ‘혼돈’으로 표현하면서 어떤 ‘해결책(solution)’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지점이다. 이런 표현이 무엇을 떠올리고 왜 문제가 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우리가 예술을 중시하고 비엔날레를 기획하는 핵심적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서로 다른 배경과 태도를 지닌 이들이 예술을 통해 ‘공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캐플랑 감독은 프랑스에서 다수의 중요한 전시를 기획한 인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국에서 보여준 모습은 상당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제도개선위원회는 이번 부산비엔날레를 중요한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다음 번에는 모든 이가 수긍할 뿐 아니라 깊은 공감을 누릴 수 있는 부산비엔날레가 되길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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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잔치가 열리기도 전에 이미…

부산 (1)

기자간담회 장 앞에서 벌어진 항의 퍼포먼스

부산비엔날레 2014의 기자간담회가 열리는 9월 19일. 부산시립미술관 지하 강당에 취재진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미 전시감독 선정 문제로 홍역을 치렀고 작가선정에 있어 특정 국가에 몰렸다는 비판이 일어 캐플랑 감독의 답변에 관심이 집중됐다. 그럼에도 올리비에 캐플랑은 전시 개막이 임박하도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캐플랑 감독이 전시 기획의도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 특별전 <비엔날레 아카이브전>과 <아시아 큐레토리얼전>을 맡은 큐레이터의 설명이 있은 후 기자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단 하나의 질문만이 나왔다. 감독 선임과정에 불거진 잡음과 프랑스 작가 편중에 대해 비판 여론이 일고 있음을 아느냐는 것이었다. 캐플랑은 이에 대해 “내가 이곳에 오기 전 벌어진 행정적인 일에 대해서는 유감이다”고 즉답을 회피하면서 “그러나 최선을 다해 토론하고, 아이디어 공유와 대화를 통해 부산예술과 함께 하려 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프랑스에서 “한국작품이나 작가를 소개하는 것이 하나의 관심사였다”고 말했다. 이 같은 캐플랑의 발언에 대해선 아무런 질문도 나오지 않았다. 예상했던 뻔한 대답과 수개월에 걸친 비판 여론에 대한 피로감이 중첩되는 장면이었다.
한편 이날 기자간담회장 입구에서 부산대 미술학과 학생이라고 밝힌 여성이 프랑스 전통의상을 입고 바게트를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부산비엔날레 파행 운영을 비판하고 항의하는 퍼포먼스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시가 본격적으로 열리기도 전에 벌어진 이 두 상황은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감독 선정과 작가 선정에 따른 비판 여론도 들끓었지만 이는 곧 지나친 지역주의나 배타주의가 아니냐는 반격을 받았다. 또한 오광수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면서 안티비엔날레를 주창하던 부산지역 문화예술단체가 명분을 잃어 사분오열된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온전한 운영 매뉴얼의 부재에 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2002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부산비엔날레라는 이름을 걸고 행사를 열어왔다는 점에서 이마저도 주장도 왠지 옹색해 보인다. 전시를 둘러싸고 빚은 갈등이 남긴 상처도 깊지만 무엇보다 미학적, 비평적 언어로 평가받아야 할 전시가 그럴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더욱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부산=황석권 수석기자

 

