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신상호 개인전

신상호 개인전

금호미술관 8.29~9.28  예화랑 9.12~10.8  이화익갤러리 9.18~10.5

신상호의 작업은 사물의 수집, 그것들의 배열, 그리고 그로부터 연유한 일련의 오브제 작업, 도예의 확장된 영역에 걸쳐진 것 등으로 구분된다. 이른바 도조이자 건축적인 도조, 도조설치 등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오늘날 실용적인 차원의 도예작업을 벗어나 도조, 혹은 흙을 사용해 확장된 조형작업으로 전개되는 예는 쉽게 접할 수 있다. 도예를 확장시킨 대표작가로 알려진 신상호는 흙과 불이 만나 이뤄지는 도조에 다채로운 색상의 회화적 터치, 그리고 조각적 구조물을 연결하고 다양한 오브제와 유리, 거울, 스틸 프레임, 세라믹, 공업용 페인트 등을 두루 섞어서 매력적인 조형물을 만든다. 그는 이를 불 그림, ‘구운 그림(Fired Painting)’이라고 부른다. 다양한 재료와 사물들이 결합해 있지만 궁극적으로 흙을 불에 소성시키고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 형성된 작업이다. 불은 그의 작업에서 그만큼 핵심적이다. 불은 인위성을 벗어난다. 그 예측할 수 없는 불의 힘이 흙의 상태와 색채의 스밈과 번짐을 조절한다. 150만 년 전에 출현한 호모 에렉투스가 최초로 불을 썼다고 한다. 그로부터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사물의 제작과 예술이 가능해졌다. 불은 빛과 열기의 근원이다. 불은 연금술이다. 그러니 꿈의 실현이다. “불은 그 자체가 광명과 연소, 정신과 물질, 창조와 파괴, 결합과 분리 등 양의성을 띤 것이고, 새로운 것과 낡은 것, 깨끗함과 불결함, 신과 인간, 이계와 현세 등 서로 다른 두 항 사이의 매개 작용을 하는 것이다.”(오쓰카 노부카즈)
그는 ‘흙으로 자연의 질감과 색을 깊이 있게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니까 흙이 지닌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려는, 그리고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려는 성질과 흙이 지닌 친환경적, 자연친화적 성질은 여전히 중요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도출할 여백을 그만큼 많이 지니고 있다고 본 것이다. 고온에 소성시킨 구운 그 흙그림은 바닥에 놓이고 벽에 가설되고 건축의 일환으로 서식한다. 소극적인 차원에서 실용성이나 전시장 공간이란 제한된 영역에서만 자리하는 작업이 아니라 삶의 공간으로, 환경으로 확산되고 파생되어 나가는 작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것은 건축 공간의 벽이고 환경으로서의 벽이다. 하나의 사물, 조각으로 독립하는 동물형상의 도자작업이나 바닥에 직립하거나 건물 외벽에 부착된 창틀 형태는 풍부하고 견고한 색채를 지닌 회화이자 조각이고 사물이자 도조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것은 공간에 자립하고 자존한다. 커다란 사물이 되고 세계가 되었다. 이는 향후 도예, 도조작업의 가능성을 고려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그의 작업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물이 자리한다. 그는 모든 사물에 대한 탐닉과 그 스스로 제작한 또 다른 사물들을 두루 섞어놓으면서 사물 자체를 매력적인 존재로 다시 보게 한다. 오랫동안 그는 한국, 중국, 유럽,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그 문화권에서 제작된 여러 사물, 골동을 수집해왔다. 이 수집행위는 그의 작업의 근간을 이룬다. 오래된 사물은 매혹적인 예술품이자 그의 몽상을 자극한 매개로, 시간과 공간을 함축한 텍스트로 다가왔을 것이다. 따라서 그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작한 작업들은 이른바 ‘원시성과 현대적 감성’이 어우러진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우리는 사물과 더불어 살며 사물들의 세계 속에서 살다 죽는다. 신상호와 같은 사물수집가, 감식가는 사물의 장엄함을 통해 삶을 맛보고 그 삶의 진경을 들여다보려는 자이다. 그러니 그에게 사물의 수집과 그로부터 발원하는 새로운 사물의 제작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사물들은 관념과 추상이 아닌 것들, 즉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들,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들, 무생물, 다양한 물건과 도구들을 포괄한다. 세계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물은 ‘사물-도구’들에 해당한다. 사물들은 삶을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고 자아를 시간적으로 연장한 것이다. 신상호에게 사물의 수집행위는 취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오랜 세월 수집가로 살아온 그에게 수집은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수집 대상이 품고 있는 시간성과 거기에 압축되어 있는 대상의 원산지, 용도, 종속산업 등의 변화와 추이로 대표되는, 일종의 시대성을 소유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의 작업은 수집된 ‘사물이나 사상이 시간을 견디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추이,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발견한 영감’을 시각화하고자 한 것이라는 뜻이다.
신상호의 작업은 과거와 미래, 가상과 현실이 뒤섞이며 이종 교배된 듯한 기묘한 형상들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거대한 크기와 화려한 색채들, 온갖 재료의 병합 등 서로 다른 요소들이 엉키고 충돌하며 모종의 기운을 뿜어낸다. 불이 이룬 희한한 사물들이고 흙이 이룰 수 있는 가능성, 여백, 무한을 감지시키고자 한다. 그런 기운이 불꽃처럼 일렁인다.
박영택·미술비평, 경기대 교수

위·신상호 <Wow>(사진 가운데) 혼합재료 설치 2014 금호미술관 전시광경  아래·신상호 <Minhwa Horse> 도판에 유약, 쇠 228×60×170cm 예화랑 전시광경