[Review] 드림 소사이어티 – X brid

드림 소사이어티  __  X brid

서울미술관 10.10~11.16

융・복합의 세상이다. 퓨전, 하이브리드, 잡종, 혼성, 융합, 통합, 교차, 혼합, 협업 개념에 동양적인 통섭, 총섭, 회통사상까지 더하니 세상은 온갖 종류의 만남들로 들떠 있는 것만 같다. 이번 전시도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들의 부단한 만남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 이 시대의 정언명법 같은 흐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기업의 후원을 통한 산업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고전적인 문제의식마저 갖고 있어 전시 자체도 흥미롭지만 그 탄생동학이나 전후 맥락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비판적인 예외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은 늘 사회나 기업의 여유 있는 후원을 원했고, 실제로 이러한 후원 속에서 얼마간 힘을 받아왔다. 그리고 그 부족함과 아쉬움을 여전히 미래의 희망으로 남겨둔 것이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의 맥락과 배경은 어떤 면에서 희망이고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작년 문화역서울 284 전시에 이은 두 번째 전시이고 이후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발전된 횡보를 더한다 하니 기대감마저 갖게 한다. 국내 대표적인 기업이 순수 예술의 대중화와 저변 확대를 위해 전시를 직접적으로 후원한 것도 그렇지만 국가, 기업, 개인을 망라한 모든 사람의 꿈이어야 할 드림 소사이어티라는 이상적인 캐치 프레이즈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서구 모더니티 초반기의 미술공예운동, 독일공작연맹, 바우하우스, 데스틸,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이 꿈꿨을 것만 같은 예술과 사회의 통합이라는 유토피아적이고 아방가르드한 문제의식마저 담고 있어 단순히 미래를 향한 전시만은 아니란 생각이다.
이번 전시는 이렇게 과거 모더니티를 발흥시킨 테크놀로지, 기계미학의 감성과 산업과 예술의 행복한 만남을 향한 오래된 꿈에 더해 지금의 복잡한 현실의 다양한 상황들, 이를테면 확장된 환경이나 공공성의 개념, 그리고 인본주의적인 감성, 동시대예술의 위상 등을 복합적으로 되짚어보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를 단순히 미술, 건축, 패션, 사진, 미디어아트, 설치, 퍼포먼스 등의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전시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미 서로 다른 것들이 부단히 만나는 세상이기에 이런 다양한 장르의 이질적인 만남 자체가 색다른 것이 아닐뿐더러 만남 자체만으로는 융・복합을 운운하는 이 시대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이한 만남들을 서로 통하게 하는 구체적인 방식이나 과정, 결과들의 깊이 자체가 더 문제가 되는 세상인 것이다.
이번 전시 역시 다양한 장르의 혼합형 전시라기보다는 이를 회통(會通)하게 하는 전시의 개념적인 방향 설정과 전시구성의 안정적인 짜임새가 돋보인다. 아마도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고, 가로질러 다시 사회의 미래 속에 자리하게 될 예술 본연의 의미를 추구하고, 이를 위한 다양한 분야와의 현실적인 네트워킹의 발판을 만들려 했기 때문인 듯싶다. 가시성 볼거리에 그치지 않는 이번 전시의 비가시적인 장점들이다. 이질적인 것의 혼합이라 할 하이브리드 개념을 넘어 미지의 수를 의미하는 X개념을 더한 엑스브리드(x-brid)라는 신조어를 통해, 아직은 규정되지 않았지만 늘 동시대예술이 관계하고 있는 무한한 창조적 가능성의 미래와 그 방향을 벡터항으로 설정한 것도 이와 연관된다. 사실 이번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들을 묶어낼 공통분모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미 서로 너무나 다른 관심을 기반으로 한 고유의 작업 영역을 확고히 한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조화롭게 엮어낸 이번 전시의 미덕이라면 이처럼 결이 서로 다른 작가들이 각기 고유의 작업을 펼칠 수 있도록 전시의 바탕이 되는 서울미술관 공간의 장소성을 잘 살린 세련된 세노그래피(scenography)가 아닐까 싶다. 앞서 말한 기업 후원, 협업, 예술의 공공적 실현이라는 현실적인 함의가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고 전시 자체의 자율적인 독립성이 더 돋보인 점도 이와 연동된다. 참여 작가들 역시 기업과의 협업이나 서로 다른 영역의 작가들과 어색한 만남을 의식하지 않고, 이미 다를 수밖에 없는 자신의 고유한 작업을 기반으로 각각의 공간들을 풀어냈다. 개개의 사물은 독자적인 현존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이 서로간의 다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고, 무한히 비추면서 세상이 펼쳐지는 것처럼 말이다.
서울미술관이라는 이전에 미처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공간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것들이 이접해 새로운 장소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마도 전시를 관통하는 미지수 X라는 변수들이 계속해서 그 다르고 새로운 것들을 펼치게 했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 기저에 서로 다른 지반에서 앞으로 도래할 사회와 예술의 미래 위상을 향한 작가들의 공통된 시선과 문제의식이 자리하지 않나 싶다. 참여 작가들의 전시를 통한 상이한 시간, 공간과의 새로운 접속들도 그렇지만 이윤 창출을 우선시하는 기업과 예술의 만남은 이렇듯 서로 다른 지반, 이를테면 사회의 미래적인 지향 속에서 조우하고, 작동되어야 함을 은근히 역설하는 셈이다. 통섭(consilience)의 어원이 ‘함께 뛰어오르기(jumping together)’라니 이 또한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인 것 같다. 이런 모습들이 기본적으로 동상이몽(同床異夢)이겠지만 이상동몽(異床同夢)으로도 향하기에 다성화음처럼 묘한 궁합을 이루어낸 것 같다. 이번 기획의 미덕도 바로 이런 미지의 미래, 그러나 현재 혹은 과거와 연결되어 늘 새로운 모습으로 도래하는 예술의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역할을 전시 동학으로 무리하지 않게 연결시킨 점에 있지 않았나 싶다. 예술과 예술 밖의 영역들을 자연스럽게 연동시켜내면서 말이다.
민병직·문화역서울284 전시감독

[Review] 홍순환 – 중력의 구조

홍순환  __  중력의 구조

자하미술관 10.10~11.2

존재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몸에 탈이 나면 몸이 알아서 자가진단을 하고 자가 치유를 하는데, 여기에 착안한 것이 자연치유요법이고 대체의학이다. 몸이 그렇고 마음도 그런데,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라면 기억을 왜곡시키고 없는 기억도 만들어내는 자기암시 내지 자기최면 내지 자기합리화가 그것이다. 몸이 그렇고 마음이 그렇고 사회도 그런데, 체제의 안정을 위해서 사회는 변화보다는 기꺼이 정체를 선택한다. 정체를 보존하기 위해서 사회는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때론 이데올로기를 급조하기도 한다. 그렇게 모든 급진적인 것은 체제안정을 위해 흡수된다. 혁명의 기억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시들해지고, 아방가르드는 자본주의에 흡수된다. 이처럼 존재는 안정성을 추구하고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경향은 지구에도 있는데, 중력이 그것이다. 홍순환은 중력의 구조를 주제로 중력을 그리고 설치한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중력은 그저 지구가 사물을 끌어당기는 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안정성을 추구하고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존재의 경향성과 같은, 포괄적인 의미를 아우른다.
중력은 아래로 흐른다. 벽에 매달린 튜브다발처럼. 가지런히 벗어놓은 드레스처럼. 벗겨진 옷의 중력이 잠재적인 에로스를 욕망한다. 그러므로 중력은 욕망에 연동되고 에로스를 지향한다. 그리고 사각의 스펀지가 물을 욕망한다. 미니멀리즘의 구조와 반복과 패턴을 전유하면서. 한편으로 벽 아래쪽으로 흘러내려 쌓인 분필가루에는 먼지가 섞여있고, 벌인지 파리인지 모를 죽은 사체가 중력의 법칙에 순응하고 있다. 중력의 법칙은 캔버스에 바른 물감이 아래쪽으로 흘러내려 맺힌, 그리고 그렇게 비정형의 얼룩을 만드는, 그리고 그 얼룩이 관객에게 어떤 잠재적인 공감을 자아내는 경우와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중력은 물리적인(역학), 심리적인(욕망), 그리고 미술사적인(전유) 현상에 연동된다. 그리고 중력은 확성기로 대리되는 이데올로기와 프로파간다와 같은 사회학적 의미에 연동되기도 한다. 사람들의 의식을 짓누르고 무의식을 파고들어 자기를 실현하려는 제도의 관성에 중력이 작동되고 있는 것. 그리고 중력은 시간에도 작용한다. 작가는 벼룩시장에서, 아마도 가족사진이지 싶은, 슬라이드 필름 한 다발을 구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필름을 사진으로 현상했다. 그렇게 모르는 사람들이, 익명의 주체들이, 어쩜 이미 죽었을지도 모를 혼령들이 되살아났다(롤랑 바르트는 사진의 본질이 죽음이라고 했다). 그 유령들은 과거에 속한다. 시간적으로 과거는 현재에 중력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가 있겠다. 현재에 연동된, 잠재된 현재며 현재의 침전물로 볼 수가 있을 것.
이런 중력 작용에 작가는 반기를 드는 제스처를 슬쩍 밀어 넣는다. 거의 눈에 띄지 않게 공중에 떠있는 카펫과 바닥에 고인 액체와 그것을 비추는 조명이 그것이다. 특히 바닥에 고인 액체는 중력의 결과랄 수 있겠고, 그 액체는 조명이 비추는 열을 받아 휘발될 것이다. 그렇게 휘발되는 액체가 중력에 반하는 실천논리를 암시하고 있는 것. 이로써 작가는 어쩜 중력으로 나타난 물리적 현상을 인문학으로 전유하는, 인문학의 배경으로서의 유물론을 증명하는, 그런 형식실험을 꾀하고 있는 것 같다.
고충환·미술비평

 

[Review] 신상호 개인전

신상호 개인전

금호미술관 8.29~9.28  예화랑 9.12~10.8  이화익갤러리 9.18~10.5

신상호의 작업은 사물의 수집, 그것들의 배열, 그리고 그로부터 연유한 일련의 오브제 작업, 도예의 확장된 영역에 걸쳐진 것 등으로 구분된다. 이른바 도조이자 건축적인 도조, 도조설치 등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오늘날 실용적인 차원의 도예작업을 벗어나 도조, 혹은 흙을 사용해 확장된 조형작업으로 전개되는 예는 쉽게 접할 수 있다. 도예를 확장시킨 대표작가로 알려진 신상호는 흙과 불이 만나 이뤄지는 도조에 다채로운 색상의 회화적 터치, 그리고 조각적 구조물을 연결하고 다양한 오브제와 유리, 거울, 스틸 프레임, 세라믹, 공업용 페인트 등을 두루 섞어서 매력적인 조형물을 만든다. 그는 이를 불 그림, ‘구운 그림(Fired Painting)’이라고 부른다. 다양한 재료와 사물들이 결합해 있지만 궁극적으로 흙을 불에 소성시키고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 형성된 작업이다. 불은 그의 작업에서 그만큼 핵심적이다. 불은 인위성을 벗어난다. 그 예측할 수 없는 불의 힘이 흙의 상태와 색채의 스밈과 번짐을 조절한다. 150만 년 전에 출현한 호모 에렉투스가 최초로 불을 썼다고 한다. 그로부터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사물의 제작과 예술이 가능해졌다. 불은 빛과 열기의 근원이다. 불은 연금술이다. 그러니 꿈의 실현이다. “불은 그 자체가 광명과 연소, 정신과 물질, 창조와 파괴, 결합과 분리 등 양의성을 띤 것이고, 새로운 것과 낡은 것, 깨끗함과 불결함, 신과 인간, 이계와 현세 등 서로 다른 두 항 사이의 매개 작용을 하는 것이다.”(오쓰카 노부카즈)
그는 ‘흙으로 자연의 질감과 색을 깊이 있게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니까 흙이 지닌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려는, 그리고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려는 성질과 흙이 지닌 친환경적, 자연친화적 성질은 여전히 중요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도출할 여백을 그만큼 많이 지니고 있다고 본 것이다. 고온에 소성시킨 구운 그 흙그림은 바닥에 놓이고 벽에 가설되고 건축의 일환으로 서식한다. 소극적인 차원에서 실용성이나 전시장 공간이란 제한된 영역에서만 자리하는 작업이 아니라 삶의 공간으로, 환경으로 확산되고 파생되어 나가는 작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것은 건축 공간의 벽이고 환경으로서의 벽이다. 하나의 사물, 조각으로 독립하는 동물형상의 도자작업이나 바닥에 직립하거나 건물 외벽에 부착된 창틀 형태는 풍부하고 견고한 색채를 지닌 회화이자 조각이고 사물이자 도조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것은 공간에 자립하고 자존한다. 커다란 사물이 되고 세계가 되었다. 이는 향후 도예, 도조작업의 가능성을 고려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그의 작업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물이 자리한다. 그는 모든 사물에 대한 탐닉과 그 스스로 제작한 또 다른 사물들을 두루 섞어놓으면서 사물 자체를 매력적인 존재로 다시 보게 한다. 오랫동안 그는 한국, 중국, 유럽,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그 문화권에서 제작된 여러 사물, 골동을 수집해왔다. 이 수집행위는 그의 작업의 근간을 이룬다. 오래된 사물은 매혹적인 예술품이자 그의 몽상을 자극한 매개로, 시간과 공간을 함축한 텍스트로 다가왔을 것이다. 따라서 그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작한 작업들은 이른바 ‘원시성과 현대적 감성’이 어우러진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우리는 사물과 더불어 살며 사물들의 세계 속에서 살다 죽는다. 신상호와 같은 사물수집가, 감식가는 사물의 장엄함을 통해 삶을 맛보고 그 삶의 진경을 들여다보려는 자이다. 그러니 그에게 사물의 수집과 그로부터 발원하는 새로운 사물의 제작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사물들은 관념과 추상이 아닌 것들, 즉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들,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들, 무생물, 다양한 물건과 도구들을 포괄한다. 세계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물은 ‘사물-도구’들에 해당한다. 사물들은 삶을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고 자아를 시간적으로 연장한 것이다. 신상호에게 사물의 수집행위는 취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오랜 세월 수집가로 살아온 그에게 수집은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수집 대상이 품고 있는 시간성과 거기에 압축되어 있는 대상의 원산지, 용도, 종속산업 등의 변화와 추이로 대표되는, 일종의 시대성을 소유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의 작업은 수집된 ‘사물이나 사상이 시간을 견디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추이,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발견한 영감’을 시각화하고자 한 것이라는 뜻이다.
신상호의 작업은 과거와 미래, 가상과 현실이 뒤섞이며 이종 교배된 듯한 기묘한 형상들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거대한 크기와 화려한 색채들, 온갖 재료의 병합 등 서로 다른 요소들이 엉키고 충돌하며 모종의 기운을 뿜어낸다. 불이 이룬 희한한 사물들이고 흙이 이룰 수 있는 가능성, 여백, 무한을 감지시키고자 한다. 그런 기운이 불꽃처럼 일렁인다.
박영택·미술비평, 경기대 교수

위·신상호 <Wow>(사진 가운데) 혼합재료 설치 2014 금호미술관 전시광경  아래·신상호 <Minhwa Horse> 도판에 유약, 쇠 228×60×170cm 예화랑 전시광경

[Review] 박진화 – 강화發-분단의 몸

박진화  __  강화發-분단의 몸

성곡미술관 8.29~11.30

박진화의 회화적 힘은 산불처럼 뜨거웠다. 구조적이면서 때때로 위압적이기도 한 화이트 큐브를 뒤흔들 수 있는 회화는 많지 않을 것이다. 역설적일지 모르겠으나, 20세기 회화는 화이트 큐브에 ‘모던하게’ 적응하면서 존재감을 키웠다. 미니멀과 팝과 극사실 작품들이 화이트 큐브에서 극찬 받은 것은 그것이 화이트 큐브와의 전시적 효과를 극대화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박진화의 회화적 불은 그러나 태생적일 만큼 강렬하고 거칠다. 그것은 마치 가시나무나 떨기나무에 붙은 야훼의 불처럼 살아있다.
전시를 둘러본 뒤, 다시 도입부로 가 <그 너머2>를 보았을 때 나는 그 불의 시작이 1980년대와 맞닿아 있음을 직감했다. 그것이 실제로는 불의 형상이 아닐지라도 1988년 작 <그 너머2>는 사람과 신과 대지가 한 몸으로 불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불은 광야를 헤매는 자들의 고난과 억압과 순교(희생)와 분노와 절망, 그리고 희망의 예지를 상실하지 않으려는 신념의 강밀도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 그림에서 흥미로운 것은 성(聖)과 육(肉)이 이분화 되지 않고 서로 보듬어 안으면서 하나의 불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푸른 하늘이 아니라 ‘하늘’로서 존재하는 자와 땅의 사람으로 존재하는 자들의 혼불!
10년, 20년이 흐르면서 그의 회화는 불의 불길로, 불씨들의 회화적 표현으로, 혼불의 작은 씨알들로 번졌다. 대부분 최근 10년 사이에 그려진 작품들은 불씨들의 붓질과 마티에르는 물론이요, 불씨들의 생명 에너지로 충만하다. 그리고 그 생명의 에너지는 이 세계를 이루는 빛의 색들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생명의 존재들이 각기 하나하나의 불(씨)을 터뜨려야만 가능한 일일 터. 그렇다면 박진화의 불(씨)과 상징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올해 제작된 <사인여천-무량화(事人如天-無量花)>가 하나의 단서가 될 것이다. 주지하듯 ‘사인여천’은 동학의 2대 교주였던 최시형(崔時亨) 선생이 동학의 시천주사상(侍天主思想)에 의거해서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고 말한 것에서 비롯된다. 또한 동학의 21자 삼칠주(三七呪)는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로 이뤄졌고 여기서 시천주사상이 발원하는데, 그 뜻을 풀면 다음과 같다. “지극하고 신령한 기운이여/ 내 안에 내려 지피소서,/ 그 맑고 밝은 신령이여/ 청하고 비오니/ 내 안에서 크게 지피소서./ 한 얼을 깨달아 모시니/ 무궁한 천지에 얼나 하나 마음,/ 생각하고 생각하여 잊지 않으리니/ 모든 앎이 하나 마음”    (필자 역).
박진화의 화면을 가득 메운 색, 그것이 사람이든 신이든 자연이든 우주이든 하나의 불씨로 존재한다고 할 때 그것의 실체는 ‘지극하고 신령한 기운’이다. 그 기운이 존재의 내부에서 맑고 밝게 지펴진 상태를 우리는 보고 있다. 올해는 동학 창시 120주년이 되는 해다. 최제우(崔濟愚) 선생은 동학 이후 두 갑자 뒤에 새 세상이 열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박진화의 회화는 예지의 현실태일 수 있다. 이 땅의 사람들이 한 얼로서 신령한 기운을 터뜨려 새 세상을 열고 있는 상태로서.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직 그 불씨조차 살리지 못하는 정치적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김종길·경기문화재단 정책개발팀장

 

[Review] 김태곤 – Mystic Flower Garden

김태곤  __  Mystic Flower Garden

갤러리W가회 9.26~10.10

김태곤의 ‘신비한 화원’전은 시각과 촉각, 이미지와 문자 이미지의 관계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주제로 작업하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유희적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싱겁고 담담한 스타일의 작업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다보니 작가가 작품의 이면에 깔고 있는 생각을 간과하기 쉽다. 언뜻 추상적인 조형요소로 구성되었는데, 사실 조형적 연출이라고 생각한 요소들이 시각장애인의 소통수단인 ‘점자’들이다. 또 이 점자들은 모두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과 삶의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품들 가운데 ‘로고스 라이트 윈드 블룸(logos light wind bloom’은 이번 작업을 위한 작가의 기본적인 예술관, 세계관, 인간관을 표현하고 있다. 구약의 ‘태초에 말씀(logos)이 있었다.’ 이후 지구생태계에 꼭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빛과 숨 쉴 수 있는 대기와 그럼으로써 생명을 꽃피우는 것을 표현했다.
한편 점자로 표현된 꽃말을 담담하게 그려낸 회화들은 김태곤 작가가 기존 작업에서 조형적 표현을 절제하여 좀 더 사색적인 방향으로 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번 전시는 시적인 뉘앙스와 영적 태도를 융합하는 시도처럼 보이는데, 제목 그대로 비의적인 신비의 차원에서 이미지와 메시지가 만나고 있다. 작가는 특별한 조건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고안된 기능어인 점자를 이미지와 메시지, 감각과 의미의 관계를 성찰하는 데 이용한다.
작가는 전통적인 은유와 상징으로서의 이미지에 대해 다른 시각을 제시하려고 한다. 코드화 한 점자는 촉각이 아닌 시각에 의존하는 평균적인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해석되지 않는 무의미한 이미지로 보인다. 마치 도시의 야경이나 네온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반딧불이와 같은 풀벌레가 날아다니는 자연의 풍경 같기도 한 이미지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꽃말을 표현한 점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눈앞의 이미지들이 다른 차원의 이야기 맥락에 놓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주 구체적인 점자이미지와 그것이 전혀 독해되지 않는 추상의 세계가 만나는 신비를 경험하는 것이다.
오늘날 못 믿을 것이 인간의 감각인 것처럼 인간의 언어 또한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인간의 눈을 속이는 다양한 기술이 전통적인 회화의 기술로 전승되었다. 그리고 많은 예술가에 의해 인간의 감각은 물론 인간의 사유를 교란하고 충격을 주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이렇게 싱거우면서도 담담한 태도로 일반적인 이미지와 메시지의 관계를 교란하고 비평하는 것은 현대미술이 이루어온 주요한 성과 중 하나이다. 자신의 확신이 흔들리고 교란되며 인간은 과거 인류의 조상이 그러했듯 교만하지 않고 반성적인 태도를 경험하는 것이다. 해맑은 분위기로 꽃말을 의미하는 점자를 전면에 내놓고 작가는 회화이미지가 어떠해야 할지 숙고한다. 그것은 현대미술과 올바른 삶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무한한 이미지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사회에서, 도덕과 윤리가 바닥을 치는 세계에서 인류의 문화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회화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김노암·문화역서울284 예술감독

[Review] 홍지연 – 사건의 재구성

홍지연  __  사건의 재구성

가회동60 10.8~26

1990년대 후반 미술사 인형 연작, 가면 연작 등 팝적인 이미지의 설치작업을 발표하며 등장한 홍지연이 이후 민화 이미지를 차용한 회화작업에 매진한 지  10여 년이 되었다. 1990년대 이른바 ‘신세대’ 문화라고 지칭할 만한 현상에서 두각을 보였던 홍지연이 어느덧 설치작업 10년, 회화작업 10년, 총 20년 화력을 회고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1990년대는 앞선 시대의 억압적 정치 현실에서 벗어난 한국의 청년세대가 소비사회와 대중문화의 새로운 감각을 가볍고 경쾌하게 즐기기 시작한 ‘신세대문화’ 의 기점으로 언급된다. 대학생 집단 내에서는 학생들의 정치사회적인 개입과 관심이 퇴로하면서 뚜렷한 분기점을 형성하는 지점으로 언급된다. 1990년대 전반 홍익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홍지연은 진중한 민족의식과 사회적 부채의식에서 벗어난 첫 세대의 작가였던 셈이다.
1990년대의 신세대는 가볍고 경쾌하게 대중문화 시대의 시각이미지를 즐기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홍지연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구분을 막론하고 팝적인 이미지, 키치적인 혼성에 주목하여 1990년대 후반부터 10여 년간을 설치작업에, 이후 10여 년간을 민화작업에 매진해왔다. 설치와 회화, 입체와 평면을 막론하고 홍지연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지점은 익숙하고 평범한 이미지, 이미 완성되어 무수히 복제되고 흔하게 통용되는 이미지에 있었다. 그것이 서양의 경우라면 미술사의 유명한 걸작 이미지, 대중문화 시대의 폭주하는 시각영상의 이미지일 것이며, 동양의 경우라면 민속미술의 영역에 속하는 민화의 이미지일 것이다. 홍지연은 이미 너무도 익숙하여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이미지에 꾸준히 관심을 보였다.
언뜻 그의 그림은 흔히 보던 민화 이미지의 재연처럼 보인다. 달이 있고, 해가 있고, 모란과 연꽃, 원앙과 기러기, 잉어와 나비, 복숭아와 호랑이, 매화와 곤충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홍지연이 이런 이미지들을 가지고 지난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그림 그리는 재미를 잃지 않았던 것은 그러한 이미지들이 작동되고 구성되는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평범한 민화의 모티프들은 그가 최근 깊은 인상을 받은 ‘힉스 입자’를 설명하기도 하고, 소셜 네트워크상에서 꼬리를 물고 말이 퍼져나가는 상황을 재연하기도 하며, 일인 주거 시대의 고립된 존재들을 시각화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익숙한 레디메이드의 민화 모티프들은 홍지연의 이미지 폴더 속에 차곡차곡 저장됐다가, 그가 소환하는 대로 불려나와 천연덕스럽게 새로운 민화의 시스템으로 재구성된다. 상투적인 이미지들이지만 개인적인 기억을 풀어내는 방식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인 코멘트의 통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21세기 홍지연식 버전으로 재활용된 민화의 모티프들은 민화를 표현의 도구로 삼은 그가 민화의 작동 시스템을 몸에 익혀 자신의 이야기를 능숙하게 풀어내는 도구로 삼기도 하고 흥미진진하게 화면을 구성하는 토대로 삼으면서 제대로 리뉴얼되었다. 농익은 원색의 향연으로 펼쳐지는 홍지연의 정밀한 민화 연작은 이러한 ‘민화의 재구성’이라는 방식으로 구동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것이 작가 자신에게 그림 그리는 기쁨을 주었으며 회화적 구성의 기본적인 룰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권영진·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